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제국의 몰락 (4)
평화적인 방법으로 드래곤 본을 탈환하라는 여섯 번째 미션.
저 대륙 동부에서 제국의 존망을 건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사이, 덱스는 마룬 왕국에 머물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포일 민어를 낚았습니다.] [길이 14cm. 등급: F]“흐음……. 역시 낚시는 어딜 가든 극악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스킬이네. 시간 대비 상승률이 너무 낮아.”
벌써 일주일도 넘는 시간 동안 낚시를 즐기고 있는 재영. 온종일 낚시를 하며 그가 낚은 여러 잡다한 물고기와 아이템들은 많았지만, 그의 낚시 스킬은 이제 고작 D랭크에 도달했을 뿐이었다.
“어이, 주인.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이야?”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자 주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 마치 태공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난세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를 보며 탄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소리쳤다.
“지금 대륙 동부는 완전 난리가 났다고! 거의 모든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여기서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 낭비 하고 있을 참이야?”
혼돈, 파괴, 파멸을 외치며 당장에 달려가 전장을 휘저어 적들을 쓸어버려도 모자랄 판에, 아무것도 안 하느니만 못한 물고기 잡이에 매진하고 있는 재영. 그는 탄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남 일 이야기 하듯이 말했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번 문제는 평화적으로 해결할 거라고.”
“아니!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렇게 하냐고! 주인은 원래 그런 인간이 아니었잖아!”
지금껏 재영의 옆에 붙어서 그의 플레이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지켜봐 왔던 탄. 그렇기에 그는 그 누구보다도 지금 재영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원래 주인 같았으면 당장에라도 하르멜 제국이랑 지엠 상단의 대가리를 깨부수러 달려 나가서 모조리 뒤집어엎어도 모자라면서, 왜 갑자기 평화롭게 이번 일을 해결하겠다는 거냐고? 혹시 저 망할 치킨 새끼가 나 모르게 딴소리라도 한 거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엘을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며 추궁하는 탄. 하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냉소적인 얼굴로 반응했다.
“뭐라는 거야? 이 멍청한 박쥐 새끼가.”
“맞잖아! 우리 주인이 그냥 저렇게 달라지는 게 말이 돼? 그 누구보다도 악랄하고, 사악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인간들을 엿 먹이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인데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정상으로 보여?”
평소에 재영을 바라보는 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발언. 그 말에 재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탄을 한번 째려보고는 낚싯대를 드리우면서 중얼거렸다.
“그런 거 아니니까 자꾸 쫑알거리지 마. 나도 미션 때문에 어쩔 수 없으니까.”
난세의 방랑가(Bard of Anarchy)에게만 부여되는 전용 퀘스트이자, 개연성의 주요 수급처. 그렇기에 재영의 입장에서는 미션의 내용이 좋든 싫든 가능하면 그에 맞춰 반강제적으로 플레이 해 왔기에, 지금 당장 그가 하르멜 제국에 찾아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미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탄과 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션……? 그게 뭐죠?”
“주인, 전부터 뭐 할 때마다 혼잣말로 미션 미션 하던데, 그게 도대체 뭔데?”
게임 시스템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는 탄과 엘. 그 둘의 반응을 보며 재영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내 말했다.
“음……. 너희가 말하는 사명 같은 거랑 비슷하다고 하면 되려나?”
“뭐, 뭐라고요?”
“사명……? 이런 미친! 주인한테 그런 것도 있었어?”
재영의 설명에 화들짝 놀라며 격렬하게 반응하는 탄과 엘. 하지만 재영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또다시 입질이 온 낚싯대를 붙잡고 물고기와 씨름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들 놀래?”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하는 재영. 하지만 그와 다르게 탄과 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당연하지. 일개 인간 따위한테 사명이라는 게 존재할 리가 없잖아.”
“사명이라는 건 아버지에게서 직접 부여받은 권능과 신성을 가진 존재들에게나 있는 것이에요. 인간 중에서는 교황이나 성녀 같은 이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인데 어떻게…….”
사명(使命).
