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내 대학 동기는 진짜다
첫 학기가 시작된 재영.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새내기로서 두근거림을 안고 학교에 들어선 재영은 재균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교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거 알아? 아르카디아로 돈을 벌 수도 있어! 1골드에 지금 10만 원 정도나 하거든!”
“그래?”
“어! 물론 골드 버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아. 퀘스트 깨도 돈을 그렇게 많이 주는 게 아니라서…….”
오픈 초기라 플레이어들의 역량이 낮은 상태. 재균도 골드를 그렇게 쉽게 벌지는 못하는지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밝은 얼굴로 말했다.
“아! 근데 요즘 채광이 돈을 벌 수 있다고는 해! 하루 수입이 1골드 80실버 정도인데, 현금으로는 18만 원 정도야! 대단하지 않아?”
재균의 말에 재영은 뜨끔했지만, 애써 혼신의 연기를 펼치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오…… 그렇게 많이 벌 수 있어? 진짜 대단하긴 하네…….”
“응! 그래서 나도 한번 채광하러 가 보려고. 거리가 조금 있긴 한데, 그 정도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지.”
“…….”
재균의 말에 재영은 조금 난감해졌다. 게임을 안 한다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학교에서 사귄 첫 친구가 제 발로 노예 계약을 맺으러 찾아가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재영이 애써 그를 말렸다.
“그런데 그거 너무 이상한데……?”
“응? 뭐가?”
“생각해 봐. 하루에 벌 수 있는 수입이 18만 원이라면 한 달 동안 꼬박 일하면 540만 원이야. 일반 직장인의 자그마치 2배에 달하는 수입이라고.”
거의 대기업 과장이나 부장급은 되어야 통장에 찍힐 수 있는 금액. 그것을 그저 게임 속에서 곡괭이질을 한다고 창출해 낼 수 있는 수입으로 보는 건 너무 비정상적이었다.
“그건…….”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 그래도 저 정도면 진짜 개나 소나 다 달려들 텐데 그러면 이 상황이 오래갈 수 있을까?”
“…….”
돈에 이성이 마비된 사람이 아니라면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 봐도 떠올릴 수 있는 생각. 재영의 상식적인 의문에 재균의 가슴속에는 자그마한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게…… 네 말을 들으니 뭔가 이상하긴 하네…….”
살짝 께름칙해졌는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재균. 그런 그를 보며 재영은 관심 없다는 투로 말했다.
“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긴 한데, 그래도 조금 더 지켜봐. 괜히 헛걸음하는 것보다는 일단 그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재영의 진심 어린 조언에 재균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야겠다. 어차피 거품이라면 금방 꺼질 텐데, 차라리 그 시간에 사냥해서 레벨이나 올리는 게 낫긴 하겠다.”
그래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지, 금방 포기하는 재균을 보며 재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오늘도 한 사람의 영혼을 지켰네.’
미하일 남작의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영혼을 팔아넘긴 노예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재영은 묘한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도 괜히 주변의 아는 사람 중 한 명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지는 걸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 당사자가 철천지원수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 교수님 오셨다.”
재균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강의실 안으로 들어온 김태훈 교수. 그의 등장에 강의실은 금방 조용해졌고, 김태훈 교수가 쾌활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서민 대학교에 입학한 모두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대학생이 된 후 시작된 첫 수업. 그 뜻깊은 순간을 축하하는 교수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는 묘한 뿌듯함이 작게 일어났다. 서민 대학교가 그렇게 좋은 학교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두 수시이든 정시이든 열심히 노력하고 들어온 곳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이후에 이어진 김태훈 교수의 말은 처참하게 이들의 자부심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이곳에 입학한 이상 여러분의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
“……?”
“……?!”
황당함에 물든 학생들의 얼굴. 마치 얼굴로 ‘저게 도대체 뭔 개소리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 학생들의 표정을 쓱 둘러보던 김태훈 교수는 이내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이 이번에 저에게 들을 ‘컴퓨터의 구조’라는 과목, 이 수업에서 여러분은 어떤 것들을 저에게서 배우고 얻어 갈 생각입니까? 거기 앞의 남학생, 한번 대답해 보세요.”
