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슬라임이 너무 강해 (7)
가상현실.
뇌와 컴퓨터의 직접적인 데이터 공유를 통한 가상의 현실을 체험하게 해 주는 기기.
드리머(Dreamer).
[가상현실은 그야말로 인류 전체의 생활상을 뒤바꿔 놓을 것입니다.]가상현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발표에 수많은 과학자가 코웃음을 쳤다.
[뇌와 컴퓨터와의 직접적인 연결이라뇨? 어디 외계인이라도 납치했대요? 아직 뇌 과학은 걸음마도 못 뗀 상태인데 가상현실이라니!] [그거 어디서 들은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아마 죄다 사기꾼이거나 엄청 조잡한 쓰레기를 가지고 그러는 걸 겁니다. 아마 가상현실이 개발되려면 한…… 100년은 걸릴걸요?]일단 사기라고 단정적인 어조로 말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 베일을 벗은 드리머와 그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 세계 아르카디아. 이 둘이 공개된 이후 세상은 커다란 대격변에 휩싸였다.
[뇌와 컴퓨터의 직접 연결이라니, 그게 인간의 뇌에 미치는 영향과 위험성에 대해서 정확히 검증된 것이 없소!] [이런 미친, 도대체 얼마나 기술력이 앞서 나갔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만들어 낸 거야!]하나같이 개소리라 치부했던 이들은 인간의 오감 모두를 구현한, 현실보다도 더 현실 같은 가상의 공간에 경악했고 또 좌절했다. 해당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권위자로서 자부하던 이들조차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엄청난 고도의 과학력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이러한 괴물을 만들어 낸 세 개의 대기업의 저력을 몸소 느끼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코퍼레이션 아르고스.
실리코프 바이오 인더스트리.
아진 일렉트로닉스.
세계를 선도하는 바이오, 소프트웨어, 전자 기업이 이례적으로 합작해 만들어 낸 초과학의 산물. 이들이 도대체 왜 갑자기 협력 관계가 되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제품을 개발한 건지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각 회사가 자본금을 출자해 저희는 ‘(주)아르카디아’라는 회사를 설립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 가상현실 기반의 또 다른 세상, 아르카디아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글로벌 기업 3개가 합작해서 만든 자회사 (주)아르카디아. 이 회사는 미국에서 처음 아르카디아를 출시한 후에 한국을 넘어 유럽, 호주, 중국, 일본 등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출시하거나 출시를 준비하며 엄청난 확장세로 회사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한 회사를 이끄는 (주)아르카디아의 사장 이미연은 자꾸 자신의 집무실을 들락날락하는 권명한 전무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게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요청하고 싶다, 이 말인가요?”
권명한 전무에 비하면 한참이나 젊어 보이는 이미연 사장. 이제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책상 위에 올려진 보고서를 주의 깊게 읽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사태가 예상한 것보다 악화되어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조처를 하는 게…….”
그 말에 이미연 사장은 안경을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전에 슬라임 능력치 조정과 관련해서도 그랬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을 텐데요?”
“…….”
이미연 사장의 말에 권명한 전무는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 회사 (주)아르카디아는 게임의 전반적인 운영과 이벤트, 퀘스트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기획하고 또 개발하는 회사예요. 우리가 개발한 것들이 어떤 식으로 게임 내에서 흘러가고 이용되는지, 어떠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는 철저히 유저들의 손에서 보여야 하는 것들이라고요.”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자유.
이 회사의 모토이자 이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볼 수 있는 3개의 대기업에서 내린 처음이자 마지막 지침이다. 그렇기에 이미연 사장 역시 이 부분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듯 권명한 전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고, 이후에 대응할 부분은 그때 가서 적절한 대응을 하도록 하세요. 이 이상 일어나지 않은 최악의 가능성을 막기 위해 개입하자는 건의는 듣지 않았으면 하네요.”
“그, 그렇지만, 사장님! 지금 진행되고 있는 퀘스트가 어쩌면 초보자 마을을 파괴할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무한한 자유도를 자랑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마을 하나를 완전히 박살 내 버리는 건 완전히 선 넘는 짓 아닌가? 권명한 전무도 회사의 지침이고 모토고 다 알고 있었지만, 부하 직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철야를 반복하며 구현해 낸 초보자 마을이 이렇게 오픈 한 달도 안 돼서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한 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온 참이었다.
