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컴퓨터 공학부? 가상현실 공학부!
“반가워요, 신입생 여러분!”
“동아리 회원 새로 모집합니다! 혹시 관심 있는 사람은 종이 가져가세요!”
“신입생 여러분? 여기로 다들 모여 주세요!”
서민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재영은 이곳저곳에서 모여든 수많은 인파를 신기한 눈으로 둘러보면서 캠퍼스를 활보하고 있었다. 동아리를 광고하러 오는 사람들부터 오리엔테이션을 주관하는 학생회 임원들 그리고 이제 막 이 학교에 첫발을 들인 파릇파릇한 신입생들까지.
“흐음……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네?”
전국 대학 순위 81위를 자랑하는 서민대학교.
지방에 소재한 이름 모를 수많은 대학교까지 고려한다면 중간 정도의 순위였지만, 그렇게 자부심 있게 말할 정도로 좋은 학교는 절대 아니었기에 아마 재영도 서울에 있지만 않았다면 입학은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휴학생과 자퇴생도 많기에 우중충한 분위기를 상상했던 재영. 그는 그래도 파릇파릇한 청춘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대학교는 대학교라는 생각을 했다.
“저기…… 혹시 신입생이세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재영. 재영의 뒤에는 신입생처럼 보이는 한 남학생이 서 있었다. 안경을 끼고, 통통한 체형에 대충 입은 듯한 옷차림. 선입견이지만 보기만 해도 컴퓨터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외형.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우물쭈물 물어보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재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신입생이에요.”
“아…… 앗! 호, 혹시 지금 저희 어디로 모여야 하는지 아세요? 제가 지방에서 올라오느라 조금 늦게 와서요.”
“아, 네. 이제 슬슬 모이는 것 같은데 저 따라오시면 될 것 같아요.”
늦었다고 생각했는지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영을 졸졸 따라가기 시작했다. 재영은 그런 그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컴퓨터 공학과예요? 저도 거기 과인데?”
“어…… 저, 정말요? 그럼 저희 동기네요.”
“그러게요. 어차피 동기인데 서로 말 놓죠.”
“그…… 그럴까요?”
“응.”
“그…… 그러자.”
임재균. 살짝 둔해 보이고 센스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영은 짧은 시간 동안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예상한 대로 재균 역시 엄청난 게임광이었기 때문이다.
“그 아르카디아라고, 이번에 나온 가상현실 게임 있잖아. 거기에서 이번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거든? 슬라임들이라는 몬스터가 있는데, 그게 갑자기 엄청나게 강해져서 초보자 마을 자체를 부숴 버렸어.”
“그래?”
“정말로! 거기에 게임사에서 어떻게 대응했는지 알아? 정말로 초보자 마을을 완전히 게임상에서 없애 버렸다고. 정말 대단하지 않아? 게임 내에서 이루어지는 퀘스트 하나가 전체에 그 여파를 미칠 수 있다고. 이건 엄청난 혁신이야!”
흥분한 재균의 목소리가 컸는지 강의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둘에게로 몰리고 있을 그때, 강의실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 누구지?”
보통 학과 학생회나 선배들을 통해서 진행되는 오리엔테이션. 하지만 강의실 앞 강단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나이 많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신입생 여러분, 모두 반갑습니다. 컴퓨터 공학과의 김태훈 교수입니다.”
컴퓨터 공학과의 정교수이자 책임 교수. 그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직접 나온 사실에 자리에 앉아 있는 신입생들은 물론 뒤에 서 있던 학생회 임원들도 모르고 있던 상황인지 당황한 눈치로 그를 쳐다보며 서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단상에 서서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신입생 여러분을 환영하는 자리에 제가 괜히 끼어든 것 같아 미안하지만, 신입생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이미 컴퓨터 공학과에서 열심히 학업에 열중하는 선배들에게도 이야기할 내용이 있어서 잠깐 들렀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집중할 때, 김태훈 교수는 모두에게 폭탄과도 같은 발표를 시작했다.
“여러분도 최근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에 대해 미디어에서 많이들 접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그 때문에 컴퓨터 공학계에 대변혁이 이루어지고 있죠. 그리고 수많은 논의 끝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컴퓨터 공학과의 커리큘럼으로는 현재 이루어지는 변화의 바람에 발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가상현실.
김태훈 교수의 말대로 가상현실 기술의 출현은 관련 학계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최신 기술이라고 자부하는 수많은 지식은 한낱 낡아 빠진 퇴물이 되어 버렸고, 도무지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없는 수없이 많은 기술이 적용되어 활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계속된 학교 이사회와 교육부 관계자의 깊은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올해부터 ‘컴퓨터 공학부’는 ‘가상현실 공학부’로 학과명을 변경하기로 말입니다. 또한, 학과 커리큘럼 역시 전면적으로 손질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지금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 학기부터는 아마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에…….”
그의 말에 강의실 안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너희가 들어올 학부가 완전히 뒤바뀔 거란 사실을 통보하니 동요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뒤에서 서로 속삭이고 있는 학생회 임원들의 모습만 봐도 이게 얼마나 급하게 결정된 사안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변화가 여러분에게 혼란스러운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업계에서 불고 있는 이 혁명과도 같은 대변혁에 우리가 적응하지 않는다면 아마 졸업 이후 여러분 앞에 있는 현실은 도태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르카디아.
