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6
26화 광산 노예의 눈물
고독한 성기사, 베르하이머.
그에게 부여된 칭호대로 언제나 홀로 활동했기에 아무도 그의 이름도, 그의 업적도 기억하는 이가 없는 성전사이다. 하지만 악마들에게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존재였다.
[망치 나가신다! 이 빌어먹을 악마들아!]거대하고 묵직한, 타락한 악마들의 검은 피에 그야말로 절여지다시피 한 흉측한 거대 망치를 한 손에 들고, 또 다른 손에는 신성력으로 만든 무형의 방패를 든 성전사.
악마들의 뚝배기를 단숨에 박살 내는 데빌 브레이커(Devil’s Breaker). 베르하이머라고.
[천상의 존재가 플레이어의 몸에 깃듭니다.] [일시적으로 깃든 존재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이건…….”
파지지직-
몸 안에 끓어오르는 미증유의 힘. 듣도 보도 못 한 거대한 망치가 들려 있는 자신의 손을 보며 재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왜 하필 소환해도 저딴 놈인데?”
“오? 누군지 알아?”
“장난하냐? 지옥의 악마 중에서 저 또라이 모르는 놈이 있겠냐? 얌전히 있던 악마들, 지옥으로 제 발로 찾아와서 죄다 저 망치로 뚝배기 박살 내고 다니는 미친놈이었는데!”
악마들의 시각에선 무단 침입도 모자라 연쇄살악(?)을 저지른 희대의 흉악범일지 몰라도, 천사들에게는 그야말로 자신들의 정의를 대신해 준 영광스럽고 정의로운 어린양이 아니겠는가? 방방 뛰며 탄이 ‘저런 놈이 진짜 지옥 가야지!’라고 소리쳐도 결국 죽어서 천국으로 간 베르하이머는 다시금 이 땅에 소환되었다. 재영의 몸에 깃든 형태로 말이다.
“취익…… 취익…… 인간…… 뭔가 달라졌다.”
“망치…… 그거 무서워 보인다.”
세 마리의 오크. 갑자기 한순간에 뒤바뀐 재영의 모습에 어지간히 당황한 듯, 서로를 돌아보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오크 하나가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내던졌다.
“취익…… 선빵이 최고다……!”
까앙
눈 깜빡할 찰나에 날아든 손도끼. 아마 원래의 재영이라면 반응하지 못하고 타격을 받았거나 가까스로 피했을 정도의 속도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음…… 대충 이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망치를 들고 있지 않은 다른 한 손에 갑자기 생겨난 거대한 신성의 방패. 그 방패의 크기를 줄였다 늘렸다 조절하며 재영은 베르하이머의 스킬과 특성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는 의지를 발동합니다.] [신성의 방패가 전투 모드로 활성화됩니다.] [정의의 신념이 활성화됩니다.] [타오르는 여명의 불꽃이 활성화됩니다.]패시브 스킬과 버프 스킬들을 죄다 발동하며 급상승하는 방어력과 체력회복력. 그리고 그의 망치에 새하얀 성화(聖火)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오크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취이익…… 인간…… 무섭다.”
“다가오지 마라. 취익…….”
“그 망치…… 취익…… 아파 보인다.”
불꽃 망치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는 재영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오크들.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쳤지만 재영은 순순히 이들을 보내 줄 생각이 없었다.
“뚝배기 딱 대, 이 자식들아.”
* * *
[강신 스킬이 종료되었습니다.] [지속 시간과 플레이어의 행위에 대한 정산을 시작합니다.] [개연성 352가 소모되었습니다.]오크들과의 전투는 정말 싱겁게 끝났다. 가볍게 휘두른 망치 한 대. 그 한 대에 ‘깡’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지고는 회색빛으로 물들어 간 오크들. 마치 꿀밤 한 대씩 때려 주고 끝난 기분에 재영은 아쉬움에 입맛만 다실 수밖에 없었다.
