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드워프 vs 엘프 (3)
저번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몸통 박치기부터 갈기던 탄.
하지만 이번에는 재영이 접속을 종료한 동안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인지, 뚱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이 이상 흥분한 채 발광하지는 않았다.
“뭐…… 이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일단 마계에 가져다 놓고 혹시라도 복구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봐야지…….”
그야말로 상극에 달하는 미카엘과 영원의 종막의 힘에 잔뜩 절여져 힘을 잃어버린 데스브링어. 엘이 마음먹고 제대로 박살을 내 놓은 바람에 산산조각 난 그 검이 과연 예전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탄이 침울한 얼굴로 조각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허공에서 맞추어 보는 모습이 너무나도 처량했기에 재영은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건 그렇고…… 탄, 혹시 드래곤 하트에 대해서 뭐 아는 거 있어?”
“드래곤 하트? 갑자기 도마뱀들 심장은 왜?”
“그건 갑자기 왜 찾으시는 거죠?”
재영의 물음에 탄과 엘은 의아해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 그게, 세계수가 필요하다고 가능하면 구해다 달라 그랬거든. 혹시 천계나 마계에서 보관하는 게 있으면 하나 얻으려고 해서…….”
60만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개연성이 방금 막 정산되어 들어온 상황. 그렇기에 재영은 진귀한 물건은 뭐든 4차원 주머니라도 달린 것처럼 손쉽게 자신들의 창고에서 꺼내 오는 이 둘에게 개연성을 대가로 얻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물었다.
하지만 이 둘의 반응은 생각보다 부정적이었다.
“헹, 주인이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네. 그 꼬장꼬장한 도마뱀 족속들 심장이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줄 알아?”
“음…… 그건 어려울 것 같네요. 저희로서도 구하기 힘든 물건이에요.”
드래곤(Dragon).
아르카디아 세계관 최강자이자 균형의 조율자라고 불리는 이들. 탄과 엘은 왜 드래곤의 심장이 희소성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드래곤의 심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력을 생성해 내는 기관이라고. 마력의 생성 효율도 엄청나지만, 그것보다 더 말도 안 되는 건 마력을 저장하고 축적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지 않다는 점이지.”
인간이나 엘프 혹은 마력을 사용하는 여러 종족은 심장에 축적할 수 있는 마력의 한계가 존재하는 것과 다르게, 태생부터 그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마력을 아득히도 오랜 세월 동안 쌓아 가는 사기적인 종족. 그렇기에 나이만 먹어도 그 힘이 강대해진다는 속설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맞아요. 게다가 드래곤들은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면 죽음과 동시에 심장에 축적된 마나를 자연으로 다시 환원하죠.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드래곤의 심장은 다시 자연으로 흩어져 버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어요.”
만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아 온 마력을 모조리 자연으로 환원하며 공수래공수거의 진리를 실천하는 드래곤들. 그런 특성 탓에 탄과 엘 역시 그런 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뭐야, 그러면 드래곤 하트를 얻으려면…….”
“맞아. 그 도마뱀의 소굴에 직접 쳐들어가 모가지를 따고 심장을 뜯어내야지.”
“…….”
직접 드래곤을 죽이고 심장을 구해야만 하는 퀘스트. 그렇기에 재영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제아무리 너라고 해도 용종을 잡으려면 강신으로 어지간한 놈을 불러와도 무리일걸?”
“맞아요. 제아무리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해츨링이라 하더라도, 최소 상급 천사가 전력을 다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가…….”
단신으로 하는 드래곤 사냥. 그건 제아무리 재영이라 하더라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탄과 엘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일단 가정으로 이야기한다면…… 혹시 고룡급을 잡는 건 가능한 일일까?”
“뭐……? 고룡……?”
저게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하는 눈초리로 재영을 쳐다보는 탄.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갑자기 안경을 쓰고 음침한 종이에 무언가를 휘갈기며 중얼거렸다.
