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74
경지 상승은 자질, 마나감응도, 마나연공법의 수준에 따라 심각한 차이를 보인다.
아헨탈 기사단 중, 브레이브에서 라비쉬에 도달하는데 가장 오래 걸린 사람은 라망이다. 10년이 걸렸다.
반면 메시는 10일을 얘기했다. 모든 이들이 소스라칠 만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10일 만에 경지가 올랐다고?’
의심과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 복잡한 여러 가지가 메시를 향했다.
“그게, 가능하오?”
자작마저 믿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그도 아헨탈 기사단 출신이자, 라비쉬 초입이었다.
라비쉬의 경지까지 오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았다.
하지만 메시는 10일을 언급했다. 어쩌면 기사들이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라, 농담 같아도 농담이 아니길 바랐다.
“그대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해서 말하는 것이오. 라비쉬는…..”
“육신과 마나의 균형점을 찾는 과정이지요?”
메시가 정답을 말하자, 자작은 놀랍다는 듯 끄덕였다.
‘하지만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진짜 깨달음이 왔느냐가 관건이지.’
브릴란트의 상징이 검 주위에 가느다란 마나가 모여 별 무리처럼 뿌려지는 거라면.
라비쉬의 상징은 신체와 기운이 균형을 찾아 공명하게 된 강한 기운을 검의로 풀어내는 것에 있었다.
“해보겠소?”
“해보겠습니다. 직접 보는 게 정확할 테니까요.”
스르릉…
메시가 검을 뽑자, 주변의 사람들이 물러났다. 에레브도 있었다.
당혹스러운 눈치였다. 자신도 오르지 못한 라비쉬에 메시가 있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 잘해라뀨! ]‘걱정하지 마.’
뀨의 응원에 호응하면서, 메시는 발아래에 걸린 경계선을 느꼈다.
알란아스터를 스캔하면서부터 인식하게 된 존재였다. 이 선을 흔히 경지 상승의 전조라고 불렀다.
이걸 인식하고 직접 뛰어넘어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것. 그게 모든 기사가 바라마지 않는 ‘경지 상승’이다.
혼자 있을 때 해보려 했던 걸 사람들 앞에서 하려니 부담스러웠음에도, 천천히 자신의 내부를 관조해나갔다.
‘라비쉬는 새비지로 육신의 단련을 끝내고, 브레이브에서 마나를 쌓아 균형이 맞춰졌을 때. 자연적으로 깨달음이 찾아오는 경지.’
‘그런데… 나는 ‘기-체’의 균형이 대단히 불균형하다.’
신체 능력은 압도적으로 발달했다.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를 받아들인 데다가, 최근 그로테인과의 수련이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는…?
근래에 크롬벨 마나연공법 때문에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수련물자의 도움까지 매일 받는 데다가, 자신은 마나가 잘 쌓이는 체질이었다. 덕분에 6달 치는 모았다.
그래도 턱없이 모자랐다. 시간상으로는 고작 한 달 조금 넘게 수련했을 뿐이었다. 그걸로 ‘기-체’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라비쉬까진 무리였다.
‘내 자질이 보통 사람과 같았다면, 엔조 무에테를 받아들인 것으로 인해 다른 이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을 거다.’
하지만 알란아스터의 재능은 이를 상쇄하게 했다.
그의 괴물 같은 재능은 현 상황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통찰해냈고, ‘기-체’의 균형이 맞아떨어질 때 자연히 찾아올 깨달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겼다.
‘균형이 안 맞으면, 균형을 맞추면 되지.’
엔조 무에테로 이룩한 극한의 신체 능력을 통해 몸 쓰는 법을 깨달은 지 오래다. 미세한 조정까지 가능하다. 힘이 과하면, 힘을 조절하면 된다. 긴장을 풀고, 세밀한 조정에 신경을 쏟는다.
마나는 부족하지만, 내부의 모든 마나를 폭발시키듯 마나 회로로 쏘아 보내 부족한 힘을 맞췄다. 엔조 무에테로 인해 두껍고 질겨진 마나 회로가 이런 무모한 짓을 가능케 해줬다.
마침내, 신체와 마나가 공명한다.
웅웅웅…
기와 체, 두 가지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만큼 균형이 맞아떨어지고 하나가 된다. 한 줄기 일념이 검에 실리는데 아무런 걸림돌이 없어진다.
‘지금이다.’
검을 휘둘렀다. 메시가 지금껏 정립해온 검에 대한 뜻이 무기에 담겼다.
