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65
내성으로 가는 길에 프로크스는 신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다친 환자로 보이는 자들이 길목에 늘어서 있었다. 아헨탈의 병사들이 그들을 질서정연하게 관리했다.
프로크스는 병사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여기 이 환자들은 대체 왜 줄을 서 있나?”
“여행자십니까? 지금 이들은 이종의 성자님에게 치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겁니다. 어젯밤에 있던 화재로 다친 사람이 많습니다.”
“이종의 성자?”
“이 근방에서 오신 분이 아닌가 보군요. 저희 이 공자께서 최근 초빙해온 치료사입니다. 솜씨가 대단하지요.”
“그렇소?”
프로크스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손짓을 하곤 다시 내성으로 걸음을 했다.
‘에레브, 그 녀석이 대견한 일을 했구나.’
가난한 평민들은 교단에서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솜씨가 좋은 치료사를 필요로 했다. 에레브가 그걸 알아보고 누군가를 데려온 듯했다.
트롤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멀리서 말에 올라탄 에레브가 보였다. 손짓으로 치안대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이상하군. 치안대를 담당하는 건 장남인 에이러스 아니었나?’
에레브와 눈이 마주쳤다. 에레브가 놀라서 말에 내려 뛰어왔다.
“프로크스님!”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네 형은 어디 가고 네가 치안대를 다루고 있느냐?”
“오늘부로 제가 치안대 담당입니다!”
“…네가? 치안을?”
가장 치안과 거리가 먼 녀석 아닌가…?
“뭘 그리 미심쩍어하세요.”
“…아니다.”
프로크스는 에레브와 함께 내성으로 들어갔다.
에레브를 만난 김에 당장 ‘원망의 숲 유적에서 뭘 발견했지?!’하고 외치고 싶었으나 호기심을 꾹 눌렀다.
자식뻘 되는 아이에게 자신의 체통을 잃기 싫은 마음이랄까.
괜히 딴 얘길 했다.
“치료사를 데려왔다던데? 다들 저리 줄 서 있는 걸 보니 정말 뛰어난 자 같구나.”
“메시 녀석 말이죠. 솜씨가 좋죠. 이미 사제보다 뛰어나다는 게 소문이 나서…”
“사제보다 뛰어나? 이 녀석, 농담도.”
프로크스는 에레브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에레브는 억울해했다.
“진짠데.”
“장가도 간 녀석이 애처럼 거짓말하면 쓰나. 어른 놀리면 못 쓴다.”
이래선 무슨 소리를 하든 소용없을 것이다. 에레브는 어떻게 이 억울함을 풀까, 고민하다가 내성 본관 앞에 있는 에레나를 발견하곤 활짝 웃었다.
“그럼 믿게 해드리겠습니다..”
“어허, 이 녀석이 진짜…”
에레나는 본관 바깥에서 재활 훈련을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크스와 에레브가 다가가고 있는 사이, 에레나가 호위 여기사의 손을 잡고 휠체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어, 어?”
프로크스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본인도 치료할 방도를 찾지 못했던… 에레나가 일어나서 걷고 있다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대체… 내가 없던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그로서는 에레브에게 설명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
“프로크스!”
“로안! 잘 지냈나.”
편지는 자주 하지만, 항상 연구에 빠진 친구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헨탈 자작과 프로크스는 살짝 포옹하고 떨어졌다.
“그래, 편지는 받았나?”
“무슨 편지?”
“내가 큰 녀석을 시켜서 편지를 보낸 지 꽤 됐는데? 그걸 받고 온 줄 알았네만.”
“난 자네 영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거였지! 안 그래도 큰일이 생겼는데 나한테 연락 한 통 없어 섭섭하던 찰나였어!”
“그래?”
아헨탈 자작으로선 의아했다. 에레브가 도착한 날 바로 띄웠으니 무려 스무날하고도 하루가 더 되었는데…
배송에 문제가 생겼다면 보고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혹시, 다른 생각을 했나?’
근래 들어서 큰아들과 엇갈리는 걸 느꼈다. 예전 같으면 보는 시각이 비슷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었는데, 갈수록 딴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아헨탈 자작의 안색이 나빠지자, 프로크스가 물었다.
“자네, 괜찮나?”
“좋지. 요즘만 같으면 걱정이 없겠어.”
“그렇겠더군. 에레브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자네가 준 스크롤 덕분일세. 짠돌이 같은 자네가 그걸 다 넘겨줬다는 얘길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크크, 삼십 년 전에 두건을 쓰고 상단 행렬을 털자던 자네가 생각나 주지 않을 수가 없더군.”
“이 사람,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하하!”
오랜 지우답게 농담만으로도 즐거워지는 분위기였다. 그때 응접실의 문을 열고 아헨탈 일가가 다 함께 들어왔다.
“오랜만에 뵙네요. 프로크스 경.”
아헨탈 자작의 부인, 엘로이가 인사를 하자 프로크스도 반갑게 맞이했다.
