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이걸 어떻게 팔아? (1)
고도로 발달한 아르카디아의 경제 시스템.
생산과 공급 그리고 수요에 따라서 변동하는 물가.
전쟁이나 기근, 풍년과 같은 여러 상황 속에서 예측 불허로 움직이는 여러 품목들의 시세는 상인의 길을 걷고 있는 유저들을 울고 웃게 했다.
“대박! 밀 가격이 60% 폭등했어!”
“씨발! 이게 뭐야. 보석 장신구가 유행한다고 해서 왔는데 가격이 뭐 이래? 운송비 제하면 손해잖아!”
“요즘 금속 장사가 꽤 쏠쏠하다고 하던데…….”
“넌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 하고 있냐? 요즘은 주류 품목이 최고라고”
여러 지방의 특산품부터 시작해서 일반적인 소비재까지, 그 개수만 해도 수천…… 수만 개가 넘어가는 품목들. 그중에서 가장 좋은 시세 차익을 볼 품목을 정하고 최적의 경로로 거래할 지역을 선정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소비재는 어디에서든 잘 팔리니까 리스크는 적은데…… 생각보다 이윤이 적네.”
“하아……. 산지에 있는 마을이라 생선이 잘 팔릴까 했는데 중간에 짐수레 망가져서 죄다 썩어 버림. 망할.”
“개씨바아아알! 도적 새끼들한테 다 털렸어! 진짜 이 똥망게에에에엠!”
자그마한 규모의 상단을 꾸리고 거래를 하는 유저가 대부분인 상황. 그들은 온갖 리스크가 가득한 아르카디아의 험악한 경제 시스템에 하드코어 한 매콤한 맛을 보며 고전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뽑아내는 상단은 분명 존재했다.
“도련님, 이번 달 결산보고서 여기 있습니다.”
“아, 이리 줘 봐.”
지엠 그룹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최제규.
그는 수행 비서가 내미는 결산보고서를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야? 이번 달 매출이 이것밖에 안 나왔어? 저번 달보다도 13%나 감소했잖아.”
13%.
하루가 다르게 뒤바뀌는 게임 속의 경제를 생각하면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넘어갈 수도 있을 정도의 수치였지만, 이전 달의 기록을 확인한 제규는 뚜렷할 정도로 감소세로 돌아선 매출을 보고는 수행 비서에게 표독한 눈빛으로 물었다.
“야, 일 똑바로 안 할래? 지금 나한테 이걸 보고서라고 가지고 오는 거야? 어?”
파라락.
꼰대 직장 상사의 전매특허 기술, 보고서 던지기를 시전한 제규. 그의 수행 비서는 종이 뭉치가 자신을 맞고 사무실 안에 휘날리며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도련님이 접속하지 못하는 동안 제가 최대한 상단을 이끌고는 있었지만, 계속해서 경쟁자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이전의 거래처를 유지하는 것에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전의 갑질 여파로 드워프와 엘프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지엠 상단. 엄청난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며 지상파 방송에까지 타게 된 바람에 국세청의 긴급 세무조사까지 받게 된 지엠 그룹. 그 여파로 제규는 최춘식 회장의 뜨거운 분노와 함께 호적에서 지워질 뻔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게임에 접속조차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너 이 새끼…… 앞으로 그 지엠 상단이니 뭐니 하는 거에 일절 관여하지 마! 잘한다 해서 가만히 놔두고 있었더니 그룹 전체에 재를 뿌리고 다녀? 이번 세무조사 관련해서 조용히 덮느라 얼마나 애먹었는지 알아? 앞으로 넌 가상현실에 관여하지 말고 일이나 똑바로 배워!]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닌 거대 상단으로 성장한 지엠 상단을 버리기에는 아까웠는지, 최춘식 회장은 부상단주의 권한을 가진 제규의 수행 비서가 게임에 접속해서 상단을 관리하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주요 거래처였던 하르멜 제국의 카이젠 백작이 돌연 거래를 끊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희 상단의 주력이었던 곡물들의 거래량이 급감했습니다. 재고만 계속 쌓여 가고 있는 상태고요. 다른 판매처를 알아보는 중입니다만…… 다들 반응이 미적지근합니다.”
