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에필로그1 – 문제적 남자
헬릭5의 GOTY 수상으로 마침내 게임업계는 대변혁을 겪지…!
“않았지.”
…않았다.
게임계는 언제나 그랬듯 평온하게만 흘러가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나, 한해의 게임이 얼마나 대단하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워지던 모두 결산이 끝난 지난 일이다.
그리고 인간은 현재를 사는 동물이다.
과거는 한순간 돌아보는 관념일 뿐, 그 종족의 시야는 언제나 미래를 향하는 법이란 말이다.
“사실 GOTY고 나발이고 내년이 GTV6 출시니까.”
“그래도 천만이잖아.”
“로스트 킹덤도 천만이었어.”
“작년만큼 했네. 작년도 천만 두 개잖아. 대게이3, 링크의 전설.”
기록적인 판매량을 세운 게 뭐 어쨌단 건가.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암만 개쩌는 게임이라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질린다.
GOTY 경쟁의 불꽃은 2024년을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자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것은 그저 ‘루소를 이긴 남자’의 이름으로 ‘천연호’ 석 자를 새기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물론, 그 일이 가치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게임 업계 확 뒤집어졌더라.”
“말도 마. 게임사들 단체로 꿀 먹은 벙어리 됐지. 그동안 뭐 했냐는 소리가 튀어나와.”
“천연호 하나 때문에 이 난리 난 거라고 생각하면 뭐, 진짜 기록적이긴 하네.”
연호의 GOTY 수상은 업계 전반에 기이한 열기를 불어넣었다.
언제나 정점에 있었던, 그리고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루소를 30대 중반의 나이에 밟고 올라서 버리니 다른 개발자들과 확연히 그 차이가 비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업계가 해이했던 게 아닐까?
―연호도 하는데 쟤들은 뭐함?
등의 소리가 나왔다.
이젠 유저들의 인식이 ‘루소니까 어쩔 수 없지ㅋㅋㅋ’에서 ‘쟤도 루소 따는데 넌 뭐하냐?’가 되어버린 것.
개발사들로선 억울한 이야기였다.
―누구는 안 따고 싶어서 안 땄나?
그렇게 토로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게 유저들의 귀에 닿을 리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소비자의 니즈를 맞추지 못한 것은 판매자의 역량 부족이 맞으니 말이다.
그러니 결국 원망이 향하는 곳은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앞으로 출시될 게임의 평가 기준을 올린 연호였다.
“천연호 개새끼…!”
이젠 업계인들조차 그렇게 부르는 남자 천연호.
그래서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답은 하나다.
“가자.”
“어딜요?”
“답 들으러.”
…업보 청산을 하는 중이었다.
* * *
크리스마스다.
GOTY 수상 중 눈물을 흘린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다.
그간의 변화로는 리와인드 사옥에 트로피가 몇 개가 더 늘어난 것.
각종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는 것과 한동안 주춤했던 입사 지원자 숫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중 몇 명이 살아남을지는 다른 이야기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연말까지 왔다.
이제는 미룰 수가 없었다.
그놈의 답 말이다. 하여 두 사람을 데리고 나왔다.
눈앞에 서해가 펼쳐졌다.
“뭘 바다까지 와요?”
“가깝잖아. 서해.”
“그래도 몇 시간이잖아요.”
“저, 저는 좋아요…!”
한서림이 투덜거리며 옷을 여몄다.
조아윤은 그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어색하다면 어색하고, 편안하다면 편안한 분위기다.
어느새 이 구도가 그렇게나 정착됐다.
“…그래서, 이젠 답 들려주는 건가?”
한서림이 물었다.
옆에 조아윤이 있음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조아윤도 그랬다.
두 사람도 서로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충분히 인지한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했어.”
바다를 등지고 나란히 선 두 사람을 바라봤다.
길고 길었던 고민, 기다려주었던 두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나는 운을 띄웠다.
“고마워. 여기까지 같이 와줘서.”
여기서부터 반응이 갈렸다.
한서림은 부끄러운 건지 고개를 휙 돌려버렸고, 조아윤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 개성적이다.
둘 다 닮은 구석이라곤 조금도 없다.
단 하나 꼽자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었던 그 감사한 마음뿐.
그것을 앞으로의 미래라고 생각해도 그렇겠지.
“둘 중 누군가를 골라야 한다면 말이야.”
“….”
“어느 쪽을 고르든지 참 다른 미래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
한서림과 산다면 꽤 세련되고 깔끔할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삶일 것이고, 나 스스로도 정적이고 우아한 삶을 살 것도 같았다.
반대로 조아윤과 산다면 포근하고 친근하겠지.
