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8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7)
“근데, 아까 자네는 대체 왜 웃은 거야?”
“저희끼리 사냥할 때 쓰는 안구 신호가 있는데, 크게 소리를 내라더군요. 따라 웃으라는 거 같아서 했습니다.”
“허이고. 순 미친놈들일세.”
대책 없는 대답에 촌장이 눈을 흘겼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메시의 말만 믿고 폭소를 터뜨린단 말인가.
신뢰가 있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사태는 진정됐다. 기사들은 에레브의 명에 따라 착검했고, 용병들도 일부를 제외하곤 무기를 다시 넣었다.
그 일부는 아직 기사들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쪽이었다.
“단장, 우린 빨리 도망가야 한다니까! 대체 저 잔인한 귀족 놈과 이종의 뭘 믿고 목숨을 맡길 셈이야!”
용병대에 오래 몸담은 고참이라 그런지 발언권이 꽤 있는 자였다. 이름은 듀렉.
기사와의 충돌 전에 수치를 새겨주자니 뭐니 하며 소리치던 사람이었다.
“듀렉, 상황파악 좀 해. 우리가 지금 후퇴를 한다고 하면 다시 아헨탈 가문의 기사와 싸워야 할 텐데 자신 있어?”
“그건…”
“지금은 메시를 믿을 수밖에 없어. 우리에게 살길을 열어줬잖아. 난 믿어.”
“이종을 믿는다고? 그러니까 노아스 따위에게 뒤통수를 맞는 거야!”
듀렉이 성질을 내며 몸을 돌렸다. 그와 의견이 같은 몇 명이 졸졸 뒤따라간다. 파벌이 될 조짐이었다.
평소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에일라는 막지 못했다. 이들이 위기로 몰린 건 자신의 안일함 탓이기에.
‘하지만, 메시는 믿을 만해. 활로를 열어준 것만 봐도 계획이 다 있는 자야.’
어제 몇 마디 나눠본 거로도 느꼈다. 메시는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걸. 최소한 머리 회전은 자신보다 뛰어났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가 온 사람처럼 귀족의 생리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았지만, 그건 이종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이다.
자신이 옆에서 조금씩 첨언을 해주면서 키우면 분명 대단한 걸물이 되리라. 용병단의 방향과 살림을 책임지는 두뇌형 인재라든가.
‘무의식중에 떠올린 거긴 한데 괜찮은 생각이잖아. 권해봐야겠는걸.’
전투까지 훌륭하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에일라가 예상하고 바라는 수준은 딱 그 정도였다.
어쨌든, 작은 촌구석에 박혀있긴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신체를 가리고 용병 일을 하는 이종들도 있으니 메시라고 못 할 건 아니었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에일라 단장. 이 공자께서 찾습니다.”
아헨탈 가문의 기사였다. 에일라는 마침내 미루고 싶던 결정의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 *
“널 믿고 전권을 달라?”
“기사단과 용병단 모두 필요합니다. 이 공자, 전적으로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미친 건가? 기사단의 통제는 오직 기사장인 내가 한다.”
막사 내부에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라망이 발끈하고 나오자. 메시는 예상한 눈치였다.
이 공자라는 인물은 ‘귀족의 명예’라는 부분만 제외하곤 실리를 쫓는 인물이라는 걸 진즉에 알아봤다.
하지만 라망은 다르다. 이는 전통적 기사에 가까운 자. 깐깐하며 예외를 싫어한다.
“원망의 숲은 48종의 몬스터들이 구역을 철저하게 나누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본 천공성의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이걸 봐라.”
에레브의 자료를 본 메시는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엔 중요한 사실이 빠졌군요. 48종 몬스터들이 모두 서로를 적대하지 않는다는 것 말입니다.”
“뭐?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깜짝 놀란 에레브가 다시 자료를 훑는다. 그런 말은 일언반구도 없다.
“라망 경! 우린 대체 천공성에서 뭘 가져온 거지요? 천공성의 정보라면 부모의 말보다 더 믿으라고 하더니, 순 사기꾼들 아닙니까?”
에레브는 화를 내면서도 슬쩍 라망의 얼굴을 관찰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면목 없습니다.”
눈을 감으며 고개를 숙여버리는 라망. 저것이 정말 송구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마음의 흔들림을 숨기려는 건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두가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식량은 단 하나. 숲속 지하에 사는 거대 개미들의 달콤한 체액, 그것입니다. 개미들은 모든 종족에게 체액을 나눠주면서 안전을 보장받지요.”