“엘로이… 그대는 여전히 아름답구려. 어찌 그대가 로안 같은 친구의 부인이 되었는지 난 그게 가장 미스터리요. 수많은 남자의 로망이었거늘!”
“호호! 프로크스 경에겐 아니었지 않나요?”
“그, 그럴 리가? 알고 보면 나 역시…”
“호호, 인사치레는 됐어요.”
당황한 프로크스의 표정이 마음에 든 건지, 엘로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은 휠체어를 탄 에레나에게로 이어졌다.
“에레나도 아까 보니 조금 걷고 있더군. 로안, 이제 바랄 게 없겠어. 원하던 소원을 다 이룬 거 아닌가?”
“하나 더 생겼지. 그걸 자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놨는데… 못 읽었다니, 아쉽군.”
아헨탈 자작이 에이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큰아들의 안색에는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더 수상했다. 평소 같으면 자신의 실책에 미안해하는 기색이라도 띨 텐데.
“이제부터라도 알면 되지. 안 그래도 내가 궁금한 게 많거든.”
“그래야 프로크스답지. 이리 오게.”
자작은 자신의 집무실로 프로크스를 안내했다. 동시에, 에레브를 향해 ‘메시 경을 모셔와라.’라는 주문을 남겼다.
이때만큼은, 오히려 프로크스보다 자작이 더 급해 보였다.
집무실로 이동한 자작은 프로크스의 앞에 낡은 종이뭉치를 꺼내놓았다. 보존 마법 처리가 되어 이전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그것이 무엇인지, 프로크스는 단번에 알아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고대의 마법이라고?”
“에레브, 그 녀석이 원망의 숲 유적에서 가져왔다네.”
“이런 미친! 맙소사! 혹시 오늘이 잊고 있던 내 생일인가?!”
“하하하!”
프로크스는 즉시 종이에 얼굴을 처박고 하나씩 훑어나갔다. 친우다운 반응이었기에 아헨탈 자작은 웃어버렸다.
“어떤 건지 알 수 있겠나? 자네는 그런 거 전문 아닌가.”
“내가 ‘실전 마법의 복원’을 전문으로 하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옛 언어의 전문가는 아니야.”
모르는 언어를 해석할 순 없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고대 마법을 공부하며 봤던 낯익은 마법진과 술식, 그림 따위로 대충 종목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연금술에 관한 거 같은데… 아니군, 창생술에 관한 것도 있어… 무엇을 만드는 거지? 이건 트롤을 상징하는 문양인데. 몬스터를 재료로 쓴단 말인가? 연금술에서 트롤은 ‘영원한 생명’과 ‘힘’을 의미하는데… 몬스터의 피와 살을 다뤄야 할 테니 마법의 난도가 올라가겠군…”
“…일단 언어 해석부터 한창 매달려야겠는데. 내가 알기론 야그란 어를 아는 사람은 남아 있지 않지만, 자료는 남아 있을 거야. 최대한 밑바탕이 되는 기초 자료를 끌어모아야 해. 많을수록 해석의 정확도도 올라갈 걸세. ‘팔란티어 왕국 수도 도서관’에 자료를 요청해봐야겠군. 그곳의 사서들이라면 최대한 모아주겠지.”
“하하!”
벌써부터 자리를 펴고 계획을 짜는 친구의 모습에 자작은 든든함을 느꼈다.
“뭐가 그리 유쾌한가? 난 이걸 해석할 생각에 앞이 캄캄한데.”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자네를 위해 귀빈을 모셨으니까. 곧 자네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군.”
“…?”
프로크스가 갸웃거리는데,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때마침 귀빈께서 오셨네, 들어오시오!”
문을 열고 메시가 들어왔다.
**
프로크스는 그간 자주 들어본 사람이었다. 메시는 그를 실제로 만난다는 것에 큰 기대를 품었다. 그리고 첫 만남이 이뤄졌다.
금발 머리 사이마다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흰 머리, 젊었을 적엔 아헨탈 자작보다 훨씬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을 듯했다.
키도 아헨탈 자작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으며, 풍채가 좋아서 마법사보다는 기사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분이 그 이종의 성자라는 분인가? 에레나를 일으키신 분?”
오는 길에 이미 들은 상황이었다. 메시는 프로크스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메시는 평소대로 ‘숲의 종족’으로 시작되는 자신의 소개말을 풀었다. 그러자 프로크스의 표정이 묘해졌다.
“숲의 종족…?”
프로크스는 메시의 이곳저곳을 훑다가, 귀에서 시선이 멈췄다.
“내가 아는 숲의 종족은 흑발과 흑안이긴 하나 귀가 훨씬 뾰족하오만…”
예상 밖의 상황. 메시는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프로크스 경께선 ‘숲의 종족’ 중 직계 혈통을 만나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오… 본 적은 없지.”
“그럼 이번이 처음이겠군요.”