“저, 저요?”
깜빡이도 없이 들어와 던지는 질문. 그 물음에 화들짝 놀란 남학생이 진땀을 흘리고 있을 때, 김태훈 교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에게는 일전에도 말했지만, 여러분이 안주하고 있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 필요한 지식을 알려 주고 개개인의 능력을 함양시켜 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상현실.
일전에 컴퓨터 공학과 학생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해 댔던 김태훈 교수. 다른 교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어느 교수보다도 더 예민하게 세상의 변화에 반응하는 그는 보는 사람이 무서울 만큼 극렬했다.
“왜 아직도 현실을 모르는 겁니까!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듣다가 학점이나 대충 받고 졸업하면, 그건 그냥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식충이가 돼서 나가는 거라고요! 여러분 모두 그냥 대학교 졸업장만 받은 멍청이가 돼서 나갈 겁니까!”
탕탕탕.
흥분했는지 책상까지 연신 내리치며 소리치는 김태훈 교수. 그런 그의 반응에 강의실의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앞에서 그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남학생은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앞으로 저의 모든 수업은 이전의 컴퓨터 기술에 대해서만 안주하지 않을 겁니다! 가상현실에 대해서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내용부터 최근 쏟아지고 있는 관련 논문들까지, 그 어느 하나 가리지 않고 연구하고 여러분에게 가르칠 겁니다. 그러니…….”
차가운 눈빛으로 말꼬리를 흐리는 김태훈 교수.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살기마저 맴돌고 있었다.
“혹시라도 어디서 과제를 베껴서 낸다거나 대충 한다거나 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다해 저의 노력을 넘어서는 여러분만의 결과물을 보여 줬으면 좋겠군요.”
그러면서 김태훈 교수는 지나가듯이 혼잣말을 흘렸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사전에 졸업이란 없을 테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가 열성적이고 유능한 상사라고 했던가? 학구열에 불타오르는 교수가 학생들에게 가지는 관심마저 엄청나니 그 시너지 효과는 장난이 아니었다.
‘학교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겠네…….’
왠지 불길함이 가득 밀려오는 재영이었다.
* * *
“와…… 진짜 교수님 너무 무섭지 않아?”
첫 수업이 끝난 후. 재균이 핼쑥해진 얼굴로 몸서리쳤다. 오리엔테이션인 첫날부터 2시간을 가득 채우며 수업을 한 김태훈 교수. 그것도 모자라 과제까지 2개나 준 것을 생각하면 그의 반응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러게…… 조금 심하긴 한 것 같은데…….”
“아니, 저번 오티 때 이번 학기는 그냥 예전처럼 한다고 했으면서!”
약속과는 다르다며 투덜대는 재균의 말을 들으며 강의실을 나가 걷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재균아!”
“음……? 어……! 너!”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재균, 그게 누구인지 확인한 재균은 깜짝 놀란 듯 동그래진 눈으로 입을 쩍 벌렸다.
“잘 지냈어? 진짜 오랜만이네! 학교 졸업하고는 처음이지?”
검은 생머리의 청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한 여자애가 미소를 띤 얼굴로 재균을 바라보며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한 표정으로 재균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남학생도 함께 있었다.
“으, 으응…… 오랜만이지…….”
정말 당황한 얼굴로 말도 제대로 못하는 재균. 하지만 재영은 당황한 그의 모습이 여자애 때문에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옆에 있는 남자애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이, 재균. 요즘 잘 지내? 학교 졸업하더니 아예 연락도 안 받네? 연락 좀 하고 살아라.”
비웃음이 가득한 어조. 그런 그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재균. 그 반응을 보며 피식 웃던 남자애는 이내 재균의 머리를 툭툭 치고 말했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한번 따로 보자고. 우린 다음 강의 시간이 다 돼서 먼저 가 볼게.”
