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71
모두가 싸늘한 침묵에 빠진 채, 눈을 한곳으로 모았다.
붉은 스크롤.
적십자 마도대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구.
‘저걸 어떻게…?’
에이러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훌란과 오헨스… 그 배신자들이 돌아섰나? 아니면 그중 하나?’
힐끗, 에이러스는 집무실 문 근처에서 서성이는 아돌을 쳐다봤다.
‘설마 아돌 경이?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혼란스러워하는 에이러스.
그런 큰아들을 계속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아헨탈 자작.
자작은 큰아들의 눈길이 아돌을 쳐다보고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물론 이는 메시도 봤다.
모두가 붉은 스크롤을 볼 때, 둘은 에이러스의 반응을 관찰한 셈이다.
“저건… 저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걸 꺼낸 메시 경을 의심해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역시나 에이러스는 전면 부인했다.
“형님이 저를 위해 챙겨주시고 어찌 메시 경에게 덮어씌우십니까? 메시 경은 저와 함께 원망의 숲에서 온 자입니다.”
“속지 마라, 동생아! 그는 우리 가문에 불화를 일으켜서 혼자 독차지할 생각이야!”
“이종의 왕자인 그가 왜 그래야 합니까?”
에레브의 한 마디에, 에이러스는 말문이 막혔다.
‘저놈이 이종의 왕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다 아는데!’
도망간 증좌(촌장)를 찾아내 찢어 죽이고 싶어졌다.
거기다 가만히 있던 가신 하나가 입을 열었다. 중도를 지켰지만 에이러스 측에 가까웠던 자였다.
“…메시 경은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성화를 부리지요. 우리가 모두 그 광채를 직접 목격한 사람들 아닙니까?”
끄덕.
“성화라는 건, 제가 듣기론 신의 은총이라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흑마술과 얽혔을 리 없지 않습니까?”
메시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손에서 황금빛 성화를 피워올렸다.
신이 내린 기적을 다시 보게 되자, 일부 종교에 심취한 가신들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메시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성화를 다룬다는 건, 신 앞에서 온갖 부정한 것을 물리치겠다고 약조하는 것. 흑마술과 관계될 수가 없습니다. 이건 대공자의 것입니다.”
메시의 성화가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어차피 저들은 몰랐다.
“거짓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대공자의 심복인 ‘아돌 경’에게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실 죽은 라우드의 것이지만… 어디서 왔냐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점점 거짓말이 능숙해지는 메시였다.
“…!”
갑자기 유탄을 맞게 된 아돌이 놀라자빠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아니, 나는…”
에이러스의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아돌에게서 가져온 거였다고?’
출처를 듣게 되자 더 당황스럽다. 에이러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돌의 것이 아니라고 자신이 부정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그렇다고 자신과 상관없다고 못 박기엔 아돌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는 자였다.
더군다나 아돌에게 적십자단과의 연결고리를 맡긴 게 사실 아닌가?
상황판단이 서지 않아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된 순간.
아헨탈 자작이 입을 열었다.
“모두 정숙하시오.”
집무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일단, 당장 우리는 급한 불부터 꺼야 하오. 곧 알란아스터가 도시에 도착할 테니, 대면할 장소부터 마련할 것이오. 에레브, 너는 지금 먼저 나가서 도시 밖에 막사를 치고 뒤로는 아헨탈 기사단을 전부 대기시켜라. 단, 바실러스 경은 따로 할 일이 있으니 내게 오라 전하고.”
“…예. 아버지.”
상황을 끝까지 못 보게 되자, 에레브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메시를 흘깃 쳐다보며 눈을 마주치고 방을 나섰다.
끝까지 잘 부탁한다는 의미 같았다.
“그리고…”
자작이 에이러스를 쳐다봤다.
“지금부터 대공자 ‘에이러스’, 기마장 ‘아돌’을 구금하겠소. 기한은 의혹이 풀릴 때까지 샅샅이 조사를 마치고 난 이후요.”
“아, 아버지?”
“억울합니다, 가주님!”
