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Kill the Dragon (11)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약속한 미다스 상단의 경매일.
수천 명을 수용해도 큰 무리가 없는 베일란의 거대한 중앙 광장은 엄청나게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단하군. 어느 정도 흥행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군.”
이 경매를 직접 참관하기 위해서 본사에서 직접 베일란 지점에까지 찾아온 미다스 상단의 주인, 골드버그. 그는 통제하고 있는 경매 구역 밖에서 어떻게든 이 엄청난 볼거리를 구경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로들을 내려다보며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크크크. 대박입니다, 대박! 골드버그 님의 혜안이 제대로 적중한 것 같습니다.”
모든 국가가 뜻을 모아 만들어 낸 완전한 자유경제도시, 베일란. 어느 특정 세력이 도시를 지배하지 않고, 치열한 견제와 경쟁 속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는 중립 도시국가. 이곳에서 이 고대 유물을 공개한 결과, 물밑으로 미다스 상단을 압박하는 이들은 여럿 있었지만 대놓고 그 유물을 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렇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고대 유물인 이상, 함부로 강탈하려고 했다가는 상대가 아무리 제국이라 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연합 전쟁을 불사할 테니까.”
가끔 상황에 따라 협정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하는 경우도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번 경매만큼은 달랐다. 비슷한 경쟁자들을 비롯해서, 우스울 만큼 작은 왕국들조차도 눈이 뒤집힌 채 이 물건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뒷공작을 벌이기에는 그 리스크가 너무 심했다.
“혹시라도 그 유물에 마음대로 손대는 순간, 손모가지가 아니라 모가지가 날아갈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
“공평하게 경매로 가져가자고. 당장 베일란으로 가서 철저히 감시해. 허튼짓하며 같잖은 수작질 부리는 국가가 있는지.”
“무제한 자금 지원을 허락받았다. 제국의 부를 이길 곳은 아무도 없으니, 반드시 황제 폐하의 명예를 지키고 그 고대 유물을 확보해 오도록.”
그렇게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이 베일란으로 몰려든 각 왕국과 제국의 사절단들. 그들은 하나같이 호화롭고 고풍스러운 복장을 한 채 보이지 않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지정된 좌석에 앉아 있었다.
“와, 생각보다 NPC들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저기 있는 사람들, 죄다 왕궁이나 제국의 고위 귀족들이잖아. 이거 그냥 평범한 경매가 아닌 것 같은데?”
“신화 등급 무기라서 그런 건가?”
“원래 신화 등급 아이템은 NPC들 사이에서도 귀한 취급 받는 건가?”
자신들끼리의 경쟁을 생각했던 모험가들. 하지만 그들은 경매에 직접 참석하기 위해 온 이 경쟁자들을 면밀히 살펴보고는 일그러진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칙쇼. 쇼엔 제국의 재정 관리관이 여기에는 왜 온 거야?”
“어, 저기 저 사람은…… 카이벨 백작?”
“그게 누군데?”
“세카일 왕국의 재정을 총책임지는 수석 행정관.”
“와……. 뭐야, 이거. 참가자들이 다 왜 이래?”
고작 길드 하나 운영하는 길드 마스터나 재력을 과시하는 일개 개인으로서 이 경매에 참여한 유저들. 하지만 이날 처음으로, 자신들의 경쟁자인 경매 참석자들의 신원을 하나하나 확인한 이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유저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NPC들과의 경쟁이었어?”
일개 개인으로서, 또는 수백 명의 인원을 통솔하는 작은 단체로서 이 신화 등급의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한 골드 매입 경쟁을 벌였던 이들. 하지만 아르카디아 속 거대 왕국과 제국들이 직접 이 경매에 참여함으로써 지금까지 유저들이 벌여 왔던 치열한 골드 매입 경쟁은 너무나도 허망한 일이 되어 버렸다.
“아니,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겨?”
“망할 게임사. 지금 이걸 이벤트라고 내놓은 거야? 경쟁 자체가 안 되잖아.”
“칙쇼. 이건 사기야! 이번에 골드 매입하느라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데.”
