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285
285화 전쟁의 전조
재영과 하이머가 케르베니안의 레어에 잠적해 있던 한 달.
그 시간 동안 일본 대륙의 정세에는 이상하고 기묘한 바람이 불어왔다.
-일본 대륙이 겪었던 치욕을 갚아 줄 시간이 왔다!
-우리가 모두 힘을 합쳐서 일제히 공격하면 조X징 놈들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쇼엔 제국과 함께 북쪽으로 진격하자! 일본 제국 앞에 오로지 승리의 영광만이 있으리!
-천황 폐하 만세! 일본 제국 만세!
일본 대륙의 게시판을 잠식한 게시 글들. 제각각 다른 계정으로 작성되어 올라온 글들이었지만,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내용과 주제로 연신 떠들고 있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한국 대륙을 공격하자!
단결하여 한국 대륙을 장악하자는 이들의 집단적인 움직임. 처음에는 그 말도 안 될 것 같은 글을 본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
-갑자기 무슨 전쟁?
-글쎄……. 굳이 그렇게 해야 하나? 귀찮은데
-좋은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 봤자 이득도 없잖아.
그저 아르카디아와 가상현실이 좋아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이들에게 있어 크나큰 보상이나 이익도 없이 굳이 멀쩡히 있는 다른 대륙에 쳐들어가자는 글은 터무니없는 개소리에 불과했기에 가볍게 무시했지만, 이러한 글들에 달리는 댓글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맞아. 조X징 놈들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봤어?
-멀쩡하던 쇼엔 제국이 그 빌어먹을 해적 놈들에게 점령당했지.
-나는 그때 메인 시나리오 합세했다가 쓰나미에 휩쓸려서 레어 아이템 날림.
-베일란에서 잿더미로 사라져 버린 우리 길드 아지트만 생각해도…… 이가 갈린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그 망할 놈들이 먼저 우리를 공격했잖아?
검은 해적단의 침공과 포세이아의 함락.
평화롭게 모험을 즐기던 일본 대륙에 갑작스럽게 침략을 감행해서 쇼엔 제국의 해상 전력과 요새를 모조리 바다 깊숙한 곳으로 수장시켜 버린 한국 대륙.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이들의 규모도 무시할 수 없을 수준이었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충격파를 불러온 사건은 따로 있었다.
일본 대륙 최악의 참사이자 아직도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지 못한 대사건.
베일란 사태.
Kill The Dragon이라는 이름으로 아르팬디아의 사건/사고 게시판에 당당하게 영구 박제된 이 사건은 다름 아닌 한국에서 아무도 모르게 넘어온 한 유저로 인해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플레이어 덱스.
한국도 아니고, 굳이 일본 대륙까지 넘어와서 드래곤 레이드를 감행한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의 여파는 감히 용서를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새끼 때문에 날아간 자금만 해도 얼마나 될까?
-글쎄……. 내가 본 언론 기사에 따르면 최소 수십 조가 넘어갈 거라는데?
-수십 조? 그렇게 어마어마하다고?
-안 그래도 그 사건 이후로 모든 물건의 시세가 폭등했잖아. 아직도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냐?
일본 대륙 전체의 경제와 유통 시스템을 모조리 마비시킨 거대한 사건. 특히나 미묘하게 형성되어 있는 정치 세력의 균형을 일순간에 어그러뜨려 전쟁의 위기감을 대폭 증가시킨 것 역시 이들의 적대감을 키우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게? 생각해 보니 열받네?
-망할 조X징 새끼들. 맨날 우리보고 전범국이라고 욕하더니, 자기들은 다를 게 뭐야?
-게임이라고 뭐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패를 부려도 괜찮다는 건가?
그렇게 조금씩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기 시작한 일본 유저들의 여론. 이러한 적대감을 키우는 글이 올라올 때마다, 처음에는 시큰둥한 얼굴로 무시하고 흘려 넘기던 일본 유저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와 증오를 품어 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글들 속에 숨어 있는 저의를 눈치채지 못한 채.
* * *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정보기관, 내각 조사실.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일념 하나로 대내외적인 정보 수집과 방첩 그리고 수많은 비밀공작 임무를 수행하고 처리하는 이곳에서 최근 조직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작전이 하나 있었다.
