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세계수의 부활 (6)
개연성.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강대한 힘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들. 대륙을 가르고 산을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권능을 부여받은 이들은, 반대급부로 강력한 사명에 꽁꽁 얽매여 있었다.
[나의 아이야, 너는 천상을 지키는 빛과 정의의 수호자이니 모든 타락한 존재를 심판하고 그들로부터 인간들을 지키며 드높은 명예를 지키는 데 앞장설 것이다.] [모든 만물의 타락함을 상징하는 나의 아이야, 대지 깊숙한 곳에서 어둠과 기만을 상징하는 존재가 될지니, 영광스럽지 못하고 굳건한 믿음을 가지지 못한 비열한 이들의 위선을 걷어 내고 그 실체를 밝혀라.] [나의 아이야, 너에게 드높은 지성과 고귀한 혈통을 부여하오니, 너에게 허락한 힘을 통해 대륙의 모든 생명체를 수호하고 각자의 사명에 따라 행하는 일들에 그 어느 쪽 하나 치우침이 없도록 조율하라.] [모든 생명체의 수호자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나의 아이야…….]태초에 이 세상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부여되었던 사명(使命).
이들의 존재 목적 그 자체이자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법칙과도 같은 것이지만, 아주 한정적으로 이러한 제약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었다.
개연성(Plausibility).
사명을 온전히 행할 때 아주 조금씩 이들에게 돌아오는 보상과도 같은 힘.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 개연성을 사용하는 동안에는 이 사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으으으……. 개연성…… 개연성이 부족해.”
“저도 개연성 주세요.”
퀭한 눈으로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다니는 탄. 그리고 은근히 개연성에 욕심부리며 언제나 뻔뻔하게 손바닥을 내미는 엘.
이 둘의 모습만 보더라도 그 개연성이 얼마나 이들에게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었다. 한 계의 절대자라고 불리는 초월적인 존재들이 마치 펫이라도 된 것처럼 졸졸 따라다니면서 붙어 있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건 세계수라고 다를 건 전혀 없었다.
“야, 이 묘목 새끼야!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누굴 보자기로 아나! 넌 여기 대륙에 속해 있어서 활동에 아무런 제약도 없잖아! 그런 놈이 왜 개연성에 욕심을 내는데? 넌 상도덕도 없냐!”
“흥! 처음부터 네놈들이 여기에서 얼쩡거리지만 않았으면 필요가 없지. 내가 왜 개연성에 욕심내냐고? 망할 네놈이나 저 치킨 새끼가 또 여기서 싸움판 만들면 그때는 내가 모조리 다 쓸어버리려고 그런다! 왜!”
“뭐……?”
신화 속의 존재, 세계수.
아르카디아라는 세계를 지탱하는 거대한 나무로 모든 숲과 식물들을 보살피는 존재. 맥동하는 자연의 생태계를 유지하며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그녀의 권능과 신성은 탄과 엘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드높은 것이었다.
다만 강대한 힘이 전투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나한테 부여된 사명에 조금이라도 공격적인 내용이 있었다면, 너네는 애초에 여기에 발가락 하나도 들이지 못했어. 내 뿌리 공격 한 번이면 모조리 쓸려 나갈 X밥 새끼가.”
바닥에 가래침을 탁 뱉으며 껄렁껄렁하게 협박하는 동네 일진 같은 모습의 세계수. 그녀의 험악한 모습에 탄은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이, 이 망할 묘목 새끼가! 식물이면 식물답게 가만히 앉아서 광합성이나 하고 있어야지, 감히 어딜 나서려고!”
“닥쳐. 내 맘이야.”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공격적이거나 파괴적인 방향으로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제약에 꽁꽁 얽매여 있는 세계수. 언제나 생명체들의 보호와 수호만을 위해서 힘을 사용해야만 하는 바람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X밥 싸움에 고래 등이 터져 버렸던 과거가 한이었는지, 세계수는 묘한 눈으로 재영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야기가 너무 길었네요. 대충 상황은 이해하셨으리라 생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저도 덱스 님이 가지고 계신 그 개연성이 필요해요. 위아래에서 은근슬쩍 넘어와서 땅따먹기 하는 이 망할 새끼들을 조지려면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개연성이 필요하거든요.”
