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Kill the Dragon (16)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만으로도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핵폭탄 같은 존재, 드래곤.
창조주가 부여한 아르카디아의 수호자라는 설정과 함께 이 땅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탄생 그 자체만으로도 사기적일 정도로 축복받은 특성과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
무한한 마나를 축적하는 심장, 드래곤 하트.
그 어떤 무기나 마법도 쉽게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비늘로 뒤덮인 육체.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강인한 정신력과 생명력 그리고 일만 년이라는 기나긴 수명.
아르카디아의 최강의 종족이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드래곤, 그들 중에서도 원로 대우를 받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룡급인 케르베니안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황당해하면서도 분노했다.
[어리석구나, 인간이여. 조금 특별한 강함으로 감히 나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가.]인간의 형태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이 느껴지는 그. 단순히 자신의 의지를 사념으로 전하는 것뿐이었음에도, 그의 사념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반응은 격렬했다.
[드래곤 피어에 정면으로 노출되었습니다.] [초월적인 존재가 당신을 적대합니다.] [상태 이상, 공포에 걸렸습니다.] [종합적인 능력치가 90% 하락합니다.]“으으으……. 사, 살려 줘!”
“이런 미친! 90%……? 이거 실화냐?”
“으아아! 도망쳐!”
그 공포에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며 도망치는 NPC들. 그리고 상태 메시지를 보며 자신의 하락한 능력치에 경악하는 유저들. 이들로 인해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베일란 전체를 내려다보던 케르베니안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게 두려워하고 도망쳐야지, 버러지들아.]마치 이러한 반응을 기대했다는 듯이 쭉 찢어진 파충류의 눈동자를 움직이며 그가 도망치는 유저들을 내려다본 순간, 유저들의 주변은 순식간에 검은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히이이이이익!”
“이게 뭐야!”
“칙쇼오오오오오!”
저항 한 번 제대로 못 해 보고 순식간에 잿더미로 사라져 버리는 이들. 마치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도시 전체로 번져 나가기 시작한 검은 화염에 재영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느낌에 탄을 바라보았다.
“야, 탄. 이거 혹시…….”
“맞아. 헬 파이어네.”
“…….”
매번 탄과 엘이 툭탁거리며 싸울 때마다 가끔 꺼내던 검은 불꽃. 물론 그 규모는 라이터 불꽃 수준으로 귀여웠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지금 이 베일란에 소환된 지옥의 겁화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운 기세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너희 둘이 싸울 때 쓰던 그게…… 8서클 마법이었냐?”
“마법으로 치자면 그렇지? 근데 나는 그거랑은 조금 달라. 그냥 지옥에서 끌어다 쓴 거니까.”
그야말로 대재앙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참혹한 수준. 왜 8서클 마법이 대재앙이라고 불리는 마법들인지를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와…….
-아니, 아무리 일본 유저들이 싫다고는 해도 이건 좀…….
-씨발, 진짜 게임 개판이네.
순식간에 도시 전체로 번져 나간 화염. 엄청난 연기를 내뿜으며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고 있는 것을 방송으로 지켜보던 이들은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참극에 할 말을 잃었다. 방금까지 일본 유저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며 놀리던 한국 유저들조차도 동정심을 가질 정도로 말이다.
[크하하하하하. 이제 알겠는가, 인간이여. 네놈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말이야.]일부러 재영을 공격하지 않고 그 주변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던 이들과 도시 전체를 파괴한 케르베니안. 그가 기대한 것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동족의 죽음을 허망하게 지켜봐야 하는 한 인간의 절망감과 무력감 그리고 증오의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걸 지켜보고 있는 재영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죄책감 혹은 후회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시큰둥한 얼굴로 불타고 있는 도시를 내려다볼 뿐.
“와, 바위에도 불이 잘 붙네. 지옥 불이라서 그런가?”
“당연하지. 지옥의 화염은 물조차도 태워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되는 것처럼 흥미롭게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옆에서 파닥거리고 있는 마왕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인간. 그를 보면서 케르베니안은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네놈……! 지금 상황에서도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독기 가득한 얼굴로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으르렁거리는 케르베니안. 원한은 백배로 갚아 주는 성질머리를 잔뜩 부리며 그는 소리쳤다.
[이번 일에 대한 보복은 네놈을 죽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인간의 국가 전체에 다시는 잊지 못할 교훈을 남겨 주도록 하지.]무슨 짓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최소 왕국이나 제국 몇 개는 지도에서 지워 버릴 것 같은 기세의 케르베니안. 그 협박 아닌 협박을 들으며 재영은 순간 혹했지만, 옆에서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뚱한 표정을 하는 엘을 바라보고는 이내 뜨끔하며 말했다.
“역시나…… 오만해.”
[뭐라고……?]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있는 재영. 오히려 오만하다고 자신을 바라보며 이죽거리는 그를 보고 도리어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쪽은 케르베니안이었다.
“도마뱀 주제에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상대로 왜 네가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는데?”
도마뱀.
파충류에 속하는 드래곤들이 제일 싫어하는, 그들 앞에서 입에 담는 순간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그’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는 재영.
[이 버러지 같은 인간이 아직도……!]그런 그의 말에 케르베니안은 격한 반응을 보이며 살기를 가득 뿜어냈지만, 재영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챙그랑.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리는 새로운 무기. 그것을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했다.
-씨발! 저, 저건……!
-이런, 미친! 맞아! 저 새끼 그때…….
-와……. 저거 설마……?
-덱스! 덱스! 덱스! 덱스! 덱스!
초록빛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싱싱한 대나무.
그 대나무를 정성을 들여 깎아 만든 창.
