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23
223화 검은 팬티의 진격 (2)
아르카디아 제2대륙의 동부를 지배하던 패자, 하르멜 제국.
오랜 악연으로 엮인 바말 제국을 시작으로 대륙 전체를 집어삼키려던 이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예기치 못한 세력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끼아아아아앙! 죽어라!”
퍼퍼펑. 콰콰콰쾅.
하나같이 검은 팬티를 어딘가에 싸매고는 무지성 돌격으로 달려드는 의문의 모험가들. 하지만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그들이 쏟아 대는 엄청난 수의 광역 공격들에 하르멜 제국군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반격! 반격하라!”
“물러서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쟁의 베테랑인 하르멜 제국의 정예들. 아무리 덱팬무가 유저들 중에서는 수준이 높은 이들만 모였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능력치로는 이들보다는 약했기 때문에 한번 전투를 경험해 본 이들은 희망을 엿보았다.
“겁내지 마라! 이놈들…… 수만 많지 허수아비 같은 놈들이다! 모조리 죽여라!”
단순한 칼질 한 번에 회색빛으로 물들며 쓰러지는 덱팬무들. 저들이 오합지졸이라고 판단한 하르멜 제국군의 지휘관들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담아 외쳤다.
“하르멜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결연함으로 물들며 비장하게 외치는 하르멜 제국군.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무지성으로 달려드는 덱팬무 역시, 밀리지 않겠다는 듯 한껏 진지한 얼굴로 소리쳤다.
“검은색을 위하여!”
“덱스 님의 팬티 브랜드를 알아야 해! 방해하지 마!”
제국의 영광과 팬티 브랜드(?)를 위한 싸움.
그렇게 시작된, 어느 이름 모를 평원에서 벌어진 하르멜 제국군과 덱팬무의 전투. 이 전투는 확실한 승자를 남기지 않고 엄청난 피로 평원을 물들이며 끝났지만, 각자의 신념과 명분에 따라 모든 것을 내바치고 화려하게 모든 것을 불태웠던, 가슴이 절로 웅장해지는 그런 전투였다.
그리고 그 전투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지켜본 이들은 각자의 소감을 한마디씩 남겼다.
-아앗…….
-저 미친놈들이…….
-한쪽은 제국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데 한쪽은 팬티 브랜드 갖고 싸우네……. 염병.
* * *
덱팬무와 하르멜 제국군의 첫 번째 충돌.
그것을 보고받은 드미트리 황자는 분노를 참지 못하며 책상을 내리쳤다.
콰앙.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정예군 전력의 30%를 잃었다니!”
최후방에서 제국군을 지휘하고 있는 드미트리 황자. 그는 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변에 엄청난 전력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전령을 들볶는다 하더라도 이미 벌어진 뼈아픈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페른 성채의 점령을 막아섰던 모험가들이 대규모로 결집했습니다. 추정이지만…… 70만에 달하는 모험가들이, 바말 제국을 방어하는 것을 넘어서 하르멜 제국을 향해 진군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70만……?”
갑자기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70만이라는 병력. 아무리 대륙 곳곳에서 수천만에 달하는 모험가들이 살아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70만 명이라는 수가 하나로 모이는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드미트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에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흉물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엠 상단! 지엠 상단주는 어디 갔는가!”
모험가들에 대한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지엠 상단주. 드미트리는 막사 안에 모여 있는 수많은 인파를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지엠 상단과 관련된 인원은 없었다. 그리고 참모 하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일전에 내리신 지시로 휘하 병력들을 시켜서 찾고 있습니다만…… 자취를 감춘 것 같습니다. 지엠 상단주를 비롯해서, 지엠 상단에 소속됐었던 모험가들이 전부 보이지 않습니다.”
“뭐라고……?”
평소대로라면 어떻게든 떡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자신 주위에서 맴돌며 얼굴을 비추었을 그. 시기가 미묘한 상황에서 자취를 감추자 드미트리는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이를 빠드득 갈며 말했다.
“설마…… 이 모든 게 그놈들이 계획한 짓은 아니겠지?”
“그건 아닐 겁니다. 하르멜 제국에 의탁한 상태에서 우리가 지게 된다고 그들이 얻게 될 이익은 없으니까요.”