지지고 볶으면서 어떻게든 웃으며 살 거란 생각이 든다.
그것들을 고민했었다.
선택지를 내게 주었으니, 나는 둘 중 어느 쪽에 이끌리는지를 깊게 고민한 것이다.
“사실 어느 쪽이든 좋아. 너희를 좋아하니까.”
“…바람둥이 같은 대산데.”
“모태솔로야. 여하튼, 생각하다 보니까 갑자기 의문이 들더라고.”
그것은 한순간의 번뜩임이었다.
나는 정말 문득, 마치 악몽을 헤매던 중 깨어난 것처럼 어느 순간 생각해 버렸다.
“…내가 왜 골라야 하지?”
라고 말이다.
“?”
“오….”
한서림이 고개를 기울였고 조아윤이 탄성을 내질렀다.
둘 중 하나만 이해한 듯하다.
…그래, 그런 답이다.
“난 둘 다 좋은데.”
생각해 보라.
한서림과 산다면 편안함을 포기해야 한다.
조아윤과 산다면 인간성을 조금 포기해야 한다.
한데, 둘 다 데리고 산다면 무엇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긴 시간 함께 해오며 얻은 확신이 있다.
이 두 사람, 서로 다른 만큼 모자란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이 가능하다.
한서림이 기어코 욕설을 토해낸다.
“이 씨발 새….”
“서림아 진정하고 들어봐. 이게 왜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거야 양다리니까…!”
“그게 문제가 되나?”
한서림이 멍하게 입을 뻐끔거렸다.
그래, 내가 말하고도 헛소린 걸 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리만 서로 좋으면 된 거 아냐?”
“…?!”
“선택하기 싫어서가 아니야. 둘 다 좋아서 그래. 진짜로.”
살아생전 연애 감정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여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확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는 감정은 안다.
잃는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아픈 것이 소중함임을 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다.
두 사람은 내게 너무 소중하고, 나는 소중한 것을 포기할 정도로 어른스러운 사람이 못 된다.
“무엇도 잃고 싶지 않아. 이기적이라서 미안해.”
기다려온 답을 주지 못함에 미안하다.
물론 그 또한 내 선택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강하게 말했다.
“그냥 셋이 살자.”
궤변인 건 알지만 사실상 여기까지 와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이것밖에 없다.
조아윤을 바라보니 어찌 됐든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좋다.
역시 조아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한서림이다.
“어때? 네 의견은?”
그렇게,
짜아악―!
뺨을 맞았다.
겨울 바닷바람이 화끈하게 달아오른 뺨을 식혀줬다.
* * *
며칠이 지났다.
서림은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면서도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미친 새끼…!”
요즘 가장 많이 내뱉는 대사였다.
대상은 당연히 연호였다.
당연 셋이서 살자는 미친 소리나 하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하나, 그런 것보다 요즘 이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게 하는 두 번째 이유가 있었다.
“서림아, 좋아해.”
요즘 연호가 집요하게 서림을 쫓아다니며 하는 말이었다.
평생 그런 얘기는 입에 담지도 않을 것처럼 굴던 사람이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는 것에 서림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는 스스로가 미웠다.
그리하여 거절의 말을 내뱉고 내뱉었으나,
“좋아해.”
단어는 너무 달콤했다.
“나한테 왜 그러는데…!”
울분에 차서 말했다.
돌아오는 답은 역시 하나였다.
“좋아해. 포기하기 싫어.”
그런 순간이 이어져 오늘이었다.
서림은 연호에게 술자리를 제안했다.
더 이상 이런 지지부진한 대치 상황을 이어갈 수 없다는 판단이었고, 뭐가 됐든 결론은 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한 답이 그거였어요?”
원망이 묻어난다.
그럼에도 애정 또한 함께 묻어난다.
그것은 서림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살아생전 단 한 사람만을 좋아해 봤고, 그 사람을 바라본 세월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삶의 관성이리라.
서림에게 연호 외의 답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상하잖아. 그냥… 이건 이상하잖아….”
당연히 술기운을 빌린 말이었다.
서림은 그간 해온 마음고생을 연호에게 다 털어놓았다.
“이게 아닌 거 알잖아요. 선배도.”
“….”
그런 흐름이었다.
서림이 연호를 욕하고, 연호는 진지한 어조, 표정, 분위기로 서림의 말을 들어줬다.
그러다 하나의 답을 건네왔다.
“나는 이게 아닌 답을 생각할 수가 없어.”
“머리가 나쁜 거예요?”
“욕심이 많아서.”
연호는 끝까지 허리를 펴고 앉아있었다.
서림은 그가 무리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무렴, 연호의 취한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 그녀가 아니던가.
