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59
메시는 남매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궁금했다. 목적지를 물어도 기대하라는 듯 에레브가 씩 웃을 뿐이었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헨탈 도시 내의 거대한 건물 앞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커다란 크기였는데, 사실상 이 도시에서 내성과 수도원을 제외하면 가장 큰 크기의 건물이었다.
“여긴 어딥니까?”
“크하하, 내가 기대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여긴 후앙 상단에서 운영하는 경매장이다. 아무 때나 열리는 곳이 아니지. 한 달에 비정기적으로 단 두 번만 열리는 곳인데 초대권조차 값이 꽤 비싸거든!”
에레브는 마치 자신이 운영하는 경매장이라도 되듯이 설명했다. 그런 자신감이 가능한 게, 아헨탈 도시 내에서 운영되다 보니 꽤 큰 판매세가 나오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메시 경을 위해서 선물을 주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비밀로 하고 데려온 거니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에레나가 살을 덧붙였다. 여기까지 온 건 메시를 위한 오라버니의 선의임을 밝혀야만 했다.
메시 입장에서도 기분 나쁠 일은 아니었다. 에레브가 자신을 위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말이 안 됐을 뿐.
‘에레나 양이 왜 같이 있나 했더니, 이 아이디어를 에레나 양이 낸 거군.’
메시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왔을까, 고민을 해보자 답이 나왔다.
‘그런가… 이 공자가 초조해하는 건가.’
피식.
에레브에게 요구했던 걸 아헨탈 자작이 이미 이뤄주기로 했으니, 자신을 묶어둘 만한 게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에레나에게 상담까지 해 이런 선물 공세를 하려 하다니… 에레브치곤 제법 깜찍한 짓을 하는 셈이었다.
메시는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도시 ‘아헨탈’에도 나와보고 싶었습니다. 너무 내성에만 있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이 공자.”
“뭐, 뭘 이런 걸 가지고… 얼른 들어가자.”
부끄러웠는지 에레브가 서둘러 앞장서자 라망이 뒤를 따랐다. 메시는 휠체어를 탄 에레나, 그녀의 호위 여기사와 함께 경매장 건물로 진입했다.
**
[ 여기도, 저기도 사람이다뀨! ]역시나 사람이 많은 곳에 들어오자 가장 흥분한 건 메시도, 에레브도 아닌 뀨였다. 메시의 주머니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채 눈을 굴리고 있었다.
‘사람 구경을 참 좋아하는 녀석인데… 그동안 너무 가만히 놔뒀군.’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에레브님, 여기까지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후앙 상단 제 2 경매장의 큰 영광입니다.”
“아아. 그래, 모처럼 이 몸이 행차하셨다. 그대가 관리자인가?”
“예, 이곳 제 2 경매장을 담당하고 있는 관리자 길버트라고 합니다. 오늘 부디 에레브님을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에레브는 손짓만으로 그를 따르게 했다. 고위 귀족의 피, 그것도 이곳 아헨탈을 지배하는 가문의 이 공자라는 건 이곳에서 엄청난 특혜였다.
그리고 에레브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와 위압감이 경매장 내의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만큼 특별하기도 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귀족이었다. 그에게 예외가 있다면 메시뿐.
“오늘도 ‘그거’하지?”
“물론입니다. 저희 후앙 상단 경매장의 특색이자 차별점 아니겠습니까? 이리 오시지요.”
저게 무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자 에레나가 친절하게 답변했다.
“후앙 상단이 운영하는 경매장에는 특별한 서비스가 있어요. 방문객 모두에게 번호표를 나눠주거든요.”
“뽑기라도 하나 보군요.”
“역시 메시 경. 눈치가 빠르시네요. 저는 이걸 처음 알고 얼마나 획기적이라 생각했는데요.”
온갖 마케팅 수법이 범람하는 21세기에서 왔으니 메시에겐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자자, 에레브님, 에레나님. 좋은 기운이 담긴 번호표를 골라드릴 수 있는 영광을 제게 주시면…!”