에이러스와 아돌이 비명을 질렀다.
“기사 라망은 저 둘을 포박해, 하나는 지하 감옥. 하나는 고문실에 가둬라. 누구도 절대 내 허락 없이 저 둘과 만나는 일이 있어선 아니 될 것이다. 라망이 철저히 지키도록. 만일 이를 어긴다면… 그자도 이번 일에 관계자라 여기고 대하겠다.”
차분히 읊조리는 게 더 무거운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가신들이 고개를 숙였다.
“저들과 관계된 장소, 단체, 인물… 모두 철저히 수색하겠소. 이는 휴고 남작이….. 아니다. 내가 직접 맡아서 하도록 하지.”
누가 큰아들과 관계된 자일지 모른다. 모처럼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이러스를 따르던 가신들은 눈을 마주치며 당혹스러워했다.
크롬벨의 사절이 온다고 해서 모였다가, 갑자기 지지하는 대공자가 위기에 빠졌으니…
하지만,
‘가주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대공자를 도울 필요는 없지.’
‘지금은 숙이고 있는 게 상책이야.’
그들이 지금껏 성세를 누리며 생존했던 방식이 어디 가는 일은 없었다.
**
가볍게 실실 웃는 표정이 그의 특색이었는데, 지금은 한 점 찾아볼 수 없었다.
알란아스터는 당혹스러웠다.
소드마스터라니?
아헨탈에?
‘아헨탈 가에서 소드마스터를 찾으려면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데… 하필 새 마스터가 이번 대에 나왔다는 건가!’
일이 어렵게 됐다.
알란아스터는 애초 이번 일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하의 아헨탈 자작이라 해도, 눈앞에 소드마스터가 목숨줄을 쥐고 흔들면 별수 있겠는가?’
이게 그의 판단이었다.
자신의 일 처리 방식을 아는 친형이 직접 자기를 지목한 건, 크롬벨 백작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쉽게 해결을 보려 했는데…..
“나, 바실러스 폰 하와이어요. 오랜만이오.”
“어, 어… 그렇군. 바실러스 경.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예전 같으면 똑바로 쳐다도 못 봤을 놈이 같은 마스터가 됐답시고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악수를 하면서도 상대방의 기운이 느껴진다.
일부러 숨기지 않고 정제된 마나의 기운을 드러내는 저 태도.
‘빌어먹을, 나도 처음 소드마스터가 됐을 때 저랬지.’
이건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정말로 아헨탈에 소드마스터가 나온 것이다.
알란아스터의 복잡한 속마음을 아는지, 아헨탈 자작은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 후계자를 데려가려고 오셨소?”
“그렇습니다. 제 조카가 큰 실례를 저지른 듯하여… 송구스럽습니다.”
‘큭.’
알란아스터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런 상황은 계획에 없었는데…
힘과 힘이 동등하다면 명분상 크롬벨 측이 대단히 불리한 상황이었고, 을이었다.
“큰 실례가 맞지. 엄청난 크기의 방화를 도시에 저질렀으니. 후앙 상단에서 움직임이 있지 않으셨소?”
“가주께서 직접 후앙 상단과 조율 중이십니다.”
“아헨탈 가문에는 동생을 보내고, 후앙 상단에는 자신이 직접? 뭔가 반대로 된 거 같소만.”
“…”
맞는 말이라, 일언반구의 말조차 못 했다.
아헨탈에 소드마스터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형님이 자신을 보냈을 리 없었다. 무력으로 하는 시위가 무의미해졌으니까.
자작도 이를 알고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었다. ‘너네, 힘으로 우릴 압박할 참이었냐?’ 하고.
“크롬벨 백작가는 역사도 깊고 대대로 큰 무공을 세운 집안으로 아는데 이런 경우 없는 짓을…”
실망스럽다는 듯, 프로크스가 혀를 차자 알란아스터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
“거긴 뭐요?”
“아, 소드마스터끼리의 인사에 집중하느라 두 사람 소개를 잊었군. 이쪽은 내 친우이자, 대마법사인 프로크스요. 이름은 들어봤겠지.”
