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70
270화 비밀 친구의 위엄
쇼엔 제국의 황실과 귀족들 사이에서 세워지고 있는 은밀한 계획들.
하지만 그것들은 비단 특정 제국과 왕국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었다.
[다른 대륙의 사람들이라……. 왠지 꺼려지는군.] [이 땅에 제국의 황제라 칭하는 이가 또 있다니.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군.] [이제 대륙 내부에서 서로 다툴 때가 아닙니다. 밖을 봐야 합니다.]서로 일면식도 없이 갑작스럽게 통합된 8개의 대륙.
그렇기에 모험가들과 다르게 이곳에서 태어나고 살아왔지만 그 존재를 모르던 NPC들의 경우에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공포와 반발심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
이미 기존에 막대한 부귀와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기에 지구에 버금가는 거대한 크기의 아르카디아 대륙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조하고 있던 엘리스는 판단했다.
조만간 대륙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들 거대한 서사가 이야기를 시작하리라는 것을.
[대륙 통합 메인 시나리오.] [Act. 1 난세(Era of Anarchy).]“그러니까, 저한테 뭘 해 달라고요?”
뜬금없이 만남을 요청하며 한적하고 인적이 없는 카페로 오라고 연락을 보낸 이미연. 그녀의 갑작스러운 연락에 당황했지만, 그녀가 하는 부탁에 재영은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메인 시나리오를 막아 주세요.”
아르카디아에 존재하는 수많은 퀘스트.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삭제되며 변화하는 이 퀘스트는 규모에 따라 여러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마을 – 도시 – 영지 – 국가 – 대륙.
하나의 작은 마을부터 도시나 영지, 심지어 국가나 대륙 전체에 지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수준의 퀘스트들.
간단한 수준의 심부름부터 국가 전체의 명운을 건 대륙 전쟁까지.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퀘스트 중에서 메인 시나리오라는 이름이 부과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Act. 1 태동하는 잊힌 어둠.] [Act. 2 마녀사냥.] [Act. 3 신대륙.] [Act. 4 대륙 전쟁.]하나의 국가를 넘어서 대륙 전체에 변화를 가져오며 그 영향력을 끼치는 거대한 서사. 오직 최고 수준의 난이도와 개인이 차마 어쩌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무대 속에서 벌어지는 그 메인 시나리오를 막아 달라는 그녀의 말에 재영은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메인 시나리오를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걸 막아 달라고요?”
게임사의 사장이 직접 은밀한 만남을 자청하며 나와서 하기에는 이상한 부탁. 그렇기에 재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인 시나리오를 그냥 삭제하거나 막아 버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왜 저를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운영과 서비스에 대한 권한을 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주)아르카디아의 사장. 그녀의 권한과 힘이라면 충분히 원하는 바를 이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재영이었지만, 그런 그의 물음에 이미연 사장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랬다고 한다면 제가 애초에 재영 군을 찾아오지도 않았겠죠.”
“그게 무슨…….”
“(주)아르카디아는 아르카디아라는 게임의 전체적인 운영에 대해 책임을 질 뿐, 개발에 대한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네……?”
개발 권한이 없는 게임사.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야기 같았지만,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일들을 돌이켜 보며 재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하긴 했었죠.”
재영이 저지른 무수한 만행들.
만약 일반적인 게임사였다면 당장에 칼질을 하거나 영구 밴의 철퇴를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터무니없고 과한 것들도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회사는 재영에게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떻게든 구슬리려고 안달이었다.
[서로 협력하도록 하죠. 재영 군은 게임에서, 그리고 저는 현실에서.]그녀가 직접 나서서 서로 비밀 친구가 되자며 손을 내밀었던 것을 떠올리던 재영. 그리고 비로소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정말로 (주)아르카디아가 게임 내에 그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는 건가요?”
아예 게임 속의 상황에 간섭할 방법이 없냐는 그의 질문에 이미연 사장은 조금 애매하다는 듯이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음……. 뭐 전부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말씀드리죠.”
“최고 개발자들이라면 가능하겠지만, 그들은 그럴 생각도, 의지도, 관심도 없다, 라고요.”
아르카디아를 만들어 낸 창조주이자 최고 개발자 중 하나인 잭.
아르카디아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분석하며 관리하는 인공지능 엘리스.
호접몽과 식스 센스 프로젝트의 창시자이자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천재 소년 김민수.
게임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그 누구도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특별한 경각심이나 우려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이미연 사장의 처지에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아니…… 도대체 게임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그래요?”
최근 대학교와 학과 수업에 매진하며 현생을 사는 데 집중하고 있던 재영. 그렇기에 간간이 접속은 하지만 특별하게 큰일을 벌이지 않고 정말 평화롭게 얌전히 게임을 즐기고 있었기에 이미연 사장의 말은 더욱 뜬금없기 그지없었다.
“음……. 일단 제 부탁에 대한 대답부터 들어야 할 것 같네요.”
가방 안에서 꽤 묵직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보이는 이미연 사장.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은 물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인가요?”
“그건 저도 모르죠. 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죠.”
“재영 군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면, 아마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게임 속에서 자신이 히든 클래스라며, 레벨이 높은 상위 랭커라며 거들먹거리고 길드를 만들어 치열한 세력 다툼을 하고 싸워 대는 유저들. 하지만 이미연 사장의 눈으로 보기에 지금 그녀의 눈앞에 앉아 있는 이 어린 대학생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태양 앞의 촛불보다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레벨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랭킹에 존재하지 않는 것뿐이지, 전투력, 영향력, 재력, 명성, 그 어느 것 하나 뒤지는 것 없이 재영 군이 수십억이 넘는 유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한 상태니까요.”
