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변화하는 두 세상 (1)
가상현실 아르카디아. 대중적으로는 게임과 같은 형태로 인식되고 있었지만, 수많은 인류 사회학을 평생토록 연구한 학자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랐다.
[게임? 현실과 다를 바 없이 모든 감각을 완전히 구현한 그 가상의 현실을 한낱 유흥이나 오락거리로밖에 볼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나 다름없는 생각이오.] [오히려 아르카디아의 운영사에…… 아니, 그 말도 안 되는 기술을 개발한 세 회사에 하고 싶은 질문이겠군. 인류의 생활상 그 자체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 놓고 고작 게임기로만 써먹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거요?]또 다른 하나의 세상.
이질적이고 그 한계가 확실한, 조잡한 AR이나 VR이 아닌 현실과 분간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달한 그 가상의 현실을 과연 여전히 가상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이 논제에 대해서 한 저명한 사회학 교수가 한 말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인류 태초부터 이어져 오던 자연에 대한 정복과 투쟁은 드디어 끝을 볼 것입니다. 왜 힘들게 천문학적인 자원과 시간을 소비하며 높은 빌딩과 거대한 건축물을 짓겠습니까? 그저 가상의 현실 속에서 구현하면 되는 것을.]인류의 끝없는 개척 정신은 이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그의 예측. 그저 일반인이 아닌 사회학계에서는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저명한 노교수의 발언이었기에 그 영향력은 남달랐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의 예측에 회의적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현실은 현실이고 가상은 가상이지.”
“누가 실물로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쪼가리에 만족하냐?”
“너무 나간 것 아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임 하나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래?”
일반인들은 그저 웃으며 넘어간 소리. 하지만 아르카디아를 통해 그 거대한 잠재성을 통찰한 이들은 심각하게 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서 은밀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회장님, 이번에 추진하기로 한 대형 테마파크 건설 건, 보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 세계에 초대형 테마파크를 수십 개나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대기업, 미즈니(Misney). 그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 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취소하자는 의견에 미즈니의 회장, 알렉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죠? 이미 건설할 부지를 선정하고 해당국 정부와의 협의까지 완료한 상태 아니었나요?”
이제 조만간 당국의 테마파크 건설 승인 발표가 날 것이기에 첫 삽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거의 일 년 동안 공을 들이며 추진해 온 초대형 프로젝트이기에 알렉스는 그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제가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 이유가 있나요? 이미 용지 매입에 대한 계약은 완료된 상황인데, 지금 중단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억 달러의 손실을 볼 텐데요?”
이미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것을 물어보는 미즈니의 회장, 알렉스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순식간에 침묵에 빠진 임원 회의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발표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손실을 보더라도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손실을 막으리라는 것이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로서의 최종 판단입니다.”
마치 지금 당장 해고를 당해도 절대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듯한 그의 각오가 느껴지는 답변. 그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알렉스는 잠깐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들어나 보죠. 왜 저를 비롯한 임원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그런 의견을 내게 됐는지요. 만약 납득할 수 없는 이유라면 당신은 제 책상 위에 사직서를 올려 두고 퇴근해야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일단 저희가 절대 경쟁 불가능한 상대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경쟁 불가능한…… 상대요?”
경쟁 불가능한 상대가 생겼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알렉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의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시장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미즈니가 경쟁할 수 없는 상대가 있다는 것은 그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 최근 저희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아르카디아로 인해 이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차후에 엄청난 손실을 볼 것이라는 예측이 확실시되었습니다.”
“아르카디아라면…… 그 최근 유행하는 가상현실 말하는 거죠?”
“그렇습니다. 일단 저희가 최근에 입수한 영상을 먼저 보시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렉스와 임원들에게 영상을 하나 틀어 주는 발표자. 그 영상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들의 눈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이, 이게……뭐죠?”
3분도 안 되는 영상. 하지만 그 영상에서 나온 장면들은 알렉스를 비롯한 미즈니의 임원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주)아르카디아의 한국 지부에서 최근에 진행했던 이벤트에서 공개된 특수 지형, 판타스틱 아일랜드(Fantastic Island)라는 곳입니다.”
이미연 사장의 제안으로 시작하고 (주)아르카디아 한국 지부에서 이벤트를 위한 맵으로 개발했던 판타스틱 아일랜드. 그곳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비치는 전경을 보며 알렉스와 임원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자아냈다.
“이럴 수가…… 정말로 판타스틱 그 자체군요…….”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을 수용하고도 여유가 가득할 법한 거대한 규모의 섬.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자연의 녹음과 에메랄드처럼 빛나는 해변. 먹을거리가 가득하고 볼거리가 넘쳐 나는 그곳은 보기만 해도 당장에 달려가 휴양을 즐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저, 저건 뭐죠?”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새. 그리고 그것을 타고 창공을 날며 해수면을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곡예비행에 쾌락의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것을 본 알렉스는 흥분한 나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아, 저것 말입니까? 그리폰이라는 몬스터인데…… 저걸 타고 날아다니는 액티비티입니다.”
“Holy shit…….”
설명을 듣고 신음에 가까운 욕지거리를 내뱉는 알렉스. 영상을 다 보고 난 이후 그는 왜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가 이번 초대형 테마파크 건설을 지금이라도 중단하자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을 쏟아붓는다고 하더라도 저런 것과 경쟁하는 건 말이 안 되겠군요……. 왜 프로젝트를 보류하자는 건지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회장님을 비롯한 이곳에 있는 임원진 모두에게 건의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한순간에 수십 년은 늙은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알렉스. 그에게 발표자는 확신에 찬 얼굴로 직언했다.
