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캐러비안 (1)
캐러비안.
범죄자들의 도시이자 해적들이 들끓는 해역으로 향하는 교두보인 이곳은 유저들에게 아주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캐러비안은 진짜 자기가 밑바닥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가셈. 진짜 개막장임.
-여기 사기꾼 아니면 등쳐먹는 도둑놈밖에 없으니까 아무도 믿지 마셈.
-엌ㅋㅋㅋㅋ. 물품 배송 퀘스트 받아서 가져다줬는데 죽었음. 이게 게임이냐?
-?? 왜 죽었는데?
-서로 경쟁하던 조직 중 하나가 상대 조직원 모가지 담아서 나한테 퀘스트 줘서 대신 전함;;
-와……. ㄹㅇ? 진짜 미친 동네구나?
카르텔과 범죄 조직들의 전쟁으로 하루에만 수십 명이 길거리에서 살해되는 미쳐 버린 도시. 마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인간 중에서도 최악의 최악들만이 모여 있는 그곳에 도착한 재영을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것은 경고 메시지였다.
[범죄자들의 도시, 캐러비안에 진입하였습니다.] [이곳은 대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도시 안에 도사리고 있는 위협을 주의하세요.]다른 곳과 다르게 경비병과 같은 치안을 위한 NPC가 존재하지 않고 출신을 알 수 없는 도망자와 범죄자들만이 가득한 도시. 그 어떤 법과 규범도 없으며, 오직 힘과 생존만이 중요한 곳.
이곳은 그야말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세계였다.
“으음……. 냄새가 지독한 곳이네.”
“당연하지. 이 지역에 사는 인간들은 전부 악질들이고 여기는 그런 놈들만 모여 사는 곳이라고. 내가 알기로 여기서 죽은 영혼은 죄다 우리 쪽으로 넘어올걸?”
범죄자들이 가득한 도시인 것 때문인지 캐러비안은 기본적인 도시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에 오물이 가득하고, 시궁창 냄새 또한 가득한 슬럼가의 형태를 띠고 있는 도시. 재영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어느 한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발 앞에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툭.
“……?”
돌이 날아온 방향을 무심코 돌아본 재영. 고개를 돌린 재영의 눈에 담벼락에 머리를 빼꼼 내밀고는 다급하게 두 손을 흔들고 있는 한 아이가 들어왔다.
“아저씨! 그렇게 다니시면 위험해요! 어서 이리로 와서 숨어요!”
보기만 해도 10살이 조금 넘어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 그는 엄청 겁에 질린 얼굴로 연신 주위를 살피며 얼른 이쪽으로 오라고 재영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잠깐 고민하던 재영. 하지만 그는 바로 앞 골목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황급히 그 아이가 손짓하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 이거 잘만 하면 싹 다 정리할 수 있겠는데?”
“어이, 이번 약탈에서 전리품 얻으면 나한테 빌린 돈부터 갚는 거 잊지 말라고.”
“아이……. 걱정하지 말라고, 누가 떼어먹기라도 하냐?”
재영이 몸을 숨기자마자 등장한 딱 봐도 험상궂게 생긴 양아치 무리. 저들이 그 골목을 지나가기까지 긴장한 눈으로 숨죽이고 있던 아이는 그들이 지나가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히 안 걸렸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재영. 그의 물음에 아이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아저씨!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는 있어요? 까딱하면 큰일 날 뻔했잖아요!”
그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재영. 그런 그의 반응에 아이는 한숨을 푹 내쉬고 방금 있었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서 범죄 조직 간의 전쟁이 벌어져 치열하게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데, 해당 조직원이 아닌 사람이 각 구역에 얼쩡거렸다가는 다른 조직에서 보낸 첩자로 오인당하고 바로 척살된다…… 이거야?”
“그렇다고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걸렸으면 저랑 여기 골목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상대 끄나풀로 간주돼서 무슨 짓을 당할지 몰랐다고요! 아니,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라요? 혹시 외지인이에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것같이 설명하면서도 답답해하는 10살의 어린 소년 한스. 그의 물음에 재영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내가 방금 이 도시에 도착한 거라서 잘 몰랐네. 혹시 피해라도 준 거면 미안.”