어마어마한 개연성을 축적하고 그걸 상황에 맞게 시기적절하게 활용하며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그. 난세의 방랑가라는 직업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수많은 사건을 불러온 재영이라면 이번에 생성된 메인 시나리오도 어떻게든 해결책을 가지고 올 것이라고 이미연 사장은 확신하고 있었다.
“뭐…… 저한테 도대체 뭘 부탁하려고 이렇게까지 비행기를 띄워 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요. 약속은 약속이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죠.”
서로 상부상조하는 쌍무적 계약 관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재영. 그런 그의 말에 이미연 사장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건네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대륙 통합이 이루어진 후로 모든 대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상한 조짐들이 감지되고 있어요. 세계수의 존재를 비롯해 다른 대륙과 그곳에 존재하는 여러 국가에 대한 정보들이 모험가들을 통해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죠.”
진지한 눈으로 수십 페이지의 보고서를 읽고 있는 재영. 그는 이미연 사장의 해설 같은 설명을 들으며 그 기밀문서에 적혀 있는 메인 시나리오의 제목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대륙 통합 메인 시나리오.] [Act. 1 난세(Era of Anarchy).]“와……. 이거 진짜예요?”
최초의 대륙 통합 메인 시나리오.
8개의 대륙 전체에…….
다시 말해 아르카디아 전체와 수십억 유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대형 시나리오의 발생. 어마어마하게 흥미로울 것 같았지만, 그 세부적인 내용을 확인한 재영은 왜 이미연 사장이 이 시나리오를 막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런 시나리오는 너무 시기상조이겠네요.”
난세.
강대한 세력의 제국과 이들 밑에서 치열하고 팽팽한 견제를 하며 묘한 균형을 맞추고 있던 각 대륙의 정세. 하지만 그 섬세하게 맞추어져 있던 그 평형은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전혀 알지 못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대륙들의 출현으로 인해서.
“그러니까 제가 지금 재영 군에게 이렇게 따로 부탁하려는 거예요. 최소 10년 이후에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던 이 거대한 혼란의 상황이 지금 일어나게 된다면, 아마 각 대륙의 유저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갈등이 만들어지게 될 테고, 만약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흘러갈 테니까요.”
이제 막 전 세계 다른 유저와의 교류를 시작한 사람들.
판타스틱 유니버스와 천하제일무투대회라는 특별 이벤트까지 벌여 가며 서로 간의 화합의 장을 열고자 그토록 노력했기에 이미연 사장은 가능하면 분란의 씨앗이 될 법한 이 메인 시나리오는 막아 내고 싶었다.
“일단……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게임의 수명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큼직한 시나리오는 조금 더 나중에 나오는 게 좋긴 하겠네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데에 동의하는 재영. 이번 일에 동참하겠다는 결심을 한 그는 이미연 사장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정확히 뭘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구체적인 방향을 묻는 재영. 그런 그에게 이미연 사장은 몇 가지 사진을 커피 테이블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
“현재, 이 난세라는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될 촉발 사건은, 바로 쇼엔 제국이랑 국경이 맞닿고 있는 가엘 연방으로의 쇼엔 제국의 침략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어요. 아직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전쟁은 두 국가를 넘어 한국 대륙과 일본 대륙 전체로…… 그리고 아르카디아의 통합 대륙 전체로 번져 나가겠죠.”
한국 대륙과 일본 대륙. 그리고 중국 대륙.
이 세 대륙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는 가엘 연방.
이곳이 앞으로 아르카디아의 거대한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이미연 사장은 재영에게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 가엘 연방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쇼엔 제국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면……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그 전쟁을 끝내 주시고요.”
일개 개인인 한 유저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리일 것 같은 부탁. 하지만 재영의 머릿속에는 그런 이미연 사장의 말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책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만 하면 될까요?”
“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쇼엔 제국의 영향력이 가엘 연방을 장악하게 해서는 안 돼요.”
“그건…… 아마도 한국 유저들 반응 때문이겠죠?”
“아니라고 부정은 못 하겠네요.”
“아니, 도대체 왜 하필이면 대륙을 통합시켜도 일본이랑 중국 쪽이랑 맞닿게 붙여 놓은 건데요? 이건 누가 봐도 그냥 서로 대판 싸우라는 걸로밖에 안 보일 텐데요.”
한국, 일본, 중국.
이 세 국가의 유저들이 플레이 하고 있는 대륙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판게아의 대륙.
그것을 보며 재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아무튼…… 알겠어요. 조금 귀찮긴 해도 어떻게든 최악의 상황은 막아 볼게요.”
이미 전쟁과 협잡, 선동이라면 이골이 난 재영.
강신을 이용해 혼자서도 쇼엔 제국의 병력을 쓸어버릴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써먹을 수 있는 인적자원이 널린 상태였기에 크게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정 안되면 망할 변태 새끼들한테 부탁이나 해 봐도 되니까.’
물론 또 얼마나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대가를 요구하며 드러눕게 될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은 이미연 사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역시 전에 재영 군과 거래를 한 게 틀린 선택이 아니었군요.”
낑낑대며 권한이 없다며 징징거리는 직원들과 다르게 먼저 나서서 아르카디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재영과 손을 잡은 그녀. 하지만 이미연 사장도 간과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아. 그런데 궁금한 거 있어요.”
“네. 뭔가요?”
“혹시…… 정 아니다 싶으면 쇼엔 제국 자체를 쓸어버려도 돼요?”
“…….”
“그 정도는 선 안 넘고 딱 괜찮죠?”
재영이 스스로 생각하는 어느 정도의 선이라는 개념이 일반인이 생각하는 범주를 아득히도 잘 넘어 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