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깨어나는 세계수 (1)
아르카디아에 접속한 재영.
그를 반기는 것은 바로 툭탁거리며 싸움을 벌이고 있는 탄과 엘이었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이 빌어먹을 닭 날개 새끼야!”
“꼴깝 떨고 있네. 박쥐 주제에.”
화르르륵.
콰지직. 콰앙.
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성화와 탄의 손에서 넘실거리는 마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대치하며 싸우고 있는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재영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너희…… 도대체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야?”
“어? 주인!”
재영이 돌아온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엘과 치고받으며 혈투를 벌이던 탄. 그는 재영을 보자마자 평소와는 다른, 과격한 반응을 보이며 날아왔다.
퍼억!
그리고 날아오는 전력을 다한 몸통 박치기. 분노가 가득 들어 있는 탄의 공격은 손바닥 크기에 불과한 패밀리어의 모습으로도 꽤 매서웠다.
“누가 내가 없는 동안 사고 치고 다니래!”
[치명적인 일격!] [강한 충격으로 일시적인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데미지가 들어온 재영. 깜빡이도 없이 들어온 탄 때문에 재영이 바닥에 드러눕자 엘이 또다시 탄에게 달려들었다.
“이 망할 박쥐 새끼는 자기가 저지른 건 생각도 안 하고 지랄이네? 파곤 광산의 제단 네놈이 박살 낸 건 기억도 안 나지?”
“이 미친년아! 성소 하나 박살 낸 거랑 신기 하나 박살 난 게 어떻게 같냐고!”
“다르긴 뭐가 달라? 악마 놈들은 도대체 낯짝이 얼마나 두껍길래 이렇게 뻔뻔하지?”
엘의 말에 진심으로 분노하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떠는 탄. 조금만 더 자극하면 목덜미라도 잡고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엘의 독설에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었다.
“네가 예전에 말하지 않았었나? 당한 놈이 멍청한 거고 멍청한 놈은 당해도 싸다고?”
언제나 서로 엿을 먹이고 먹여 왔던 탄과 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탄이 엘에게 엿을 먹이고 난 후 놀리며 했던 말. 그것을 똑같이 되돌려 준 엘의 말에 탄은 분을 참지 못했다.
“으아아아아! 이 튀겨서 씹어 먹을 치킨 새끼야아!”
괴성을 지르며 또다시 날개를 파닥거리며 하늘 위로 도약하는 탄. 도대체 언제부터 이 짓을 반복하고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재영이 접속하자마자 본 장면을 그 둘은 또다시 연출하기 시작했다.
“하아…….”
말린다는 생각 자체를 포기한 지 오래인 재영. 이번 일의 경우에는 또 그와 무관한 일이 아니었기에, 괜히 불똥이 자기한테도 튈세라 그는 가만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짹짹.
평화로운 새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숲 한가운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초록빛 녹음이 가득한 곳.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푸른빛의 하늘은 현실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또 마음이 정화되는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재영의 눈에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세계수가 당신과의 대화를 요청합니다.] [이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N]“……?”
하늘을 가만히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를 만끽하고 있는 상황. 그러한 순간을 잠깐이라도 가만히 두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타나는 메시지에 재영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도무지 조금이나마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것 같은 게임. 하지만 재영은 한숨을 내쉬며 YES 창에 손을 가져갔다.
[세계수와의 대화를 수락하였습니다.] [대화를 위한 채널링이 활성화됩니다.]“이게 무슨……?”
채널링이 활성화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재영은 갑자기 엄청난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저항할 수 없는, 눈꺼풀이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감겨 오는 그런 졸음이 말이다. 탄과 엘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그렇게 재영은 잠에 빠져들었다. 평화로운 얼굴로 숲속 한가운데에 드러누운 채 말이다.
* * *
세계수.
아르카디아라는 세계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규모의 나무이자 모든 생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존재. 하지만 고대에 벌어진 천사와 악마들의 전쟁으로 인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후 끝없는 잠에 빠졌던 그녀는 비로소 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단단하게 그녀의 몸체에 박혀 그녀의 존재 자체를 타락시키려고 하던 마계의 신기. 아무리 저항해도 기생충처럼 단단히 그 뿌리를 박고 버티던 그 지독한 검이 스스로 빠져나가자, 세계수는 자신의 몸과 의식을 옥죄는 타락의 기운에서 해방된 채 비로소 주변의 상황을 의식하고 관조할 수 있었다.
[같잖은 저항 작작 하고 얌전히 뒈져, 이 빌어먹을 박쥐 새끼야.]재영의 몸에 깃들어 있는 엄청난 신성의 기운. 그리고 그에 전력을 다해 저항하나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며 산산이 조각나는 마계의 신기, 데스브링어.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난 후 세계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영원한 영면에서 구해 준 것이 바로 그녀 앞에 서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무 당황해하지 마세요.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 만한 힘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제가 대화할 수 있는 꿈의 공간으로 초대한 거니까요. 몸은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있어요.]눈 깜빡할 새에 주변 풍경 자체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는 상황. 재영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호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보며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이내 빠르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네가…… 아니, 당신이 세계수인가요?”
초록빛 머리칼의 소녀. 잡티 하나 없는 새하얀 피부, 세상의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깊은 눈동자의 그녀는 재영의 물음에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렇죠. 저를 부르는 이름이야 다양하지만…… 생명체 대부분은 저를 그렇게 부르죠.]세계수(世界樹). 위그드라실(Yggdrasill). 세피로트의 나무(Tree of Sephiroth). 가이아(Gaia).