비밀 작전, 일원(一元).
관방장관이 지휘하는 자위군 특수부 소속, 사이버사령부와 합동으로 추진되는 이 작전은 바로 아르팬디아를 통한 일본 국민을 향한 집단적이고 무차별적인 선전‧선동이었다.
일본 정보부에서 은밀하게 확보한 수천, 수만 개의 계정을 활용하여 반복적으로 비슷한 내용의 메시지를 작성, 전파하여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메시지를 대다수 일본인의 머릿속에 심어 두는 일. 자그마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이 작전을 책임지며 진두지휘하던 야스히로 국장은 밝은 낯빛으로 그의 직속상관인 하지겐 샤토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비밀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아르팬디아를 비롯한 주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한국에 대한 반발심과 증오심이 가득한 상태이며, 저희가 의도한 바대로 한국 대륙을 향한 보복 조치를 감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일전의 미적지근한 반응과는 다르게 어느 순간부터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 거대한 증오와 혐오의 감정. 이 일로 인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한 상태였다.
-빌어먹을 조X징 새끼들. 제발 이 세상에서 모조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조금만 경제제재 해도 당장에 길바닥에 나앉을 놈들이 왜 이렇게 나대지?
-다케시마나 내놔라, 남조선 새끼들아. 왜 남의 땅을 불법 점령 하고 있냐!
-하여간 조X징은 어쩔 수 없다니까? 개혁시켜 줬더니 고마운 줄은 모르고 침략 운운하니.
단순히 게임 속 사태를 넘어서 두 국가 사이의 정치 외교와 역사 사이에서 민감한 주제들에 대한 온갖 떡밥들이 나뒹구는 상황.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와 내용들은 곧장 한국 유저들 사이로 흘러 들어가 극단의 갈등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ㅋㅋㅋㅋ 뭐래? 저 섬나라 원숭이 새끼들이.
-경제제재? 예전에는 몰라도 이제는 아니지 않나? 아진한테 죄다 밀리는 주제에 ㅋㅋ
-ㅎㅎㅎ. 원숭이들 말이라서 잘 이해가 안 되네요~ ^^
-응~ 꼬우면 가져가 봐. 독도는 우리 땅! 에베벱.
강 대 강.
그야말로 단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자강두천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인터넷 여론전.
지금껏 애써 봉합하고 개선하려고 했던 양국의 국민감정이 바닥을 넘어 지하실을 뚫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지만,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수습하기는커녕,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극하며 판을 더 크게 벌이고 있었다.
[최근 한국인들의 행태는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악랄하고 뻔뻔해지고 있습니다. 다케시마를 불법 점령 하고, 우리 일본을 향해 언제나 비난과 혐오가 가득한 시선으로 손가락질하기 바쁜 이들이 과연 우리의 이웃으로 동반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의구심과 회의감이 듭니다. 과연 일본 정부와 우리 국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케시마에 대한 실효 지배에 대해 역사적인 협정과 조약을 무시하는 한국 정부의 불법적인 점령과 무단 점거에 관해서 국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방안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유명세를 가진 국회의원들을 비롯해 정치 평론가, 교수, 논설위원, 심지어 유명 배우들까지. 사회에서 나름대로 인지도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들고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서 소신 발언을 한다며 한국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자극하는 언행을 하며 혐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각 조사실장인 하지켄 샤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다음 총선 역시 총리님의 승리가 확실하겠군. 이렇게 보수적 성향이 주류가 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언제나 민주당과 여론의 질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일본의 보수당. 하지만 매번 현 정부를 손가락질하며 욕하던 일본 국민이 이번 여론 공작에 완전히 돌아서서 자신들의 편에 서서 모두가 외쳐 대고 있었다.
“저 망할 조X징 새끼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조X징을 일본 대륙에서 완전히 몰아내자!”
“조X징의 대륙을 모조리 먹어 버리자!”
“천황 폐하 만세! 일본 제국 만세!”
