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단서 찾기는 귀찮아
현실에서 벌어진 온갖 소동을 뒤로하고 다시 아르카디아로 돌아온 재영. 요 며칠 동안 접속하지 않은 새에 변화된 캐러비안의 모습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어이, 거기 목재 좀 가지고 와.”
“이쪽 구역 정비하고 나면 다음에는 B구역 먼저야.”
“어휴, 냄새. 야! 여기 구정물들 빼는 하수도 아직도 정리 안 했냐? 이거 어디 조직이 맡기로 했었어?”
“한 번만 더 다른 조직원이라고 이상한 알력 행사 하고 신경전 벌이다 나한테 걸리면 진짜 곱게 뒈지지는 못할 줄 알아라. 캐러비안의 모두가 하나다. 카를로스 님께서 하신 말씀 못 들었어?”
이전까지는 도시 관리라고는 아예 내팽개친 채 으르렁거리며 험악하게 시가지에서의 전투를 벌이던 범죄 조직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범한 노동자와 일꾼이 되어 완전히 방치되어 망가져 가던 도시를 정비하고 있었다.
[범죄자들의 도시, 캐러비안의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6%의 도시 기능이 회복되었습니다.] [범죄 조직 간의 세력 전쟁이 종식되었습니다.] [도시 안정도 89%로 상승합니다.]해적왕 카를로스.
압도적인 무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잊지 않은 캐러비안의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다시금 그 지배권을 공고히 하며 무언가를 분주히 준비하고 있었다.
“오, 어디에서 돌아다니다 이제 오는 것인가? 나의 친우여.”
한참이나 그를 찾아다닌 것인지, 카를로스는 재영을 보자마자 반색했다. 그리고 재영은 그런 그의 환대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그냥 개인적으로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지. 그보다…… 거기 놓여 있는 것들은 도대체 뭐지? 평범한 물건들은 아닌 것 같은데.”
그의 새로운 심복들인지, 평생을 배와 함께한 것 같은 험악한 인상의 해적들과 함께 둘러 모여 무언가를 살피고 있던 카를로스. 그의 책상 위에는 낡고 빛이 바랜, 겉으로 보기에는 상점에다 팔아 버릴 잡템 같은 물건들이 여러 개 올려져 있었다.
“아…… 이것들 말인가?”
재영의 물음에 묘한 미소를 짓는 카를로스. 그는 자신만만한 눈웃음을 지으며 마치 자랑하는 것 같은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나한테 말했던 것들을 토대로 캐러비안 전역의 모든 곳을 뒤져보고 살피다가 발견한 물건들이네. 솔직하게 말해서 자네의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었지만…… 이것들을 보니 믿을 수밖에 없겠더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네 개의 물건. 그것들은 모두 배를 타고 먼바다를 항해할 때 꼭 필요한 물품들이었다.
제대로 작동을 하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빙빙 돌고 있는 나침반.
희미하게 그 잔상만이 남아 해독하는 게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빛바랜 해도.
렌즈에 금이 가 제대로 볼 수 없는 망원경 그리고 누덕누덕한 누군가의 항해일지까지.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고 숨겨졌던 대륙 이동을 위해 필요한 물픔들. 캐러비안의 지배자인 카를로스가 아니었다면 이것을 찾는 데에만 해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자명한 일이었다.
“신대륙은 실존하네. 비록 기록으로밖에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당시에 기록했던 그가 만든 해도도 발견했고, 그와 더불어 ‘끝없는 바다’와 관련이 있는 전설 속의 물품들도 찾아낼 수 있었지.”
무언가 낡은 골동품처럼 보이는 나침반과 망원경. 그것들을 집어 들며 카를로스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험한 환경에 노출되고 방치된 탓에 망가진 것인지,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하는 상태이더군.”
