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12
312화 나비효과 (3)
한국과 가장 가깝지만, 모순적으로 너무나도 먼 나라 일본.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있음에도 이 두 나라의 국민감정은 완화될 줄 모르고 언제나 양극단으로 멀어지기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이미연 사장의 망언과 아르카디아에서 벌어진 버섯구름 사태로 인해서 일본 내부의 국민감정은 폭발하고야 말았고 외교가에 커다란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아르카디아 내부에서 발생한 일본의 역사적인 비극을 조롱하고 풍자한 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와 모욕감을 느꼈으며 이에 강력하게 항의하는 바입니다. 부디 한국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과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바라며, 또한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준수하기를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주한 일본 전권 대사.
평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외교관으로서 수십 년을 살아오며 잔뼈가 굵은 그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잔뜩 화가 난 듯, 상기된 얼굴로 외교적 결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너무 흥분한 것 같습니다, 일본 대사. 이번에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 역시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일본 국민 모두에게 유감을 전합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 발생한 사안에 대해서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와 관련해서 사과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사과하는 순간부터 일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공식적인 한국 전체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상황. 그렇기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는 김하진 국무총리는 일본 대사의 터무니없는 요구 조건을 에둘러 거절하려고 했다.
“현재 어지러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주기를 바랍니다. 제가 직접 나서서 그런 중차대한 외교적 결정을 내리기에는 큰 무리가 있습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지, 진짜 대통령의 신분이 아니기에 사실 저에게 부여된 권한은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확답을 해 줄 수 없다.
전기찬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모든 권한과 직무가 정지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아주 좋은 변명거리가 될 수 있었지만, 잔뜩 화가 난 일본 대사에게는 그다지 먹힐 만한 핑계는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한국 정부가 나오겠다면, 우리라고 보복하지 못할 것 같소?”
통역사로부터 김하진 국무총리의 말을 전달받은 일본 대사는 싸늘한 표정으로 외교적 수사도 다 던져 놓고 거의 반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
“어…….”
너무 당황해 이걸 어떻게 통역해야 하나 순간 고민하는 통역사.
하지만, 그가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일본 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매만지더니 마지막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는 떠나갔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의지는 알겠습니다. 본국에 제가 보고 들은 그대로를 전달하고, 해당 사안에 관한 답변이 올 시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김하진 국무총리를 뒤로하고 다시 대사관으로 돌아가는 일본 대사. 그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더니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기찬 대통령이 직무 정지를 당하고, 현재 그 직무를 대행하고 있는 김하진 국무총리의 성향을 얼핏 확인해 보았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소극적이고 계산적이며 우유부단한 것으로 판단되며, 최대한 큰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강했습니다.”
일부러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며 외교관으로서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무례한 행동까지 서슴지 않고 하던 그.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에 화를 내기는커녕 진땀을 흘리며 어떻게든 달래 보려고 하는 김하진 국무총리를 보며 일본 대사는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전기찬 대통령의 부재로 인해 중요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최종 결정권자가 없는 상태입니다. 비밀 요원들을 통해 작전을 수행한다고 한다면 지금이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평화롭고 따분한 오후 어느 날.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한 보복과 (주)아르카디아의 정신 나간 만행(?)에 대한 보복 차원으로 일본 정부의 비밀스러운 작전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올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 * *
수많은 학생이 오가는 서민 대학교 캠퍼스.
꽤 방대한 부지에, 출입하는 외부 방문객도 많기에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고 보지 않았지만, 이곳에는 최근 계속해서 캠퍼스 안을 활보하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내각 조사실 소속 해외 공작 2팀 특작 요원 사사키 그리고 메이.
아직 20대 중반의 어린 나이의 신임 요원이었지만, 대학교 안에 이질감 없이 융화될 수 있다는 이유와 다른 베테랑 요원에 꿇리지 않는 전투 능력과 작전 수행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어 은밀하게 한국으로 급파된 이들은 서민 대학교 안을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목표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특이 사항은?”
점심시간이 되어 먹을 것을 잠깐 사러 다녀온 사사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빵과 우유를 자연스럽게 받으며 메이는 따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특이 사항은 없어. 지금 강의를 받는 중이고 아마 20분 후면 나올 예정이야.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또 그 여자애 기다린다고 어디 구석에 틀어박혀서 스마트폰이나 붙잡고 있겠지.”
빵 봉지를 거칠게 뜯으며 한 입 베어 무는 메이. 그녀는 생각만 해도 짜증 난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도대체 왜 상부에서는 저런 이상한 인간을 납치하라는 거야? 아무리 봐도 소름 끼치는 그 빌어먹을 오타쿠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뚱뚱한 외모. 부담스럽게 커다란 안경과 도무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상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재균. 제아무리 공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메이는 그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그 채연이라는 여자애랑은 사귀는 거야 뭐야? 저렇게 기다려 주면서 막상 같이 뭘 하지를 않잖아? 진짜 아무리 작전이고 임무라서 24시간 감시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진짜 속이 터져서 못 봐 주겠다니까? 이런 놈이 무슨 연애를 할 수나 있겠어? 생긴 것도 더럽게 못 생겨놓고 눈치까지 더럽게 없는 것 같던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물 하나 없이 퍽퍽한 고구마를 한 번에 수십 개를 입에 쑤셔 박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메이. 옆에서 딴지 걸고 싶어지는 것들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기에 그녀는 잔뜩 불만에 차 있었지만, 사사키는 관심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목표물에 쓸데없는 관심을 두지 마라, 메이. 어차피 작전에는 필요 없는 내용이니까.”