[띠리링. 새로운 업데이트가 진행되었습니다. 관련 사항을 확인해 주세요.]그런데, 갑자기 이미연 사장의 컴퓨터에서 아주 청명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엘리스에 의한 자동적인 업데이트가 발생했을 때 울리는 알림음. 그 알림음의 의미를 알고 있는 권명한 전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을 때, 이미연 사장은 모니터에서 알림을 확인했다.
“사, 사장님…… 설마 지금 그거……?”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이 맞다는 듯, 이미연 사장은 권명한 전무의 예상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국 유저들이 플레이 하는 제2 대륙의 초보자 마을은 현 시간부로 파괴되었네요.”
“그, 그런…….”
다 죽어 가는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권명한 전무. 마치 영혼이 가출한 듯한 그를 보며 이미연 사장은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관련 업데이트 사항은 이미 전무님 컴퓨터에도 전달되었을 테니까, 확인하고 그에 따른 조치 사항에 대해서 보고해 주세요. 최대한 빨리요.”
그녀의 말에 권명한 전무의 눈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환상이 아른거렸다. 저 밑에서 좌절하며 분노의 괴성을 지르고 있을 개발부 직원들의 모습이 말이다.
* * *
“뀨우우우우!”
통통-
통통-
슬라임들이 통통 튀어 다니며 초보자 마을 입구로 다가온다.
“씨발, 죽어!”
“으아아아아! 제발 그만 좀 와, 이것들아!”
“파이어 랜스! 파이어 볼!”
귀여운 슬라임들, 아니 X 같은 슬라임들.
하도 슬라임만 잡아 대다 보니 이제 초록색만 봐도 경기를 보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집단 PTSD에 걸린 것처럼 발광하는 수준. 하지만 이들의 노력 덕분에 어느새 타이머는 거의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남은 시간: 12분 24초.]12분. 그 지옥 같던 3일이라는 제한 시간이 12분으로 줄어든 상황.
그렇기에 또 다른 무리의 슬라임을 처치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승리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드디어 끝났다!”
“인간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라, 이 망할 젤리 새끼들아아아!”
“보상! 보상! 메인 시나리오오오오!”
이곳저곳에서 인간의 승리라며 샴페인을 터트리는 동안 베른은 마을 입구에 주저앉아 헐떡거리며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오오…… 진짜 죽겠다.”
마을 입구에 상주하며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방어에만 집중한 베른. 그런 그에게 경비병 NPC 하나가 다가오더니 물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나도 죽지 않고 이 마을을 지킬 수 있었네.”
죽을 위기를 여러 번 구해 주었기 때문일까? 다가와 고마움을 표하는 경비병을 바라보며 베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뭐.”
“아니네. 자네를 보면 예전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야기해 주셨던 그 용감하고 정의로운 투사가 생각나더군. 그대가 한 것처럼 위기에 빠진 사람을 언제나 그렇듯 돕고 다녔다더군.”
“아…… 네…….”
낯 뜨거워지는 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베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있을 때, 경비병은 조금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나중에 혹시 시간이 된다면 나를 찾아올 수 있겠나? 그 투사에 관한 기록이 우리 할아버지의 일기장에 남아 있다네.”
뜬금없는 물음. 하지만 그 물음에 베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반투명한 창 때문이었다.
[히든 클래스, 수호자(Savior) 전직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퀘스트, ‘오래된 이야기 속의 영웅’을 수락하시겠습니까?]히든 클래스.
말로만 들어 왔던 게임 속의 숨겨진 직업으로 전직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베른은 흥분으로 떨리는 가슴을 도무지 진정시킬 수 없었다.
‘와…… 진짜 메인 시나리오 미쳤다!’
우연 속에서 얻게 된 천금 같은 기회. 그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베른은 애써 차분하게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도록 하죠. 저도 그 이야기의 투사가 궁금해지네요.”
베른의 대답에 경비병은 만족한 듯 웃었다. 그리고 또다시 몰려오는 슬라임 무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허허허…… 자네를 기다리고 있겠네. 일단 이 모든 것부터 끝내도록 하세.”
하지만 베른과 경비병은 몰랐다. 퀘스트 종료까지 남은 시간 10분.