“내껀 내가 뽑는다.”
바로 말을 자르며, 에레브는 통 안에 손을 쑥 넣어서 금박이 된 번호표 하나를 꺼냈다.
1번이었다. 에레브는 만족한 듯 웃었다. 에레나는 길버트에게 영광을 돌렸다.
에레나는 647번, 메시는 55번, 라망은 231번, 에레나의 호위 여기사는 890번이었다.
“저희 ‘후앙 박스’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앙 박스는 10할의 당첨률을 자랑하고 있으며, 내용물은 무엇일지 알 수 없습니다. 번호표의 교환은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얼마든지 가능하며, 경매를 마치고 이곳으로 오셔서 교환하시면 되겠습니다. 경매까지 남은 1시간,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관리자 길버트는 자신의 뒤편에 성벽처럼 쌓여있는 나무 상자들을 가리켰다. 상자마다 번호가 새겨져 있었는데, 저것들이 후앙 박스인 듯했다.
메시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뽑기라기에 그냥 추첨 같은 건 줄 알았더니, 럭키 박스일 줄이야…’
[ 재밌다뀨! 나도 받을래뀨! ]공주가 흥미를 보이자, 메시는 55번 번호표를 주머니에 넣어줬다. 하지만 이내 공주의 목소리가 시들해졌다.
[ 뀨… 꽝이다뀨.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55번 상자에 특별한 냄새나 기운이 안 느껴진다뀨…. ]‘?’
공주의 말에 메시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 말은 특별한 냄새나 기운이 느껴지는 다른 상자를 알아볼 수 있다는 뜻 아닌가.
생각해보면 원망의 숲에 있는 몬스터들은 후각이 비상식적일 정도로 예민했고 기운에 민감했다. 특히 개미들은 생명체에서 나오는 화학물질로 의사를 알아차릴 정도였다.
‘냄새나 기운이 난다고 해서 꼭 당첨이라 할 순 없겠지만, 뭔가 특별한 게 있다는 거지?’
[ 그렇다뀨! 저기 761번, 122번, 41번이다뀨! 특히 761번에는 정령의 기운이 느껴진다뀨. ]정령의 기운! 자신에게 자연 친화력이 있다는 걸 오랜만에 상기시키는 단어였다.
1000개의 박스 중 3개라… 확률이 극악하다.
특별한 건 최소한 넣고, 나머지는 비싼 돈 들여서 경매장에 입장한 고객들이 기분 상하지 않을 만큼의 물건들로 채웠을 것이다.
‘3개를 싹 다 받아봐?’
답을 아는데 그것을 못 받아먹는 것도 좀 그랬다. 최소한 정령과 관계된 761번은 갖고 싶었다.
메시가 고민하는 와중 에레브가 다가와 번호표를 내밀었다.
“흠, 이건 네 녀석이 가지도록. 이 몸이 뽑은 거니 아마 엄청난 게 당첨될 거다.”
이미 특별한 상자 3개를 아는 판국에 그 말을 믿지는 않았어도 냉큼 받아 챙겼다. 번호표가 있으면 다른 번호표로 교환할 수 있었으니까.
덩달아 에레나도 메시에게 번호표를 건넸다. 그녀도 오늘만큼은 메시를 위한 선물을 주고픈 마음이었다.
라망과 호위 여기사는 자신의 번호표에 기대를 거는 듯 상기됐다. 카지노 딜러가 패를 건네주면 잔뜩 기대하고 열어보는 도박꾼의 얼굴이다.
“그럼 전 이 번호표들 좀 바꾸고 오겠습니다. 경매 시작 전까지 오죠.”
“무려 이 몸이 ‘1번’을 뽑았는데 그걸 바꾼다고?”
“뭐, 어떻습니까. 이제 제 것인데.”
“가, 같이 움직여요. 메시 경.”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에레나 양. 걱정 마세요.”