“아니, 왜 작전과 상관이 없어? 만약 그 자식을 납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우리에게 고분고분하게 협력할 수 있게 협박할 수단으로 써먹으면 좋잖아.”
이게 다 작전 때문에 하는 고민이라며 당당하게 반박하는 메이. 하지만 사사키는 무어라 말하려다 이내 피곤한 얼굴로 숨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뭐……?”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메이. 그런 그녀에게 사사키는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하나의 메일을 보내 주었다.
“이건…….”
그냥 일반적인 스팸 메일처럼 보이는 광고 문구.
하지만, 일정한 규칙 속에서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읽어 낸 메이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갔다.
[작전 시행 명령 하달. 해당 목표물을 지정된 좌표로 배송할 것. 추가 지원 불가.]자신들에게 전달된 작전을 드디어 시행하라는 상부의 명령.
지금껏 한 달도 넘는 시간을 보냈기에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지만, 메이는 마지막에 남겨져 있는 문구 때문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추가 지원이 불가능하다니……? 그럼 진짜 우리 둘이서만 그 오타쿠를 납치하라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한국 내부에서 벌어졌던 ‘그’ 총격전 이후로 내각 조사실의 해외 공작실 자원 대부분이 날아갔으니까. 대부분 몸을 사리고 있으니 상부에서도 큰 무리가 있었겠지.”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한 중학교에서 벌어졌던 사상 최악의 비밀 작전으로 인해 한국에 깔려 있던 전 세계 정보기관의 정보망은 거의 궤멸에 가까운 수준의 타격을 입었었다.
천재 소년 김민수.
세계적인 유명 인사인 민수를 중국 정보부에서 납치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중간에 그를 가로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한 세계 각국의 정보부들.
이들은 본의 아닌 정모(?)를 하며 야밤에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는 초유의 대사건을 만들어 버렸고 그 결과 중학교 체육대회 하나를 취소시켰다.
덤으로 눈이 뒤집힌 대한민국 정부와 국가정보원의 색출 속에서 기존에 쌓아 두었던 비밀 안가와 정보 요인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뽑혀 나갔고 말이다.
“결론은 우리 둘이서 납치하고 부산항까지 그를 데려가야만 한다는 거다. 인원이 부족하니 그 여자애까지 납치할 여력은 없어.”
그러니 채연인지 뭔지 하는 여자애한테는 신경 쓰지 말라는 사사키. 하지만 메이는 난감하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잠깐만……. 부산까지 데려가야 한다면 너무 시간이 촉박한데? 당장 오늘 자정 전까지는 목표물을 확보하고 이동해야 하는 거잖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부의 계획. 하지만, 사사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각 조사실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유령 회사의 선박이 당장 내일 출발하니 어쩔 수 없다. 이번 시기를 놓치면 최소 한 달 이상은 기다려야 하니 촉박하더라도 어떻게든 해내야지. 그리고 오늘 목표물은 6시 전까지 혼자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납치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다른 일들은 고민할 게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사사키.
하지만 이들은 이내 강의실이 있는 건물을 빠져나온 목표물이 향하는 곳을 보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이건…….”
평상시랑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목표물. 언제나 좋아하는 여자애를 기다리던 평소의 동선과 달라졌음에 이들은 당황했고, 또 그와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 당황했다.
“아예 캠퍼스 출구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손님까지 따라붙었군.”
정말 성가시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는 사사키. 평상시에 침착한 모습만 보여 주던 그가 처음으로 짜증을 내는 듯한 반응을 보이자 메이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기대 섞인 얼굴로 물었다.
“어떻게 할 셈이야?”
그리고 그 물음에 사사키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일단…… 따라붙는다. 그리고 적절한 시기를 노려서 목표물을 확보하고 바로 이동하지.”
기존의 계획과는 많이 뒤틀려 버린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작전을 아예 포기할 수 없기에 사사키는 무리해서라도 그를 납치할 생각이었다.
“저 친구는……? 이름이 윤재영이라고 했었나?”
이들의 목표물인 임재균과 같이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
얼굴에는 지루함과 피곤함이 가득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 참아 주기 힘든 오타쿠인 목표물과 함께 발맞춰 걸어가고 있는 그를 보며 메이는 물었다.
“아무래도 계속 같이 붙어 다닐 것처럼 보이는데…… 혼자 있는 순간이 있을까?”
제아무리 훈련을 받은 특수 공작 요원이라 하더라도 성인 남성 둘을 납치하고 부산까지 끌고 가기에는 부담이 많은 상황. 그렇기에 사사키는 이 둘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말했다.
“일단…… 상황을 보면서 결정하도록 하지.”
자신의 등허리에 숨겨져 있는 권총의 손잡이를 한 손으로 매만지며, 그는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인명 살상은 최대한 자제하지만…… 필요시에는 지체 없이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