“에에에……? 진짜 밖에서 온 사람이에요?”
밖에서 왔다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이것저것 물어 오는 한스. 그 물음들에 하나하나 답해 주자 한스는 호기심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아까의 위험천만했던 상황은 완전히 잊은 듯 헤실헤실 웃으며 친근하게 물었다.
“우와! 신기하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데! 정말 멋있네요.”
꿈이 가득한 어린 나이의 한스. 하지만 시궁창 냄새와 온갖 악취가 가득한 캐러비안을 떠나 본 적 없는 그였기에 재영이 들려주는 바깥세상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환상 속에 존재하는 동화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곳에 온 거예요? 평상시에도 위험하지만 지금 시기는 특히나 위험한 상황인데?”
현재 캐러비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 조직 간의 세력 다툼. 특히 그중에서도 거대한 세력인 ‘붉은 수염단’과 ‘검은 해적단’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는 시기였기에, 외부인의 등장을 달가워할 사람은 캐러비안 내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 해역을 넘어가려고 왔어.”
“네……?”
범죄자들의 도시이자 해적들의 영역, 캐러비안.
그 어떤 상선도,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한 그 어떤 함대도 어느 하나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했다는 속설이 있는 극악의 무법 지대. 하지만 이런 곳을 골라서 재영이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Mission. 5]드래곤의 심장을 가지고 와 달라는 세계수의 부탁. 하지만 아르카디아의 수호자이자 강대한 드래곤들의 지도자, 골드리안을 노리는 것은 너무나도 버겁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다른 대륙 어딘가에서도 드래곤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세계수는 심장의 주인이 어느 대륙 출신인지를 따지지 않으니 한번 찾으러 가 볼까요?
-아르카디아의 다른 대륙을 발견하기.
엘프와 드워프 사이의 평화협정을 마무리하고 파이 상단이 두 종족의 교역로를 확보하게 하자 최종적으로 완료된 네 번째 미션. 하지만 그것이 끝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 갱신된 미션은 재영을 캐러비안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다른 대륙? 음…… 현실적으로 주인이 가는 건 불가능할걸?”
“글쎄요……. 잠시만요, 이건 저도 한번 확인을 해 봐야겠네요.”
아주 오랜 과거에 벌어진 성마대전. 그로 인해서 잠들어 버린 세계수와 갈라져 뿔뿔이 흩어지게 된 대륙들. 오랜 시간이 흘러 그러했던 역사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기에 탄과 엘 역시 재영의 물음에 곤란한 얼굴로 답을 내주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탄이 건네준 실마리.
“주인, 확실한 건 아닌데, 악마 한 놈이 캐러비안? 거기에 가 보라는데?”
“캐러비안……? 거기 5대 금역 아니야?”
“나야 모르지. 그 악마 놈도 한 몇십 년도 더 전에 소환됐을 때 들은 이야기라고 잘 모르는 눈치던데. 직접 가서 확인해 보든가.”
확실한 정보는 아니라며 선을 긋고 손을 털어 버리는 탄. 하지만 인터넷과 아르팬디아를 이미 열심히 뒤져 본 재영은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전혀 알려진 바도, 다른 대륙으로의 여정을 시도한 이도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따로 선택지가 없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캐러비안에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슈림과 아밀을 보면 캐러비안에도 뭔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유저들이 선정한 그리고 (주)아르카디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5개의 금지 구역. 하지만 그 두 곳에서 드워프와 엘프의 숨겨진 도시가 발견되면서 재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 5대 금역이라는 곳들은 유저가 괜히 얼쩡거려 아직 건드려서는 안 되는 트리거를 함부로 자극하지 못하도록 개발자들이 일부러 극악의 난이도로 설정한 곳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재영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해, 해역을 넘어간다고요?”
놀란 얼굴로 눈을 치켜뜨며 되묻는 한스. 그는 마치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혼란스러움이 가득 서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도대체 그 위험천만한 곳을 왜 넘어가려는 거예요? 애초에 들끓는 해적들을 피해서 무사히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지만, 끝없는 바다에 들어서도 심해 괴수들의 공격 때문에 바로 죽음뿐이라고요!”