무언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전투적인 것 같은 세계수.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빛을 발하고, 내미는 손. 그녀의 달콤한 속삭임이 재영의 귀를 간지럽혔다.
“어때요? 저 망할 새끼들보다는 싸게 해 드리죠.”
싸게 해 준다는 말. 그 말에 재영은 진심으로 혹했다.
정확한 가격이 존재하지 않는 개연성. 그렇기에 뭘 하든 아주 엿장수 마음대로인 듯 개연성을 뜯어 가며 폭리를 취하는 탄과 엘에게 말은 안 해도 많은 불만이 있었던 그였기에, 재영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세계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주, 주인! 안 돼!”
“자, 잠깐만!”
그걸 보며 황급하게 소리치는 탄과 엘. 하지만 이미 늦었는지, 재영과 세계수가 손을 맞잡은 곳에서 알 수 없는 복잡한 문양과 함께 엄청난 광휘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계약 성립.”
만족한 얼굴로 미소 짓고 있는 세계수의 중얼거림과 함께 말이다.
콰아아아아.
재영의 몸 전체를 휘감는 강렬한 기운. 터져 나오는 초록빛의 기운들이 휘몰아치는 동시에 재영의 눈앞에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정령 소환.
정령을 부리는 정령사들이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스킬.
하지만, 재영의 스킬 창에 생성된 것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정령 소환 –Master]순수한 자연 속성을 지닌 정령을 소환해 부릴 수 있다.
-해당 속성의 정령 친화력 필요.
-소환한 정령의 등급과 전투 상황에 따라 마나 소비량 증가.
-계약 가능한 정령 수: –
.
.
.
시작부터 마스터 등급으로 찍혀 나오는 스킬. 거기에 기존의 설명처럼 보이는 내용들은 죄다 줄이 찍찍 그어져 있었고, 그 밑에 짤막한 설명이 하나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스킬 사용에 따라 개연성이 소비됩니다.
“이건……?”
깜짝 놀란 듯, 휘둥그레진 눈으로 중얼거리는 재영.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세계수는 만족한 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지금 보기에 덱스 님의 육체 능력은…… 너무나도 미약해요. 검을 쓰는 전사나 기사들처럼 강건한 힘과 체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마법사가 되기 위한 마력 친화도나 마나가 있는 것도 아니죠. 거기에 정령 친화력까지도 너무나도 미약하죠. 사실 이 정도면 하급 정령도 겨우 소환할 정도예요.”
너무나도 비루한 기본 능력치들. 레벨 시스템이 없어서 능력치 상승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되어 그런 것이었기에 재영은 세계수의 뼈 때리는 팩폭에 순간 억울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그렇죠.”
“지금부터 성장을 위해서 차근차근 수련한다느니 뭐니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어차피 통하지도 않을 테고, 그냥 자유롭게 정령들을 부릴 수 있게 할게요. 개연성만 주세요.”
“네……?”
너무나도 쿨한 세계수.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세계수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등급의 정령을 소환하든, 어떤 속성의 정령을 얼마나 많이 부리든 제가 다 감당할 테니까 그만한 개연성만을 저에게 달라는 말이에요.”
“……?”
세부적인 스킬 설명이 모조리 삭제된 채 마스터 등급으로 그에게 떨어진 정령 소환 스킬.
짤막하게 적힌 문구로는 이해가 정확히 되지 않았던 재영은 세계수의 말에 입을 벌렸다.
“그, 그게 가능해요?”
상상해 보았는가?
모든 속성의 정령을, 그 수에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부리는 정령사.
