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시상식 – 아이덴티티 (1)
누군가는 내가 유독 시상식에 목맨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시상식이나 판매 지표 등의 성적에 꽤 예민한 편이 맞으니까.
그러나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 공부에 꽤 진심이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 자부한다.
성취라는 게 그만큼 마약 같은 구석이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이뤄낸다면 내 모든 노력이 이뤄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그것을 곧 원동력으로 삼는, 그런 순환 관계가 있단 말이다.
그것이 반대로 작용하면 불안감이 되겠지.
이뤄놓은 것이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른다는 강박에 가까운 그런 불안.
다행인 일이 하나 있었다.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한해서는 그 불안감이 아주 짙지는 않을 듯했다.
12월을 아우르는 출국 일정 세 번째.
아이덴티티가 5대 게임상 중 하나인 D.I.C.E 어워드에서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다.
본래 미래에선 하이 워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던 상이었다.
마냥 기쁘다기보단 글쎄, 이렇게 상을 빼앗아 간 그림이 되니 나 또한 인정하게 되는 것이 있었다.
‘게임상은 패키지에 더 관대해.’
하이 워치와 아이덴티티, 어떤 것이 시장에 더 파급력을 주었느냐 하면 당연 전자가 맞다.
한데도 상은 내가 탔다.
상기한 이유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는 게, PC 온라인 게임이 5대 게임상에 오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참으로 기념비적인 업적 아닌가?
물론 미래에는 망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속상하느냐?
패키지라는 방패 뒤에 숨어 비겁하게 이긴 기분이 드느냐?
‘내가 왜?’
그럼에도 상을 탄 것은 우리의 노력이 맞다.
아이덴티티의 자유도는 하이 워치와는 다른 선상에서 충분히 수상에 어울리는 게임이라 자부했다.
세간의 평가도 그렇고 말이다.
여하튼, 그런 이야기를 떠나서 현실로 돌아오자.
나는 하이 워치에게서 하나의 상을 더 빼앗아야 한다.
‘TGA.’
더 게임 어워드.
가장 권위 있는 GOTY라 불리는 게임상.
이번 생의 16년도 GOTY는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해졌다.
본디 게임상을 두고 다투는 것은 언치티드, 하이 워치, 데몬 소울에 나까지 끼어 현재까지 스코어가 [1 : 1 : 1 : 1]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4개의 시상식이 지나가고 마지막 하나가 남은 이 시점이 바로 승부처.
TGA의 GOTY를 먹는 게임이 곧 올해 최고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 LA 되게 자주 오네요.”
한서림이 말했다.
녀석 말대로, 우리가 있는 곳은 TGA가 열리는 LA의 호텔 라운지였다.
* * *
시상식 시즌이면 업계 전체가 들뜨는 기분이 된다.
말인즉, 업계 관계자가 아닌 소비자. 유저들의 기분도 덩달아 들뜬다는 말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은 현실이 아닌 커뮤니티였다.
애초에 온라인 게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모일 곳이라 해봐야 그런 곳밖에 없기도 했다.
『아덴은갓겜이다 : 드가자드가자~ 아덴 GOTY 드가자~~!!!』
『미래가안맑음 : 근데 아덴 미래는 밝음ㅋㅋㅋㅋ』
『국시나나요 : 국산 게임 첫 TGA GOTY 가냐!!!!!』
서림은 그 분위기를 확인하며 삐죽 웃었다.
업계 기록 갱신.
승인 욕구가 강한 서림에겐 꽤 중대한 사항이었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 것이다.
문득 생각해보길 리와인드의 역사는 탄탄대로였다.
첫 게임인 헬릭1부터 시작된 길이 헬릭2에서 인디 정복, 헬릭3에 와서 5대 게임상 중 하나 수상.
올해는 TGA를 노리고 있고, 그것마저 클리어한다면 남은 것은 한해 상을 다 쓸어 먹는 일뿐이었다.
그러니 기대감만큼이나 긴장도 함께 커지는 중이었다.
이역만리 미국에 와서도 국내 커뮤니티를 좀처럼 놓지 못하고 찬양글을 모아 곱씹는 이유가 바로 그것.
그때, 서림의 눈을 부릅 뜨이게 만드는 글이 올라왔다.
『시계는워치 : 흠ㅋ 아덴이 그정돈가ㅋ
E 스포츠가 있는 것두 아니고 유저수가 하이 워치보다 많은 것두 아니고 그냥 스토리 자유도 원툴 아닌가ㅋ』
서림은 이 유저를 알았다.
‘우주전쟁조아!’
놈은 헬릭1이 나올 적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은 영원한 리와인드의 안티였다.
사이사이 닉네임이 꽤 바뀌긴 했지만, 커뮤 경력 8년 차,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을 주시해온 서림에게 그 정체를 아는 건 누워서 떡먹기였다.