딱 보기만 해도 제 기능은 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 나침반과 망원경. 그것을 보며 연신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보고 재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물건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물론. 여기 나와 있는 항해일지에 따르면, 이 두 물건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절대 그 ‘끝없는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네. 신대륙을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야.”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카를로스. 그런 그의 말에 재영이 다시 물었다.
“어떻게요? 방법이 있나요?”
그 물음에 카를로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런 분야에서는 우리도 아는 게 없네. 이런 낡은 데다 마력까지 부여된 물건이라면, 아마 어지간한 사람도 복구는 손도 못 대겠지.”
그러면서 그는 은근한 눈빛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가 이 녀석들을 푸른 마탑에 가져가서 복구를 부탁해 볼 수는 없겠나? 우리 쪽 사람들은 죄다 악명 높은 범죄자라서 캐러비안을 벗어나면 골치 아픈 일이 너무 많이 벌어져서 말이야.”
푸른 마탑.
제2대륙에 존재하는 유일한 마법사들의 거점 도시. 마법사들의 정신적 고향이자, 자신이 마법사 유저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곳을 방문해야 할 정도로 마법사를 위한 모든 인프라가 집중된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 가서 수리를 한번 문의해 달라는 카를로스의 부탁. 그것을 들은 재영은 곤란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푸른 마탑이라면…… 여기서 완전 정반대에 있는 곳 아닌가?”
빠른 이동이라든가 여러 수단을 제공해서 순식간에 대륙 이곳저곳을 오가는 일반적인 RPG 게임과는 다르게, 도보나 여러 이동 수단을 통해서 진짜 순수하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동해야 하는 아르카디아. 그것도 대륙을 가로질러 캐러비안의 정반대에 있는 푸른 마탑까지 직접 찾아가서 수리를 부탁하는 것은 재영에게는 정말 귀찮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아마 인챈터 학파 쪽에서는 이 물건들을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실마리 정도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그리고 이 물건들을 수리한다고 하더라도 아마 이걸 고치는 데 필요한 재료들도 여기서 구하기에는 어려울 테니 시간이 꽤 걸리긴 할 거야.”
딱 보기에도 귀하고 값비싼 마법 재료들이 가득 들어갈 것 같은 나침반과 망원경. 그렇기에 카를로스의 부탁은 상당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이었다.
[시나리오에 필요한 핵심 단서를 습득하였습니다.] [퀘스트, 오래된 마법 유물의 복구가 생성되었습니다.]그렇기에 재영에게 생성된 퀘스트. 그 내용을 확인한 그는 꼼짝 않고 푸른 마탑에 다녀와야 한다는 사실에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귀찮은데…….’
가는 데에만 최소 2주에서 3주는 걸릴 것 같은 여정. 게다가 거기에서 또 유물 복구에 필요한 퀘스트를 얻고, 필요한 재료를 모으고, 또 복구하고, 다시 캐러비안으로 향하고…… 그 모든 뻔하고 귀찮고 험난한 과정들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파 왔다.
‘어떻게 하면 되지……?’
뼛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밀려오는 귀찮음에 머리를 풀로 가동하기 시작한 재영. 그리고 그는 이내 하나의 호기심 속에 무언가를 시도해 보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의 손에서 묘한 공명음을 내며 그 존재를 뽐내는 회색빛 기운.
개연성(Plausibility).
그것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며 재영은 속으로 일전에 탄이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모든 세상의 법칙을 깨트리고, 인과율을 무시한 채 인위적으로 뒤틀고 개입할 힘. 그건 네가 가지고 있잖아? 너에게 필요한 건 그저 의지일 뿐이지.]가상현실 아르카디아.
이제 막 공개되어 수많은 것이 베일에 가려 감추어진 의문 가득한 게임. 이 안에서 상상한 것, 그 이상의 자유도를 느꼈던 재영은 마음속에 강렬한 의지를 떠올리며 낡고 망가진 나침반과 망원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망가진 과거의 유물이 플레이어에 반응합니다.] [개연성을 소모해 망가진 유물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복구하시겠습니까?] [필요 개연성: 200,000]하나당 1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개연성을 요구하는 복구 비용. 하지만 개연성을 지불하기만 한다면 복잡한 모든 과정을 모조리 무시하고 지금 당장 복구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재영은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거렸다.