김태훈 교수는 이 게임을 접하고 충격을 넘어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원시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의 걸음마 단계의 허울뿐인 가상현실이 아니었다. 인간의 오감을 완벽하게 구현한, 완전무결한 기술성을 자랑하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러한 기술이 적용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에 그 자신이 알고 있는 학계 지식이 얼마나 얄팍하고 비천한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강력하게 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이사회 전체에게 요구했다.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에 발맞추어 변화할 기회를 달라고. 그렇지 않을 거면 차라리 학과 전체를 없애 버리라고 말이다. 어차피 지금 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로 밖에 나가 봤자, 어디에서 전공 내용을 써먹을 수도 없는 밥벌레 취급을 받게 될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는 진지하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신입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엄청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발맞추어 적응하고 뛰어난 미래 인재로서 사회에 나가거나, 아니면 변화에 적응하기는커녕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젊은 퇴물이 되어 버리거나. 그리고 부디, 저는 여러분 모두 그 변화를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소망과도 같은 당부를 하고는 강의실을 나갔다. 김태훈 교수가 떠나고 난 이후에도 한참 동안 모두가 입을 다문 채 각자의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처음 분위기랑은 많이 다르게 오리엔테이션은 형식적으로 흐지부지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수많은 이의 우려와 혼란 속에서 시작된 변화. 하지만 이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김태훈 교수의 강력한 요구로 인해 시작된 이 변화가 서민대학교가 차후에 세계 최초의 가상현실 학부를 개설한, 수많은 가상현실 관련 인재를 육성한 차세대 미래 산업을 선도하는 공학 전문 대학교로 성장하게 되는 그 첫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으으으…… 드디어 끝났네.”
“밥이라도 먹고 갈까?”
“그럴까?”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재균과 같이 강의실을 나선 재영. 그 둘은 함께 구내식당으로 가서 식권을 끊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재영은 벽에 달린 초대형 TV에서 나오는 한 토론회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 보세요! 지금 가상현실 게임이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관련 법안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관련 법안이 없는 게 도대체 누구 때문입니까? 다 협치를 거부하고 각 당의 입맛대로 법안을 만들려고 하니까 이 상황 아닙니까! 그리고 저희만 그런 것도 아니에요. 미국 역시 ‘가상현실법’을 상정했지만 이미 수많은 반대로 부결된 적이 있어요.] [그거야 아직 기술 발표 전에 상정해서 그런 거고, 이미 미국은 관련 법안을 긴급 통과하고 관련 인재를 육성, 성장시키기 위한 준비 단계를 시작했는데, 왜 우리는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냐 이 말입니다!]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기술 아닙니까! 만약 인체에 심각한 부작용이라도 초래하는 문제가 발견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걸 진흥한단 말입니까! 시간을 더 들여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여러 의학 논문에서 뇌와의 직접적인 연결이 초래할 여러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가히 살벌할 정도로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는 시사 토론. 두 패널이 침 튀기는 줄도 모르고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다투는 것도 꽤 볼만한 모습이었지만, 주제도 가상현실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재영이나 재균 모두가 음식이 나온 줄도 모른 채로 몰입해서 지켜봤다.
“재영아, 너는 아르카디아 안 해?”
재균의 물음에 재영은 살짝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음…… 하고는 싶은데 캡슐 값이 너무 비싸서. 아직은 안 해 봤어.”
그의 자취방 절반은 차지하고 있는 고급형 캡슐은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재영은 아직 재균에게 자신이 플레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그가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는 유저이기 때문에 더더욱.
-내 첫 번째 소원은 그 살인마 새끼를 족치는 것이오, 두 번째 소원도 그 새끼를 족치는 것이고, 세 번째 소원도 빌어먹을 그 망할 새끼를 족치는 것이리라.
-누구 그 살인마 신상 아시는 분?
-이거 혹시 손해배상 소송 같은 거 못 거나요? 히든 직업 날아간 거 용서가 안 되는데.
이미 그의 플레이에 열광(?)한 사람이 가득한 상황. 모르긴 몰라도 재영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재영은 일단 물음에 부정했다. 그러자 재균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대학생 용돈으로 사기에는 좀 많이 부담스럽긴 하지? 보급형 가격이 천만 원이니까.”
자그마치 천만 원. 가히 중고차 한 대 가격에 맞먹는 이 비싼 가격을 감당할 대학생이 전국에 몇 명이나 있겠는가? 물론 할부 정책이 뛰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가난한 대학생 주머니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재영처럼 악마에게 영혼을 팔 듯이 노예 계약과도 같은 할부 계약서에 서명하는 이들도 몇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는 아르카디아 하고 있어?”
재영의 물음. 그 물음에 재균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래 보여도 레벨 꽤 높다고.”
“그래?”
“응. 나중에라도 혹시 시작하게 되면 말해 줘, 내가 가능하면 도와줄게. 요즘 신규 캐릭터가 생성되는 위치가 전부 랜덤이라서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말이야.”
자신 있다는 얼굴로 말하는 재균. 그런 그를 보며 재영은 대수롭지 않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 나중에라도 하게 되면 말할게.”
“헤헤. 그럼.”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밥을 한 숟가락 뜨는 재균. 그런 그를 보며 재영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재영은 대학교 첫 친구를 만들게 되었다.
아직 이 둘은 모르고 있었지만, 나중에 사람들은 이 둘을 보며 말한다. 컴퓨터 공학부, 아니 가상현실 공학부 역사상 최대의 또라이이자 하늘에서 내려 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생태계 교란종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