‘끈질기네. 이놈.’
그간 온갖 방법으로 두들겨 패서(음해해서) 반쯤 죽여놨건만 블리지드가 뜨자마자 또 부활하고 있다.
어쩌면 이놈을 죽일 방법은 블리지드의 멸망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 일도 쉽지 않을 듯해 보였다.
미래를 모르는 서림은 블리지드가 망하는 그림을 좀처럼 그릴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맞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서림의 손가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
ㅇㅇ : 스토리/자유도 << 이미 원툴 아님
└ 시계는워치 : 네 다음 아선족ㅋ
└ ㅇㅇ : 병신 블빠 새끼ㅋ
└ 시계는워치 : 병신 아니죠? 블자 PC겜으로 5대 겜상 탔죠?
└ ㅇㅇ : 그래서 하치에 모드 있음?
└ 시계는워치 : 모드 없이 PC 겜으로 5대 상 탔죠? 갓겜이죠? 아직 한 발 남았죠?』
쉽지 않은 놈이다.
뇌수가 질질 흐르다 못해 발밑에서 강물이 되고 있었다.
아마 어떤 말을 해도 이놈 대가리를 봉합할 수는 없을 터.
물론, 그게 방법이 없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여론전으로 몰고 가는 수밖에.
『ㅇㅇ : PC겜에 5대상 하나면 많이 준 거 아닌가… 흠…』
커뮤니티 경력 8년 차(중요) 서림은 알았다.
본디 온라인 커뮤니티라는 것은 익명성 뒤에 숨어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는 정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커뮤니티라지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아덴은갓겜이다 : 에휴, 블빠련 신났네』
『방배동피의군주 : 차라리 데몬 소울이 GOTY 탔으면 탔지 하치?ㅋㅋㅋㅋㅋ』
이것 봐라, 불판에 약 불만 살살 올려줘도 긁힌 인간들이 알아서 캠프파이어를 피워준단 말이다.
대화재였다.
패키지 근본주의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답게 ‘시계는워치’가 전방위로 얻어맞기 시작했다.
『시계는워치 : 네, 그래요. 알겠어요. ㅋ
아덴은갓겜이다 : 그래서 하치에 모드 있는지?
└ 방배동피의군주 : ㄹㅇㅋㅋ 올누드도 없는게 게임인가?
└ 시계는워치 : 왜 올 누드가 없다고 생각하지?
└ 퇴사마렵재희 : ?
└ 뽀삐야산책가자 : RULE 34』
모자랐던 건가.
‘…아니.’
확실히 긁혔다.
서림은 잠시 고민한 끝에 최후의 한 방을 날렸다.
『
ㅇㅇ : ㅋ』
많은 말은 영점이 흐트러지는 결과를 남길 뿐.
중요한 것은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며 짧게 굵게 찌르는 단어다.
예상대로 ‘시계는워치’가 긁혔다.
『시계는워치 : 님 뭔데 아까부터 시비임? 아, 너 그 새끼지? 나 계속 저격하던 씨ㅂ
└ ㅇㅇ : 느금이요~』
탁!
서림은 스마트폰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끄응…!”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목을 스트레칭 한 서림은 앉아있던 카페 창가 쪽을 바라봤다.
길상과 아윤이 창밖을 보며 무어라 말을 나누고 있었다.
“아, 아저씨, 저기 아저씨 친구들 많아요…!”
“응? 어디?”
“저기 대머리들… 반짝…!”
“…아윤아, 대머리라고 다 친구는 아니야. 애초에 대머리는 사람을 구분하는 카테고리도 아니고. 그런 편협한 사고방식은….”
“네.”
“다 떠나서 아저씨는 대머리가 아닌데? 이것 봐, 아직 머리숱….”
“네.”
“…아윤아?”
“네.”
“….”
대체 뭐하는 건지 원.
근처를 보니 비서들이 얼굴이 빨개져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조금 더 옆으로 가면 혜지와 유미가 명규를 사이에 두고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다.
명규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만하면 둘에게 적응할 법도 한데 꼭 저 사이만 가면 흐물흐물해지는 게 참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직원들을 다 둘러본 서림은 이제 맞은편에 앉아있던 연호를 봤다.
멍해 보였다.
사실 LA에 온 이후로 줄곧 그랬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확실한 건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시상식에 대한 긴장감 때문일까.
서림은 의아해하며 입술을 뗐다.
“선배. 무슨 생각 해요?”
천장을 보던 연호가 시선을 마주쳐왔다.
“응? 커뮤니티는 다 했어?”
“무슨 소리지? 저 직원들이랑 연락하고 있었는데요?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그런 헛소리가 나와요. 뭐 고민 있어요?”
“…그냥.”
무사히 넘긴 듯하다.
