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235)
235화. 에필로그2 – 나아가, 나아질 수 있는 곳
살아가다 보면 인간의 기억력이 그리 신뢰하지 못할 놈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멋대로 잊히고, 왜곡되고, 다시 떠오르는 그놈 탓에 곤란한 일을 겪는다면 특히 그렇다.
이 이야기 또한 그런 이야기다.
어떻게 해도 떠오르지 않던, 어렴풋이만 내 기억 속에 존재했던 어떤 일의 회고.
어느 날, 나는 꿈을 꾸던 중 지옥의 끝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 * *
모든 지옥을 돈 직후였다.
웬 우주 공간 속 별천지 한가운데로 떨어진 나는 그 순간 직감했다.
“여기가 지옥의 끝입니까?”
하늘을 빛내는 모든 것이 황금문.
시련 따위는 없어 보였고 분위기는 정적이었다.
이건 지옥이란 관념에 속할 뿐, 누군가를 벌주기 위한 공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 질문에 답한 사람은 노인이었다.
“자네는 이것들이 꼭 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나?”
유일하게 땅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돌덩이 위에 나와 함께 있던, 앉아서 그저 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노인은 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하늘 위의 황금문을 향해 손을 뻗으며.
“실제로 별과 다르지 않다네. 암만 바란다 해도 손에 쥘 수 없어.”
“존재함에도 허상 같기에 절망스러운, 그리하여 동경하게 된다는 점에선 특히 이것들은 별이란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것일 테지.”
“그렇기에 기적인 게야. 우연찮게, 본인조차 모르게 다가와 품을 드리워주니…….”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홀로 중얼거리다, 뒤늦게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흠칫 몸이 떨렸다.
노인의 텅 빈 눈구멍 속에 아득한 공허와 시리게 빛나는 별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물었다.
“…당신입니까? 저에게 지옥을 보여준 사람이.”
“아닐세.”
“당신은 무엇입니까?”
“무엇도 아닐세.”
“…신?”
“나는 존재일 뿐이네. 그저 이 자리에 있는 개념인 게지.”
노인의 주름이 미소를 그렸다.
“나에게서 의미를 찾지 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요, 자네의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존재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리 노인은 내게서 시선을 거뒀다.
또다시 아득한 황금문의 별천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노인과 아주 오랜 시간을 지냈다.
하늘의 황금문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빛났으며, 이따금 어떤 것이 유성처럼 떨어져 공간에서 사라졌다.
그 후엔 다른 황금문이 나타나 그 자리를 대신했고, 공간은 그런 변화 외엔 어떤 것도 변하지 않는 정적 속에 있었다.
나는 그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려는 누군가의 헌신과 선의가 저 황금문이다.
유성처럼 떨어진 황금문은 그 호의의 대상을 찾아간 것이겠지.
다시 나타난 황금문은 사라진 만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가 늘었다는 말이 된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균형이군요. 이게.”
이것이 지옥을 이루는 질서요, 균형이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아득한 선의와 악의의 질서가 이 공간을 이루는 것이다.
시각적인 형태로 그것을 확인하니 전율이 차올랐다.
감히 지옥이란 것을 재단하려고 했던 나의 오만함에 수치심마저 차올랐다.
나는 노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균형의 관측이라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라도 이어갈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노인 또한 나처럼 지옥을 관측한 누군가인 걸까?
답은 모른다.
노인과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 노인은 혼잣말에 가까운 언어를 사용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자네도 바라고 있나? 저 별 들 중 자네를 위한 것이 있기를.”
말이라고 하는 건가.
저 선의의 저울이 내게 드리워지길 바라는 것은, 이미 내게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나는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은 웃었다.
“그리 애타게 바라보지 마시게. 간절함과 비참은 그리도 친밀하게 지내는 법이니.”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단 말이군요.”
“그저 겸허한 마음으로 바라시게. 이곳에 자네를 위한 구원이 나타나기를.”
그 순간, 노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앞선 이들이 그랬듯 말이네.”
나는 입술을 뻐끔거렸다.
이곳에 온 이가 내가 처음이 아니었고, 그들이 맞이한 구원이 있다는 사실에.
그렇다면 저 황금문의 별 어딘가에 나를 위한 별이 있다는 말일까?
