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진짜는 상상력이 풍부해! (3)
“어디 한번 재균 학생의 상상력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볼까요?”
하지만 엄청나게 긴장한 것 같은 재균의 얼굴과는 다르게 강의실의 분위기는 한껏 풀어진 상황이었다.
“으아아아……. 드디어 끝났네.”
“내가 할 때는 재밌는데, 남이 하는 거 보는 건 지루하네.”
“그거야 그렇지. 하는 거나 상상하는 거나 다 그게 그거라 그냥 완전히 똑같았잖아.”
처음 루시드 드림을 접해 보는 학생들.
그렇기에 이들이 캡슐 안에서 상상을 통해서 구현하는 것들은 그저 기초적인 수준의 물건이나 배경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도 그나마 태수가 꽤 구현 잘하지 않았어?”
“그건 그렇지? 물건이나 배경이 아니라 인물까지 구현한 건 걔뿐이잖아.”
“야, 그건 빼야지. 솔직히 인물이라고 하기에는 거의 마네킹 수준이던데.”
“크크크. 그건 그렇지.”
이제 처음보다는 긴장이 많이 풀렸는지 학생들이 사담을 나누느라 한층 요란해진 강의실. 루시드 드림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학생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김태훈 교수 때문도 있었지만, 특히 평소에도 다른 동기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재균의 차례였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야, 태수야. 근데 너 누구 구현하려고 한 거야? 무슨 여자애 같긴 했는데.”
태수와 친하게 지내는 한 친구가 한 질문. 하지만 태수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신경질 부리듯이 말했다.
“아, 몰라. 그냥 아무도 아냐. 상상 속에서 만들어 보려던 거야.”
“흐음……. 그레?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너무 격하게 반응하는 태수. 그런 그의 공격적인 반응에 친구는 묘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그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하아……. 진짜 X 같네.’
개인의 상상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는 루시드 드림.
그 기기 안에 들어가 태수가 구현하려고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그가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채연이었다.
‘빼도 박도 못 하게 여기서 고백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그녀에게 묘한 호감을 느끼고 있던 태수. 그렇기에 온갖 구애를 하고 매일같이 따라다니며 함께하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아직도 그는 채연의 남자 친구가 아니었다.
[채연아, 나 할 말 있어…….] [응? 아, 잠깐만 나 뭐 좀 하고…….] [채연아, 나 사실 너…….] [태수야, 너 머리 위에 바퀴벌레 있다.] [채연아…….] [꺅! 불이야!]의도적인 건지 우연인 건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그가 고백하려는 타이밍마다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채연이 이상한 말을 꺼내 분위기를 박살 내 버리며 태수의 입을 막아 버렸다. 무슨 호신강기라도 온몸에 두른 것처럼 철벽을 친 그녀에게 그는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예기치 못하게 날아온 루시드 드림. 그것을 본 태수는 속으로 환호했다.
‘이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채연을 알아 온 태수. 그는 그 누구보다 그녀의 독특한 성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진짜 나중에 남자 친구가 생긴다면, 음……. 진짜 엄청 특별한 고백을 받고 싶어.] [특별한 고백?] [응. 절대 그 누구도 받아 보지 못한 그런 고백! 그저 그런 고백이면 실망해서 거절할 거야.] [뭐야, 그게……. 너도 진짜 특이하다.]고백에 엄청난 의미를 두고 있는 이상한 취향의 채연. 그러한 그녀의 취향을 알고 있기에 태수는 매번 기상천외한 고백의 순간을 만들어 놓고도, 그게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어그러져서 애매해지면 눈물을 머금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저것만 제대로 활용한다면…….’
그렇기에 태수는 루시드 드림을 보고 즉각적으로 자신이 상상한 최고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풍성하게 쏟아지는 함박눈과 가로등이 비추는 어둑해진 골목길.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나지막하게 고백하는 두 연인의 모습. 그것을 상상하며 태수는 루시드 드림을 통해서 만천하에 그리고 채연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보여 주려고 했었다.
물론, 그 시도는 처참할 정도로 비루한 상상력으로 어그러졌지만 말이다.
“흐음……. 비록 구현 수준은 처참할 정도로 낮았지만, 그래도 배경이랑 날씨, 거기에 인물까지 구현하려고 노력한 점은 높게 사야겠군요. 하지만 처음 시도해 보는데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구현하려고 한 건 솔직히 욕심이에요. 상상력을 구현하는 건 두루뭉술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선명하게, 하나하나 구체화해야 하거든요.”
이도 저도 아닌,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형체만을 구현한 채 끝나 버린 상황. 루시드 드림의 시연을 끝마치고 난 후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얼굴로 해 오는 직원의 물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뭘 상상해서 구현하려고 한 건가요?”
고백이고 나발이고 그냥 공개적으로 망신만 당한 채 자리로 돌아온 태수. 그는 안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 없이 손을 흔들며 사람 좋은 미소로 재균에게 응원을 보내는 채연에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재균아! 파이팅!”
“으응! 파이팅……!”
두 손을 불끈 쥐며 긴장한 얼굴로 캡슐 안에 들어가는 재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한심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 진짜 어떻게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저렇게 찐따 같냐.”
