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치정극은 어려워 (2)
마룬 왕국.
아르카디아 제2대륙 중앙에 자리한 이 중소 왕국은 인접한 국가들로의 무역을 중개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었다.
“파켈 왕국에서 직접 들여온 향신료 팔아요!”
“싸다, 싸! 가엘 연방의 진귀한 유리 장식품 보고 가슈!”
“하르멜 제국으로 갈 상단은 오늘 출발합니다. 동행할 상인들 얼른 모이시오!”
대륙 전체에서 모여드는 진귀한 물건들과 마룬 왕국에 매장된 풍부한 자원들, 장인들의 손에 탄생하는 명품(名品) 장비들은 마룬 왕국을 먹여 살리는 주요한 경제적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마룬 왕국에 모여드는 전 대륙의 상인들, 이 상인들 사이에서 최근 이상한 소문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다.
“그 소문 들었나?”
“무슨 소문?”
“요즘 마룬 왕국과 파켈 왕국 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 둘이야 원래 서로 원수지간 아닌가? 뭘 새삼스레…….”
오래전부터 불구대천의 원수로서 서로 이를 갈고 칼을 갈며 증오하는 사이.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니었기에 콧방귀를 뀌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몇몇 상인들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니, 이번엔 정말 뭔가 이상해. 이번에 마룬 왕국에서 판매하는 병장기의 물량이 극도로 줄었어. 그리고 치솟은 곡물 가격만 봐도 무언가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
최근에 급등한 곡물 가격. 몇몇 대형 상단이 물량 자체를 싹쓸이해 가는 것을 보며 상인들 사이에서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는 기류가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아직 전쟁을 확신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럼 자네도 군수품으로 이참에 업종 전환이나 하게? 지금껏 만들어 놓은 유통망 다 버리고 전쟁상으로 돌아서게나. 자네 고객들은 나한테 넘기고.”
“그게 말이 되나? 그냥 이상하다는 말이지 뭐.”
확실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직감에 기대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는 상인들. 그렇기에 대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극소수의 상인은 아무도 모르게 물밑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상단주님! 바일 영지에서 생산되는 밀을 전부 저희 쪽에 독점으로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오렐 영지는?”
“아직 확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영주가 저희 제안에 긍정적입니다.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신경 잘 쓰고. 다른 상단들 움직임도 잘 주시해.”
“알겠습니다.”
마룬 왕국의 곡창지대라고 불리는 영지들을 돌아다니며 곡물을 전매하고 있는 상단은 ‘지엠 상단’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저…… 도련님, 아니 상단주님.”
“뭐야?”
“골드의 시세가 너무 올라서 자금 매입에 대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규모를 확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조금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아르카디아.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이 게임에서 돈 냄새를 맡은 이는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대기업 ‘지엠’이었다.
“헛소리하지 마! 지금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규모를 키워 놓으면 그 이상의 이익을 먹을 수 있다고. 힘들면 아버지 쪽에다 추가 자금 지원해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게…… 회장님께서도 그렇게 좋게 보시는 건 아니라서…….”
현 지엠 회장의 막내아들 최제규.
어릴 때부터 천덕꾸러기이자 사고뭉치로 취급받아 계승 서열 꼴찌인 그. 지금껏 방탕한 생활만 반복하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무엇이든 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눈 밖에 나갈 대로 나간 그에게 맡길 직책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놈이 지금까지 하다 내던진 직책이 몇 개냐? 사업 본부장, 상무, 부장, 팀장. 매번 하겠다고 해 놓고 온갖 깽판만 쳐 놓고 도망간 탓에 회사 내에서 네 평판이 어떤지 알아? 앞으로 우리 회사에서 네놈이 일할 자리는 없다!”
일하고 싶으면 딴 직장에서 알아서 취직하라는 회장의 지시가 떨어진 시기에 공교롭게도 한국에서의 서비스를 시작한 아르카디아. 제규는 우연한 기회로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해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여기다!”