그리 생각하는 순간부터, 별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바뀌었다.
아득한 경이로움에 대한 관찰에, 기대감 하나가 덧씌워진 것이다.
물론 그 기대는 쉬이 충족되지 않았다.
이후로도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을 그 황금문의 요람에서 지냈다.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것을 봤다.
그 변화 하나하나에 담긴 간절함과, 아름다움을 목도했다.
내 눈구멍조차 타들어가 노인처럼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
그럼에도 나를 위한 구원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는 체념 하나.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이었다.
“때가 되었군.”
노인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자 이변이 일었다.
화아아악―!
우주를 비추던 황금문 하나가 내 앞으로 떨어졌다.
나를 위한 구원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놀란 마음에 노인을 바라봤다.
그는 그저 웃으며 말했다.
“즐거운 여행이 되었기를.”
끝까지 정체 모를 노인.
나는 섣불리 황금문을 열지 못했다.
이 앞은 나도 알지 못하는 미지다.
구원이라는 것만 실감할 뿐, 그 외의 모든 것이 불확실성 속에 있는 세계.
작게 두려움이 일었다.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이 앞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자, 노인은 내 우둔함을 꼬집었다.
“자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나.”
멍하게 입이 벌어진다.
나는 황금문을 봤다.
미지를 향한 두려움을 걷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으나, 이윽고 그 일을 해낸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예, 그렇긴 하군요.”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황금문이 이르는 구원의 길은, 언제나 하나였다.
나아가, 나아질 수 있는 곳.
달칵―
그렇게 황금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기다란 백색의 복도.
그리고,
“와, 팀장님 진짜 느리네.”
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조아윤이었다.
* * *
눈을 끔뻑였다.
황금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가득 차올라 있던 상황이었건만, 막상 문을 여니 보이는 게 이 얼굴이라서.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감정의 공백을 채운 것은 황망함이었다.
나는 이 지옥의 규칙을 안다.
황금문이란 것이 어떻게 지어지는지를 안다.
하여 물었다.
“왜…?”
“오, 만나자마자 질문.”
“왜 그랬어? 왜 네가 여기 있어?”
황금문은 희생이다.
자신을 버려야만 타인을 구할 수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이겠는가.
떨리는 손으로 조아윤의 어깨를 붙잡았다.
답을 갈구했으나, 조아윤은 껄껄 웃으며 다른 말을 했다.
“왜긴요. 나도 죽었으니까 왔지. 햐, 술을 적당히 먹었어야 했는데.”
뒤통수를 긁적거리는 모습에선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언제나처럼,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일단 걸어요. 가만히 서서 뭐하는 짓이래.”
조아윤이 내 손을 잡고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섣불리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공간은 떠들썩했다.
조아윤이 그만큼 말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너무 했죠. GOTY 수상날 과로사로 죽는 게 말이야? 그때 저랑 전화 중 아니었으면 팀장님 그대로 미라 되는 거였어요. 날파리 꼬이고 구더기 생긴 시체 본 부모님 마음이 어땠겠어요?”
“…….”
“제가 장례까지 잘 치러줬어요. 아, 팀장님 부모님한텐 여자친구라고 말해놨는데 불만 없죠? 없어야지. 내가 이만큼이나 해줬잖아요.”
“…….”
“저야 뭐 적당히 살았어요. 술병 나서 죽긴 했지만 썩 나쁘진 않았어. 한 번씩 팀장님 찾아가서 푸념이나 하고….”
그런 이야기를 한참이나 듣던 중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냐고 물었어.”
“…….”
조아윤의 걸음이 멎었다.
말조차도 멈추고 잠시 정적을 자아냈다.
그러다 나를 돌아봤다.
녀석답지 않은 표정을 지은 채로.
“좋아해서요.”
심장을 멎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거면 안 되나?”
이내 헤프게 웃기 시작한 조아윤이 내 손을 꽉 쥐어온다.
왜 저 손아귀에 잡힌 것이 내 심장처럼 느껴지는 건지.
“…뭐하러 나 같은 놈 때문에.”
“몰라요. 그거 알면 팀장님 안 좋아했지.”
조아윤은 시선을 전방으로 향했다.
그곳엔 출구로 보이는 황금문이 있었다.