신앙과 신화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이름으로 그녀를 일컬었지만, 그들이 그녀를 언급할 때 붙이는 칭호는 똑같았다.
비옥한 땅과 풍요를 선사하는 모든 만물의 어머니.
아르카디아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그야말로 아르카디아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존재라면 마땅히 감사하고 찬양해야만 하는 존재. 특히나 그중에서도 엘프들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었지만, 그녀의 존재가 영향을 주지 않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 할 것 같군요. 덕분에 그 지독한 놈한테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고마움을 표하는 세계수. 그런 그녀의 앞에 멋쩍게 서 있는 재영의 머리 위에서는 하나의 칭호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칭호, 세계수의 수호자]엘프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 그리고 이참에 탄에게 제대로 엿 먹이겠다는 엘의 복수심이 한데 뒤섞여 벌어지게 된 일. 하지만 뭐가 되었든 재영 덕분에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에 세계수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뭔지 알 수 있을까요?”
대화를 원한다고 직접 재영을 불러들인 세계수. 그녀의 꿈속으로 강제로 소환당한 재영이 궁금증 어린 얼굴로 묻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정말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어요.]“궁금한 거요……?”
궁금한 게 있다는 세계수. 그녀는 재영의 숨결이 닿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재영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눈. 에메랄드 빛깔로 빛나는 눈동자를 빛내며 세계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중얼거렸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천계와 마계의 수장들이 붙어 있길래 범상치 않다고는 생각했지만…… 생각한 것 이상이네…….]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는 세계수. 그리고 그녀는 정말 진지한 얼굴로 재영을 다시 바라보고는 물었다.
[당신, 정체가 뭐죠? 천사나 마족도 아니고, 정령이나 그렇다고 용종도 아닌 일개 인간이면서 도대체 어떻게 세계를 뒤트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요?]정체가 뭐냐는 세계수의 질문. 그것을 들은 재영은 그녀가 자신을 직접 불러내 대화를 하고 싶어 했던 이유를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개연성(Plausibility).
인과에 따라 주어진 설정을 뒤틀고 사명에 어긋난 일을 행할 수 있게 해 주는 힘. 탄과 엘이 어떻게든 자기가 더 많은 양을 뜯어내려고 매일 같이 신경전을 벌이며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그 힘의 존재를 눈치챈 세계수의 물음. 그런 그녀에게 재영은 한숨을 내쉬며 길게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흐음…… 그러니까, 주기적으로 당신에게 사명(使命)과도 같은 일들이 부여되고, 또 그걸 행하고 나면 그에 따른 보상으로 개연성이라는 게 부여된다는 말인가요?]“예.”
미션 시스템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개연성. 그런 재영의 말에 세계수는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사명은 누가 부여하는 거죠?]“그건 모르겠는데요……?”
엘이나 탄이 군침을 흘리며 탐을 낼 정도로 막대한 양의 개연성. 게임 시스템의 보상으로 부여되는 것이기에 그는 한 번도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가끔 그에게 주어지는 미션을 보며 정신 나간 개발자 자식들 얼굴이나 한번 제대로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 세계수는 더욱 심각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일반적인 수준의 신성으로는 내가 파악하지 못할 수 없을 텐데…… 그렇다면 설마…….]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무언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혼잣말하는 세계수. 그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재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저를 도와주신 것에 대해 보답은 해야겠죠.]황급히 대화의 주제를 돌리며 재영에게 작은 황금빛의 열매 하나를 건네는 세계수. 재영은 그걸 무심결에 받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열매?”
[나름 귀한 물건이니까 소중히 간직하시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사용하세요.]“뭐…… 감사합니다.”
퀘스트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으로 그 황금빛의 열매를 받은 재영. 그가 그것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자 세계수는 묘한 표정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엘프들과 드워프들의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 아이들을 화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요.]“아, 그거요? 솔직히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런데, 둘 다 쉽지 않던데요.”
종족 우월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의 환장의 콜라보. 이 둘이 억지로라도 다시금 교류를 시작하게 만들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인성이 둘 다 글러 먹은 터라 가만히 두어도 자연스럽게 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번에는 그 둘이 아니라 인간들과도 한바탕하게 될 각이 날카롭게 서 있다고 보는 게 재영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런 재영의 말에 세계수는 묘하게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나 외모 그리고 종족을 가지고 비하하는 게 숨 쉬는 것과 같이 일상화되어 있는 종족들. 사실 조금이 아니라 아예 기본 가치관부터 뜯어고치는 것이 시급한 수준이었지만, 저런 안일한 세계수의 마인드에 재영은 글러 먹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알아서 이번에는 잘들 살겠죠. 아무튼 이제 할 이야기 다 하신 거면 저는 이만 돌아가 보도록…….”
탄과 엘이 또 밖에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을지 슬슬 걱정이 되는 재영. 거기에 이 초록빛 소녀의 모습을 한 세계수에서 느껴지는 묘한 불길함에 재영은 빨리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그녀는 은근한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원래라면 기약 없는 영원한 잠 속에서 그녀의 존재 자체를 타락시키려는 데스브링어와 끝없는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었을 세계수.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자 아르카디아에 숨겨져 있던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고. 신화급 메인 시나리오의 트리거 감지.] [Act. 25 판게아(Pangaea), 관련 퀘스트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