본디 취기가 잘 드러나지 않는 얼굴이라지만,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호는 이미 주량을 넘게 마시고 있었다.
“알잖아. 욕심 많은 거. 생각한 건 무조건 이뤄야 하는 사람인 거.”
이게 숨기지 않은 연호의 진심일 터다.
뻔뻔하고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였다.
첫 만남부터 그랬다.
-이게 아니면 안 될 거 같아서.
그는 앞만을 보는 사람이다.
꿈꾸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손에 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싶은 사람이었다.
헛웃음을 흘린 이유는 그래서였다.
변하지 않아서.
그는 끝까지 한결같을 것임을 깨닫게 되어서.
‘진짜….’
미친 게 분명했다.
그가 변하지 않으리란 믿음만으로 저 욕심을 들어줄 용의가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나가죠.”
두 사람은 술집을 나왔다.
어둑하게 가로등만 겨우 빛나는 길을 걸었다.
서림은 그런 말을 했다.
“…나여야 해요. 무조건.”
“응, 너야.”
“나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도 네가 있지.”
“내가 먼저여야 하는 거예요.”
가로등 아래서 서로를 마주 보는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고백하는 날도 이랬고, 무슨 우연인지 이번 역시 이랬다.
“나 알잖아요.”
“2등은 싫지. 넌 최고여야 하니까.”
“그래서 선배랑 저랑 잘 맞았어요.”
“알아, 그래서 널 잡고 싶은 거고.”
“선배 진짜 나빠요.”
취한 채로 연호를 끌어안았다.
품속에 고개를 묻으니 심장이 덜컥였다.
“…좋아해요.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이어도.”
그리고 고개를 들자 연호가 바로 보였다.
그는, 끝까지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붙잡고 있었다.
답은 그 행동이 보여주고 있었다.
연호의 팔이 뻗어 나와 서림을 감쌌다.
서림은 숨이 멎는 기분을 느꼈다.
타인에게 안기는 감각은 이다지도 저릿한 것이었다.
“책임질 거야. 평생. 죽어 지옥에 가서도.”
속삭임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서림은 알았다.
저 말 또한, 진심이리란 것을.
그리고 이것은 헬릭이란 시리즈를 만든 그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라는 것을.
우스웠다.
“선배는 꼭 지옥 갈 거예요. 나도 그렇고.”
“넌 오래 있지 않을 거야.”
“책임질 거니까?”
“응.”
서림은 그 확고함에 기댔다.
팔로 연호의 허리를 감았다.
“이왕이면 지옥 다음 내세까지 풀 서비스로 책임져줘요.”
그때가 새벽 2시였다.
차는 끊겼고, 대리를 부를 정신도 없었으며, 가까운 것은 연호의 집이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서로를 바라보다,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곳을 향했다.
불 꺼진 방에 속삭임이 있었다.
“…증명해 줘요. 선배한테는 내가 제일인 거.”
“…응.”
사고를 쳤다.
여러모로 늦은 사고였다.
* * *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했다.
서림은 그렇게 생각했고, 속에 남은 일말의 거부감 또한 시간에 맡겼다.
사실, 그런 것이야 어찌 되었든 좋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살갗을 맞대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교통정리는 필요하다.
한 사람을 둘이서 공유하는 일이니 서림은 연호가 했던 대로, 자신의 욕심은 다 채울 심산이었다.
“아윤아.”
조아윤, 인생의 절반을 함께 해온 동생이자, 연적이자, 남친(공식)의 공유인.
스스로 개념을 정리하면서도 남친의 공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았으나, 서림은 굳세게 일어나 말하려고 했다.
“선배는 괜찮대. 나도 괜찮아. 너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 아무 말도 없었으니까.”
“네에!”
“…?”
아윤은 해맑았다.
정말, 눈곱만큼도 이 상황이 곤란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서림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만 쪼잔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에 차오른 의문이 있었다.
“진짜 괜찮아? 진짜?”
그에 아윤이 무슨 문제냐는 듯 답하니,
“며, 명규 아저씨도 하는데 뭐….”
쿵!
서림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사고는 유독 달라 붙어있던 세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뭐야, 다들 하는 거였어?’
이상하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무언가, 어렴풋이 느끼던 것이 오피셜로 땅땅 박힌 기분.
그리하여 드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이게 그렇게 이상한 관계는 아닌 건가?’
타협 및 수용, 그리고 자기 합리화.
멘탈 건강을 위한 좋은 자세였다.
그리고, 그런 서림에게 나름의 호재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호, 호적은 언니가 올릴래요…? 전 아무거나….”
아윤은 광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을 가진.
“헤헤, 잘 지내봐요.”
서림은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