드래곤 본을 바치는 것으로 모자라 이번 전쟁에서 하르멜 제국의 승리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던 지엠 상단. 이번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건 드미트리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그의 생각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자취를 감춘 것은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긴 합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디에른 공작. 그의 말에 드미트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에게 명령했다.
“지엠 상단과 관련된 이들을 모조리 색출해라. 그리고 그들이 꾸미던 계획을 알아내고 그놈들의 상단주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그의 명령을 수행하러 몇 명의 병력이 막사 밖으로 나가고 나자, 드미트리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다시 자리에 앉아 말했다.
“그래서, 현재 전방의 상황은 어떻게 되는 거지?”
“지속적인 전투에 병력 손실이 극대화될 것으로 판단, 직접적인 교전을 피하고 현재 페이잘 영지에서 대치 중입니다만……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자칫하다가는 고립될 위험이 있습니다.”
일전에 점령했던 바말 제국의 영지 안에서 대치 중인 상황. 하지만 적의 규모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또 아직 점령하지 않은 영지도 많았기에 교전이 장기화되면 불리해지는 쪽은 하르멜 제국이었다. 그렇기에 드미트리는 지금껏 아껴 두었던 비장의 카드를 쓰기로 마음먹고는 명령했다.
“마탑의 지원 병력을 불러라.”
* * *
대규모 전장의 꽃이라고 불리는 마법사들.
엄청난 준비 시간과 막대한 마나를 필요로 하지만, 단 한 번의 마법만으로도 수백에 달하는 병사와 극한으로 단련한 기사의 목숨까지도 빼앗을 수 있는,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전략 병기들이었다.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전투 병단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고위 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마법 병단을 운용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대규모 병력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습니다!]그렇기에 하르멜 제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에서는 자체적으로 고위 마법사를 양산하기 위해서 엄청난 골드와 인력을 쏟아부었지만, 그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비루했다.
[고위 마법사가 탄생하는 데 필요한 것은 골드가 아니오. 개인 스스로의 치열하고 끈질긴 연구. 그리고 다른 마법사 동료들과의 심도 있는 토론과 지적인 교류 속에서 얻는 깨달음. 또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아 올린 선대 마법사들의 지식의 상아탑 속에서 진정한 대마법사가 탄생하는 것이오.]마법에 관해서라면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독보적인 발전을 이룩해 낸 마탑. 이들은 엄청나게 폐쇄적으로 자신들이 쌓아 올린 정보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마법사들은 좋으나 싫으나 마탑에 소속될 수밖에 없었다.
“쩝……. 어쩌겠는가?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부할 마법서가 없으면 끝인데.”
“아무리 제국의 지원이 좋다고는 하지만…… 4서클이 한계인 것 같군.”
그렇기에 하르멜 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는 자체적으로 경지가 상대적으로 낮은 하급 마법사들은 양산해 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고위 마법사들의 양산은 실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 마탑은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위치를 공고히 하며 그 위상을 우뚝 세울 수 있었다. 하르멜 제국에게 막대한 양의 드래곤 본을 약속받아 이번 전쟁에서 힘을 빌려주는 갑의 위치에 서며 말이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전쟁에서 손떼라니요!”
앙칼진 목소리로 통신 수정구에다 소리치는 6서클 마법사 제이미. 그녀의 당혹스러운 물음에도 불구하고 수정구를 통해 들려오는 푸른 마탑의 수장, 갈라이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했다.
[5대 마탑 전원이 합의한 사항이네. 하르멜 제국과 체결한 계약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기에 이전에 맺었던 계약을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네.]“중대한 문제요? 도대체 그게 무슨……?”
드래곤 본을 나눠 준다는 말에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어 계약서에 서명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로 문제가 있다며 발을 빼려는 마탑의 결정을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던 드래곤 본의 주인이 따로 있었네.]“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황당한 표정으로 되묻는 제이미. 하지만 갈리아는 사실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미 그 주인하고 만나 이야기했네. 그 드래곤 본을 하르멜 제국으로부터 온전한 상태로 찾아서 돌려주면 그에 대한 보상을 따로 하기로 말이야.]“보상이요……? 아니, 잠깐만요. 드래곤 본을 그냥 돌려준다고요? 온잔한 상태 그대로?”