엘프와 드워프. 이종족과 인간 사이의 중계무역 자체가 원천 차단당한 지엠 상단. 때문에 이들은 기존에 하던 거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조차도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행 비서의 보고에 제규는 숨을 크게 내쉬며 물었다.
“후……. 그거 이종족들과의 거래 때문이지?”
“그런 것으로 분석됩니다.”
“……씨발!”
콰앙.
그 말에 분을 못 참으며 주먹으로 책상에 연신 샷건을 날리는 제규. 그는 한참 동안이나 광분을 하고 난 후에 씩씩거리며 거친 호흡을 내쉬고 중얼거렸다.
“어디서 굴러 먹다 온 건지 모를 쓰레기 같은 놈들이…… 감히 지엠을 건드려? 나를?”
계속해서 그의 수행 비서를 통해서 보고받았던 내용이기에 제규는 지금 지엠 상단의 실적 부진의 원흉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르팬디아에 올라왔던 지엠 상단의 갑질 폭로 영상.
거기에 출현해 눈물 어린 호소를 하며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아냈던 파이 상단.
도대체 어떻게 된 경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지엠 상단의 몰락과 동시에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부상하며 그 주가를 높였다.
엘프와 드워프와의 독점 무역권.
그 어떤 물건이든, 그들과 거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이 상단을 통해야 한다는 사기적인 권리. 도대체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엘프와 드워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독점적인 지위를 그들에게 부여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결과 파이 상단은 대박을 쳤다.
그것도 전례가 없을 초대박을 말이다.
“파이 상단? 아, 그들 물건이라면 당연히 믿을 수 있지.”
“드워프 장인의 수제품을 얻고 싶은데…… 혹시 자네, 파이 상단에 연줄 좀 없나?”
“호? 파이 상단? 자네 거기 소속이었나? 이거 몰라봐서 미안하군. 통과. 다음!”
파이 상단 소속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어떤 국가도 자유롭게 왕래하며, 상인들에게 엄청나게 까탈스럽게 굴면서 온갖 명목으로 돈을 뜯어 가던 영주들조차도 그들의 눈치를 보며 온갖 편의를 봐줘 설설 길 정도였으니 그 유명세는 이루 말할 것도 없었다.
몇 달 만에 아르카디아 제2대륙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대형 상단으로 성장한 파이 상단. 순식간에 엄청난 돈벼락을 맞은 상단의 주인 애플과 레몬. 하지만 이 둘은 그것으로는 조금도 만족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배가 고프다는 선언과 함께 문어발식 확장으로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기 시작한 그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시장을 먹어 치우기 시작한 그들은 결국 지엠 상단의 거래처들까지 뺏어 가기 시작했다.
뿌드득.
생각만 해도 분하다는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가는 제규. 그런 그를 보며 수행 비서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이대로 가면 영업 손실이 더 커지고 상황이 악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영주들을 설득하고는 있지만…… 상단주가 직접 나서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며 동요하고 있습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도련님께서 다시 게임에 접속하셔야 합니다.”
“……누가 그걸 지금 몰라서 안 하고 있냐? 회장님이 그 난리를 쳤는데 내가 다시 접속하는 걸 보고만 있겠냐고!”
상단 운영 일선에 복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제규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사달이 난 지, 이제 3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춘식 회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너무나도 일렀다. 하지만 그의 수행 비서는 결연하기까지 한 얼굴로 말했다.
“도련님, 힘든 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하셔야 합니다.”
한계를 모른다는 듯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파이 상단. 그들의 폭주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지엠 상단이 살아남아 지금 수준의 규모라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단주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진심 어린 직언에 제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심각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는 무언가를 고심하며 한참 동안을 앉아 있을 뿐.
그리고 그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씨이발! 분명 개 지랄할 것 같은데. 아! 몰라!”
짜증 가득한 얼굴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제규. 그는 수행 비서의 손에 들려 있는, 자신이 바로 전에 던졌던 그 보고서를 낚아채고는 말했다.
“나 회장님한테 이야기하고 올 테니까, 그때까지 현재 지엠 상단 현황이랑 게임 속 정세 그리고 그 망할 파이 상단 정보까지 싹 다 정리해서 기다리고 있어.”