“그렇겠구려.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소. 내 지식이 짧아 실례를 저질렀으니 용서해주시오. 인간인 내가 이종의 왕족을 만나볼 경험이 몇 번이나 있겠소?”
덤덤히 실책을 인정하는 프로크스였다.
“그런데, 로안. 이분은 왜 갑자기 부른 것인가?”
“자네가 지금 필요로 하는 걸 지녔기 때문이지.”
“내가 필요로 하는 거…?”
프로크스가 원하는 것은 고대 마법의 언어를 완벽히 통달한 자 아니겠는가.
“그렇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잊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종들은 사정이 다르겠군! 혹시 이분이 야그란 어를 아시는 분인가?”
“정답일세.”
프로크스는 이제야 메시에게 큰 호기심을 느끼는 듯했다. 태도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어찌 그 오래된 언어를 잊지 않고 전수해왔단 말인가!”
흥분한 프로크스가 메시의 손을 붙잡고 붕붕 흔들었다.
메시는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서둘러 약 하나를 처방해야만 했다.
“정확히는 1할 정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나머지는 유추해볼 필요가 있지요.”
“1할이 어디오? 충분하오, 충분해!”
통하지 않았다.
실전 마법 복원 전문가인 프로크스 입장에서는 1할도 높은 수치였던 탓이다.
거기다 수많은 마법 실험을 하다 보면 매번 오차가 발생하고, 그걸 고치고, 오류가 생기고, 또 고치고를 반복해야 했다.
시작할 때는 멀쩡했던 것이 끝에 가서는 더 망한 경우가 허다했다. 차라리 연구 전이 더 완성도가 높은 어처구니없는 상황.
‘다 안다’에서 ‘1할만 안다’로 바뀌는 것 정도는 그의 경험에서 양호한 일이었다.
프로크스가 잔뜩 흥분해서 메시를 흔들어대자, 주머니에 있던 뀨도 정신이 사나운지 머리를 뽈록 내밀었다.
[ 지진이라도 났나뀨? 대체 이 인간은 뭐냐뀨! ]“아, 아니… 이것은 만년 개미의 유충이 아닌가!”
[ 뀨… ?! ]갑자기 타겟이 메시에서 뀨로 바뀌었다. 프로크스는 뀨가 든 주머니를 낚아채더니 자신의 눈앞에 뀨를 대고 자세히 살폈다.
[ 뭐냐뀨! 뭐냐뀨!! ]“오오, 대단하오. 고대 시대를 대표하는 종족이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이걸 키우는 것이오?”
“…비슷합니다.”
“역시, 이종의 왕족은 달라도 뭐가 다르구려.”
뀨를 알아보자마자 프로크스는 메시에 대한 신뢰도가 확 오른 듯했다.
그만큼 아는 사람의 눈에 뀨는 대단한 종족이었던 셈이다. 이는 메시도 모르던 사실이었다.
아헨탈 자작이 황당하다는 듯 친우에게 물었다.
“아니… 좀 커다란 애벌레 아닌가?”
“이런 바보 같은! 만년 개미는 고대 유적의 벽화로도 나온 종족일세. 우리 문명보다 오래 살아온 종족이란 말이야!”
“어… 그런가?”
그게 왜 대단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우리보다 오래 산 벌레 아닌가?
자작은 더 묻지 않았다.
어찌 됐든,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일이 벌어진 기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메시 경과 프로크스가 만났군.’
프로크스는 고대의 마법을 해석하기 위해서라도 메시 경을 가까이할 테고, 메시 경은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프로크스를 가까이할 것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한 퍼즐과도 같았다.
아헨탈 자작은 저 두 명이 일으킬 시너지가 기대됐다.
멀리, 대화재로 생긴 빈자리에 거대한 마탑을 짓는 상상을 해버렸다.
**
그날의 저녁 식사 시간은 길었다.
그간 떨어져 있던 시간이 제법 됐으니, 그 간격을 채우기 위해 서로가 쉴 새 없이 떠들어야 했다.
프로크스는 근래에 부고가 전해진 제자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아헨탈 자작도 얼굴을 본 적 있었기에 같이 슬퍼했다.
또, 아헨탈 자작은 에레나가 일어난 이야기로 삼십 분을 떠들었다.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듯했다.
둘은 이리저리 얘기를 주고받았다.
달이 높게 뜰 때가 되어서야, 식사가 끝나고 모두가 침실로 돌아가게 되었다.
메시도 그로테인과의 새벽 훈련을 생각해서 일찍 잠자리로 들어가려는데, 프로크스가 그를 붙잡았다.
“어디, 조용히 단둘이 차라도 마시지 않으시겠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프로크스는 메시가 궁금해하는 자료를 해석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또 마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메시의 처지에서는 반드시 친해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침묵에 빠졌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서로가 가늠하는 듯했다.
그러다 대뜸.
프로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가 꺼낸 말은,
단순한 안부인사도, 정체를 캐묻는 말도, 고대 마법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메시로선 정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혹시, 마드리와 무슨 사이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