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캐러비안 (2)
몰락한 해적왕, 카를로스.
한때 캐러비안을 지배하던 절대자이자 대륙을 공포에 물들였던 희대의 범죄자였던 그. 강력한 해적 함대와 압도적인 권력 그리고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던 카를로스의 몰락은, 다름 아닌 그의 오른팔이었던 스패로우의 배신 때문이었다.
“크으윽……. 스패로우! 어떻게…… 어떻게 네놈이 나에게 이럴 수 있냐!”
“언제까지 그 권좌에 앉아서 절대자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선장님, 이제 이 캐러비안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때가 왔습니다.”
십 년도 넘는 시간 동안 해적왕으로서 캐러비안에서 군림했던 카를로스. 언제나 그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스패로우는 어느 날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검은 해적단의 수장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죠. 단, 캐러비안의 지배권 절반을 우리한테 넘겨주는 것이 조건이에요.”
검은 해적단과 비교해서 규모는 작지만 엄청나게 매혹적인 미모와 강력한 무력으로 캐러비안의 수많은 범죄자를 유혹한 수장, 에이블이 있는 붉은 수염단.
어느 날 한밤중에 찾아와 속삭인 그녀의 달콤한 이야기에 넘어간 스패로우와 그로 인해 시작된 기습적인 쿠데타. 카를로스는 격렬하게 항전했지만, 압도적인 수적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크흐흐흐……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스패로우. 정녕 같은 하늘 아래에서 이 캐러비안을 두 조직이 평화롭게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디인지 모를 지하 감옥으로 끌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압도적인 지배자의 패기를 잃지 않은 카를로스. 그는 섬뜩할 정도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저놈들 때문에 비참하게 길바닥을 기며 죽어 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긴 예언은 정확히 적중했다.
“아무튼…… 그때 그 반란 이후로 캐러비안의 세력은 두 개로 양분되었어요. 검은 해적단에게 충성을 맹세한 계파들이랑 붉은 수염단을 따르는 계파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충돌하며 길거리를 피로 물들이고 있죠.”
압도적인 힘과 절대적인 카리스마로 캐러비안을 지배했던 카를로스. 그가 사라지자, 비어 있는 캐러비안의 권좌를 차지하기 위한 승냥이 떼가 숨죽이고 있던 고개를 내밀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기 시작하며 엄청난 혼란이 이곳에 찾아왔다.
“에휴……. 진짜 예전이 좋았어요. 다들 범죄자이고 나쁜 짓을 해서 먹고사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의리도 있었고 범죄자들만의 규범도 있어서 나름대로 평화로웠는데…….”
이제는 언제 뒤통수에 칼이 날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험악한 분위기. 배신, 협잡, 보복, 밀고, 선동…… 온갖 비열하고 조잡한 수가 난무하는 더러운 시궁창이 되어 버린 캐러비안에 한스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지 그리움에 젖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주인, 저 꼬마 10살이라고 하지 않았어?”
“아마 그랬을걸?”
“하, 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핏덩이가 무슨 저런 꼰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세상 다 산 노인이 과거의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며 한탄하는 것 같은 모습. 그것을 보고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을 살아온 탄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재영은 그런 탄의 말에 아무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한스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나 정도면 카를로스를 만나는 데 큰 문제 없겠지?”
[초보자 살인마, 덱스]과거 슬라임들의 서식지에서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한 파릇파릇한 초보자들을 황천길로 보내며 얻은 타이틀. 그의 손에 죽은, 그리고 그로 인해 비롯된 일들로 죽어 나간 초보자만 해도 자그마치 3만 명이나 되었기에, 재영의 물음에 그는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물론이죠. 그 정도면 에이블 님…… 아니, 카를로스 님에 견주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수준인걸요.”
범죄자들의 롤 모델이자 우상 그 자체인 해적왕 카를로스.
십수 년 동안 캐러비안을 지배하며 쌓아 온 그의 악업과 맞먹는, 아니 어쩌면 그것을 넘어설지도 모를 거대하고 악랄한 악업이 느껴지는 재영. 그를 보는 한스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경외감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그럼 그 부분은 해결됐고…… 다른 문제는 그 카를로스라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네?”
“그렇죠. 그리고 만약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와 이야기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모르긴 몰라도 아마 검은 해적단이나 붉은 수염단의 최측근 정예들이 철통같이 24시간 감시하며 지키고 있을 테니까요.”
지금 현재 치열하게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두 세력 모두 구시대 황금기의 주역인 카를로스가 풀려나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았기에 그를 감시하는 것에 있어서는 이전과 변함없이 합심해서 철통같은 경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불가능하다는 말만을 하며 연신 만류하는 한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에도 재영의 얼굴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주인, 아까부터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그냥 다 엎어 버리면 되는 거 아냐?”
“심판받아 마땅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타락한 도시군요. 하루빨리 엄중한 정의를 이 땅에 선사할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그런 재영의 뒤에서 연신 속삭이고 있는 탄과 엘. 이 두 천사와 악마의 말에 재영은 살짝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너희…… 또 일 크게 만들어서 개연성 어떻게든 더 뜯어내 보려고 그러는 거지?”
움찔.
그 말에 순간적으로 멈칫하는 탄과 엘. 마치 속내를 들켰다는 듯 표정이 순간적으로 변했지만, 이내 섭섭하다는 듯이 뻔뻔하게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 너무하네!”
“아무리 개연성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길로 인도하는 건 수호천사로서의 사명이 아니죠. 전혀 그런 의도가 담겨 있지 않아요.”