“잠깐만, 일단 견적 좀 내 보고……. 고룡급이면 최소 8,000살은 처먹은 늙탱이 도마뱀인데, 내가 직접 강신으로 들어간다고 치고…… 거기에 신기도 하나 챙겨 와야 할 테니까, 다른 도마뱀이나 방해꾼이 없다는 가정하에 최소한의 전투 시간으로 이긴다고 한다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 복잡한 듯, 한참을 끙끙거리며 무언가를 휘갈기던 탄. 그리고 이내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인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가능은 할 것 같네. 최소 1억 2,311만 4,444의 개연성만 있다면 말이야.”
“뭐……?”
억 단위의 개연성을 요구하는 탄. 재영은 그의 말에 저게 지금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어 황당한 눈초리로 째려봤다. 그러자 그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했다.
“뭘 그런 눈으로 봐? 다른 것도 아니고, 드래곤을 죽인다는 게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에 얼마나 파급력을 거대하게 주는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그것도 고룡이나 되는 ‘로드’급을!”
전 세계의 인류를 수용하고도 남을 법한 거대한 규모의 아르카디아. 다시 말해 또 다른 하나의 지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가상의 세상에, 고작해 봐야 수십 마리 정도밖에 존재하지 않는 드래곤들. 그렇기에 탄의 말이 그렇게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맞아요. 제가 직접 나선다고 하더라도…… 최소 1억 5천만 이상의 개연성은 필요로 할 것 같은데요? 물론 드래곤을 죽이는 일에 천계의 저희가 가담할 리는 없겠지만…….”
그만큼 천계와 마계의 수장급들조차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아르카디아 최강의 존재. 이런 그들의 심장을 가져와 달라는 세계수의 부탁이 얼마나 정신 나간 퀘스트인지를 다시 한번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뭐…… 지금 당장 급한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고민하면 되겠지.”
정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나중에 유저들이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이 되었을 때 다수가 함께 힘을 합쳐 다구리를 치는 방법도 있으니, 재영은 조금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흩어진 대륙들이 합쳐진다고 해서 좋을 건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주인,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려고?”
드래곤 하트에 대한 고민은 일단 접어 두고 자리에서 일어난 재영. 그가 다시 이동하려고 하자 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어 왔다.
“일단 다시 슈림 근방의 마을로 돌아가려고.”
“슈림? 드워프의 영역? 거기는 갑자기 또 왜?”
얼마 전까지 머물렀던 곳에 다시 가겠다는 재영. 그 말에 탄은 의아해하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지만, 재영은 귀찮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만나기로 한 친구 녀석이 하나 있어서.”
재영의 대학교 동기이자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이인 재균. 재영이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끈질기게 게임 속에서 함께하기 위해 열과 성을 기울이던 그였다.
“헤헤. 재영아, 지금 혹시 어디서 플레이 중이야?”
“재영아, 혹시 바빠? 그때 깬다는 퀘스트는 다 깼어?”
“재영아! 나 이번에 레어 아이템 먹었는데 내가 쓰는 게 아니라서, 혹시 너 필요하면 줄게!”
“재영아…… 한 번만 같이 사냥하면 안 될까? 응? 제발…….”
정말 성가실 정도로 같이 한번 플레이 하기를 소망하는 재균.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인 덱스의 위명에 반해서인지 아니면 같이 플레이를 할 친구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귀찮을 정도로 끈질기게 물어 오는 재균에게 항복한 재영은 처음으로 그와 약속을 잡았다.
“아, 알겠어. 알겠으니까 제발 그만 좀 물어봐.”
“진짜? 정말로? 약속했다? 파투 내면 안 돼?”
아르카디아 안에서 만나 주겠다는 말에 격하게 기뻐하며 환호하던 재균. 도대체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재영은 그를 대사막 슈림의 인근 마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일단, 드워프 마을 아직 안 가 봤지? 거기까지 같이 가 줄 테니까 이제 그만 좀 보채.”