“에휴…… 오랜만에 진짜 전투다운 전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치 똥 싸다 중간에 끊은 기분. 이 찝찝함도 그랬지만, 칼같이 뜯어 가는 개연성이 더 찝찝했다.
“아니, 개연성 모으기가 얼마나 힘든데, 고작 몇 분 사용했다고 개연성을 352나 가져가?”
오크 3마리 잡는 데 걸린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분. 물론 그 전에 능력치를 확인한다고 이래저래 뻘짓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10분도 강신 상태를 유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청구된 개연성은 그야말로 폭리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말이 되게 만드는 게 개연성이니까요. 덱스 씨는 모르겠지만, 덱스 씨가 소환했던 베르하이머, 그분은 강력한 힘을 가진 성자였어요. 그러한 힘을 이 땅에 온전히 불러내기 위함이니 전혀 비싸지 않은 수준이죠.”
결국은 ‘네가 강한 놈 소환하면 그만큼 뜯어먹어야지. 불만 있으면 약한 놈이나 소환하든가아.’라는 요지로 말하며 싱긋 웃는 미카엘. 그런 그녀를 보며 재영은 도대체 제대로 이 스킬을 사용하면 얼마나 많은 개연성을 뜯어먹으려는 속셈일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유용하긴 할 텐데…… 이건 아껴 써야겠네.”
스킬 자체의 성능은 활용성도 무궁무진하고 뛰어난 편이긴 하지만, 개연성 먹는 하마 그 자체. 그 때문에 진짜 죽기 직전이 아니면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재영은 스킬을 마음 깊숙한 곳에 봉인했다.
“어휴, 진짜 그놈의 개연성.”
재영은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탄과 엘, 그 둘을 살짝 흘겨보고는 투덜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째 어떻게든 개연성을 뜯어내려고 기웃거리는 영업 사원 두 마리한테 결국 골수까지 빨아 먹힐 것 같은 불길한 미래가 떠오르는 것 같은 그였다.
* * *
재영이 떠나간 헬븐 광산.
까앙 까앙-
그곳은 그 어느 때보다 수많은 유저와 인부로 가득했고, 매일같이 채굴되는 수많은 철광석으로 일대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어이! 거기! 곡괭이질 똑바로 안 해? 그렇게 해서 언제 할당량 채우겠어!”
물론 그곳에서 채광을 하는 유저 대부분은 본인의 자유의지에 반한 채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죽인다! 죽인다! 망할 게임사! 죽인다!”
“아오! 이게 게임이냐!”
“어흐흐흑…… 한 번만 봐주면 안 돼요? 제 친구들은 다 사냥하러 갔다고요.”
헬븐 광산 채굴에 관한 전속 계약.
이름도 긴 이 계약은 말도 안 되게 비싼 헬븐 광산의 이용료를 면제하고 공짜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단, 몇 가지 제한 사항과 위약 조항을 건 채로 말이다.
“여기 서명하시면 되고요, 그냥 채굴한 것들에서 30%만 수수료로 내면 돼요. 그리고 채굴한 광석들은 영지 내의 상인들에게 판매해야 하고요.”
“아. 그리고 계약은 기간이랑 할당량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아, 저는 기간을 추천하죠. 왜냐면 이 계약이 살짝 영주님의 특별 이벤트라서, 이때가 아니면 없을 거라…… 기간으로 하신다고요? 좋은 선택이네요. 1년 계약으로 할게요, 그러면.”
무슨 휴대폰 약정 계약 하듯, 게 눈 감추는 듯한 속도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계약. 이 계약에 직접 서명한 이들은 죄다 하나같이 헬븐 광산의 노예로 전락해 하루하루를 채굴 기계가 되어 보내고 있었다.
“이게 개인 과실이라는 게 말이 되냐고! 게임에서 누가 사기 칠 줄 알았냐!”
“맞아! NPC는 유저들을 도와줘야지, 반대로 등쳐먹는 게임이 어디 있냐고!”
물론 게임 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서명을 한 이들의 잘못도 크지만, 그렇다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는 유저들. 이들은 고객 센터에 항의도 해 보고 미하일 남작의 저택 앞에서 농성도 벌여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갈까…….”