배를 이용한 해상무역이나 이동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육상 이동이 활성화되어 있는 아르카디아. 그렇기에 한스에게 있어 그 위험천만한 해역을 넘어가려는 재영의 행동은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뭐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 줄 수는 없고…… 아무튼 가능은 한 일이야?”
그 말에 진지하게 무언가를 고민하며 중얼거리는 한스. 하지만 이내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 해역을 넘어 끝없는 바다에 들어섰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한 명 계시긴 한데, 그 사람은 자신과 동급의 존재가 아니면 애초에 말을 섞지도 않는 분이거든요.”
해역을 넘어갔다 생환한 이가 있다는 한스의 말. 그 말에 재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뭐? 그게 누군데?”
“모르세요? 해적왕 카를로스! 검은 해적단의 창단자이자 캐러비안의 해역을 완전히 장악했던 전설적인 인물이라고요. 그분은 캐러비안을 넘어서 전 대륙에 엄청난 악명을 떨친 범죄자인데…….”
전혀 모르는 눈치의 재영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한스. 하지만 재영은 그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 있었다.
‘해적왕이라…….’
딱 들어도 연계 퀘스트로 이어진다는 냄새가 잔뜩 풍기는 말. 한스의 말에 대충 어떻게 해야 대륙을 넘어갈 수 있을지 감을 잡은 재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 카를로스라고 하는 사람,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어?”
“예……? 만난다고요?”
그 말에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한스. 그는 재영을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방금 말해 줬잖아요. 카를로스는 일단 몇 년 전에 벌어진 반란을 제압하지 못하고 연합한 조직들에게 패배해 지하 감옥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다니까요? 지금은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상태예요.”
캐러비안의 명실상부한 지배자로 강대한 세력을 이루었던 해적왕 카를로스. 하지만 여느 해적들이 그렇듯이 강력한 힘을 기반으로 한 억압과 탄압으로 다른 세력을 지배했던 그였기에, 결국 그에 대한 반발로 인한 쿠데타를 진압하지 못해 포로 신세가 되어 감금되어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그가 갇혀 있는 감옥에 간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자기와 동급이 되는 사람이 아니면 만나 주지 않는다고요! 평소에도 다른 해적단 선장들을 급이 안 맞으면 인간 취급도 안 해서 얼마나 악명이 자자했는데요? 지금 아저씨가 카를로스를 만난다고 해도 아마 벌레 취급이나 안 당하면 다행일 거예요.”
한때 캐러비안을 장악하고 해역 전체와 인근 지역을 드나드는 상선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검은 해적단의 선장, 카를로스. 지금까지 그가 쌓아 온 거대한 악명과 맞먹을 수 있는 범죄자는 이곳 캐러비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었기에, 그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범죄자들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딱 봐도 아저씨는 사람 하나 못 죽여 봤을 것 같은 순진한 사람인 듯한데, 불가능한 일에 너무 힘쓰지 말고 지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뜨시는 게 좋을…….”
[칭호, ‘초보자 살인마’를 장착하였습니다.]하지만 재영은 한스의 잔소리에 아무 말 하지 않고 지금껏 껴 보지 않은 칭호를 처음으로 장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쉬지 않고 주절거리던 한스의 입이 처음으로 닫혔다.
“어, 어떻게…….”
공포에 질린 듯한 눈빛으로 눈앞에 서 있는 재영을 바라보는 한스. 방금 전까지는 순박해 보일 정도로 친밀해 보였던 존재가, 지금은 전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코를 찌르는 것 같은 피의 향기.
수없이 많은 이를 손에 피를 묻히며 죽여 본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그러한 살육을 즐기는, 미치광이 살인마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광기.
캐러비안에서도 손꼽히는 악명 높은 범죄자(Crime Master)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위압감을 재영에게서 느끼며 한스는 신음했다. 그리고 한스가 미칠 듯한 공포를 느끼는 그 순간, 공포감을 주는 그 존재는 기대감 섞인 눈빛으로 한스를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어때? 이 정도면 대충 만날 깜냥은 되지 않냐?”
자그마치 3만이 넘는 초보자들을 학살한 재영. 그가 지금껏 쌓아 온 범죄 이력은, 캐러비안의 어떤 극악한 범죄자도 감히 명함을 내밀 수 없는 거대하고도 악질적인 위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