“…!”
아헨탈 가문과의 전시 상황을 가정할 때, 가장 걸림돌이 될 거라 언급된 자였다.
소드마스터에 대마법사까지…
알란아스터는 속으로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우리가 노리던 상황이 정반대된 셈 아닌가?’
갓 소드마스터가 된 자라면 상대할 만하지만, 보조하는 마법사가 대마법사의 수준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알란아스터는 소드마스터인 자신이 위협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절로 다음 사람의 정체를 묻게 되었다.
“그럼… 그 옆은?”
“아. 우리 가문의 은인이시자, 이종의 성자라 불리는 메시 경이오. 뛰어난 치유력을 지니신 분이지.”
“…치료사가 여기 왜?”
메시가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를 적당히 둘러댔다.
“아헨탈 자작께서 멀리서 오신 크롬벨 가문의 사절을 신경 써달라고 친히 부탁하시더군요.”
“다친 곳은 없소.”
“그리 보입니다만, 혈색이 좋지 않고 진땀을 흘리시는 게 긴장을 하신 거 같은데…”
“…난 괜찮소.”
인정하면 이 자리가 불편하다는 뜻이 된다.
그 마음을 안 건지, 자작이 너털 웃었다.
“하하, 천하의 알란아스터 경도 긴장이란 걸 하는구려. 나도 처음 집안일을 맡아서 할 땐 그랬었지! 부끄러워할 거 없소, 메시 경의 솜씨는 정말 뛰어나니까.”
아헨탈 자작은 너무도 편하게 그를 대했다. 알란아스터는 마치 친형에게 다뤄지는 듯 익숙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힐을 하겠습니다. 다친 곳이 없어도 심신안정에 도움이 될 겁니다.”
엉겁결에 거절을 하려는데, 메시의 몸에서 금빛 후광이 번쩍거리자 알란아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성화를 쓰는 치료사라고?’
메시의 금빛 힐이 알란아스터의 몸에 닿았다.
알란아스터는 금세 불안이나 긴장, 초조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무겁게 다가오는 현실이 알란아스터의 내면을 뒤흔들었다.
‘대체 아헨탈 가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소드마스터에, 대마법사에, 성화를 쓰는 치료사라고?’
머리가 복잡해진 알란아스터를 놔두고, 메시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보던 자작은 오기 전 메시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 호위는 둘만 두시고, 치료사로 저를 데려가시지요. 남들 보기에 더 도움 될 겁니다. ]‘메시 경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이젠 알 거 같군.’
**
메시의 연출대로였다.
힐을 받은 이후, 생각을 정리한 알란아스터는 아헨탈 가문의 깔끔한 대응에 감탄했다.
‘호위 둘만으로 충분히 날 압도한다는 건가. 셋까진 필요도 없다 이거지.’
소드마스터인 자신을 만나는데, 같은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를 대동했다.
그것만으로도 아헨탈 가문은 크롬벨의 소드마스터에 대응할 방도가 없다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고도 남았다.
한술 더 떠, 남은 한 자리엔 ‘성화’를 쓰는 치료사까지 데려와 알란아스터를 신경 써주기까지 했으니…
귀족답게 친족 사절을 대하는 데 있어 예우를 다한 셈이었다.
‘거기다 정말 대단한 힐이다. 머리가 이렇게 맑았던 적이 대체 얼마 만이지?’
메시만이 할 수 있는 신성력이 부여된 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온갖 부정한 것을 물리치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그 신체가 이뤄낼 수 있는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간 방탕한 생활을 하며 쌓인, 신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치고 있던 독소들이 사라짐으로서 알란아스터는 큰 변화를 느껴야 했다.
그 변화는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줬다. 이는 메시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힘이면 힘, 명분이면 명분. 뭐 하나라도 아헨탈 가문을 이긴 게 없는 상황이 됐군.’