고된 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누군가의 중얼거림. 하지만 그 말에 누군가가 질색하며 손을 휘저었다.
“아서라, 야. 차라리 게임을 접으면 접었지, 저번에 도망간 유저들 어떻게 됐는지 못 봤냐?”
“뭐, 어떻게 됐는데?”
“영주와의 계약 위반으로 탈주자 신세로 전락해서, 어떤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해도 범죄자 취급을 받으면서 구속돼서 다시 여기로 연행된다잖아.”
손으로 목을 쓱 그으며 그는 저 멀리의 한 유저를 가리켰다.
“저기 봐. 쟤처럼 되기 싫으면 얌전히 캐라고. 어차피 1년만 버티면 되는 거잖아.”
얼핏 보면 그냥 NPC로 보일 정도로 행색이 남루한, 발에 거대한 족쇄를 차고 있는 한 앳돼 보이는 통통한 소년이 연신 곡괭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어이! 도망자! 그렇게 해서 언제 풀려나겠어? 더 열심히 안 캐?”
감시자까지 붙어 있는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이제 중학생의 이중식이었다.
“끄흡……!”
딱 겉으로는 그저 한낱 초보 유저로 보이지만, 그는 놀랍게도 이 게임의 베타 테스터였다.
최초의 가상현실 유저이자 아르카디아 최초의 접속자. 하지만 지금은 그저 다른 사람과 같은 광산 노예로 전락한 그는 하루하루 눈물을 흘리며 철광석을 캐고 있었다.
“내가 미쳤지. 어차피 원래 이용하던 광산인데 그 돈 조금 아끼겠다고 이런 상황이…….”
원래 대장장이를 꿈꾸고 있던 중식. 그렇기에 헬븐 광산에서 원래부터 자주 철광석을 캐고 또 유명한 공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제작 스킬의 숙련도도 꽤 올린 그였지만, 갑자기 생겨난 비싼 입장료에 당황한 나머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노예 계약서에 제 발로 서명하고 말았다.
까앙 까앙.
접속을 안 하면, 그게 아니더라도 일일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자동으로 연장되는 계약. 결국 도망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중식은 야반도주를 결행했고, 그 결과 그는 칭호 하나를 얻고 말았다.
[헬븐 광산 제1호 노예]치욕적인 칭호까지 받으며 결국 게임 플레이 시간 전부를 철광석을 캐는 데 매진하던 중식. 그 노력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신들린 듯 곡괭이를 휘두르던 그의 눈앞에 갑자기 하나의 텍스트가 떠올랐다.
[채광 스킬이 5랭크로 상승했습니다.] [채굴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오랜 시간 채굴을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칭호, ‘끈질긴 광부’를 획득했습니다.] [가장 오래된 불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가장 오래된 불?”
지금껏 본 적 없는 메시지. 게임이 정식 오픈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채광을 해 오던 그의 스킬이 5랭크에 진입하는 순간 칭호를 획득했고, 또한 함께 날아온 알 수 없는 의문의 메시지. 그리고 그런 그에게 마치 실마리라도 주는 듯 하나의 문구가 스쳐 지나갔다.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철과 함께한 그대에게 가장 오래된 불이 호감을 느낍니다.]“……이게 뭔 소리야?”
아무런 설명도 내용도 없이 그저 누군가 관심을 가진다고 하고 끝나는 내용. 멍하니 허공을 보는 중식에게 감시자가 소리쳤다.
“어이! 또 농땡이야? 빨리 일 안 해?”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중식은 화들짝 놀라며 다시 곡괭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아르카디아를 관장하는 엘리스가 그의 플레이를 그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미하일 남작의 영지. 헬븐 광산. 특이사항 감지.] [히든 퀘스트 부여 조건, 일부 충족.] [관련 퀘스트, ‘신의 대장장이’의 단서 부여.] [플레이어, 나는야똥손. 감시대상 2급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