또 하나의 세상이라 불려도 될 정도로 현실감 있는 세상과 열광하는 세계인. 그리고 끝도 없이 치솟는 골드의 시세와 거래량. 그것을 보며 제규는 지금껏 맡아 보지 못한 거대하고 강렬한 돈 냄새를 맡았다.
“아! 지원해 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해 줘야지, 뭐 얼마나 도와줬다고 벌써 그러는 건데!”
“이미…… 투입된 자금만 80억입니다.”
“…….”
상상 이상의 자금에 제규도 살짝 민망했는지 입을 다물었다. 게임에 문외한인 그의 아버지가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80억을 썼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그, 그렇지만 이번 일은 엄청 중요하다고! 너도 알잖아! 이게 만약 계획대로 되면 벌어들일 수익이 얼마나 큰지!”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베르헨 공작의 영지에 둥지를 튼 지엠 상단. 엄청난 현금을 투입해 획득한 골드를 이용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해 나가며 공작의 눈에 띈 지엠 상단은 그야말로 천운과도 같은 기회를 얻었다.
“요즘 들리는 바에 의하면 우리 영지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상단이 자네들이라 하던데…… 나는 자네들 같은 유명세가 적은 상단이 필요하네.”
갑자기 공작의 부름을 받은 제규.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그에게 공작은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곧 전쟁이 일어날 예정이네. 그 뿌리 깊은 원한을 해결하고, 마룬 왕국을 더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일이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상단들의 주목을 최대한 받지 않으며 파켈 왕국으로 흘러 들어갈 곡물의 공급을 최대한 끊고 마룬 왕국에 곡물을 비축할 상단. 베르헨 공작은 그러한 역할을 할 상단으로 지엠 상단을 점찍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곡물을 최대한 사들이게. 가격은 제대로 쳐 주지. 그대들은 그저 조용하게,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기만 하면 되네.”
마룬 왕국의 권력자가 내미는 손. 그것도 엄청난 이익이 동반될 것이 확실한 일이었기에 재규는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이 일을 맡겨 달라고 머리 박고 사정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려서 자금 지원을 더 부탁해! 나중에 갚으면 될 것 아냐!”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접속을 종료하는 그의 수행 비서. 제규는 회장인 그의 아버지에게서 어떠한 대답을 받아 올지 기다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비축한 곡물을 다 처분하고 나서 벌어들일 이익도 이익이지만…… 베르헨 공작이 권력을 잡으면…….”
노쇠한 국왕 때문에 허수아비 신세가 된 마룬 왕국의 왕실. 제규는 베르헨 공작이 권력을 잡고 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많은 이권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교통의 요충지이자 대륙의 연결로 역할을 하는 마룬 왕국. 지엠 상단은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 그 어느 상단보다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경이적인 이익을 앞세워 모두에게 증명해 보일 것이다. 그가 그저 방탕한 망나니가 아니라 유능한 로열패밀리(Royal Family)의 일원이라는 것을.
* * *
제규가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켜고 있을 때, 재영은 보로켄 백작과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미하일 남작이 보냈다고?”
보로켄 백작의 응접실. 추천서를 들이밀며 찾아왔지만, 보로켄 백작은 추천서를 열어 읽어 보고는 묘한 눈빛으로 재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미하일 남작이 그대를 왜 나에게 보낸 건가?”
깜빡이도 없이 들어오는 질문. 재영은 그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죠. 그냥 가 보라던데요?”
그에게 ‘어떻게 사기 치면 가만히 앉아서 노예를 만 명이나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마 미하일 남작이 왜 그에게 감명을 받은 것인지 말할 수 없었기에 재영은 즉답을 피했다.
“미하일 남작은 자네가 유능하니 이번 전쟁을 막기 위한 여러 조언을 들어 보라고 하더군.”
“그런가요?”
도대체 미하일 남작이 추천서에 자신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알 법이 없기에 재영은 말을 아꼈다. 그러자 보로켄 백작은 여전히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재영에게 물었다.