마치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일본 제국의 시절로 완전히 회귀한 것 같은 이들. 이성이 마비된 채 복수와 증오 그리고 혐오의 광기 속에서 전쟁을 부르짖고 있는 일본 국민의 모습을 보며 샤토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지금 게임 속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카즈키 지사장을 포섭하고, 그의 높은 관리 권한을 이용해 아르카디아 속에서 벌어지는 내부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있는 상황. 그런 그의 물음에 야스히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현재 일본 대륙의 두 거대 제국이 서로 협력하기로 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제공했던 그 거대 시나리오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상태가 지속된다고 가정한다면 아무리 늦어도 한 달 이내로 전쟁은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일본 지부를 책임지는 카즈키 지사장으로부터 받은 첩보. 그렇기에 그 정보의 신뢰도를 의심할 여지는 없었기에 샤토는 너무나도 즐겁다는 얼굴로 말했다.
“얼마 남지 않았군. 마지막까지 문제될 것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하고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그 지시를 끝으로 경례를 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야스히로 국장.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샤토는 이내 숨을 크게 내쉬며 의자에 몸을 맡기고는 오랫동안 염원하던 상상이 현실로 되는 순간을 떠올렸다.
“그 망할 조X징들과의 협력이라니. 참으로 헛된 망상이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 정부와 사회 전체에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는 존재들. 한때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으며 대일본 제국의 황금기를 그리워하고 꿈꾸는 극우 세력. 그 신념을 품고 있는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으며 조금씩 변해 가는 일본 국민의 모습을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모든 것은 천황 폐하와 대일본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이 모든 노력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어떠한 결과로 흘러가게 될지 꿈에도 그리지 못한 채 말이다.
* * *
“햐아……. 여기도 진짜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에 다시 한국 대륙에 자리한 가엘 연방으로 복귀한 하이머.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회가 남다른지, 몽롱한 표정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네요?”
무언가 묘하게 긴장감이 가득한 분위기.
이전의 쾌활하고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미소가 가득했던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냉기만이 가득한 길거리를 보며 하이머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재영은 태연하게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내가 말했잖아. 조만간 전쟁이 벌어지게 될 거라고.”
“이, 이렇게 빨리요……?”
자신이 자리를 비운 지 채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그 짧은 시간 동안 완전히 돌변한 도시의 분위기에 하이머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지만, 이내 흉흉하게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형, 뭔가 사람들이 저희를 에워싸는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
마치 도망갈 퇴로를 차단하는 듯, 동그랗게 원형을 만들며 포위하는 사람들.
이들의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재영. 그리고 이내 험상궂게 생긴 중년의 남자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수상한 눈초리로 물었다.
“네놈들은 어디서 온 놈들이지? 못 보던 얼굴인데?”
메카니움에서 쫓겨나 인근 도시로 넘어왔던 재영과 하이머. 이름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그저 그런 가엘 연방의 도시 중 하나였기에 재영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지만, 하이머는 그런 그의 물음에 더듬거리며 소리쳤다.
“저, 저는 메카니움에서 온 마법 공학자, 하이머라고 해요.”
“메카니움……? 스팀 메인 학파 녀석이냐?”
메카니움에서 왔다는 말에 곧장 하이머가 이전에 소속되었던 학파를 언급하는 그. 그런 그의 물음에 하이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네……. 이제는 아니지만, 한때는 그곳 소속이었죠.”
“한때는……?”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그 말에 의아한 눈으로 술렁거리는 사람들.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조금씩 움츠러드는 하이머. 하지만 그는 이내 어깨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기운에 문득 고개를 올려다보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히죽 웃어 보이는 재영. 얼이 빠져 있는 하이머를 대신해서 그는 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마을의 NPC 군중 사이에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무 긴장한 것 같으니 내가 대신 소개하지. 이 녀석은 한때 스팀 메인 학파의 일원이었지만 파문되어 쫓겨난 메카니움 출신의 마법 공학자이자.”
한때 인민재판의 현장 속에서 얻어맞아 죽을 위기에 처했던,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마법 공학자였던 그. 하지만 이제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초월적인 드래곤의 무한한 마법 지식을 습득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이론을 오롯이 확립하고 그 누구도 만들어 내지 못했던 마법 공학의 혁신과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낸 존재.
“캐논필리아 학파의 마스터이자 최초의 창립자, 하이머라고 한다.”
그렇게 그는 가엘 연방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