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57
이 세상에 마법사는 무수히 많지만, ‘대마법사’ 칭호를 가진 자는 서른이 되지 않는다.
소드마스터가 100명 내외라는 걸 생각해보면, 대마법사들은 훨씬 희귀한 셈이다.
‘검’을 다루는 기량이 절정에 오른 자와 ‘마법’을 다루는 기량이 절정에 다다른 자의 차이는 글자 하나같지만, 그만큼 탐구하는 주체의 차이가 크다는 얘기였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소드마스터가 되는 건, 무기를 사용하는 ‘자신’의 지배력을 늘려가 최종적으로는 ‘나’를 깨우쳐가는 것의 연속이었다.
반면에 마법은 이 세상의 진리와 원리에 ‘마나’를 개입시켜 특이점을 만들어내는 행위였다.
그만큼 세상을 통찰하는 시각이 뛰어나야 특이점을 만들어낼 폭이 넓었고, 그럴수록 높은 서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는 나를 제외한 그 외 모든 것을 통달하는 과정이었다.
‘나’와 ‘세상’.
두 주체만 비교해도 관조해야 할 범위가 달랐다. 그러니 소드마스터보다는 대마법사가 더 귀한 것이다! 라고 마법사들은 보통 주장을 했다.
하지만 대마법사 프로크스는 다르게 생각했다.
왜 소드마스터보다 대마법사가 적느냐?
그것은…
“스승님, 얀센트가 죽었습니다… 흐흑.”
“미련한 놈, 그렇게 내가 무리한 실험은 하지 말라 했거늘!”
개 같은 실험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재능이 넘치는 마법사가 있다 해도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실험 한번 까닥 잘못하면 너도 나도 한방인데.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오로지 세상의 탐구에만 미쳐있는지라, 그 탐구의 과정에서 본인들이 납득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했고, 근거를 찾으려면 당연히 실험과 같은 실증적 행위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마나’라는 에너지가 참으로 지랄 맞게 민감했다는 거다.
어쩌면 이 세상은 엄청난 에너지의 폭발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나는 수식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시전자를 호되게 가르쳤다.
때론 프로크스의 제자 얀센트처럼 그 가르침으로 인해 몸의 반쪽이 날아가기도 했다.
제자의 부고에 프로크스는 성을 내며 거처를 빠져나왔다. 얀센트의 죽음을 알리러 멀리서 온 제자에게 그러긴 싫었으나,
‘내가 더 잘 가르쳤다면 녀석이 그리되진 않았을 텐데…’
이런 미안함이 있었고,
‘내가 마탑을 세웠더라면… 녀석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실험했을 텐데.’
이런 안타까움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다.
보통 대마법사 정도 되는 사람이면 상아탑의 승인 후, 귀족이나 왕실의 지원을 받아 마탑을 차렸다.
하지만 대마법사 프로크스는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자였다.
‘세월이 흐르면 사라지는 건 당연할진대,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남을 흔적을 내 손으로 쌓긴 싫다.’
자신의 마탑은 긴 역사를 이어갈 것이라 자부하는 오만함이 서려 있기도 했고, 프로크스가 연구하는 마법 자체가 ‘잊혀가는 것에 대한 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던 탓이었다.
복원이란 개념이 존재하려면, 일단 ‘훼손’이라는 개념이 필수적이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존재하듯이, 하나를 이해하면 그 반대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 소멸이란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그 깨우침이 여러 해 되다 보니 프로크스의 성격은 염세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프로스크라도 제자의 죽음은 견디기 어려웠다. 젊고 창창한 것들이 하필 사라져야 하는 건지,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훼손이나 소멸을 당연히 생각하지만, 그만큼 ‘복원’을 본업으로 삼는 그였다. 그 시대에 탄생하는 존재들은 시대적 소명이나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그는 믿었다. 한 제자가 그리 허무하게 죽은 것이 안타까운 이유였다.
‘하늘은 더럽게 맑구나.’
연구와 실험을 하느라 몇 달 만에 하는 외출이었다. 프로크스는 도시 내에 숨겨진 연구소에서 빠져나와 단골 술집으로 발을 옮겼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놈팡이들이 많은지, 술집은 소란스러웠다.
프로크스가 바에 앉아 싸구려 포도주를 주문하자, 주인은 괜찮은 포도주를 가져왔다. 아헨탈 자작이 프로크스의 단골 술집 주인과 협의를 해 선금을 낸 탓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프로크스는 포도주를 들이켜며 ‘크, 이 싸구려 맛이 난 좋아.’하며 죽은 제자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러던 와중 그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었다. 보통 제 생각하기 바쁜 사람이라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프로크스였지만, 친우와 관계된 소식이라 지나칠 수 없었다.
“……이번에 붉은 여우 용병단이 10골드짜리 의뢰를 달성했다더군. 아헨탈 자작가 이 공자랑 같이 원망의 숲을 다녀왔다던데.”
“원망의 숲이 어디야?”
“나도 잘 모르는데, 탈렌 백작가 쪽 미개발된 숲을 그렇게 부른다나 봐. 듣기론 되게 위험하다던데.”