다른 것도 아니고 자그마치 드래곤 본.
그것도 사이좋게 5대 마탑이 나눠 가져도 될 엄청나게 많은 양이었기에, 그것을 모조리 포기하고 본래 주인한테 되돌려 주겠다는 갈리아의 말에 그녀는 미친놈 보는 듯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마탑주님, 본래 주인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자그마치 드래곤 본이에요.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의. 그걸 그냥 돌려주겠다고요?”
정상적인 마탑의 일원이라면 절대 납득할 수 없는 결정. 차라리 드래곤 본을 모조리 꿀꺽하고 욕을 처먹는 게 나았지, 그걸 그냥 돌려준다는 사실은 그녀로서도 납득할 수 없었기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보상으로 8서클 마법서를 주겠다더군. 그것도 2권이나.]“네……? 뭐요?”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히죽거리며 말하는 갈리아의 말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8서클.
마탑의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초월적인 경지.
드래곤이 허락하지 않은 경지이기에, 드래곤의 제자들이 남긴 일부의 흔적들만이 존재할 뿐. 마탑 그 어디에도 온전한 상태의 8서클 마법사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갈리아의 말에 제이미의 얼굴에는 불신이 가득해졌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네. 8서클 마법서의 존재는 우리 마탑만이 아니라 다른 마탑들도 공식적으로 확인한 사항이니까. 거짓이라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좋을 거야.]“그, 그럼 정말로……?”
최초의 8서클 마법서.
물론 그것을 이해할 정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고작 6서클의 마법사인 그녀였지만, 상위의 개념과 지식만으로도 크나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아는 그녀의 얼굴에는 흥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그 마법서들을 온전히 우리 마탑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서로 돌아가면서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공유하며 공동 연구 하기로 합의를 보았네.]5대 마탑주가 한데 모여 극적으로 이룬 합의. 나름 평화적으로 마법서를 돌려 보기로 했기에 갈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거기 황자한테 관련 계약을 파기한다고 통보하고 후딱 철수해.]“알겠어요.”
아까의 불만은 어디 가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대답하는 제이미. 그런 그녀에게 갈리아는 까먹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 참. 그러는 김에 하르멜 제국에게 마탑들의 입장을 하나 더 전달해 주겠나?]“마탑들의 입장이요?”
수정구 안에서 양피지 무더기를 이리저리 뒤적이는 갈리아. 그런 그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던 제이미는 이내 그가 하나를 꺼내 드는 것을 보았다.
[방금 작성한 성명문…… 아니, 경고문이라고 해야겠군. 아무튼…… 하르멜 제국에게 전달할 건데 미리 언질 좀 해 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뭔데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는 제이미. 그런 그녀에게 갈리아는 목을 가다듬고는 조금 전 작성한 5대 마탑들의 입장을 읽기 시작했다.
[에…… 5대 마탑은 이번에 벌어진 하르멜 제국과 바말 제국의 전쟁과 이로 인해서 벌어진 불필요한 생명의 희생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또한…….]이번 전쟁에 대한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유감과 우려를 표하면서 시작하는 마탑들의 입장문. 온갖 잡다한 미사여구가 가득한 성명. 그리고 이 교장 선생님 훈화 같은 지루한 성명문의 마지막에는 이들이 하르멜 제국에 하고 싶었던 진짜 본론이 담겨 있었다.
[이번 전쟁을 일으키게 된 경위에 대한 자체적인 조사를 벌인 결과, 하르멜 제국이 최근에 습득한 드래곤 본이 부정하게 약탈된 물건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5대 마탑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제국의 드높은 영광과 명예를 실추시키는 비열한 행위에 대해 깊은 실망을 느끼며 이를 규탄한다.]자신들에게 장물을 가지고 거래하려고 했던 것에 대한 괘씸죄에 대한 규탄과.
[이에, 5대 마탑은 하르멜 제국에게 온전히 그 훔쳐 간 드래곤 본을 본래 주인에게 되돌려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한다. 5일 내로 위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5대 마탑은 대륙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대륙 전체의 보물인 드래곤 본을 명예롭지 못한 자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번 전쟁에 개입할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8서클 마법서를 얻기 위한 이들의 공갈 협박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