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Kill the Dragon (1)
드래곤(Dragon).
동양과 서양, 가릴 곳 없이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상상 속의 존재. 판타지의 전형적인 클리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몬스터는 아르카디아에서도 역시 찾아볼 수 있었다.
[거대한 두 개의 뿔. 그리고 파충류와 같이 찢어진 눈. 수십,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몸집과 날개는 그 어떤 강인한 몬스터라도 본능적인 공포를 느낄 만큼 위압감이 넘치는 생물이다. 또한…….]재영이 초보자 마을에서 읽었던 역사서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드래곤에 대한 내용들. 물론 대부분은 양산형 판타지에서나 읽어 볼 법한 진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들이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얼마나 더럽게 강하고 기괴한 취향을 가진 존재들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클리셰 범벅의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디아의 독특하고 차별화된 설정 또한 분명 존재하긴 했다.
엄청나게 강하다는 설정 말이다.
그것도 더럽게.
그리고 그 도마뱀 자식들을 찾는 데에는 탄과 엘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도마뱀 놈들의 본거지? 그런 건 나도 모르는데?”
“드래곤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는 저희도 몰라요. 특별한 사명을 가진 그들에 대한 정보는 우리에게도 허락되지 않거든요.”
개연성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힘들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대천사와 마왕. 그런 그 둘을 보며 재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쩝……. 쉽게 찾아가게 할 생각은 없다 이건가?’
게임사의 농간인지 아니면 원래 설정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개연성을 이용한 꼼수는 불가능한 상황. 그렇기에 재영은 다른 방식으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정보가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이렇게 쓸데없는 것밖에 없냐?”
아르카디아에 대한 모든 정보가 총집결되는 아르팬디아.
영상 콘텐츠가 많은 인기를 끌고 또 메인이긴 했지만, 공략 게시판과 구인/구직 게시판 그리고 자유 게시판 같은 텍스트 콘텐츠를 다루는 곳에도 역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하게 많은 정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드래곤 부리는 직업 없나?
-드래곤 수제자 하고 싶다.
-드래곤은 얼마나 부자일까?
-드래곤 탈피 껍질 벗기고 싶다.
하지만 그런 아르팬디아에서도 쓸 만한 정보는 없이 그저 온갖 쓸데없는 개인적 망상과 뻘글만 수만 개가 검색되는 상황. 그걸 보면서 재영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오, 찾는 것부터가 완전 난관이잖아?”
분노에 찬 검색으로 한참 동안 산더미처럼 쌓인 뻘글을 뒤적거린 재영. 그래도 그런 노력 끝에 그나마 괜찮은 정보 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아르카디아의 세계관.
드래곤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게시 글 제목.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솎아 낸 검색 기준에 포함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재영은 게시 글을 열람해 보고 그 엄청난 분량에 입을 벌렸다.
“와……. 무슨 게시 글 하나에 이런 정성이야?”
보기만 해도 엄청난 양과 더러운 가독성에 바로 뒤로 가기를 누를 것 같은 상황. 하지만 재영은 가늘게 뜬 눈으로 벽돌같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글을 차근차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드래곤…… 드래곤…… 드래곤…….”
게임 속 역사서의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놓은 듯이 게시 글 이곳저곳에서 언급되는 드래곤. 하지만 대부분은 재영이 이미 알고 있던 여러 이야기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찾아낸 끝에, 그가 모르고 있던 내용을 찾아낼 수 있었다.
[드래곤이 욕심 많고 온갖 진귀한 보물들을 자기 소굴에 쟁여 놓는다는 속설은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아르카디아에서 지금까지 채굴된 금의 80%가 이들의 소유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또한…….]드래곤의 비정상적인 탐욕과 그들의 초월적인 자금력에 대한 설명이 잔뜩 쓰여 있는 부분. 그러한 이야기 중에서 재영의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진귀한 물건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소유욕은 너무나도 강렬해 자주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들의 보물을 강탈해 가기도 했다. 과거 그들의 겁박에도 자신들의 보물을 순순히 내주지 않고 뻗대다 멸망한 제국과 왕국이 수도 없이 많으니, 부디 그들이 달라고 하는 물건은 빠르게 포기하고 목숨이라도 건지도록 하자.]“뭐 이런 성격 더러운 놈들이 다 있어……?”
내가 가지지 못할 물건은 이 세상에 없다.