태어날 때부터 막대한 권능과 신성을 부여받은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있는 것. 그들의 존재 이유이자 역할이고 또 강력한 족쇄이기도 한 이것이 태연하게 낚시나 하는 재영에게도 있다는 사실에, 탄과 엘은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 덱스 님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요.”
“뭐야, 그래서 내가 이딴 임프의 외형으로 끌려온 거였어? 어쩐지 내가 강제 계약으로 맺어질 짬이 아닌데 뭔가 이상하다 했다.”
창조주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으로 대충 이해하는 눈치의 둘. 방금 낚은 물고기를 갈무리하며 재영은 귀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 좀 그만 투덜대. 내가 원해서 그 망할 변태들한테 손 벌린 게 아니니까.”
그 누구보다도 덱팬무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덱스.
마음 같아서는 그들을 한데 모아 놓고 흔적도 없이 불태우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기에, 이 미션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재영이 이렇게 모두의 이목을 끌며 저들이 화려하게 빛날 수 있도록 할 리가 없었다.
[끼아아아앙!!! 검은색 팬티를 휘날리자! 동지들이여!]하르멜 제국의 어느 한 성채를 점령해 놓고는 검은 팬티를 휘날리며 광기 어린 함성을 내지르는 덱팬무들의 영상. 이게 아르팬디아 메인에 실시간 화제의 영상으로 걸려 있고, 그걸 수십억의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걸 상상하면 지금도 머리가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하……. 진짜 괜한 놈들한테 손을 벌린 건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건드려서는 안 될 놈들을 건드렸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오는 덱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탄이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물어 왔다.
“잠깐만……. 그래서 주인의 사명이 뭔데?”
“어? 내 사명?”
“엉. 주인이 이 아르카디아에서 부여받은 역할이 정확히 뭐야?”
이 게임 속에서의 역할이 뭐냐고 물어 오는 탄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재영은 잠깐의 생각에 잠겼다.
아르카디아의 창조주.
탄과 엘이 아버지라 부르는 존재는 이 안에서는 모두에게 경외시되는 신적인 존재이겠지만, 이 모든 세상이 가상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허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재영에게는 달랐다.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
그리고 그는 숨겨진 퀘스트를 통해서 재영을 난세의 방랑가로 전직시키면서 속삭였다.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깽판 쳐 보세요. 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진심으로 기대된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들려 왔던 목소리.
그리고 그 이후 난세의 방랑가로 플레이를 하며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본 재영은 비로소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깽판…….”
“응? 주인, 방금 뭐라고 했어?”
“네……?”
마치 자신이 들은 게 맞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 탄과 엘. 그런 그 둘에게 재영은 다시 한번 똑똑히 소위 창조주라고 불리는 이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말해 주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깽판을 치는 게 내 사명이라고.”
“…….”
“……?”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는 탄과 엘. 그리고 이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눈빛으로 돌아서서, 물고기를 낚는 재영을 향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소리쳤다.
“그딴 사명이 어딨어!”
* * *
아르카디아 동부에 난립하던 수많은 세력을 모조리 정복하고 탄생한, 수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륙의 패자로 군림했던 하르멜 제국.
그 어떤 왕국보다도 호화롭고 찬란하게 세워진, 영광스러운 곳이자 명예로운 제국의 심장인 황성에 이들이 원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5대 마탑의 대표자이자 최고 마법 위원회의 의장, 푸른 마탑의 마탑주 갈리아.
‘덱스의 팬티는 무슨 색?’ 길드의 마스터이자 검은 팬티의 수호자, 아더.
바말 제국의 제일 검이자 바말 제국군을 전부 지휘하는 사령관, 길더스 공작.