자그마치 50%에 달하는 골드 시세 급등. 이 시세가 얼마나 심한 괴리율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골드 매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이 이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리고 이 물건을 통해서 손해 본 것 이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이 애를 쓴다 하더라도 여기 있는 이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한낱 모험가인 그들이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수십에서 수백 년 동안 이 땅에서 살아오며 수많은 부를 축적해 온 국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허허허. 이거 참 오랜만이구려, 케이스 백작.”
“오랜만입니다, 쇼엔 제국의 마이엘 후작님.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나는 잘 지내고 있소. 그보다…… 이거 의외로군. 페로스 제국에서도 이런 경매에 참여하다니. 최근 있었던 가뭄 때문에 이럴 여력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야. 내가 들었던 소문이 사실이 아니었나 보군.”
아르카디아 제3대륙의 강대국들이자 언제나 으르렁대며 경쟁하는 쇼엔 제국와 페로스 제국. 이 두 제국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마이엘 후작과 케이스 백작은 서로를 발견하고는 웃는 얼굴로 서로 덕담을 주는 척했지만, 마이엘 후작이 먼저 보이지 않는 칼로 선빵을 갈겼다.
기습적으로 한 방 먹은 케이스 백작. 하지만 그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얼굴에 미소를 잔뜩 품고는 능수능란하게 그에게 맞받아쳤다.
“헛소문은 아닙니다. 그 가뭄 때문에 제국의 많은 시민이 굶주림에 힘들어했지만, 이제 어느 정도 한숨 돌렸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점에 대해서 감사드려야 하겠군요. 가뭄이 들었던 당시에 쇼엔 제국에서 식량 판매를 거절한 덕분에, 저희 제국에서도 사활을 걸고 식량 확보에 매진해 새로운 농법을 개발해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할 수 있었습니다.”
“허허허. 그것참 좋은 소식이구려. 앞으로 페로스 제국이 식량 문제로 힘들어하는 일은 이제 볼 수 없겠소.”
참 아쉽다는 얼굴로 축하한다며 덕담을 건네는 언행불일치를 실천하는 마이엘 후작. 그런 그에게 케이스 백작은 다시금 반격을 시도했다.
“그보다…… 저는 솔직히 마이엘 후작님을 보고 놀랐습니다. 최근에 그 다른 대륙에서 넘어왔다는 흉악한 해적 놈들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고 들어서 이번 경매에는 참석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오다니……. 이거 제국 내부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이렇게 평정심을 유지하실 수 있다니, 그것참 대단하십니다. 허허허.”
말에 가시를 잔뜩 박고 서로 치열하게 딜교를 나누고 있는 둘. 그것도 대륙관 최강자 둘의 싸움이나 다름없었기에, 경매를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은 숨죽여 이 둘의 싸움을 가만히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마이엘 후작은 자신의 평정심을 칭찬하는 케이스 백작의 말에 평정심을 잃어버리고는 부들거리며 새빨개진 얼굴로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소? 평정심? 케이스 백작, 미쳤소?”
“아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마이엘 후작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듯이 사람 좋은 얼굴로 되묻는 그. 하지만 마이엘 후작은 보란 듯이 웃는 그의 얼굴에 가래침을 카악 뱉었다.
“안 그래도 그 빌어먹을 해적 놈들 때문에 제국이 시끄러운데, 감히 그 이야기를 어느 안전이라고 꺼내는 거요? 어느 정도 지켜야 할 선이 있지, 방금 그 발언은 나뿐만 아니라 쇼엔 제국의 황제 폐하를 능멸하는 것이오!”
저 멀리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대륙에서 넘어온 검은 해적단. 그들과의 전투에서 해군 전력 전체와 그 자랑스럽던 포세이아까지 완전히 잃어버린 쇼엔 제국. 북부 해상의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고 영토 일부까지 강제로 빼앗겨 버린 그들. 그땐 그랬었지……. 하고 웃으며 추억으로 회상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시기였기에, 그 역린을 건드린 효과는 제대로 나타났다.
“네놈들이 뒤에서 웃으면서 환호하고 있는 걸 모르고 있는 줄 아는가! 감히! 페로스 제국 따위가 위대한 쇼엔 제국의 저력을 우습게 보는 건가!”
“페로스 제국 따위……? 지금 말 다 했소, 마이엘 후작!”