가지지 못한다면 차라리 부숴 버린다.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물론 여러 위기 상황에 아르카디아를 구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과거 성마대전을 비롯한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들에서 영웅 같은 행보를 하기도 한 존재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디 동네 양아치 같은 습성을 대륙 단위의 규모로 저지르고 다니며 온갖 패악질을 일삼아 피를 본 이가 많았기에 드래곤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얽히면 안 되는 놈들.
뭐든 내놔야 하는 놈들.
부모님 만수무강할 새끼들.
괜히 수틀리게 하면 국가 전체가 패가망신하기에 어지간하면 심기를 건들지 않으려고 조심해야 하며 무조건 엎드려야 하는, 그야말로 언터처블(Untouchable). 이런 그들의 특성을 읽으면서 재영은 스쳐 지나가는 발상을 하나 떠올렸다.
“어……? 잠깐만…….”
드래곤이 가지지 못한 물건.
아니, 정확히는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을 것 같은 물건.
딱 그런 게 재영에게 있기는 했다.
* * *
“흐으음…….”
재영이 접속을 종료한 시간.
그동안 명색이 대마왕인 탄은 효율적으로 그 시간을 활용하곤 했다.
마왕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마계에서의 업무, 또 매번 서열 다툼 한다고 자기들끼리 피 튀기며 싸우는 밑의 놈들 교통정리. 그리고 이제 영업을 뛰기 시작한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귀여운 초보 악마들을 대상으로 한 소양 교육까지 말이다.
“확실히…… 늘었어.”
마계와의 채널링을 끝내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탄. 그런 그의 중얼거림에 다른 한쪽에 앉아 있던 엘이 궁금증을 참지 못했는지 물었다.
“뭐가 늘어?”
그 물음에 탄은 마치 자랑하듯이 뿌듯한 얼굴로 답했다.
“뭐긴 뭐야? 개연성이지.”
마계와 악마들…… 그리고 탄에게 부여되는 개연성의 양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그들이 얼마나 이 아르카디아의 인과를 뒤트는지, 또 그들의 사명에 맞는 악(惡)이 얼마나 대륙 곳곳에 가득 차오르는지에 따라서 그 양이 달라지곤 했다. 이것이 인간의 영혼을 상대로 탄을 비롯한 여러 악마가 밤낮을 지새우고 영업을 뛰어다니며 고생하고 있는 이유였다.
“당연한 거 아냐? 최근에 이 사달이 났는데 개연성이 안 늘어나면 그게 이상한 거지.”
흑마법사나 암흑기사와 같이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판 인간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대규모의 대륙 침공 속에 일어난 수없는 파괴와 혼란으로 인해서 악의 기운이 조금 더 충만해진 것뿐. 하지만 탄은 엘의 타박에도 개의치 않으며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이유가 뭐가 됐든, 어쨌거나 전보다 늘어난 건 맞잖아.”
매번 힘들게 주인에게 알랑방귀를 뀌며 개연성을 뜯어내던 탄. 그 결과 전체적인 악의 기운이 대륙 전체에 충만해졌다는 사실에 조소 섞인 얼굴로 엘을 바라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지? 우리 주인은 역시 사악하다니까? 이런 상황들을 다 예견하고 행동하잖아.”
자신이 자리를 비운 새에 엘의 꼬임에 넘어가 마계의 소중한 신기를 박살 내 거대한 엿을 먹인 것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악을 위해서 움직이던 주인. 언제나 탄에게 영감을 주며 진정한 사악함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그를, 왜 엘이 악하지 않다고 보는지 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탄의 말에 엘은 빤히 그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 진짜 모르는구나?”
“엥? 뭘……?”
“개연성이 너희만 늘었다고 생각해?”
무언가 미묘한 물음을 던지는 엘. 그런 그녀의 말에 탄이 당황한 눈초리로 물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그리고 무언가 눈치챈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설마 닭 날개 네놈들도……?”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짓는 엘. 그녀는 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번 대륙 침공으로 인해서 쇼엔 제국은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보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으며, 또 재앙에 가까운 마법으로 무수히 많은 이가 피를 흘린 것도 사실이야.”
그야말로 개판.
하나의 대륙뿐만 아니라 다른 대륙까지 넘어가서 묻지 마 깽판을 벌인 검은 해적단. 분명 이들로 인해서 촉발된 혼란과 피해는 그야말로 그들이 희대의 악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러나 이들의 행위가 순전히 악(惡)한 행동이었을까?
