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안 돼. 안 바꿔 줘. 돌아가
세계 정치의 중심지이자 미합중국의 연방 수도인 워싱턴 D.C.
이곳에 자리 잡은 (주)아르카디아의 본사는 오랜만에 긴장감 어린 분위기가 맴돌았다.
“하하하. 이거 참,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알렉스. 그동안 여기서는 별일 없었죠?”
“큰일은 없었습니다만, 작은 사안들은 제가 자체적으로 처리했습니다. 이메일을 통해서 주기적으로 관련 사항을 보고드렸습니다만…… 혹시 확인하셨는지요?”
“호호호. 알렉스가 다 잘 처리했으리라고 생각해요.”
이메일을 열어 봤냐는 물음에 웃으며 답하는 이미연 사장. 하지만 그런 반응에 익숙한 듯 알렉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역시 안 열어 보셨군요. 그럴 줄 알고 간략하게 관련 보고서를 준비해 두었으니 나중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라도 한번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 하나가 후다닥 카트를 끌고 오자 수십 개의 서류 뭉치를 이미연 사장에게 들이미는 알렉스. 그런 그를 보며 이미연 사장은 울상인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알렉스. 이걸 언제 다 읽으라고요?”
“사장님이 모르시면 안 되는 사안들만 추린 겁니다. 제가 아무리 사장님이 부재중일 때에 권한 대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만에 본사에 들르신 이상 지금까지 안 하셨던 업무들은 보셔야죠.”
“하아……. 이러니까 제가 여기를 잘 안 오는 거예요.”
“주기적으로 오지 않으신다면 앞으로는 직접 찾아가도록 하죠.”
“제발 그러지 마시죠, 알렉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충분히 골치 아프고 바쁘니까요.”
질린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이미연 사장.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알렉스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요즘 아르카디아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대내외적으로 시끄러워졌더군요.”
“그렇죠…….”
“일본의 경우는 심각한 상황이고요. 사장님이 안 계신 동안에도 계속해서 본사로 강력하게 항의하는 전화가 왔었어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요.”
이미연 사장이 있는 한국 지부만이 아니라 본사인 이곳까지도 엄청나게 연락을 시도한 일본 지사. 한국 지부의 상황을 생각하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이미연 사장은 조금 미안한 낯빛으로 말했다.
“그 부분은 미안하네요. 제가 직접 나서서 사태를 정리하고 싶어도 그러기에는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이미연 사장의 진심 어린 사과에 조금은 마음이 풀어진 듯, 알렉스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아주시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이제 일이 이렇게 돌아간 이상 의미도 없지 않겠습니까? 카즈키 지사장이 이번 문제에 대해서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으니, 그 안에서 결정된 사안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이 되겠죠.”
“그건 그렇죠?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소집된 이사회네요. 초창기에 했던 회의 후로 이번이 두 번째인가요?”
“그렇습니다.”
주기적으로 여러 안건을 다루기 위해서 이사회가 열리는 다른 기업들과는 다르게 요청이 없는 이상은 절대 이사회가 소집되지 않는 기형적인 형태의 회사. 그렇기에 이미연 사장은 기대된다는 듯 연신 싱글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미국에 왔으니 회의 끝나면 좀 돌아다니면서 여행 좀 하다가 가야겠네요. 알렉스, 주변에 괜찮은 관광지들 있으면 추천 좀 해 줄래요?”
이왕 이렇게 온 김에 단물은 최대한 빨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한 이미연 사장. 하지만 그런 그녀의 부탁에 알렉스는 조건을 하나 달았다.
“물론입니다. 제가 드린 서류 검토만 다 마무리하신다면, 만족하실 만한 코스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엑……. 진짜 이러기예요?”
“네. 이럴 겁니다. 그보다…… 이제 회의 시작할 것 같은데 들어가시죠.”