“크크크. 너도 그렇게 생각했냐? 일본 만화 너무 본 듯.”
“하여간, 시간 낭비라니까. 어차피 저런 찐따 새끼는 집에서 맨날 이상한 상상만 하고 다닐 텐데, 혐오감만 드는 이상한 것들이나 싸지르겠지.”
“어우……. 야,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저 돼지가 집에서 뭐 하고 다닐지, 그런 게 떠오르잖아. 으으으…….”
마치 상상하면 안 될 걸 상상한 것처럼 혐오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진저리치는 태수의 친구를 보며 재영이 다 들으라는 듯이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도 저도 아닌 머저리들이 평가할 수준은 아닐 텐데.”
“뭐라고?”
재영이 의도한 대로 똑똑히 그가 하는 말을 들은 듯, 고개를 휙 돌려 험악한 눈으로 노려보는 태수. 그는 재영을 적개심이 가득한 얼굴로 쳐다보며 으르렁거렸다.
“너, 방금 우리보고 머저리라고 한 거냐?”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너무 머저리 같은 말만 해서 도무지 가만히 입 다물고 들어 줄 수가 있어야지.”
“이 새끼가…… 너 말 다 했어?”
그 말에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험악한 기세를 풍기는 태수. 하지만 재영은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비웃음 가득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재균이에 대해서 네가 한 말은 틀린 거 아냐. 내가 봐도 저놈은 가끔 하는 짓 보면 너무 ‘진짜’라서 나도 빡이 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거든.”
특히 채연이를 짝사랑하면서 태수와 자신을 비교하며 매번 기운 빠지는 음침한 소리만 늘어놓을 때나. 스토커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구치소에 처박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집요하고 소름 돋는, 무언가 단단히 뒤틀려 버린 애정 가득한 행동이나. 솔직히 양심적으로, 재영은 재균의 친구이기는 했지만 그런 ‘진짜’ 같은 부분에서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진짜’이기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너무나도 빈약한 사회성을 가지고 살아왔기에 가질 수 있었던 저 녀석의 재능까지 모조리 무시하는 건 아니지. 특히 저놈의 발가락 수준까지도 따라오지 못하는 너라면 더더욱.”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듯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태수. 하지만 그는 재영에게 하던 질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헉! 저, 저게 뭐야!”
“와……. 뭐지? 이거 지금 상상력으로 구현하는 건가?”
강의실 앞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송출되고 있는 루시드 드림의 구현 상황. 다른 사람들이 흰색 배경 속에 무언가 어설픈 물건 몇 개를 구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지금 스크린에 보이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휘황찬란한 무도회가 열리는 초호화 저택.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깔나 보이는 음식과 감미로운 음악.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수십, 수백 명의 사람은 옹기종기 모여서 각자 다른 행동을 하며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배경도 그렇지만…… 이거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야?”
사람 하나…… 아니, 그냥 밋밋한 풀밭 하나 구현하기도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감해 본 학생들. 그렇기에 그들은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황망한 얼굴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오오오! 정말 아름다우신 분이군요. 저는 브라임 백작가의 장남, 한스 브라임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레이디의 이름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이린이라고 해요.] [초면에 이런 요청을 하는 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저와 함께 춤을 한 번 춰 주시지 않겠습니까?]손을 하나 내밀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한스. 아이린은 그런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매력적인 미소를 짓고 화답했다.
[춤은 많이 미숙하지만…… 잘 부탁드리죠.]그렇게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 두 사람. 보기만 해도 아빠 미소 엄마 미소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인 선남선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멍하니 빠져들어 있을 때. 채연과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야, 채연아. 저기 여자 주인공…… 왠지 너랑 엄청 비슷하게 생겼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묘한 시선으로 묻는 동기. 그런 친구의 물음에 채연은 멍하니 화면에 나오는 장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싱긋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난 잘 모르겠네. 그런데 여자 주인공 엄청 예쁘긴 하다. 남자 주인공도 잘생겼고!”
“그치……? 저런 남자가 나한테 춤춰 달라고 하면…… 하, 진짜 좋겠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상황인 것을 알기에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동기. 채연이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때,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직원의 경악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이…… 이게 뭐야!”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수직으로 상승해 있는 그래프. 그걸 보곤 두 눈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커진 눈으로 이것저것 바쁘게 무언가를 확인하는 직원의 기세에, 김태훈 교수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싱크로율 17%……? 씨발! 기기와의 동기화 수치도 낮은 수준인데 구현력이 이 정도라고……? 이게 지금 말이 돼?”
그 누구보다도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욕지거리까지 내뱉으며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는 직원. 그는 옆에 있는 김태훈 교수에게 달려들어 취조라도 하려는 듯이 물었다.
“교수님! 이 친구! 도대체 뭐 하는 친구입니까? 예? 혹시 외계인은 아니죠?”
“아니……. 그게…… 어…….”
‘저 학생이 인간이 맞냐?’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의 질문에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영혼이 나가 버린 김태훈 교수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할 때, 태수 역시 김태훈 교수와 아주 비슷한 얼굴을 한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자기도 모르게 지금 이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태수. 재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재균이 자신의 친구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비웃음 가득한 어조로 속삭였다.
“저게 바로 ‘진짜’의 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