하르멜 제국군을 모조리 쓸어버리며 어느새 수도를 코앞에 둔 곳까지 당도한 연합군. 이들의 거침없는 진격 속도에 경악한 하르멜 제국은 결국 백기를 내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극적으로 타결된 평화 협상. 이 평화 협상을 위해서 하르멜 제국의 황성으로 찾아온 이 셋을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하르멜 제국의 재상인 마이어스 공작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긴장한 채로 기다리고 있었는지, 문 앞에서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마이어스 공작. 그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어딘가로의 안내를 시작하자 갈리아는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황제가 직접 나설 줄은 몰랐군. 병세가 심각한 상황인 거 아니었나?”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말을 아끼는 마이어스 공작의 뒤를 따라서 고풍스러운 회의실에 당도한 세 사람. 이들은 이미 도착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수척한 얼굴의 하르멜 제국의 황제를 보고는 속으로 침음성을 삼켰다.
‘으음……. 생각한 것보다 심각하군.’
‘완전 해골이네…….’
‘이 정도면…… 정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군.’
보기만 해도 이미 죽음이 드리운 것 같은 하르멜 제국의 황제. 이번 사태로 제국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는지, 그의 상태는 훨씬 더 위중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그렇게 각자 머릿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하르멜 제국의 황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이번 하르멜 제국의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본 모든 이에게 내가 직접 사과하지. 내 자식의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잘못된 결정으로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네.”
냉혹한 카리스마로 제국 전체를 통치하던 철혈의 황제가 직접 사과를 건네는 이례적인 상황.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이것도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마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는 한없이 모자랐다.
“그런 사과로 이 모든 일이 없었던 일로 될 거라 생각합니까?”
분노와 살기가 잔뜩 뒤섞인 눈으로 으르렁거리는 갈리아. 그런 그의 물음에 황제는 끄덕였다.
“물론, 그렇다고 제국이 죽인 마탑의 소중한 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
그 말에 침묵하는 갈리아. 그런 그에게 황제가 먼저 물었다.
“5대 마탑이 피의 복수를 원한다는 건 알고 있네. 어떻게 하면 그 분노가 조금이라도 사그라들겠나? 내 목숨으로라도 잠재울 수 있다면, 기쁘게 내놓도록 하지.”
“……?!”
“예……?”
“…….”
자신의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겠다며 말하는 하르멜 제국의 황제. 그의 말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마이어스 공작 역시 예기치 못한 상황이었는지 기겁하며 소리쳤다.
“폐, 폐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
하지만 황제는 그런 주변의 반응에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말했다.
“어차피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몸이네. 내 목숨 하나로 다른 제국민들을 살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생각이네.”
이미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듯한 하르멜 제국의 황제. 그런 그의 반응에 갈리아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깐의 고심 끝에 말했다.
“우리의 복수에 당신의 피는 필요하지 않소. 다만…… 드미트리 황자와 그를 따르던 귀족들의 목은 필요할 것 같군.”
마탑의 마법사들을 무참하게 죽인 이번 일의 주요 책임자들의 처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갈리아. 그의 살생부 맨 위에 자신의 첫째 아들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황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하르멜 제국 역시 관련자들의 신병을 넘기는 데 최대한 협조하겠네.”
“그리고 훔쳐 간 드래곤 본도 넘기시오. 본래 주인에게는 우리가 되돌려 주도록 하지.”
“알겠네.”
그 이후에도 갈리아와 길더스 공작으로부터 수많은 요구가 오갔지만, 하르멜 제국의 황제는 그 어떤 무리한 내용에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최대한 수용했다. 이번 협상이 무산되는 것이, 하르멜 제국의 멸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뼈와 살을 내주면서 이번 전쟁을 마무리하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다했다.
“자네들은…… 우리 제국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어느 정도 마탑과 바말 제국과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덱팬무’의 수장인 아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기에 황제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번 전쟁에 그냥 참여한 것은 아닐 테고, 자네들이 우리 제국에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빨리 이번 전쟁의 청구서를 꺼내 보이라는 하르멜 제국의 황제. 그런 그의 말에 아더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말했다.
“덱스의 팬티 브랜드.”
“뭐라……?”
“……?”
“……?”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회의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멈춰 있는 이들 사이에서 아더는 100만의 덱팬무 길드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있는,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업계 포상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덱스의 팬티 브랜드가 우리 덱팬무의 요구 조건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