모든 속성의 정령왕을 소환해서 깽판을 치고 다니는 광경을 순간적으로 상상했던 재영. 그런 그의 상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세계수는 가늘게 뜬 눈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라도 정령왕을 소환해서 난리 칠 생각이라면 접어 두시는 게 좋아요. 한 속성의 근원인 존재를 소환하고 부리는 건 어지간한 개연성 가지고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누가 뭐래요?”
“뭐…… 혹시나 해서 말한 거예요. 그런 생각 안 했다면 다행이고요.”
세계수의 말에 한번 시험 삼아 스킬을 사용해 본 재영. 그는 주변에 나타난 귀여운 정령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물의 하급 정령 – 운디네] [불의 하급 정령 – 샐러맨더] [바람의 하급 정령 – 실프] [땅의 하급 정령 – 노움]어디 양판소에서나 찾아볼 법한 전형적인 하급 정령들. 이들의 앙증맞은 외형이 마음에 든 재영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요. 다른 사람들한테 이상한 의심 안 사고 돌아다닐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언제나 과할 정도로 강력한 힘만을 사용해야만 했던 강신 스킬.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수준이 아니라 전기톱으로 쥐새끼 잡는 수준으로 개연성 낭비가 장난이 아니었기에, 재영은 상황에 맞게 적당히 전투력의 수준을 원하는 대로 조율할 수 있게 된 세계수의 제안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이것에 엄청난 불만을 표출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이건 영업 방해야! 묘목 새끼야! 네가 이런 식으로 힘을 빌려주면 우린 뭐 먹고 살라고!”
“이래도 되는 건가요? 사명에 어긋나는 행위로 보이는데요?”
딱 봐도 강신의 사용 빈도가 줄어들 것처럼 보이는 상황. 그렇기에 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세로 격렬하게 세계수를 향해 따져 물었다.
“넌 저작권이라는 것도 모르냐? 네놈이 한 제안은 딱 봐도 우리가 하는 강신의 계약 구조를 똑같이 베낀 거잖아! 내가 그 계약 만드느라 얼마나 머리 싸매고 고민한 줄 알아?”
“정령계와의 채널링을 도맡아 하는 사명을 가진 당신이 마음대로 정령들의 활동에 필요한 정령력과 마나를 담보하는 건 월권행위예요. 아버지께서 부여하신 권능을 그렇게 사사로이 사용하는 건 심각한 문제예요.”
쫑알쫑알 시끄럽게 자기 할 말을 쏟아 내는 탄과 엘. 그 둘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세계수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물었다.
“할 말들 다 했냐?”
“뭐……? 야!”
자신의 말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한 세계수의 태도에 단단히 빡이 친 것 같은 탄. 하지만 세계수는 탄이 무어라 하려 하자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저작권이고 나발이고, X까, 이 망할 불법 체류자 새끼야. 애초에 너부터 개연성까지 소진해 가면서 남의 영역에 불법적으로 들어와 놓고 할 소리냐?”
“이…… 이 묘목 새끼가…….”
탄을 불법 체류자 취급 하며 엿 먹으라고 일침을 놓는 세계수. 그런 그녀를 보며 탄이 부들거리며 이를 갈았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는지 그 이상 입을 열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명? 조금 과하게 해석하면 그럴 수도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어긋나지 않아. 만약 그랬다면 계약조차 성립되지 않았겠지. 어느 고마운 두 새끼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영면에 빠져서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한 탓에 남아 있는 개연성이 전~혀 없으니까 말이야.”
그 고마운 당사자인 탄과 엘.
둘 다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자 세계수는 조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재영을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지금까지 저 악독한 두 새끼한테 바가지 쓰느라 힘드셨죠? 제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서비스 팍팍 넣어 줄 테니 앞으로 많이 애용해 주세요. 이왕이면 제 대리자도 괜찮은 녀석으로 찾아다 보내 주시고요.”
탄과 엘을 상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과 분위기를 보이며 살갑게 말을 거는 세계수. 그런 그녀를 보며 재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착한 척은 다 하면서 개연성 뜯는 건 저 둘과 다를 바 없어 똑같은 악덕 업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