메시가 웃으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모처럼 나온 건데 같이 다니면 좋을 텐데…’
‘저 녀석, 또 무슨 속셈이 있나? 갑자기 번호표를 바꾼다고?’
남매는 각자 다른 아쉬움을 품었다.
에레브는 혼자 사라진 메시에게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건가, 의아함을 느꼈지만 애석하게도 메시에게는 ‘약자멸시’의 감이 작동하지 않았다.
**
‘당첨번호를 알아도 누가 그 번호를 지녔는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게 문제군.’
후앙 박스가 1000개니 1000명의 사람이 참여한다는 뜻인데, 그중 3명을 찾으려고 번호를 묻고 다니는 것도 비효율적이었다.
곰곰이 방안을 생각하던 메시는, 에레브가 번호표를 뽑자 그 번호를 기록지에 수기하던 길버트가 생각났다. 번호표 교환이야 가능하지만, 일차적으로 그 번호를 누가 뽑았는지는 기록하는 것이다.
그래야 강탈이나 도둑질 같은 문제가 생겼을 때 대응할 수 있고, 행운의 당첨번호를 누가 처음 가져갔는지 상단에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그 기록지를 구해야 되겠는데… 이 공자의 입김을 부리기도 모호하다.’
에레브가 떼를 써서 그 기록지를 보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이후에 당첨 박스 3개 전부를 이 공자 일행이 가져간 걸 알면 운으로는 설명 못 할 ‘의혹’이라는 게 생겨버린다.
다른 이의 손을 빌려야만 했다. 메시는 모처럼 도시에도 나왔고, 만날 사람을 만나야 할 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아저씨 얼굴을 보겠네.”
[ 뀨? ]“뀨, 너는 장군 개미가 어딨는지 느껴지지?”
[ 물론이다뀨! 떨어져 있는 동안은 신호를 계속 주기도 했다뀨. ]“안내해. 볼 일이 생겼으니까.”
메시는 경매장 입구를 지키는 이들에게 번호표를 보여주고 빠져나왔다. 경매 참여자라는 표식이므로 그것만 있다면 잠시 나갔다 와도 무방했다.
공주의 안내에 따라 메시는 시내를 걸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이종이 보이자 모두의 시선이 한 번씩은 모였다가 사라졌다.
메시의 걸음은 점점 도시 아헨탈의 음지로 향하고 있었다.
제아무리 상업이 발달한 도시라고 해도, 빈부격차는 있는 법이었다. 하물며 명백한 계급 사회인 이곳에서 말해봐야 무엇하랴.
대로를 벗어나 도시 외곽으로 들어갈수록 모습이 바뀌었다. 가난이 풍경을 점유해갔고, 병마와 죽음의 쓸쓸함이 도로에 남아있었다.
자신을 노리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메시는 그걸 안다는 티를 낼 필요가 없었다.
마침내 공주의 안내가 끝난 곳은 낡은 술집 앞이었다. 그 술집 앞에 서자 쳐다보던 시선이 싹 사라졌다.
이곳이 평범한 장소는 아니란 뜻이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싸구려 술을 마시던 이들이 힐끗 쳐다보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수다를 떨었다.
메시는 단골 술집이라도 되듯, 거침없이 바에 앉아있는 주인에게로 걸어갔다. 주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메시를 쳐다봤다.
“이종? 혹시 이종의 왕자?”
“잘 아는군. ‘더듬이 기사와 약초꾼’을 만나러 왔다.”
“오, 진짜 두목하고 아는 사이인가 보네. 이리오셔.”
그의 손짓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공주의 만류가 들려왔다.
[ 수호대장은 위층이 아니라 아래층에 있다뀨. ]후우, 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주가 아니었으면 귀찮은 일로 시간을 날렸겠군.
“이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바로 안내해. 지하에 있는 거 다 아니까. 암호문도 말했는데 왜 시비지?”