그렇게 알렉스에게 등을 떠밀리며 회의실에 들어선 이미연 사장. 그녀가 방에 들어서자 보이는 이들은,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는 권명한 전무와 카즈키 일본 지사장 그리고 대주주인 3개의 회사에서 임명한 이사진이었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이미연 사장까지 자리에 앉자 긴장한 얼굴로 서서 회의 진행을 맡은 직원이 천천히 회의 안건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카즈키 일본 지사장의 요청으로 소집된 긴급 이사회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의 목적은 최근 아르카디아 내에서 벌어진 대륙 간의 분쟁에 대한 조정이며, 세부적인 안건으로는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제2대륙에서 플레이 중인 유저의…….”
빼곡하게 적힌 회의 안건. 카즈키 지사장을 비롯한 일본 지부의 원망과 증오가 가득 담겨 있는 요청 사항들은, 그야말로 한국 지부와 해당 유저에 대한 보복 조치로 점철되어 있었다.
“카즈키 지사장, 첨부한 의견서를 보면 한국 지부에서 악의적으로 일본 지부와 이용자들의 플레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특정 유저의 편의를 봐주며 내부 공개를 제공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건가요?”
코퍼레이션 아르고스에서 임명한 이사, 리처드. 그는 아무리 읽어 봐도 황당할 정도로 음모론 같은 내용만이 가득한 그의 의견서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으나, 카즈키 지사장은 이미 분노로 이성을 잃은 상황이었다.
“정황상 그렇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내용입니다. 결정적으로 한국 대륙에서 주최했던 이벤트, 이른바 죽창 대전의 이벤트 보상으로 지급되었던 그 죽창이라는 아이템만 봐도, 한국 지부가 일본 지부를 향한 테러 행위를 얼마나 오랫동안 계획하고 준비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캐러비안이라는 지역을 통해 대륙 이동이라는 콘텐츠를 열어 버리다니요? 이게 이사님들이 보시기에는 내부 정보를 유저가 알지 않는 이상 이렇게 쉽게 가능할 만한 일이라고 보십니까?”
“……특별한 증거는 따로 없으시다는 말이군요.”
“그래도 확실히 수상한 정황은 여럿 보이는군요. 죽창이라는 이 아이템 같은 경우는 의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 이상은 나올 수 없을 텐데…… 한국 대륙에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정신 나간 이벤트를 기획한 거죠?”
리처드와는 다르게 이번 상황에 의구심을 품는 실리코프의 이사. 차가운 눈빛으로 관련 회의 자료를 살펴보던 그녀는 이내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권명한 전무를 바라보며 물었다.
“설명해 보시죠. 일본 지부의 의혹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해서 한국 지부의 입장도 직접 들어 봐야겠군요.”
깐깐하게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는 그녀의 말에 권명한 전무는 침통한 얼굴로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지부의 입장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본 대륙에서 벌어진 일과 한국 지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죽창이라는 밸런스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템이 유저의 손에 들어가게 된 점에 대해서는 저희의 실책을 인정하며, 이 점에 대해서는 한국 지부를 대표해서 여기 카즈키 지사장님을 비롯한 일본 유저 그리고 일본 지부의 직원 모두에게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게 다인가요?”
“그렇습니다.”
“권명한 전무! 네놈이 아직도! 여기까지 와서도 사실을 부인하는 건가!”
죽창을 제외한 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권명한 전무. 그런 그의 발언에 카즈키 지사장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으르렁거렸지만, 그때 이미연 사장이 입을 열었다.
“권명한 전무의 말은 사실이에요.”
“……?”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가 이미연 사장에게 꽂혔다. 그리고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관련 유저 정보에 대해서는 여기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제가 직접 확인해 본 사항이에요. 해당 유저가 본래 플레이를 하던 대륙을 벗어나 일본 유저들이 플레이 하는 제3대륙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드래곤을 사냥하기까지. 그 모든 일련의 플레이 속에서 그 어떠한 문제점도 발견하지 못했고, 전부 그가 정당한 과정을 통해서 얻어 낸 결과예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엘리스 역시 동의한 사안이니 믿으셔도 돼요.”