“응! 알겠어. 그런데…… 드워프 마을 가려고?”
“어.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게…… 나는 엘프들 보러 가려고 했었거든.”
“엘프들……?”
“응! 엘프들이 엄청 예쁘다고 들어서 꼭 한번 보러 가고 싶었거든.”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지 묘하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재균. 그런 그를 살짝 한심하게 바라본 재영은 진지한 눈빛으로 재균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말했다.
“미안하지만…… 아마 거기 가면 너는 한 발짝도 못 들어가고 내쫓길걸?”
“어? 왜……?”
아직 엘프와 드워프의 마을에 입장하기 위한 요건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재균은 헛된 희망을 품으며 엘프들의 마을에 당당하게 입성하는 상상을 했겠지만, 재영이 재균의 친구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그는 엘프들의 깐깐한 기준을 만족하기에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이건 내 말 들어. 넌 무조건 드워프야.”
“응……? 왜……?”
“그런 게 있어. 너무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슈림 인근 마을에서 만나.”
그렇게 재균을 슈림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재영. 그와 만나려고 이동할 채비를 하자 탄과 엘은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엥? 주인이 친구 같은 것도 있었어?”
“정말요? 다른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나요?”
“……무슨 내가 인간관계 파탄 난 사회 부적응자도 아니고. 당연히 친구도 있지.”
그 말에 탄은 정말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헤에…… 진짜 인간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주인 같은 인간하고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같은 종이 있다니.”
“……아니, 그게 왜 놀라운 건데.”
“주인, 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 지금까지 주인 때문에 엿 먹은 인간들만 해도, 진짜 농담이 아니라 산 하나는 손쉽게 만들 것 같은데?”
“…….”
“솔직히 나는 주인이 맨날 가면 쓰고 신분 숨기는 게 혹시라도 인간들한테 잡혀서 척살당할까 봐 맨날 그러는 줄 알았어.”
그 말에 재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벌인 짓들이 자신의 소행이라고 밝혀진다면 분노할 유저가 하나둘이 아니라는 것은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일단 출발하자.”
“아, 혹시 거기 가면 그때 그 아이를 다시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응? 누구?”
“그…… 불카누스의 의지를 잇는 아이 말이에요.”
“아, 중식이…… 아니, 나는야똥손 말하는 거야?”
“네. 지금은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엘의 호기심 어린 표정. 엘은 직접 발굴해 낸 아이의 성장이 어지간히 궁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근성과 노력의 대명사. 파곤 광산에서 노예로 일하면서도 게임을 접기는커녕 풀려날 그 날만을 생각하며 철광석을 캐던 중학생 소년 이중식.
깨달음의 영역이자 극악의 경지라고 불리는 5랭크를 넘어서서 채굴 스킬을 마스터에 가까운 2랭크까지 올리는 어마어마한 잠재성을 보여 주던 그의 성장은, 재영 역시 궁금했기에 어차피 한번 찾아가서 얼굴을 보려던 참이었다. 그렇기에 재영은 그런 엘의 부탁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가서 상황 보면서 한번 놀러 가자고. 나도 궁금하긴 하네.”
그렇게 재영은 엘프들의 마을을 떠나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푹푹 찌는 초고열의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대사막, 슈림을 향해서 말이다.
“끄아아아아! 살려 줘!”
“멈춰라! 못생긴 인간!”
“실프! 몰래 숨어드는 못생긴 인간들 추적해 줘!”
“으아아아아! 내 얼굴이 뭐가 어때서!”
엘프들의 마을의 경계선이자 입구라고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수십의 엘프 정찰대가 분주하게 정령들을 부리며 기준치에 미달하는 인간들을 검거해 내쫓는 혼란스러운 광경이 펼쳐졌지만 그 마을을 떠나는 재영의 발걸음은 그 누구보다도 여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