이 남은 10분 동안 슬라임들 역시 총력을 다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남은 시간이 10분이 되자마자 갑자기 떠오르는 메시지.
그리고 그와 함께 초보자 마을 입구에는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대한 초록빛의 외형이 큰 굉음과 함께 나타났다.
쿠우웅.
[보스 몬스터, 킹 슬라임이 출현했습니다.] [남은 시간: 9분 58초.]“뀨아아아아아앙!”
동글동글한 외형.
순수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
귀엽다고 느껴지는 울음소리.
하지만 10층짜리 건물은 될 법한 그 거대하고 육중한 크기는, 감히 귀엽다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슬라임이 초보자 마을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미친! 저게 뭐야!”
“아, 이 망할 게임사 새끼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10분 남았는데 왜 지랄이야!”
원래 모든 건 끝이 날 때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하는 법. 그 인생의 당연한 진리를 깨우쳐 주려는 듯 퀘스트 막바지에 등장한 킹 슬라임은 화려하게 자신을 맞아 주는 유저들 사이로 당당하게 튀어 가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일반적인 슬라임과는 차원이 다른 굉음과 진동을 만들어 내는 킹 슬라임의 움직임. 그 육중한 몸에 깔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유저들은 회색빛으로 사라져 갔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공격해! 뭐가 됐든 간에 마법이든 화살이든 일단 날리란 말이야!”
“이이익…… 매직 볼트!”
“파이어 랜스!”
“아이스 볼!”
이곳저곳에서 날아가는 마법들. 하지만 이게 최선이냐는 듯한 얼굴로 킹 슬라임은 한 명 한 명 자신을 공격한 인간들을 무참히 깔아뭉개기 시작했다.
“뀨우우우웅!”
일방적인 학살. 하지만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누군가가 외쳤다.
“5분! 5분만 버텨! 저 자식 일단 공격만 하면 공격한 놈 잡아 죽이느라 정신 팔려서 아무것도 못 해! 마을 광장에만 못 가게 붙잡아 두면 우리가 이긴다고!”
킹 슬라임의 특성을 파악해 낸 이가 찾아낸 공략법. 그것은 단순무식한 인해전술이었다.
마을 광장의 수호석보다 자신을 공격한 인간들이 최우선 순위인지, 어그로가 자꾸 자신에게 공격을 날린 인간들에게 튀는 것을 보며 유저들은 희망을 품었다.
“씨발! 죽는 거 걱정하지 말고 일단 공격해!”
“대미지 안 박혀도 좋으니까 원거리 공격 가능한 사람들은 모두 와서 공격해요!”
“으아아아아! 인해전수우우우울!”
“뀨우우우우우우웅!”
이것은 정말 눈 뜨고 보기 처참한 광경이었다.
죽는 걸 알면서도 달려드는 부나방 같은 인간들이나, 다 죽여 버리겠다는 듯 포효하며 쾅쾅 튀어 다니며 마을을 박살 내는 킹 슬라임이나 말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푸닥거리하는 동안 타이머는 어느새 끝을 향해 다다르고 있었다.
[남은 시간: 10…… 9…… 8…… 7…… 6…… 5…….]“끝이다, 이 망할 젤리 새끼야아!”
5초를 남기고 누군가가 외친 고함. 마을 광장의 수호석과 한참 멀리에서 유저들을 죽이고 있는 킹 슬라임을 향해 승리감에 도취되어 외쳤다. 그리고 모두의 눈빛에 비슷한 승리감이 맴도는 그 순간. 갑자기 수많은 메시지가 모두의 눈앞을 메우기 시작했다.
[마을을 지키던 수호석이 파괴되었습니다.] [퀘스트, ‘슬라임의 분노’ 클리어에 실패하였습니다.] [초보자 마을이 영구적으로 파괴됩니다.]“……?”
“엥……?”
모두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마치 시간이라도 멈춘 듯 제자리에 서서 멍하니 메시지를 쳐다만 보았다. 그리고 일제히 돌아간 이들의 시선에는 똑같은 광경이 보였다.
짙은 후드를 뒤집어쓴 핏빛 살인마.
녹슨 철검을 들고 있는 그의 발아래에는 산산이 부서진 마을의 수호석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는 황당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에게 말했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