메시가 경고하듯이 주인에게로 기운을 뿌리자, 그의 안색이 바로 바뀌었다. 마나를 깨우친 순간부터, 메시 역시 이들이 함부로 대하기 힘들 경지에 오른 셈이었다.
술집 주인의 몸이 덜덜 떨리며 안색이 파리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도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하는 일이라…”
시간이 없다는 듯 재촉을 하자, 주인은 바 아래 숨겨진 문을 황급히 열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방 3개가 있는 복도가 나왔고, 가장 끝방의 문을 술집 주인이 두드렸다.
“어, 들어와.”
익숙한 목소리였다. 메시는 미소를 머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아는 얼굴이 앉아있었고, 그 뒤로 더듬이가 튀어나온 품이 큰 철갑을 입은 기사가 있었다.
서로를 인식하자 둘 다 보기 드문 함박웃음을 지었다.
“레토 아저씨.”
“메시, 오랜만에 보는구나.”
베누다 마을에서부터 따라온 약초꾼 레토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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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는 베누다 마을을 떠나올 때부터 자신의 역할을 생각했다.
수많은 미지의 연결고리가 있는 사건을 뒤집어 파려면, 메시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메시가 하려는 건 바르셀로가 상대했던 거대한 집단과 싸움이었다. 어느 누가 거기에 관련이 되어있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신뢰 관계의 동료가 더 필요한 일이었다.
메시도 그것을 알았는지, 탈렌 백작가를 떠나오는 길에 레토에게 부탁을 했다.
“아저씨가 아헨탈 영지에 가서 해주실 일이 있어요.”
“뭐든 말하거라. 그걸 각오하고 널 따라가는데, 하지 못할 게 뭐 있겠느냐.”
“아헨탈 영지의 음지를 점령해주세요.”
“…나보고 뒷골목의 왕이 되라는 소리냐?”
레토는 조금 당황했다. 자신이 생각한 건 메시가 편하게 부릴 만한 도구가 되는 일이었지, 어느 조직을 지배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메시에겐 이유가 있었다.
“저는 아헨탈 자작가를 기반 세력으로 삼아서 놈들과 전쟁을 벌일 겁니다.”
“그래, 상대는 미지의 큰 세력일 테니 네게도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이해한다. 그런데 내가 뒷골목의 왕이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인 거냐?”
“그러려면 아헨탈 영지의 모든 걸 제 손안에 틀어쥐어야 합니다. 양지의 모든 것은 제가 이 공자의 뒤에서 쥘 수 있지만… 어두운 곳까진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 겁니다.”
메시에겐 아헨탈 가문과 영지 자체를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만들겠다는 속셈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어두운 골목길 속 그림자 하나 놓치기 싫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자기 대신 음지의 지배자로 만들어 영향력을 확대한다.
“거기서 세력을 키우면서 모든 정보를 모아주세요. 영지의 내부부터 영지에 위협이 되는 적들의 것까지.”
메시의 계획을 이해한 레토는 수긍했다.
“그런데, 나 홀로 가능할 성싶으냐? 제대로 전투를 치러본 지 30년이나 흘렀는데…”
“아저씨에게 멋진 무기를 쥐여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무기?”
레토가 의아해하자, 메시는 뀨를 시켜 왕실수호대장을 불러들였다.
여왕의 지배력이 존재하는 개미 왕국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기에, 뀨의 위치가 ‘공주’에서 ‘신생 왕실의 주인’으로 바뀌고 있었다.
공주로서는 왕실수호대장의 존재의의를 넘어 완벽한 지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왕실 부흥을 위한 유일한 씨앗이 되어버린 뀨는 이제 왕실수호대장의 무한한 충성을 받는 입장이 됐다.
장군이는 더듬이를 까닥거리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때요, 이제 가능하겠어요?”
메시의 질문에 레토는 헛웃음을 흘렸다.
가능? 당연한 소리다.
브릴란트 경지에 육박하는 괴물을 다루는데 그걸 못하면 병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