“탈렌 백작가면 완전 변방 촌구석 아냐. 주워 먹을 게 뭐 있다고 이 공자나 되는 사람이 간 거래?”
“그게… 숲 안쪽에 유적이 있더래.”
“헉, 유적? 거길 다녀왔단 말인가?”
외곽숲에서 발견되는 유적의 가치 정도는 지나가는 용병도 알았다. 거기서 발견된 것들을 기반으로 여러 왕국이 세워졌으니 환상을 품는 건 당연했다.
“이거. 아헨탈 왕국이라도 세워지는 거 아냐? 뭘 발견했대?”
“하하, 용병들한테까지 자세히 설명해주겠어? 성공 보수까지 줬다는 걸 보면 뭔가 가져오긴 했나 봐.”
프로크스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슬픔이 가시고 호기심이 차올랐다. 그런 제 마음이 역겨워 혐오감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래서 자신이 쉰 중반을 넘긴 나이에 대마법사의 반열에 오른 거 아니겠는가.
‘에레브, 그 녀석이 성공했나 보군… 내 스크롤들을 싸그리 가져가기에 무슨 짓을 벌이나 했더니. 허허.’
그는 아헨탈 가의 이 공자를 꽤 좋아했다. 아버지가 안 보는 곳에선 망나니짓을 벌이는 게, 꼭 어린 시절의 친우와 딱 닮아있어서 그랬다.
‘근데 로안, 이놈은… 그런 일이 있다면 나에게 즉각 알려야 되는 것이 아닌가?’
슬픔, 호기심, 대견함, 의아함, 분노.
5단계의 극심한 심정 변화를 겪은 프로크스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일어난 테이블엔 싸구려 포도주 값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스콰이어 시험으로 자질 평가를 마친 이후, 아헨탈 가문에서 메시의 하루는 많이 달라졌다.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였다.
처음 달라진 건, 지내는 장소의 변화였다.
기존에는 본관에서 떨어진 응접관에서 지냈으나, 방의 위치가 바뀌어 본관의 방을 배정받았다.
본관에서 지내는 일원들은 아헨탈의 성씨를 지닌 자들이었으므로, 그런 곳에 메시가 자리를 잡았다는 건 그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표시였다.
그다음은, 아헨탈 가문의 투자가 본격적으로 메시에게 집행되었다는 점이다.
메시는 눈을 뜨자마자 탁상 위의 벨을 살짝 흔들었다.
딸랑딸랑.
곧장 방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하녀가 들어왔다. 그녀가 들고 온 쿠션에는 붉은 루비가 놓여있었다.
“오늘 수련물자입니다.”
“고맙습니다.”
“말씀 낮춰주세요. 메시 님. 누가 들으면 제가 혼나요.”
“미안해요. 적응되면 그리하죠.”
하대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녀를 위해서라도 적응해야 할 문제였다.
메시는 수련물자를 챙겼다. 에레브가 건네준 적 있는 물건이었다. 깨뜨리고 마나연공법을 운용하면 마나가 증폭됨으로써 체내에 쌓이는 양이 달라졌다.
아헨탈 기사들은 두 달마다 지급되는 것인데, 메시는 매일 받고 있었다. 메시에게 투자하겠다는 아헨탈 가의 의지가 또렷했다.
이 정도 대우는 기사단장인 바실러스가 받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래, 이런 밑바탕을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만족스러웠다. 하녀가 나가자마자 메시는 보석을 손으로 깨뜨리고 아헨탈 마나연공법을 운용했다.
더는 아헨탈 마나연공법을 숨기지 않아도 됐다. 엊그제 메시는 아헨탈 검술과 마나연공법을 정식으로 전수받았다.
전수자는 라망이었다. 메시가 한 번에 아헨탈 마나연공법을 성공해버리자 그는 ‘천재는 뭔가 다르구나’ 하고 착각한 눈치였다.
우웅…
보석에서 나온 기운이 마나를 증폭시켰다. 증폭된 마나가 마나 회로를 타고 마나홀이란 한 점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평소보다 눈에 띄게 쌓여갔다. 이것으로 늦깎이 수련생의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아헨탈 가에 온 게 후회되지 않았다.
한 시간 연공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하늘이 어스름하게 푸른빛을 띄울 시간이었다.
하녀들이 즉시 미지근한 세숫물과 민트풀을 가져와 대령했다. 이 정도면 현대에서 사는 것보다 편했다.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아직은 하녀의 행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녀의 수고를 감사하게 여기자 하녀가 수줍게 웃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 메시는 바로 새벽 수련을 나섰다.
항상 그랬듯, 제 3 연무장을 향해서였다.
“훈련 가십니까? 수고하십시오.”
가다가 마주친 순찰 사병들도 절도 있게 인사를 건네왔다. 예전 같으면 제 일에 바빠 말도 걸지 않을 자들이었는데,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쿵! …쿵!
내성을 빠져나와 연무장의 근처만 가도 그 특유의 기구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면, 에레브와 아헨탈 자작, 에레나를 빼곤 저 사람뿐이리라.
근육질의 노인은 오늘도 연무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쇠질에 여념이 없었다.