“재균! 문자 보낼게! 꼭 나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손을 흔드는 여자와 그와 대비되게 재균을 노려보는 남자. 너무 대비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쳐다보다 재영이 재균에게 물었다.
“저 애들은 누구?”
“응? 아…… 고등학교 때 친구들…….”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 보통 대학교에서 같은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난다면 반가움의 감정이 들겠지만, 재균의 반응에서는 그러한 감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친해?”
“……그게 좀 복잡해.”
뭔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 그 낌새를 눈치챈 재영이 재균을 배려하며 말했다.
“뭐 굳이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 괜히 마음 쓰지…….”
“아까 여자애는 채연이라고 해. 남자애는 태수고.”
“…….”
그렇게 재균이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마치 지금껏 말하지 못해 가슴속에 쌓인 울분을 토해 내듯 오래도록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재영은 괜히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을 했다며 속으로 깊이 후회했다.
“그러니까…… 채연이란 애는 엄청 착하고 너한테 잘해주는 친구고, 태수라는 애가 채연이를 좋아한다고?”
“응.”
“근데 태수는 채연이가 너한테 잘해 주는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자꾸 걔가 안 보이는 곳에서 너를 계속 괴롭혔고?”
끄떡.
무언가 있을 법한 고등학교의 치정 이야기. 어려운 속사정은 아니었지만, 이해가 안 가는 점이 하나 있었다.
“근데 채연이는 너한테 왜 잘해 주는 거야?”
딱 보기에도 객관적으로 예쁜 외모에, 인기가 많을 법한 채연. 그런 그녀와 비교해서 재균은 그저 평범한, 아니 나쁘게 말해 찐따에 가까운 남학생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재균도 아니고 채연이 먼저 재균에게 관심을 준다는 건 재영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그건…….”
“그건……?”
재영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가득한 재균. 부끄러운 듯 새빨개진 얼굴의 그는 빤히 바라보는 재영에게 말꼬리를 흐리며 답했다.
“그게…… 친구가 없어 보여서 불쌍하다고…….”
“와…….”
정말 듣기만 해도 자존심이 바닥을 넘어 지하실로 처박히게 될 것 같은 이유. 재영이라면 비참해지니까 그냥 관심 끄라고 할 것 같은데 재균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뭐야? 너는 혹시 아까 그 여자애 좋아하는 거야?”
“…….”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는 재균. 재영은 아무 생각 없이 한 질문이었지만, 그의 반응을 보며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엥? 진짜 좋아하는 거야?”
“아! 쫌!”
마치 누가 들을까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며 애써 입을 막으려는 재균의 반응을 보며 재영은 황당함에 입을 차마 열지 못했다.
“야…… 그러면 최소한 저 태수라는 애한테는 당당히 맞서야 하는 거 아냐? 애초에 걔도 채연이를 좋아한다며?”
서로 친한 건지 우연히 강의를 같이 듣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이 딱 붙어서 떠나는 모습을 보면 이미 연애 경쟁에서 한참은 뒤떨어진 것 같은 재균이었기에 재영이 말했다.
“근데 태수는 돈도 많고…… 잘생겼고…… 몸도 좋고…… 옷도 잘 입고…….”
마치 자아 성찰이라도 하는 듯, 자신보다 태수라는 남자애가 잘난 점을 하나씩 늘어놓으며 어두운 표정을 짓던 재균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같은 놈을 채연이가 좋아해 줄 리가 없잖아.”
“…….”
듣기만 해도 기운 빠지는 소리. 재영은 도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이내 문득 왜 남의 연애 전선에 간섭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냥 재균에게 소리쳤다.
“아, 몰라! 그냥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인연이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는 거고, 세상에 여자는 많아! 언젠가는 네 짝을 만나겠지!”
그렇게 그 둘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하지만 재영은 몰랐다. 그저 진짜(?)인 재균의 재능과 잠재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이 망할 연애 고자의 짝사랑에 얼마나 많이 엮이게 될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