“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해당 유저에 대한 정보와 플레이 기록을 완전히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믿으라고만 한다니요.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일본 유저들이 입은 피해가 얼마나 막대한지 아십니까!”
이미연 사장의 말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회의실 안의 분위기. 그 때문에 평정심을 잃은 카즈키 지사장은 무례할 정도로 언성을 높이면서 따졌지만, 그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 관련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내용으로도 충분할 것 같네요. 아르팬디아의 유명 채널인데, 혹시 보셨나요? 파괴자의 일상물이라고 하는데. 혹시라도 플레이 정보를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거기에 올라간 영상을 확인하세요. 꽤 흥미진진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하게 될걸요?”
마치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기분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거리며 떠는 카즈키 지사장. 그는 결국 이성을 잃어버리고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발언을 입에 담고야 말았다.
“사장님이 아무리 한국인이라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한국 유저들에게 유리하도록 편파적으로 운영해도 되는 건 아닙니다!”
“…….”
지금까지 카즈키 지사장이 가슴속에 묻어 둔 채 차마 꺼내지 못했던 생각이 있었다. 한국인인 이미연 사장이 일부러 일본에 불리하도록, 편파적으로 이 상황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 말이다.
하지만 절대 입 밖으로 표출하면 안 되는 걸 알고 있기에 지금껏 묻어 두고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얼어붙은 회의실.
눈이 튀어나올 것같이 경악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권명한 전무와 싸늘한 북극발 냉기가 맴도는 것 같은 이사진의 눈빛에,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온 카즈키 지사장은 이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제 말은…… 그러니까…… 죄송합니다. 방금 실언한 것 같군요.”
무언가 변명하려 하다가 이내 빠르게 포기하고 사과하는 카즈키 지사장.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기에 이사진의 반응은 이전과 다르게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사장이 한국인이라고 편파적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니. 이게 일개 지사장이 할 소리입니까?”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던 아진 전자의 대리인이 꾸짖듯이 한마디 했다. 그리고 다른 이사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망이군요. 일본 지부를 책임지는 지사장의 그릇이 이 정도라니.”
“논리 자체도 빈약해요. 이번 사태로 한국 유저들의 항의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하던데…… 한국 지부가 도대체 왜 자기들 욕먹을 짓을 일부러 하겠습니까? 편협한 인종차별적인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니, 어리석군요.”
“…….”
자신이 요청해서 소집된 이사회. 하지만 말 한 번 잘못 내뱉은 것 때문에 신나게 두들겨 맞는 청문회로 순식간에 돌변하자 카즈키 지사장은 죽을 맛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장님.”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일어나 무릎을 꿇고 도게자를 하며 사죄하는 카즈키 지사장. 그런 그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이미연 사장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일본 지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고려해 이번 실수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죠. 단, 이번 이사회 소집을 요청한 카즈키 일본 지사장의 안건에 대해서는 제 직권으로 기각하겠습니다.”
“…….”
“혹시 다른 의견인 이사님이 계신가요?”
“이의 없습니다.”
“동의합니다.”
“허허……. 동의하오.”
“그럼…… 이걸로 이번 회의는 마치도록 하죠. 다들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세 명의 이사들의 찬성과 함께 해산된 회의. 이미연 사장은 그 와중에도 끝까지 고개를 박고 있는 카즈키 지사장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우고 싱긋 웃으며 속삭였다.
“카즈키 지사장님? 이러고 있으실 때가 아니에요. 빨리 가서 일하셔야죠.”
빨리 가서 이 산더미 같은 똥을 열심히 치우라고 속삭이는 이미연 사장. 그런 그녀를 보며 카즈키 지사장은 깨달았다. 이미연 사장도 은근히 지금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