13살에 스콰이어 시험에서 250kg짜리 철구를 소화한 사람이었고, 지금은 기량이 떨어질 나이가 되었어도 나이를 잊고 매일 단련을 하는 자였다.
전직 기사였으나,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 집사로 전직했는진 알 수 없었다.
메시가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그로테인이 유독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이것도 스콰이어 시험 이후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허허… 메시 경, 오셨습니까? 오늘도 날씨가 좋지요?”
“네… 그로테인 집사님은 오늘도 단련에 여념이 없군요.”
“운동은 숨 쉬듯이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당연한 거지요.”
그의 주변에 쌓인 무거운 철제 방패와 원판, 원판에 끼우는 바벨, 정체불명의 철구 등등… 개인이라면 혀를 내두를 것들이었다.
거기다 무거운 철판을 구부려 만든 갑옷까지 있었는데, 그로테인의 몸에 맞을 만한 크기였다. 전신 단련을 할 때 입는 것으로 추정됐다.
“자, 메시 경. 여기 설탕물부터 좀 드시고… 오늘은 하체 조지는… 아니, 하는 날이지요?”
단물을 건네는 노인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런 관계가 되었는데, 그 이후부터 계속해서 메시와 단련을 하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않았을 텐데… 메시는 며칠 전의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
그 날은 날씨가 슬슬 더워지고 있던 때였다. 메시는 상의를 탈의하며 맨몸으로 연무장을 뛸 준비를 하는데,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워.”
“?”
뭐지, 잘못 들었나.
메시는 바람 소리를 잘못 들은 거라 여기고 연무장을 뛰었다.
몇 바퀴를 가볍게 뛰는데, 돌연 메시의 시야에 그로테인 집사가 잡혔다.
평소 같으면 자신이 오기 전,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갈 사람인데 오늘 같은 경우엔 시간이 겹친 것이다.
“그로테인 집사님. 오늘은 평소보다 늦으셨군요?”
“허허, 사실 혼자 운동하기 적적해서 메시 경과 같이하려고 늦게 나왔습니다.”
“아… 네.”
이유 모를 친근함에 대화를 적당히 얼버무렸다. 연무장을 다 뛰고 난 후, 메시는 무거운 철제 방패를 짊어졌다. 하체 단련을 위함이었다. 천천히 스쿼트를 시작했다.
현대 스포츠 과학의 지식을 가지지 못한 메시였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었다.
정확하다고 자신할 순 없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기억을 더듬어 따라 하고 있었다. 할 줄 모른다고 안 하는 것보단, 어색하게라도 따라 하면서 단련하는 낫다고 생각했다.
“…..”
강한 시선이 느껴진다.
고개를 돌리니 그로테인이었다. 눈이 마주쳐도 계속해보라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고인물 앞에서 재롱을 떠는 뉴비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후…..”
그 깊고도 깊은 한숨이 유독 신경 쓰였다.
“저기, 집사님. 무슨 문제라도?”
“허허, 발뒤꿈치가….. 휴, 아닙니다. 아니에요.”
“…”
뭐지?
스쿼트를 끝마치고 이젠 가슴 운동을 한답시고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그로테인이 질문을 했다.
“몇 회 하시려고요?”
“횟수는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만.”
“후우…..”
“…”
이제 슬슬 저 한숨의 의미가 뭔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제가 단련을 잘못하고 있습니까?”
“허허.”
그냥 웃기만 한다.
저건 분명히 그렇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해서 기분 나쁘진 않았다. 메시도 내심 느끼고 있던 차였다.
‘아는 바 없이 무작정 하는 거니까…’
메시는 엔조 무에테의 힘을 기반으로 무식하단 소리가 나올 만큼 반복 운동을 하고 있었다.
미디어든 유튜브든, 21세기에서 봤던 운동 동작들을 몸이 지칠 때까지 계속하는 것. 그게 지금 메시가 하는 짓이었다.
‘어쨌든 근육은 근섬유를 찢은 뒤에 회복시키면서 커지는 건데, 그럼 무작정 고중량 고반복하면 몸은 커지는 거 아닌가?’
엔조 무에테의 힘을 담을 그릇을 만들기 위해 메시는 이은호의 기본 상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의 눈에는 그게 얼마나 미련하게 보일까?
그로테인의 한숨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었다.
‘차라리 이 사람한테 제대로 배워볼까?’
집사 노인의 저 툭 튀어나온 대흉근과 승모근, 성인 머리가 박혀서 울고 있는 듯한 팔뚝을 보면 적어도 잘못 가르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한 번 PT라도 해달라고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으므로 나쁠 것이 없었다.
어느새, 그로테인은 바벨에 원판을 무식하게 끼우고 벤치 프레스를 하고 있었다. 우람한 대흉근이 불거져 나왔다. 아기 머리가 가슴에서 튀어나오는 광경 같았다.
훅훅훅훅훅!
그로테인은 공장에서 찍어낸 양산품처럼 밀어내기 동작을 5회 짧게 반복하고, 머리맡에 바벨을 걸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개운치 못한 표정이었다.
음, 혹시…
메시는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시면… 보조해드릴까요?”
그와 동시에 그로테인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