“와, 이게 되네?”
그러면서 묘한 미소를 지은 재영은 눈앞에 떠오른 두 개의 선택창 중 하나를 향해 거침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 * *
(주)아르카디아의 한국 지부를 책임지는 권명한 전무.
그는 자신의 직속 부하이자 가장 믿고 의지하는 강태훈 부장과 단둘이서 사무실 안에 앉아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전무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대륙 이동 시나리오가 임박했다니요?”
당혹감 가득한 얼굴로 되물어 오는 강태훈 부장. 조용히 자신을 불러낸 권명한 전무가 전하는 소식에 그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네……. 나도 방금 이미연 사장님에게 관련 정보의 접근을 허가받고 확인한 사항이야. 현재 한 유저가 캐러비안을 장악한 카를로스를 통해서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선행 퀘스트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아.”
대략적인 내용이었지만, 권명한 전무의 설명만으로도 강태훈 부장은 이 시나리오가 가지고 올 후폭풍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잠깐만요, 전무님. 그럼 그 말씀은 지금 유저 하나가 진짜 대륙 이동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 그렇게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 유저를 시작으로 앞으로 다른 대륙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공개될 거야. 그 규모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시나리오의 흐름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서 예측도 불가능하지만, 일단 자네는 알아 두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말해 주는 거네.”
“이렇게 빨리요?”
다른 국가가 점유하고 있는 아르카디아의 타 대륙. 스타팅 지점을 다르게 설정해 해당 국가마다 유저들의 플레이를 담당하는 지사를 설립하고 각자 맡은 대륙의 전반적인 운영과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었지만, 각 지사별로 서로 간의 협력이나 교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에 강태훈 부장은 권명한 전무의 말에 당혹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러면 해당 유저에 대한 관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게 무슨 소리인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권명한 전무. 그런 그에게 강태훈 부장은 살짝 흥분한 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만약 한국 대륙에서 플레이 하던 유저가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서 거기서 온갖 깽판…… 아니, 이상한 짓을 벌이고 다닌다고 한다면, 그것도 저희가 책임져야 하는 겁니까?”
그 유저의 태생(?)을 따르는 속인주의와 그곳의 관할권에 따르는 속지주의.
거기서 어떤 방침을 적용해야 하냐는 뜬금없는 물음에 권명한 전무는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황당한 눈으로 강태훈 부장에게 물었다.
“그게 여기서 갑자기 왜 궁금한 건가? 자네 설마…….”
일하기 싫어서 지금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고 싶은 권명한 전무.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다시 해 오는 강태훈 부장의 물음에 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대답해 주십시오, 전무님. 지금 저희 부서가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 캐러비안에서 시작되는 시나리오가 아니더라도, 지금 저희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들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닙니다.”
또다시 터져 나온 지엠 상단의 갑질 문제부터 시작해 소송까지 가겠다며 집단 행위를 시작한 미하일 남작의 노예 계약에 서명한 유저들까지. 거기에 현재 진행 중인 두 번째 시나리오, 이종족의 출현과 그와 관련된 여러 굵직한 퀘스트들도 지금 유저들에게 서서히 풀려 가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해서 이들에게 쏟아지는 똥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쌓여 가고 있는 상태였다.
“…….”
그리고 그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권명한 전무. 그렇기에 그는 조금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절박한 표정을 지으며 조마조마해하고 있는 강태훈 부장에게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자네들 힘든 건 나도 잘 알고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네들한테 피해 가지 않도록 사장님에게도 잘 말씀드려 볼 테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무님!”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며 외치는 강태훈 부장.
그는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 이 순간을 기억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똥이 아르카디아의 거대한 대양을 가르며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그는 마음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