펑! 하고 검이 허공을 가로 벴다.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이어지는 두 번의 연격. 사람들은 얼굴에 닿는 날카로운 바람에 베일 거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
스콰이어 테스트에서 보여줬던 메시의 검과는 날카로움과 위력부터 궤를 달리했다.
이는, 검의가 담겨야만 가능한 라비쉬의 검이었다.
방안에 갑자기 불어닥친 서늘한 바람이 가라앉자, 사람들의 얼굴엔 놀람이 서렸다.
“정말… 그새 한 단계 더 성장했군.”
단순한 세 번의 휘두르기였어도 모두 알아봤다.
“10일 만에 진짜 검의를 담아내다니…”
“아인하르츠 마나연공법에 이런 효험이 있었단 말인가?”
이 자리의 가신들 대부분이 전직 아헨탈 기사단 출신이었다.
대부분 라비쉬의 경지까진 올라본 이들이라 메시가 휘두른 검이 ‘진짜’임을 알아볼 눈은 있었다.
놀라움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은근 뻘쭘하네. 브릴란트처럼 빛무리라도 생기면 모르겠는데.’
[ 그래도 멋있었다뀨!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다.
메시는 검을 갈무리하고, 마나가 빠져나간 탈력감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보셨다시피, 검의를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 자질과 아헨탈 가문의 지원 덕분에 얻은 결과물일 수 있으나… 단기간 내의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아인하르츠 마나연공법을 익힌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작과 가신들도 메시의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봤는데.
그리고 걱정이 생겼다.
만약, 반쪽만으로도 저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위협적인 연공법이 크롬벨 가문에서 완성된다면?
이후, 대공자의 말처럼 귀족으로서의 명분과 명예, 왕실의 공증, 모든 걸 무시하고 크롬벨이 아헨탈을 공격한다면?
그 최악의 상황이 상정하는 위기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메시가 직접 눈으로 보여준 덕분이었다.
“위험하긴 하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모두의 마음을 대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극렬한 반대도 있었다.
크롬벨의 영역과 가장 인접한 영지를 지닌 덴버과 엥갈다르, 요렌테 남작이었다.
전쟁이 벌어지면 저 세 영지가 일차적인 전쟁터가 될 건 자명했다.
“다들 전쟁이 그리 하고 싶소? 크롬벨이 귀족으로서 명예와 세간의 인식, 왕실과의 관계까지 다 포기하고 우릴 칠 이유가 없잖소.”
“크롬벨과의 전쟁은 지면 끝장이고, 이겨도 남는 게 없거늘. 화친을 하면 두 가문의 영향력이 합쳐져 아시리스 왕국의 다섯 손가락 안에 거뜬히 들게 될 텐데, 대체 왜 독주를 마시겠단 거요?”
“어차피 에레나 아가씨도 짝을 찾아야 하지 않습니까? 상대가 크롬벨 백작가에다가 후계까지 확실히 보증한다는데… 이런 기회를 왜 놓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이들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자작은 고심했다.
최후의 선택은 아헨탈을 이끌어가는 자신이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에레브에게 물었다.
“에레브, 네가 이번 일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이냐?”
에레브는 우물쭈물하다가, 회의 참가자가 아닌 오빠의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
“지금까지 에레나는 누군가 밀어주지 않으면 어디 가지도 못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배우자는 일생을 같이 밀고 끄는 사이인데, 적어도 그 짝만큼은 직접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구나…”
자작도 상황에 휩쓸려 잊고 있었던 걸, 자신의 둘째 아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아헨탈 자작은 아버지로서 부끄러움을 느껴 고개를 숙였다.
“에레나를 불러라.”
**
자작의 호출을 받고 나타난 에레나는, 놀랍게도 두 다리로 걸어 들어왔다.
물론 위태해 보였고, 몇 발자국 못가 휠체어에 풀썩 주저앉았지만 말이다.
“가문이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저도 이렇게 기운 내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다들 힘내주세요.”
현대의 아이돌이 저런 것일까? 내가 힘내고 있으니 너희들도 힘내~ 이런 느낌의 응원이었다. 놀라운 건 그게 통했다는 거다.
“참으로 마음씨가 깊으십니다.”
“크흑, 아가씨. 어찌 저리도 잘 컸는지…”
생각해보면 이 아저씨들은 에레나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곁에서 함께한 남자들이었다. 삼류 걸그룹을 시작부터 챙긴 삼촌 팬 느낌이랄까.