“대충 미하일 남작에게 상황은 들은 것 같은데…… 혹시 뭐 좋은 방법이라도 생각해 둔 게 있나?”
“어…….”
생각해 본 것은 딱히 없었기에 재영은 그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건 죄다 ‘어떻게 하면 상황을 더 개판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이었기에 그에게 제시할 만한 그럴듯한 방안은 없었다.
“왕자는 너무 어려서 사리 분별도 안 되고 귀족 대부분은 베르헨 공작이랑 붙어서 짝짜꿍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그렇네.”
이제 고작 8살의 왕자. 앉아서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을 나이에 왕좌에 앉아 다 늙은 아저씨들이 서로 권력 다툼 하며 아웅다웅하는 걸 휘어잡는 건 불가능한 상황. 계급이 주는 끗발이 장난이 아닌 중세 시대의 판타지가 아닌가? 그렇기에 보로켄 백작의 왕정파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쉬운 방법이랑 어려운 방법이 있는데…….”
“쉬운 방법?”
방법이 있다는 말에 눈에 이채를 띤 얼굴로 물어 오는 보로켄 백작. 그런 그에게 재영은 손으로 목을 그으며 말했다.
“베르헨 공작이 주범이라면서요? 원래 어떤 조직이든 윗대가리가 없으면 무너지는 법이죠.”
“그 말은…… 베르헨 공작을 죽이라는 말인가?”
“그렇죠?”
그 말에 보로켄 백작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비웃듯이 말했다.
“암살이 그리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를 호위하는 병력만 해도 마스터급 기사들과 마법사가 섞여 있고 24시간 어디에서든 철저하게 경계를 하는데, 만약 암살 시도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겠냐는 듯한 자조적인 그의 시선에 재영이 말했다.
“제가 직접 할 건데요?”
“……자네가?”
“네.”
“…….”
그 말이 더 황당하다는 듯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보로켄 백작. ‘저게 진심인가?’라는 눈빛으로 재영을 바라보던 그는 헛기침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해하지 말고 듣게. 내가 보기에 자네는 공작의 옷깃도 스치지 못할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그를 죽이겠다는 건가?”
마스터의 반열에 오른 보로켄 백작. 뛰어난 검술 덕분에 백작까지 오른 그의 눈으로 보기에 재영은 그저 일반인 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정확히는 일반적인 모험가의 수준보다도 못했다.
“왜요? 못 할 것 같아요?”
진심이라는 듯한 진지한 표정의 재영. 그런 그의 눈빛을 잠깐 바라보던 보로켄 백작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따라오게나.”
보로켄 백작이 재영을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뒤뜰에 자리한 연무장. 그곳에서 마주 보며 선 보로켄 백작은 그에게 검 하나를 던져 주며 말했다.
“그렇게 자신한다면, 나와의 대련에서 증명해 보이게.”
소드 마스터인 백작. 비록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룬 왕국의 방패라는 칭호까지 수여받은 보로켄 백작은 재영에게 그의 방안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할 생각이었다.
그가 건네 준 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갑자기 중얼거리는 재영. 환한 빛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강신, 방랑 기사 야소.”
우우웅.
“이…… 이게 뭔가?”
보로켄 백작은 그의 앞에 서 있던 재영의 기세가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끼고는 경악했다. 검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것 같지 않았던 그가, 잘 벼려진 검과 같은 기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재영이 마치 평생을 검과 함께한 사람과 같이 자연스럽게 검을 고쳐 쥐고는 말했다.
“5분.”
“뭐라고?”
“5분 내로 끝내죠, 개연성 후달리니까.”
“그게 도대체 무슨……!”
차앙.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온 재영의 검. 본능적으로 그 일격을 막은 보로켄 백작은 그 이후로도 그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저 이 세상의 냉정함을 느끼게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를 연병장에 데리고 왔던 백작. 하지만 그는 몰랐다, 이 세상은 소드 마스터의 수준으로도 비빌 수 없을 만큼 냉정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