“몬스터에게 그 정도 사회성과 지능이 있다니. 놀라운 얘기군…”
에레브와 라망은 믿기 힘들어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메시를 ‘숲의 종족’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두려운 점은, 48종의 몬스터가 한 가지 공통된 행동으로 굳게 결속되어있다는 점입니다.”
“그게 뭔가?”
“라망 경, 몬스터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후각이 발달해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지요?”
“그렇지. 아무래도 야생성이 살아있으니까…”
라망은 떨떠름하게 인정했다. 에레브는 냄새가 뭘 어쨌다는 거지? 하고 의아했고.
하지만 다음 메시의 말에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다.
“이 몬스터들은 전부 피 냄새에 민감합니다. 절대 저 숲에서는 피를 봐선 안 됩니다. 혈향이 나는 즉시, 48종의 모든 몬스터가 그곳으로 미친 듯이 몰려들 겁니다.”
“…미친.”
그야말로 개죽음당할 뻔한 게 아닌가.
용병과 마을 주민들을 썰어서 던져주자는 아이디어를 낸 지 겨우 십 분 전이다.
만일 그대로 저질렀으면 입구에서 전멸했다는 얘기였다.
‘이런 가장 중요한 정보를 제외하다니…’
에레브는 당장이라도 자신을 속인 그 누군가를 찢어 죽이고픈 살심에 가득 찼다.
그것이 라망과 아버지인지, 아니면 천공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눈앞의 이종은 건방지긴 해도 자신을 살려준 셈이었다. 거기다 이용가치도 있으며 뒷배가 없어 차라리 믿을 만했다.
이 정도면 부하1 정도로 훌륭하지 않은가?
‘나쁘지 않아. 치료술도 괜찮고 머리도 팽팽 잘 돌아가니. 게다가 이종이니 누굴 믿고 따르겠나? 내가 녀석의 배경이 되어준다면 오히려 믿고 따르겠지.’
부차적인 인성교육은 차후에 시켜주면 될 문제였다. 폭력적 수단도 괜찮고, 자식을 낳게 해 목줄로 삼는 방법도 있었다. 이 세계에선 당연한 것들이었다.
“좋아, 네 말을 믿고 따르지. 전권을 주마.”
“이, 이 공자?”
“라망 경에겐 미안하지만, 이번 일은 내 결정을 따라줬으면 좋겠군요. 아까 제가 ‘부하들 앞에서’ 굽혀드렸으니 라망 경도 그리할 수 있지 않습니까?”
유난히 부하들 앞이라는 걸 강조하는 에레브였다. 라망도 어쩔 수 없었다.
메시는 다시 한번 물었다.
“귀족의 명예를 걸고, 약속해주실 수 있습니까?”
‘이런, 건방진 놈…’
한번 속에서 욱, 하고 올라왔으나 에레브는 참았다. 우선순위를 아니까.
“그래. 귀족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지. 단, 너도 아헨탈 가의 방식대로 내게 믿음을 줬으면 싶군.”
아헨탈 가의 방식? 뭔지는 몰라도 썩 좋은 건 아닐 거란 예감을 메시는 느꼈다. 이 세계의 귀족이란 현대의 지배층보다 훨씬 원색적인 놈들이니까.
저벅저벅.
“이 공자님, 에일라 단장과 다른 길잡이들을 데려왔습니다.”
기사의 뒤로 에일라와 레토, 촌장이 걸어들어왔다. 에레브는 마치 그들 들으라는 냥, 메시에게 말했다.
“메시, 전권을 주기로 했으니 너도 내게 믿음을 줘야 하지 않겠나?”
전권!
세 명은 그 단어가 뜻하는 바를 깨닫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로 메시는 혓바닥 하나만 놀려서 이 대열을 움직일 권한을 갖게 된 거였다.
물론 어느 정도 한계는 있겠지만 저 오만한 귀족의 입에서 ‘전권을 준다’는 말이 나온 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저, 미친놈! 진짜로 설득한 건가!’
‘역시… 형님의 제자답군. 뭔가 일을 낼 거 같더라니.’
촌장과 레토에 비해 에일라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이제 용병 80명의 목숨이 메시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될 것을 안 거다.
“…어떻게 믿음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네 눈치라면 촌장과 약초꾼을 인질로 데려온 걸 알고 있었겠지.”
“알고 있었습니다.”
“크크, 부정도 하지 않는군. 좋다, 솔직하게 말하마. 우리 아헨탈 가문은 신뢰로 결속된 사이를 매우 싫어한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것만 믿는 사람이지. 예를 들면, 돈, 계약서, 인질, 신체 부위 등.”
“…”
“그래서 말인데, 저 둘의 손을 하나씩 자를까 한다.”
털썩.