“에레나, 네게 물어볼 것이 있어 이렇게 회의에 부르게 됐구나.”
그렇게 운을 떼고도, 자작은 한참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에레나는 괜찮다는 듯 웃었다.
“아버지. 괜찮아요. 귀족가의 딸로 태어나 지금까지 많은 걸 봐온 저인데 뭘 그리 주저하세요?”
“크롬벨 백작이 혼인 동맹을 꺼냈다.”
“…어머나. 그건 좀 놀랍네요.”
말하라니까 깜빡이도 켜지 않고 머리를 집어넣는 자작이었다. 두 가문의 사이가 워낙 좋지 않았으니, 에레나도 그건 상상 못 한 듯 놀란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세요.”
“…괜찮으냐?”
“괜찮을 리가요. 저도 아헨탈 가문 사람인데 크롬벨이 좋을 리가 없죠.”
“그, 그런 게 아니라… 정략혼이 될 텐데 싫진 않냐는 의미다.”
자작도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데, 에레나는 한숨을 푹 쉬고 당차게 말했다.
“아버지도 참. 제가 다섯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귀족 가문의 여식인데 그 정도 생각도 안 하고 살았을까 봐요.”
오히려 무덤덤해서 주위가 놀랄 정도였다.
‘그래. 이런 딸이었지.’
자작은 눈을 감았다.
에레나의 첫 사교계 데뷔 날, 아이는 사람들의 뒷말을 듣고 와버렸다. 딸이 겪은 일을 듣고 자작이 슬퍼하는 걸 딸은 위로해줬다.
몸이 불편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이르게 성숙해진 딸이었다.
‘에레나는 충분히… 괴로워했다. 어쩌면 평생 겪어야 할 괴로움을 미리 겪은 건지도 모르지.’
딸이 크롬벨 가문으로 가서 행복하게 지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크롬벨이 모든 약조를 지킨다면 괜찮은 삶이다. 가문의 안주인으로 전대 가주의 지지와 아헨탈 가문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거다. 후계도 걱정이 없으리라.
하지만 크롬벨이 약조와 공증을 어긴다면? 딸의 삶은 비참함으로 물들 것이다.
‘내가 안위와 이익에 눈이 멀어, 딸의 인생으로 도박을 하려 했구나.’
아헨탈 자작의 눈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큰아들의 냉정한 판단, 메시 경이 보여준 아인하르츠 마나연공법의 가능성, 둘째 아들이 우선시한 가족의 행복, 그리고 항상 생각이 깊었던 자신의 딸.
싸워야 할 이유가 명확해진 것이다.
자작의 기세가 달라졌다. 그가 결정을 내렸음을 모든 가신이 눈치챘다.
무거운 침묵 뒤에,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약 300년 전, 우리의 선조는 아시리스 왕실의 개국을 위해 싸웠다. 칼과 창, 방패를 든 싸움은 아니었어도 상인으로서 피 같은 돈을 홀로 대며 기나긴 투쟁을 지탱했다.”
“…”
“나는 그게 궁금했다. 1대 가주는 어째서 그런 길을 택하셨는가? 상인으로서 성공했고, 모아놓은 돈만으로도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운만 좋다면 아헨탈 가문은 아헨탈 상단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떨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후앙 상단이 아닌 아헨탈 상단을 꼽았을 것이다. 그런데 편한 길을 포기하고 왜 험한 길을 택했는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가신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사를 모르는 메시는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말했다.
“당시 퍼리언 왕가가 불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퍼리언 왕가는 잘못되었었지. 세금은 미쳤었고, 백성들은 울었다. 그런데, 그게 아헨탈 상단이 움직일 이유가 될까? 우린 잘 먹고 잘살았고, 모든 상단은 반란을 일으킨 ‘아시리스 백작가’를 미쳤다고 외면했다! 그런데 어찌 우리는 움직였는가?”
답을 찾지 못한 모두가 침묵하자, 조용히 아헨탈 자작은 읊조렸다.
“그것은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대의를 예상했던 이들의 뒤통수를 치는 대답이었다.
“퍼리언 왕가와 귀족들은 미친 듯이 사치를 했고, 아헨탈 상단으로부터 많은 보석과 사치품을 사 갔다. 하지만 백성의 고혈은 무한하지 않다. 언젠가는 메마를 것이고, 보석과 사치품이 의미 없어지는 시기가 올 것이었다. 가업을 지키고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벌였다. 그것이 투쟁의 정체다.”