최춘식 회장의 분노를 각오하고 게임에 복귀하겠다고 선언할 결단을 내린 제규. 그런 그의 뜻을 확인한 수행 비서는 반색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밝은 얼굴로 미소 짓는 수행 비서를 뒤로한 채 최춘식 회장의 집무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최제규. 그는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이러한 개 같은 상황을 만든 파이 상단을 저주했다.
그리고 그날.
최춘식 회장의 집무실에서는 거대한 노호성과 함께 재떨이가 던져지는 듯 둔탁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 * *
누군가의 이마에 크리스털 재떨이가 날아가 피를 보든 말든.
파이 상단을 운영하는 애플과 레몬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은인을 맞이하며 환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덱스 님!”
“잘 지내셨어요?”
재영이 보낸 쪽지를 보고 허겁지겁 엘프 마을에 달려온 애플과 레몬. 자신을 반기는 이들의 격한 반응에 재영은 살짝 부담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물었다.
“그냥 엘프 마을에 들를 일 있으면 와 달라는 쪽지였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괜히 번거롭게 한 건 아니죠?”
“에이! 아니에요. 어차피 엘프 마을도 들러야 하는 상황이었는걸요.”
“맞아요! 그리고 덱스 님이 오신다면 당연히 하던 일도 제쳐 두고 저희가 찾아가야죠. 받은 도움이 얼마나 큰데요.”
존경과 선망이 가득 담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과잉 충성하는 이 둘. 재영은 이전과는 다르게 변한 둘의 외형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요 몇 달 새에 많이 바뀌었네요? 기대한 것 이상으로 성장했나 본데요?”
이전엔 가난한 상인 복장을 하고 있던 애플과 레몬.
하지만 지금의 이 둘은 단정한 것 같으면서도 화려한, 상인으로서의 품격이 잔뜩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아, 이거요……?”
“헤헤……. 조금 비싸긴 하지만 상인에게는 능력치가 가장 좋은 장비라서요. 무리 좀 했죠.”
상인이라면 누구라도 침을 흘릴 능력치가 잔뜩 붙어 있는 상인만을 위한 장비. 모르긴 몰라도, 옷의 디자인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세트 아이템으로 보였기에 꽤 많은 골드를 장비에 투자했다는 것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뭐…… 잘하셨네요. 캐릭터 육성이 최우선이죠. 상단은 어떻게…… 잘돼 가나요? 별문제는 없어요?”
파이 상단 지분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재영. 이들의 동업자로서 물어본 질문에 애플과 레몬은 자신감이 가득 넘치는 얼굴로 자랑스럽게 답했다.
“최고예요.”
“아마 저희의 주력 상단의 규모를 보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그때부터 시작된 파이 상단의 이야기.
재영이 떠나간 이후에 있었던 일들.
마치 물꼬가 터진 것처럼 줄줄 쏟아지기 시작한 이야기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지치지도 않는지, 거의 한 시간을 넘게 재잘거리던 레몬. 그녀는 작게 미소 지으며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재영을 보다가, 문득 자신이 너무 말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내 부끄러운 듯 새빨갛게 익은 얼굴로 말했다.
“어, 어머. 죄송해요. 제가 말이 너무 많았네요. 너무 신이 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아니에요. 뭐…… 나름 재미있는 일이 많았네요.”
괜찮다는 듯이 씩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재영. 그런 그에게 애플이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저…… 그런데 덱스 님. 저희는 왜 부르신 건지……?”
“아, 그게요. 부탁하신 것들 좀 주려고요.”
“네? 부탁한 거요?”
자신들이 뭘 부탁한 게 있냐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되묻는 애플. 그런 그의 물음에 재영은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쿠웅.
거대한 굉음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새하얗고 거대한 물체.
그것을 본 애플과 레몬은 경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이, 이건?”
“세상에나…….”
재영은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은 그 둘에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저번에 쪽지로 보내셨잖아요. 드래곤 잡고 팔 거 있으면 파이 상단을 이용해 달라고요.”
뻥 뚫려 있는 눈두덩이. 강철마저 씹어 먹을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
2층짜리 건물만 한 크기의 레드 드래곤 케르베니안의 두개골.
그것을 내려놓으며 그는 말했다.
“이것 좀 저 대신 처분해 주세요. 가격은 적당히 비싸게만 받아 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