“저도 지옥에 떨어졌어요. 뭐, 적당히 아프고 곤란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팀장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착하게 산 나도 지옥에 떨어졌는데, 그 인간은 무조건 지옥에 있겠구나. 어떡하나.”
“…….”
“챙겨줄 사람도 나밖에 없잖아요. 우리 팀장님은.”
손가락이 맞물린다.
손깍지가 껴졌다.
“그래서 그랬어요. 팀장님 엄살도 심한데, 아픈 거 싫어서.”
여상스럽게 건네온 말들일진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너무 무거웠다.
그리하여 어떤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런 중 조아윤이 말했다.
“이 문이요. 더 나아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문이래요.”
“누가?”
“몰라, 그냥 알아.”
“….”
“그러니까 아마도요. 팀장님은 과거로 갈 거예요.”
“어떻게 확신하는 거야.”
“팀장님한테 없었던 건 기회뿐이니까.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지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툭―
조아윤이 주먹으로 내 가슴을 쳤다.
환하게 웃으며 말이다.
“그러니까 가요. 더 나아지러.”
“너는?”
“괜찮아요. 우린 다시 보는 거잖아요.”
제멋대로인 녀석이다.
살아생전에나, 죽은 지금에서나.
“영 나한테 고맙고 미안하면 하나만 약속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제멋대로, 날 위해 모든 걸 포기해준 녀석이니까.
“뭘 약속하면 돼?”
“저 찾아줘요.”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거야.”
“좋아해줘요.”
“너 좋아해.”
“그런 거 말고. 사랑해줘요.”
일순 숨이 멎었다.
조아윤은 녀석다운 해맑은 기운을 뿌리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랑받고 싶어요. 팀장님한테.”
가슴에 박히는 말이다.
그 말 한마디가 모든 이유였다.
이 황금문을 자아낸 희생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못나고, 눈치도 없는 이런 인간을 향한 사랑.
잠시 이를 악 물고, 숨을 길게 내뺀 후에야 답했다.
녀석처럼 웃으면서.
“…그럴게.”
“응, 기다릴게요.”
담백한 이별이었다.
조아윤이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들이밀었다.
입맞춤이 있었고, 출구가 열렸다.
화아아악―
그것이, 나의 회귀에 관한 회고였다.
* * *
눈을 뜨니 아침 햇살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커튼을 안 치고 잔 건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니 찌뿌둥한 기운이 가득하다.
기지개라도 켜야 하겠건만, 머릿속은 다른 생각이 가득하다.
‘이걸 이제야 기억하네.’
왜 하필, 이 순간 오늘 이게 기억난 건지는 모른다.
다만 그저 답답하던 속이 풀렸다는 감상이다.
떠오른 기억은 이제 나를 이루던 모든 의문을 해소해, 시원함과 먹먹함을 만들었다.
나는, 이미 황금문 너머에 있던 것이다.
나를 사랑해준 누군가의 호의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집에 혼자다.
하지만 전처럼 집안이 적막하진 않았다.
사람 여럿이 사는 집은 훨씬 생활감이 있고, 온기가 가득했으니까.
전생의 조아윤을 떠올렸다.
‘너 찾았어. 사랑도 하고 있고.’
녀석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기억도 못 하는 주제에 용케 약속을 지키긴 했다.
이제야 기억하게 된 것은 미안하지만 뭐 어쩌겠나.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창문을 열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집안으로 걸어들어왔다.
크게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회고는 끝.
나는 정신을 일깨우고, 씻고, 출근했다.
“오셨습니까!”
“예. 준비해주세요.”
회의실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회의라 잠이 덜 깬 얼굴들.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곳곳에서 놀란 표정이 지어졌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과거는 과거로 넘겨야겠지.
녀석의 말대로, 녀석의 호의로 기회를 얻었으니 앞을 볼 것이다.
내게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아가 나아질 수 있는 곳에 이미 다다라 있었으니, 그리고 나아지고 있으니.
지옥에 떨어졌다가 돌아왔다.
꾸준히 성장했고 목표도 이뤘다.
모든 게 완벽하다.
하지만 멈출 이유는 없었다.
“그럼 회의 시작합시다.”
나는 여전히 게임 디렉터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