순식간에 자제력을 잃고 서로 할 말 안 할 말 다 하며 설전을 벌이기 시작한 두 사람. 귀족의 품격 따위는 잊어버린 듯 온갖 험악한 협박과 독설들을 퍼부으며 싸워 대고 있었지만, 경매를 주관하는 미다스 상단을 비롯한 그 누구도 이 둘을 말리지 않았다.
이 두 거대한 고래 사이에 괜히 끼어들었다가 등 터져 버리는 새우 꼴이 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 재미난 싸움 중간에 한 사내가 끼어들었다.
“두 분 모두 그만하시지요.”
흠칫.
타오르는 붉은 머리. 이제 고작 20대로 보이는, 파릇파릇한 외모의 남자. 거대한 두 제국의 대리자로 참석한 이 둘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거대한 위압감에 자신들도 모르게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도 모르게 이 젊은 청년에게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그대는 누구시오?”
“바엘 왕국의 남작, 카르벤이라고 합니다.”
나름 예의를 갖추는 듯한 말투와 자세.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오만함이 느껴지는 묘하게 당당한 그의 말에 마이엘 후작은 카르벤이라는 그 귀족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뭐지…… 이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붉은 눈동자. 지금껏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이 낯선 귀족에게서 알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그가 이어서 말했다.
“이곳에는 모험가들을 비롯해서 다른 왕국의 귀족들과 베일란의 시민들이 모두 모여 있습니다. 이 이상 제국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으로 경매를 지연시키지 말고 각자 본연의 목적을 위해서 물러나시기를 권합니다.”
에둘러 말했지만, 직설적으로 말해서 ‘보는 눈도 많은데 깝치지 말고 닥치고 앉아라’라는 의미의 권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기에는 이 둘의 자존심이, 그리고 상대가 남작 따위의 비천한 계급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디서 감히 남작 따위가 무례하게 윗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드나!”
“바엘 왕국? 허허……. 그런 작은 왕국에서 온 이가 어디서 감히 제국들의 이야기에…….”
남작이라는 지위에. 그리고 약소국인 바엘 왕국의 귀족이라는 신분에.
이 둘은 강대한 제국, 백작과 후작이라는 신분으로 손쉽게 찍어 누르려고 했지만, 카르벤의 말이 더 빨랐다.
“두 사람…….”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서 이 둘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거대한 위압감을 느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가만히 자리에 앉고 그 입 닥치시죠.”
새빨갛게 타오르는 듯한 그의 눈동자. 방금까지만 해도 당장에 반발하며 찍어 누르려고 했던 둘은 그 말에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
“……?”
너무나도 순한 양이 되어 버린 이 둘의 모습에 황당해하는 얼굴을 하는 구경꾼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탄과 엘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맞네. 저 새끼 도마뱀 확실해.”
“이런 사소한 일에 용언을 사용하다니. 확실히 저 드래곤도 조바심이 났나 보네요.”
드래곤만이 가지는 특별한 권능이자 능력, 용언(龍言).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 모든 법칙을 뒤틀고 원하는 바를 구현하는 그 엄청난 힘을, 그저 자존심 강한 두 귀족이 떽떽거리는 것을 그만두게 하고 자리에 앉게 하는 데에 쓰는 것을 보며 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저런 식으로 힘이 남아도나? 도마뱀 새끼들 하는 거 보면 진짜 불공평하다니까? 그냥 아주 아르카디아 대륙 공식 양아치들이라니까, 완전.”
“이 대륙에 소속된 존재들이니까 그렇지. 너도 절대 명령권은 마계에서 가지고 있을 거 아냐?”
“헹, 그건 그렇긴 하지.”
그 광경을 지켜보며 잡담을 나누는 탄과 엘. 그리고 이 둘이 떠드는 동안, 카르벤은 방금 전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 같은 미다스 상단의 관리인에게 말했다.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경매를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네……? 아! 네!”
그 말에 이제 정신이 되돌아온 듯, 황급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직원들. 그리고 이내 단상에 올라선 상단 관리인 하나를 통해 선포되었다.
“지, 지금부터 고대 유물에 대한 미다스 상단의 경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본 대륙의 거대한 참사로 불리게 될 드래곤 죽이기(Kill the Dragon) 사건의 시작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