이른 바, 죽창(竹槍) 손에 들고 작게 미소 짓는 재영. 그를 보며 케르베니안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뭐, 뭐냐, 그 물건은……?]그냥 평범해 보이는 대나무 창. 하지만 그 안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힘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 케르베니안은 조금은 당황한 기색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혼잣말하는 것처럼 조용히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퍼엉.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빠르게 도약하는 재영.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죽창에서 강대한 설정의 힘이 휘몰아치며 맹렬하게 울어 대고 있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한 방이야.”
* * *
(주)아르카디아 일본 지부.
비상사태를 선언한 카즈키 지사장의 지시 아래 전 직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현재 베일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긴급 조치들을 수행해 나가고 있었다.
“지사장님, 전 유저에게 공지했습니다. 현재 베일란을 비롯한 인근 지역에 접근하지 말라고. 최고 위험 경보를 내렸습니다.”
“NPC들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 대한 상태를 경계로 조정했습니다.”
“상인을 비롯한 대륙의 상단 전체도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추었습니다.”
“레드 드래곤, 케르베니안에 대한 설정과 기본 데이터도 전부 뽑았습니다.”
현재 모든 관리 권한과 패치가 막혀 있는 상황. 그렇기에 운영자인 이들이 직접 이번 일에 개입하거나 조치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런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전 직원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들을 해 나가면서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조센징 새끼들이…….”
뿌드드득.
하지만 그런 노력 속에서도 대륙 전체의 중심이자 엄청난 양의 골드와 물류가 오가는 수도 베일란이 지옥의 화마에 잿더미로 불타오르자, 카즈키 지사장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며 신음했다.
“칙쇼오오오오오오!”
콰앙.
이번 사태로 죽은 것부터 시작해 금전적인 손실에 대한 배상까지 요구하며 들고 일어날 유저들. 어떻게 결말이 나오든 일단 드러눕고 시위를 할 것이 확실한 상황이기에 그것만으로도 분노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빡치는 것은 이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저가 다름 아닌 한국 대륙에서 건너온 유저라는 사실이었다.
“이름이…… 덱스라고 했나?”
“하잇! 한국 지부에서 넘겨준 자료를 확인한 바로는, 이번에 쇼엔 제국을 공격했던 해적단, 검은 해적단을 끌고 온 유저와 동일하다고 합니다.”
수십 장으로 이루어진 보고서. 그 자료를 빠르게 훑어보며 내용을 확인하던 카즈키 지사장은 이내 험악하게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유저 정보가 이게 뭔가? 확실한 데이터가 아예 없잖아!”
“그, 그게, 저도 그것과 관련해서 물어는 봤는데…… 열람 제한이라 정보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뭐……?”
능력치가 나와 있는 상태창도, 스킬창도, 하물며 인벤토리와 같은 일체의 유저의 개인 정보는 아예 없는 보고서. 그저 대중적으로 공개된 영상, 온갖 찌라시와 소문들을 끼워 맞춰 작성자의 뇌내망상과 추측으로 만들어진 이 보고서는 카즈키 입장에서는 나무가 미안해질 정도로 무가치한 쓰레기에 불과했다.
“세부적인 상세 데이터를 알아야 우리가 뭘 조치라도 할 것 아닌가! 지금 이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이딴 쓰레기 같은 걸 자료라고 우리한테 넘겨준 건가!”
새빨개진 얼굴로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일갈하는 카즈키. 그런 그의 반응에 상황실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상황. 그 묘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카즈키는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이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일단, 저 드래곤이 빌어먹을 조센징 새끼를 죽이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되지?”
화제를 돌리며 분위기를 바꾸려는 카즈키. 그런 그의 의도를 알아챈 듯, 한 직원 하나가 다급히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대답했다.
“일단…… 알고리즘을 확인한 바로는 최소 인근 도시 몇 개는 추가적으로 더 파괴할 것 같습니다. 심하면 주변 왕국 하나는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절대 이 상황에서 분이 풀릴 리가 없는 드래곤. 괜히 언터처블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닌 듯, 최소 도시 몇 개는 날아갈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에 카즈키 지사장은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꼈다.
“……유저들이 난리가 나겠군.”
하필 일이 벌어져도 대륙 중앙…… 그것도 아주 핵심적인 위치에 놓인 베일란에서……. 그곳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버린 것도 엄청난 문제였는데, 추가로 몇 개의 도시가 더 날아가게 되면 쏟아지게 될 유저들의 원성은 안 봐도 뻔했다.
“일단…… 이번 일로 발생한 피해들은 하나도 빠지지 말고 전부 기록해.”
무한한 자유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
이 두 개의 이념 아래 두 손 두 발 꽁꽁 묶어 두고 가만히 지켜보게만 하는 이 변태적인 회사. 하지만 카즈키는 게임을 운영하는 운영자로서 지금 이 비상식적인 상황을 추호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에 개입할 수 없는 운영자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딨어.”
그렇기에 그는 이번 사례를 예로 들며 강력하게 이사회에 주장할 생각이었다. 운영자들의 관리 권한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관리 권한 운운하며 매번 자신들의 업데이트를 막아 대는 망할 인공지능의 영향력을 약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어딘가에서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 사장님! 저기 저거!”
“뭐 때문에 호들갑이야?”
누군가의 외침에 무심코 앞의 스크린을 짜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카즈키. 그리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초록빛의 싱그러운 대나무 창. 방금까지 사용하던 검은 어디 두고, 보기만 해도 기괴하고 해괴한 죽창을 든 채 도약하는 그는 너무나도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고 있었다.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한 방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