와중 연호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아윤과 길상이 있는 창밖을 보다, 넌지시 말을 건네왔다.
“어떻게든 여기까지 또 왔네. 싶어서.”
“또?”
대답은 조금 늦게 돌아왔다.
“…출시 때마다 오긴 했잖아.”
“아아, 그 얘기요?”
무슨 소린가 했다.
서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되물었다.
“그렇긴 하죠. 이제 익숙해질 만하지 않아요?”
“익숙해지긴, 매번 새롭지.”
답하면서도 연호는 멍했다.
이 인간이 오늘따라 왜 이럴까.
눈을 좁힌 채 노려봤지만, 답은 영 오리무중이다.
한 번씩 이럴 때가 있었다.
연호가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주변 모든 것들과 유리되는 것 같은 때가.
꽤 어색했다.
벌써 8년이나 봐 왔건만 속을 모를 사람이었다.
서림은 위로라도 필요한 건가 싶어서 말했다.
“…음, 결과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넌 누구보다 결과에 목매잖아.”
“내가 그랬나?”
“그래서 키배 뜨는 거 아니….”
“키배가 뭔데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
집요한 인간.
서림은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그녀는 아직 연호가 자신의 커뮤 이력을 염탐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 * *
시상식까지 왔다는 사실이 새삼 긴장을 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번 생의 탄탄대로를 생각하면 이제와서 수상 후보도 못 되는 것이 불명예에 가까우니 당연하다.
다만, 아이덴티티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사실만이 새삼스러울 뿐이다.
암만 골자를 바꿨다 한들 전생의 그 게임으로 온 것이니까.
이것이야말로 지난했던 전생에 마침표를 찍을 게임이니까.
죽음의 순간엔 꽤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했었다.
TGA의 시상대 위, 사회자가 올해의 인디 게임상을 발표하고 그 이름으로 ‘아이덴티티’를 말하는 순간을.
죽고 나서는 더했다.
내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죄스러웠던 삶보다 그 시상대에 올라가지 못했던 게 더욱 안타까웠다면 설명이 될까.
헬릭2로 인디 GOTY를 타긴 했다.
하나, 극찬받았던 헬릭2의 내러티브는 앨리스와 나비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인디 GOTY 시상대에 오른다는 목적은 달성했음에도 여전히 전소되지 않은 열망이 있던 것이다.
그걸 LA에 와서야 깨달았다.
내 속엔 아직 아이덴티티가, 내 아집이었던 에고가 인정받았으면 한다는 부끄럽고 치졸한 열망이 있다.
그걸 수용해야겠지.
다만 바라는 것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던 전생의 그림자를 이번 기회에 떼어내는 것.
‘이것만 남았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이제 NQ의 사람들을 보고도 마음이 일렁이지 않았다.
홀로 만드는 게임보단, 다 같이 만드는 게임이 더 즐거움을 알았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내 실수를 인정하고, 의견을 조율함으로 완성되는 결과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 놓아줘야지 않겠나.
누구도 기억해주지 못할 나의 전생에 스스로 국화를 헌화해주는 것이다.
띠링!
알람이 왔다.
네오의 박영준 대표였다.
[ㅎㅇㅌ!]어떻게 알고 문자까지 해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호텔을 나서니 우리를 배웅하는 사람이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야도 고로.
소나의 이사인 그가 직접 마중을 나왔다.
나는 물었다.
“이렇게 오셔도 됩니까?”
“안 될 건 없죠.”
“편애한다고 말이라도 나오면….”
“저만 왔겠습니까. 소니 측에도 GOTY가 PS 게임에서 나오는 건 중요한 일인데요.”
아, 그렇게 치니 대충 알 만하다.
언치티드는 소니의 퍼스트 파티에서 만든 게임이다.
데몬 소울도 ps 메인으로 출시된 게임이다.
아이덴티티는 pc와 ps를 동시에 지원하는 게임이다.
소니의 입장에선 셋 중 무엇이 상을 타도 이득인 상황.
하이 워치만 아니면 되는 반쯤 축제 상황이니 회사 중역들을 각 개발사에 보낸 것일 터였다.
우리 쪽은 그게 아야도인 것이고.
아마 셋 중 하나가 상을 탄다면 GOTY 에디션 따위로 상품 판매를 늘리겠지.
나는 조금은 흥겨운 기분에 물었다.
“이사님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수상대에 오르는 거.”
나는 원래 역사가 하이 워치를 지목했음을 안다.
내 개입으로 그 일이 어그러진 것도 안다.
이젠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른다.
그러니 전문가인 그에게 묻는 것이다.
그는 별달리 유난 떠는 기색 없이 안경을 고쳐 썼다.
그리곤 말했다.
“가죠. 상 타러.”
목소리가 꽤 확신에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