“방금 본 섬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저희가 예상한 바로 최소 수백억 달러가 필요하고, 그 유지비 역시 수십억 달러입니다. 물론 아무리 애를 써도 구현 자체가 불가능한 것들도 존재하고요. 다시 말해서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말 그대로의 판타스틱 아일랜드입니다.”
건설에만 수십조 원의 예산이, 유지에만 해마다 수조 원이 들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규모의 테마파크. 미즈니라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그 어떤 회사도 머리에 총 맞지 않는 한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완벽한 테마파크가 고작 이벤트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믿기십니까?”
“뭐, 뭐라고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알렉스. 실제로 그의 앞에 놓여 있는 보고서는 (주)아르카디아에서 보내 준 내용이었다.
“(주)아르카디아 미국 지사에 공식적으로 문의해서 받은 자료입니다. 그 자료에는 ‘판타스틱 아일랜드는 한국 지사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한 ‘죽창대전’이라는 이벤트를 위해서 특별하게 만든 지형이며, 미국 지사에서 담당하는 대륙에서는 제공될 계획이 없습니다’라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황급히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보고서에 코를 박다시피 하며 읽어 내리는 알렉스 회장. 그는 여러 차례 관련 문건을 보고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만요……. 그럼 저 말도 안 되는 환상의 섬이 그저 일정 기간 동안만 풀렸던 이벤트에 불과하다고요? 그것도 회사의 사활을 건 것도 아니고 그저 지부 하나가 자체적으로 만든……?”
“그렇습니다. 그것도 모든 것이 공짜로 제공되었답니다.”
“FXXX!”
자신들을 비롯한 수많은 테마파크의 명줄을 끊을지도 모르는 것이 그들에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소비성 콘텐츠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알렉스는 자기도 모르게 거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어서 엄청난 공포감이 그를 비롯한 회의장 안을 옥죄었다.
“잠깐만요……. 그 말은 아르카디아로서는 저런 테마파크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데 아무런 비용도 안 드는 손쉬운 일이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환상의 섬은 그저 데이터에 불과한 허상일 뿐이니까요.”
(주)아르카디아가 마음만 먹으면 미즈니의 목을 죄고 거대하고 우람한 엿을 쑤셔 박을 수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반항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악몽 같은 상황. 그것을 직시한 알렉스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음 같아서는 가상현실 자체를 없애 버리고 싶군.”
가상현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지 1년. 아르카디아가 그 서비스를 시작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박으며 성장해 가고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해 버린 상황. 그렇기에 발표자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주)아르카디아와 가상현실을 이용한 테마파크 구현을 위한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기술이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캐릭터들을 활용한 상시적인 테마파크를 개발하고 이를 서비스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회사의 사활을 걸고 전사적인 대응으로 (주)아르카디아와 초대형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그의 주장. 혁신을 넘어 파괴적이기까지 한 발상이었지만, 그런데도 알렉스 회장을 비롯한 회사의 임원들은 아무도 그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 미즈니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세계를 아우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최고 회사 미즈니의 임원직을 차지할 정도의 인재들이기에 그들은 알았다. 매우 불길한 예언을 하는 발표자의 말은 전혀 허황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뼈가 아플 정도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한, 머지않은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한 통찰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그러한 논의가 벌어지는 동안 (주)아르카디아의 한국 지부 개발진은 오늘도 피눈물을 쏟으며 똥을 치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크흐흡…… 아니, 엘프랑 드워프들 지역은 내년에 마무리할 프로젝트라면서요.”
“그랬지. 그런데, 어? 회사 일이 언제 계획대로 된 적 있어? 하루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인데 여기라고 안 그러겠냐?”
전체적으로 이미 완성된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게임의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유저들의 편의와 즐길거리를 마련해야 하는 콘텐츠 개발 팀. 하지만 그들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긴급 개발 업무에 매일같이 야근하며 최후의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짜이고 있었다.
“저희 오늘은 그냥 정시에 퇴근하면 안 돼요? 어차피 지금 당장 거기에 접근한 유저도 없는데 하루 정도야…….”
“무슨 소리야? 미쳤어? 그랬다가 무슨 일 벌어질지 몰라? 그러다 우리가 의도하지도 않은 메인 시나리오 터져 버리면 우리만 X되는 줄 알아? 전 부서가 X돼!”
“크흐흐흐흑……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 너네도 시나리오 개발 팀처럼 부서 날아가고 위기 관리 대응 팀 같은 걸로 재편돼서 온갖 똥이나 치우고 다니는 그런 꼴 나고 싶어? 거기는 정시 퇴근 따위는 없는 거 알지? 24시간 대기야, 24시간 대기!”
이 이상 예측 불허의 상황을 만들 순 없다는 집념과 각오가 들어가 있는 콘텐츠 개발 팀장의 외침. 그 외침에 개발 팀은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가득 쌓여 있는 똥들을 치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미즈니의 회장이 직접 군침을 흘리는 판타스틱 아일랜드를 창조한 주역들. 수백억의 연봉을 주더라도 거리낌 없이 채용할 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 같은 인재들은 오늘도 개발 팀장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고통받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방바닥을 긁으며 TV를 보고 있는 20살의 평범한 새내기 대학생 한 명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