갑자기 촌장이 쓰러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진 듯했다.
“웃긴 영감이군. 어떠냐, 보일에게 물어보니 네 치료술이면 절단된 손까지 이어붙일 거라던데. 내가 저들의 손을 잘라다가 마법으로 보존처리를 하겠다. 넌 그 사이 임무를 완수하는 거지. 어떠냐?”
에레브는 음흉하게 웃었다. 사실 믿음보다는 눈앞의 메시라는 놈이 쩔쩔매는 걸 보고 싶었다.
하지만 메시는 표정 하나 싹 바뀌지 않았다.
그저 한마디 했을 뿐이다.
“그럼 거절합니다.”
“뭐?”
“길잡이도, 안내도, 다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전권도 필요 없습니다.”
“이놈이…?”
앉아있는 에레브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메시가 거절해서 화가 나는 게 아니었다. 저 이종은 정말 진심을 말하면서도 조금의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났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저놈에게 무력한 존재인가?
한낱 이종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못할 만큼?
이렇게 자기 자신이 무력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아마 한 손이면 다 셀 수 있을 만큼 적을 것이다.
지금까진 협상 테이블에 가문의 문양만 올려놓아도 모두가 떨면서 한 수 물러났다.
그런데, 저놈은 도통 그런 게 없다.
“그냥 죽이십시오.”
“크크, 그냥 죽여달라? 좋아. 그냥 죽여주지. 너희들 포함해서 모조리 죽이고, 마을도 싹 불태워주마! 육신은 다 찢어발기고 몬스터의 먹이로 내주겠다!! 알겠냐, 그건 내게 쉬운 일이란 말이다!!”
“난 너희를 몰살시키고 다시 회군해서 사람을 구해오면 그만이다. 너희를 대신할 수 있는 더 나은 인간들로!!”
마치, 내 두려움에 떨어달라고 애원하는 짐승 같다.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한편으론 떼를 쓰는 아이가 보였다.
메시는 그저 조소를 띠웠다.
내가 이겼다. 메시는 확신했다.
“이 공자같이 현명하신 분께서 그리 할까요?”
“무슨 뜻이지, 내가 못 할 거 같아?”
에레브는 메시의 저 여유가 싫었다.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한 눈치와 가식.
분명 연기리라. 검을 뽑아 놈과 촌장의 몸을 쪼개면 저런 여유 따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금방 그는 깨달았다.
메시의 입에서 나오는 추론을 듣자, 그의 여유가 진짜 이유가 있는 것임을 알았다.
“이번 일. 비밀로 하고 오신 거 아닙니까? 이대로 포기해 돌아간다면 다음 기회는 없을 텐데요.”
“…!”
에레브와 라망은 당혹감에 젖어 서로를 바라봤다.
“놀라실 일도 아니잖습니까. 적어도 돈이 부족하실 분은 아닌데 굳이 ‘붉은 여우 용병단’을 고용해서… 그것도 내부에 인물을 회유한 뒤에 설계까지 해서 이곳으로 데려왔다… 뭐하러 그런 피곤한 짓을 하냔 말이죠. 애초에 대형 용병단에 의뢰해서 강력한 용병들을 데려오면 되는데.”
“고작, 그걸로 우리가 몰래 왔다고 확신한 건가?”
“적어도 떳떳하진 않다 이거죠. 이곳에 올 수준이 되는 대형 용병단을 고용했다간 용병 시장에 소문이 날 테니 피하셨을 테고, 중소형 용병단들을 싸그리 규합해서 군대처럼 끌고 오셨다면 오는 길에 또 소문이 흐를 테니 피하셨을 테고. 가문의 병사들을 일으키자니 주변의 경쟁 가문에서 냄새를 맡을 테고.”
“결국, 남는 선택지란… 대형 용병단 수준엔 못 미치지만, 비밀 유지가 가능한 머릿수와 어느 정도 실력은 되면서 소문이 안 날 만큼 시장에 영향력은 미미한… 그런 용병단을 찾았겠죠. 특히 단장이 욕심 많으면 더 좋고요. 안 그런가요, 이 공자?”
쉴새 없이 떠들던 메시의 입이 멈추자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에레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생각은 단 하나로 귀결되었다.
‘이놈은 대체 뭐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외통수에 몰린 건 분명했다.
메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은 실패를 두려워했다.
두려워하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후.”
침묵을 지키던 에레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치 하난 끝내주는 개자식이군. 그래, 내가 졌다. 네 말이 다 맞다. 나는 지금 후퇴할 수 없는 처지지.”
에레브는 백기를 들었다.
마침내 그는 깔끔하게 인정하고야 말았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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