일이 이 지경이 되자, 방탕한 소드마스터라는 알란아스터도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헨탈 자작, 보통이 아니다… 자신에게 대단히 유리한 상황인데도 거드름 하나 피우지 않고 경쟁 가문의 사절을 대하다니. 실로 귀족다운 대응이 아닌가…’
알란아스터는 저도 모르게 아헨탈 자작에게 호감을 품어버렸다. 아헨탈 가문을 비웃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헨탈 자작의 기품있는 대응과 메시의 힐이 빚어낸 하나의 움직임이었다.
본의 아니게 협상의 키는 아헨탈 자작에게 넘어갔다.
“알란아스터 경. 이제 좀 괜찮소? 그리 긴장할 거 없소. 우리가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그대가 먼저 밝혔듯이 이번 일에 대한 보상과 가문 사이의 미래를 논하면 되는 거 아니겠소?”
“…진정 옳은 말씀입니다. 아헨탈 자작님.”
“일단 크롬벨 백작가에서 가져온 안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은데.”
“실례가 안 된다면 실무자 한 명을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러시구려.”
공손해진 알란아스터의 태도에 자작의 태도도 같이 말랑해졌다.
예상외로. 크롬벨과 아헨탈의 협상장에 훈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
아헨탈 내성의 지하 감옥.
그중 독방에 갇혀있는 에이러스는 현 상황을 도무지 믿고 싶지 않았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거지?’
냉담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잊히질 않았다.
그간 한 번도 아버지에게 큰 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했는데…
“빌어먹을 이종 새끼.”
분노가 들끓어 올랐다. 에이러스는 메시를 원망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공격해올 줄이야.
하지만 그런다고 현실이 바뀌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좌절했다.
‘큰일이다. 아버지가 내 집무실을 수색할 텐데. 거기다 아돌 경과 관계된 모든 것도…’
자신의 집무실엔 장부를 조작하여 비자금을 만든 흔적뿐 아니라, 누가 뒷돈을 바쳤는지 세부적으로 정리한 자료들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까진 괜찮았다. 그 정도 사리사욕 정도 채운다고 꾸중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돌이었다.
‘아돌 경의 집무실을 어떻게 하지? 거기에 붉은 스크롤을 보관했을 텐데…’
“누구 없느냐? 있으면 대답해라!”
문에 난 쇠창틀에 대고 소리를 질렀으나,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아헨탈 자작의 접근 금지 명령 때문이었다.
쾅! 쾅!
에이러스는 쇠문을 발로 걷어차며 분을 풀었다.
못 열어서가 아니었다. 마나를 사용해서 문을 부순다면 자신은 쉽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탈출하는 순간, 의심받는 정황을 제 손으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더욱 갑갑함을 느꼈다.
“낄낄낄.”
흠칫.
에이러스는 바깥에서 들려온 웃음소리에 동작을 멈췄다.
“누구냐?”
“낄낄낄!”
이번엔 갑자기 옆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에이러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뭐지?’
“웬 미친놈이냐?”
“미친놈이라니… 섭하군.”
이젠 바닥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 이상 현상에 에이러스도 마음이 섬했다.
하수도가 역류한 것처럼, 바닥의 틈 사이에서 핏물이 퐁퐁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기현상에 에이러스조차 쇠문에 등을 붙이고 부르르 떨었다.
“이게 대체 무슨… 정체를 밝혀라!”
대답이 바닥에서 들릴까, 에이러스는 긴장한 상태로 최대한 청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내가 누굴까?”
“…!”
에이러스는 화들짝 놀라 독방의 침대에 쓰러졌다.
문의 쇠창틀에 핏발 선 커다란 눈이 보였다.
“내가 누구일지는, 그대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 그대가 날 손님으로 여기면 손님일 테고, 적으로 여긴다면 적이 될 것이다.”
쇠를 깎는 듯한 목소리였다. 아무리 에이러스라 해도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 악마인가?”
푸흐흐흐흐!
목소리가 답을 주었다.
“당신이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 그 소원을 들어주는 게 악마라면 나도 악마겠지.”
그 악마가 쇠창틀 사이로 보여주는 것은, 수정구 안에 갇혀 괴로워하고 있는 아돌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