“범죄자, 노예, 부랑자, 도망자, 거렁뱅이. 다양하지만 여러 이유로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라고 천대받고 낙인찍히며 살아가던 이들이…… 순전히 자신들의 힘으로 그 누구도 찾지 못한 다른 대륙을 찾아내고, 또 강대한 제국의 영토를 당당하게 점령해 자신들의 국가를 세운 일이 과연 악한 일이었을까?”
억압과 착취.
멸시와 혐오.
편견과 차별.
신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고 가로막히는 일이 만연한 이 세상에서 그 두껍고 강력한 사슬을 끊고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쟁취한 이들.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희망이자 자유의 상징으로 찬란하게 빛나며 이것을 온 대륙에 증명해 낸 이들.
비록 그 방식마저 선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엘은 확신할 수 있었다.
캐러비안과 검은 해적단이 바라보고 걸어가고 있는 길은, 온갖 험난한 가시밭길이 펼쳐진 정의이자 지극히 선(善)의 가치에 부합되는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너희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도 늘었어.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지.”
캐러비안이 앞으로도 계속 천상이 추구하는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갈지 아니면 결국 세월의 흐름 속에서 타락하고 다시 쇠락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엘은 계속해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과연 그들이 자신들이 해 왔던 최선에 따른 현명한 선택을 이어 갈지를 말이다.
“뭐라는 거야……?”
그런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투덜거리는 탄.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힐끗 보며 엘은 면박을 주었다.
“내 말은 우리 둘의 계약자가 무조건 악한 건 아니라는 거야. 물론 무조건 선한 건 당연히 아니고…… 음……. 굳이 말하자면 그냥 혼란을 초래하는 걸 즐기는 거라고 할까……?”
“뭐……?”
혼돈.
중립.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그저 지 꼴리는 대로, 자기 입맛대로 움직이는 유형. 지금까지 엘이 함께 다니면서 판단한 바로는, 재영은 아주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사는 개썅마이웨이 성향의 소유자였다. 그런 엘의 말에 탄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변태적인 인간이 그런 걸 즐겨?”
사제는 나쁜 놈.
흑마법사는 좋은 놈.
평범한 인간은 영업 들어가야 할 놈.
이렇게 세 가지로 인간을 보는 탄의 머리로는 그녀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탄의 물음에 엘 역시 재영이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종류의 인간이었기에 말을 아꼈다.
“그러니까 독특한 거지. 뭐…… 모험가의 특성일 수도 있고.”
죽지 않는 존재…… 아니, 정확히는 천계도, 마계도, 그 어떤 세계에도 영혼이 속하지 않는 존재, 모험가들. 이런 그들의 행동 방식은 전혀 예측 불허였기에 엘은 재영을 비롯해 여러 모험가를 남몰래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훗날 벌어질지 모르는 거대한 서사의 흐름 속에서 최선을 선택하기 위한 준비를 위해서.
우우웅.
그리고 그 순간, 예고도 없이 나타나는 재영. 그런 그를 보며 탄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반갑게 말했다.
“어, 주인. 왔어?”
자신에게 들어온 개연성이 늘어서 그런지, 기분 좋은 얼굴로 말을 먼저 거는 탄. 하지만 그런 탄에게 그는 대뜸 물었다.
“야, 탄. 나 물건 하나만 빌려줄 수 있어?”
“엥? 무슨 물건?”
“그 부서진 데스브링어 조각들. 그거 아직 가지고 있지? 나 잠깐만 그거 쓸게.”
탄의 역린이자 절대 그의 앞에서 언급하면 안 되는 단어를 거침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 재영. 그런 그의 말에 탄은 순간 움찔하더니, 이내 무척이나 방어적이고 경계심이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건 또 어디다 쓰게……?”
그리고 그 말에 재영은 뻔뻔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갖다 팔게.”
“…….”
무슨 고철 엿 바꿔 먹으려는 듯이 손을 내미는 재영. 그런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침묵하는 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처음으로 입을 열고 소리쳤다.
“야 이, XXX야!”
진심으로 분노한 듯 뒷목을 잡으며 발광하는 탄.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엘은 작게 미소 지으며 확신했다.
이 인간만큼 정의를 철저하게 실현하며 악마를 엿 먹이는 존재는 지금껏 없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