“…”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거 같나?”
에레브가 얼른 대답했다.
“새로운… 사업을 하실 생각 같습니다.”
“정답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쟁 뒤에 남는 것은 재와 가난뿐이지만, 우리가 하는 것은 사업이다.
사업의 성공은 부귀와 영화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전쟁이지만, 우리가 할 것은 사업이다! 이는 불가피하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사업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 마치 1대 가주처럼. 우리는 또 사업을 벌일 때가 온 것이다!”
아헨탈 가는 300년을 귀족으로 살아왔지만, 상인으로서 출발했던 가풍과 뿌리를 잊진 않았다.
가신들의 뿌리 역시 아헨탈 상단을 이끌었던 간부들이었고, 뿌리는 상인들이었다.
비록 그로 인해 귀족 사회에서 순수 귀족으로 인정받지도 못했고, 2등 공신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 뿌리를 부끄러워하거나 혐오하진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들이었다.
뿌리를 자극하는 자작의 말에 가신들과 기사들의 눈에 열기가 차올랐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13대 가주인 ‘로안 폰 아헨탈’이 너희에게 부탁하겠다.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가장 큰 위협으로부터 이겨냈을 때 돌아온다. 흔들리지 말아다오. 우리는 반드시 사업에 성공할 것이다. 우리의 뿌리가 그랬던 것처럼.”
**
이틀이 흘렀다.
도시 아헨탈의 앞, 설치된 막사 안에서 대기하던 알란아스터는 서신을 읽었다.
그 서신엔 아헨탈 가문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자작님은 결국 싸우기로 하셨나 보군.”
서신을 가져온 기사를 보고 물었다.
라망이었다.
“그렇습니다. 자작님의 뜻은 확고하십니다.”
“그를 해하고 싶진 않은데.”
“자작님도 경을 생각하며 아쉬워하셨습니다.”
“…”
짧은 대면이었지만 인격적으로 끌림을 느꼈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친구로 지냈을 것이다.
그가 아쉬워하는데, 라망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조카분도 모시고 왔습니다.”
“로윈을? 협상은 결렬된 거 아니었나.”
“자작님은 알란아스터 경이 빈손으로 돌아가 체면이 상할 걸 우려하셨습니다.”
“…!”
“몸값과 보상금은 주고픈 대로 주시고 데려가라 하셨습니다. 단, 아헨탈의 입장도 있는지라 기사 다섯은 영지법에 맞게 처리할 예정입니다.”
“…주고픈 대로? 하하하!!”
알란아스터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정말이지, 배포가 대단한 인물이군. 닮고 싶을 정도가 아닌가…’
알란아스터도 한때 가주가 되는 걸 꿈꿨다. 자신이 크롬벨 백작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도 참 많이 했다.
아헨탈 자작은 자신이 꿈꾸던 가주의 모습이었다. 아마 자신이 그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데는 그런 이유가 클 것이다.
알란아스터가 뜬금없는 소리로 운을 뗀 건, 그때부터였다.
“난 지금부터 돌아갈 걸세.”
“…?”
“돌아가는 도시마다 괜찮은 환락가가 있으면 빠짐없이 들르겠지.”
“예?”
“대략 6, 7곳 정도 될 거야. 특히 덴버 쪽이 물이 그렇게 좋다더군.”
“그게 무슨…”
“질펀하게 놀면 크롬벨에 도착하는데 한 3주쯤 걸릴 걸세.”
“…!”
라망은 그제야 알란아스터가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는지 깨달았다.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뜻이었다.
알란아스터의 말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전쟁을 알리는 사절은 한 달쯤 되면 아헨탈에 도착하겠지. 내가 보고하자마자 출발을 할 테니.”
“그, 그렇겠지요.”
“형님은 사절을 보냄과 동시에 병력을 움직일 걸세. 그리고 사절이 도착하는 그날 즉시 가까운 영지부터 속도전으로 치고 들어가겠지.”
전쟁을 선포함과 동시에 밀고 들어오는 거다. 서신을 받은 그 날부터 전쟁이 시작되는 셈이니, 더럽긴 해도 명분상으론 문제가 없는 짓이었다.
“그런걸… 알려주셔도 되는 겁니까?”
“되겠나? 하하하!”
알란아스터는 사뿐히 몸을 일으켰다. 더는 적대 가문의 기사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하지만 막사를 나가는 그의 표정은 뭔가 털어낸 듯 후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