매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상상한 것 이상의 스케일로 판을 뒤집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유도하는 탄과 엘. 하지만 재영은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뭐가 되었든 윗대가리들만 어떻게 처리하면…… 밑의 녀석들은 쓸 만할 테니까.’
배신을 당하고 몰락해 버린 전대 해적왕 카를로스.
캐러비안의 전 지배자이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그를 해방하고 다시 이 범죄자들의 도시의 권좌를 차지하게 도와준다면, 이번 일만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꽤 쓸 만하게 부려 먹을 일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재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음식 몇 개가 상했다고 굳이 밥상 전체를 뒤엎어 버릴 필요는 없겠지. 나머지만 해도 꽤 괜찮은 진수성찬일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재영. 그를 보며 한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재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강신.”
파앗.
그 말에 눈앞을 가득 메운 거대한 창. 그 안에 올라온, 가용 가능한 천계와 마계에 속한 영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그는 이내 가장 적합한 인물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림자 암살단장, 암영(暗影)]“바로 이거지.”
전설 속에만 존재하는, 신분도, 소속도,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 속의 암살단.
그들이 목표로 정한 이에게는 절대적인 죽음이 선사된다는 악독한 비밀결사대의 수장이자, 과거 고대 제국의 황제를 그를 지키는 친위대와 근위부대 전체를 물리치고 단신으로 암살했다는 전설적인 존재가 다시금 아르카디아에 소환되었다. 재영의 몸을 빌려서.
[마계의 존재가 플레이어의 몸에 깃듭니다.] [일시적으로 깃든 존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파지지직.
“이, 이게 무슨……?”
갑자기 몸 주위에 휘몰아치는 미증유의 거대한 힘. 그 불길한 기운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치던 한스는, 전혀 다른 기세로 변해 버린 눈앞의 존재를 보며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붉게 변한 눈. 그리고 칠흑 같은 검은 눈동자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는 이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신기한 스킬이네. 그림자를 통해서 숨고 이동할 수 있다니.”
마치 무언가를 실험하는 듯 그림자 이곳저곳을 통해 이동하는 재영. 한스는 어느새 그의 뒤에 드리웠던 그림자를 통해 튀어나오는 재영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흐, 흐아앙! 살려 주세요!”
만약 살의가 있었다면 순식간에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하지만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던 재영이기에 그저 황당한 눈빛으로 한스를 쳐다보고는 말했다.
“……뭐라는 거야?”
“자,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까불게요! 아저씨라고 부른 것도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취할 것만 같은 진득한 피와 죽음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맡은 한스. 그는 미칠 것 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바닥에 박으며 용서를 구했다.
[패시브 스킬, 끝없는 죽음의 공포가 활성화됩니다.] [패시브 스킬, 그림자 속의 광기가 활성화됩니다.]그림자 암살단의 수장, 암영이 보유하고 있던 스킬의 영향 때문인지 아직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공포감과 위압감을 풍기는 재영. 그렇기에 그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고는 사라졌다.
“뭐…… 아무튼 고마웠어. 나중에 일 잘 풀리면 한번 놀러 올 테니까, 몸조심하고.”
그렇게 한참 동안 고개를 박고 살려 달라며 애걸하던 한스. 눈물범벅인 얼굴을 들어 슬며시 앞을 바라본 그가 발견한 것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금화 몇 개뿐이었다.
* * *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 아르카디아.
수십억의 인구가 즐기는 이 거대한 규모의 게임이 지탱되는 것은 다름아닌 완전무결에 가까운 인공지능 시스템, 엘리스(Alice)의 관제 덕분이었다.
아르카디아 대륙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관조하고, 분석하며, 유저들의 아주 작은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만들어 내는 파급력과 예상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들을 내놓는 엄청난 연산 능력.
이것을 통해 아르카디아는 그 어떤 게임도 흉내 내지 못할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구현해 내는 데에 성공했다.
[캐러비안. 몰락한 해적왕 카를로스. 특이 사항 감지.] [관련 대상. 플레이어, 덱스. 우선 분석 등급 1급.]그리고 그런 그녀가 대륙 전체의 변화를 촉발해 낼 새로운 가능성을 포착했다.
[해적왕 카를로스에 부여된 설정과 플레이어와의 연관성 심층 분석…….]해적왕 카를로스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그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가능성들. 덱스라는 유저와의 만남으로 쓰이게 될, 아르카디아에 끼치게 될 영향력을 분석하던 엘리스는 오래지 않아 그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관련 퀘스트, [범죄자들의 도시 캐러비안], [비열한 뒷골목의 음모], [과거의 영광 카를로스의 시대], [몰락한 해적왕], [피어오르는 자유의 열망], [억압받는 침묵한 이들의 희망]…….]본디 카를로스를 만나기 위해 선행되었어야 할, 무수히 많은 퀘스트와 그에 따라 파생되는 전개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선택지를 무시한 채 핵심적인 목표물을 향해 달려 나가는 덱스의 플레이를 보고, 엘리스는 아르카디아의 거대한 서사가 또다시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했다.
[메인 시나리오, Act. 19 피어오르는 혁명의 불꽃, Act. 20 대항해시대, Act. 25 판게아…….]대륙 전체를 뜨겁게 달굴 거대한 메인 시나리오를 모조리 무시한 채 몰락한 해적왕 카를로스를 만나러 가는 덱스의 거침없는 발걸음에, 엘리스는 연산회로를 열렬히 가동하며 결론을 내렸다.
[메인 시나리오 재설정…….]그의 행보에 맞추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할 서사.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높은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에 엘리스는 (주)아르카디아의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알림을 내보냈다.
[메인 시나리오가 생성되었습니다.] [Act. 3 신대륙(New Contin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