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21
321화 치킨 게임 (3)
(주)아르카디아와 일본 정부가 동시에 선언한 가상현실 서비스 중단 발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같은 시간에 발표된, 다른 것 같지만 완전히 똑같은 이 내용은 긴급 속보를 통해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긴급 속보. 가상현실 서비스 전면 중단 조치를 선언한 일본 정부.
-충격. (주)아르카디아의 서비스 일시 중단 선언. 과연 그 내막은?
-패닉에 빠진 소비자들. 접속 중단 조치의 배경과 향후 그 전망 분석.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물러서지 않고 충돌한 일본 정부와 (주)아르카디아. 그 승자는?
지상파 9시 뉴스에서도 가장 먼저 보도될 정도로 사상 초유의 관심사로 급부상한 문제. 그렇기에 사회 각계각층에서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현 사태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의학적 부작용부터 심각한 가상현실 중독과 같은 사회적 문제들을 지적하기는 했지만, 이건 (주)아르카디아를 압박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고도의 노림수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주)아르카디아에서 가상현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일본 가입자 수만 봐도 대략 8천만 명에 달합니다. 이번 규제 조치가 장기화될수록, (주)아르카디아가 입는 타격은 천문학적일 겁니다.] [맞습니다. (주)아르카디아에서 발표했던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자면,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을 제외한 국가들에서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소득 격차를 감안한 최저 요금제를 설정해 어마어마한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손실을 여러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영업이익으로 메꾸고 있는데…… 일본의 경우 전체 매출의 25%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캐시 카우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일순간에 사라지게 된다면 치명적이겠죠.]제아무리 수십억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국가는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수준이 열악해 (주)아르카디아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막대한 투자를 해 가며 가상현실을 안착시키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일본 하나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이 일순간에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은 심각한 자금 경색과 경영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패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회자는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왜 (주)아르카디아는 일본 정부와 같은 이야기를 발표했을까요?](주)아르카디아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싫어도 경제적으로는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본 시장. 좋으나 싫으나 이미 막대한 투자를 해 놓은 상태였기에 이런 식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조치는 제 살 깎아 먹기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 어느 한 패널이 입을 열었다.
[제가 볼 때에는 (주)아르카디아가 여론전을 펼치려는 것 같습니다.] [여론전이요……?] [기본적으로 현재 일본 내에서 (주)아르카디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습니다. 일본 정부 내부적으로 아빈 총리에 대한 호감도와 지지도 역시 많이 추락한 상태고요. 그렇기에 이러한 극단적인 초강수를 선택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모양새인데,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주)아르카디아가 일본의 규제 조치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것으로 보입니다.]너무나도 공교롭게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조치를 발표한 일본 정부와 (주)아르카디아. 아무리 봐도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이 절묘한 상황을 보며 그는 말했다.
[일방적으로 (주)아르카디아가 강제적으로 서비스 중단 조치를 당하는 것보다는, 선제적으로 자신들이 알아서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하는 것이 추후 일본 정부와의 교섭과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원래 연인들끼리도 서로 차일 걸 사전에 알고 있으면 차이기 전에 먼저 찬다고 말입니다.]전략적으로 협상 테이블 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주)아르카디아의 노림수라고 생각하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의견들과 생각들이 오갔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하나였다.
[뭐가 되었든, 이 중단 사태는 길게 가지 않을 겁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일본 정부나 (주)아르카디아나 서로가 하나의 거대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거나 다름없거든요.]* * *
일본 정부에 대한 전면전 선포가 끝나고 난 후.
이미연 사장은 집무실에 복귀하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온갖 잔소리를 해 대며 호들갑을 떨어 대는 권명한 전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한참 동안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전무님, 너무 흥분하신 것 같은데, 일단 좀 진정하시고 제 이야기도 들어 보고 판단하는 게 어떨까요?”
징징거림도 어느 수준이어야 받아 준다는 무언의 협박이 실려 있는 것 같은 싸늘한 미소.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을 오랜 사회생활의 연륜으로 눈치챈 권명한 전무는 그제서야 꼬리를 내리고 소파에 앉아서 진지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이번 결정은 독단적으로 저 혼자서 내린 건 아니에요.”
“네……? 그 말씀은…….”
“이사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질적인 이 회사의 소유주들과 심도 깊은 논의 끝에 내린 최종 결정이에요.”
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세 개의 기업의 주인이자 한 명만 언론에 얼굴을 비쳐도 그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유명한 기업인들.
실리코프의 총수, 제니카.
아진그룹의 회장, 이준희.
코퍼레이션 아르고스의 CEO, 미하일.
이 세 사람의 동의를 얻고 최종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는 말에 권명한 전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톡 튀어나올 것같이 커다란 눈으로 이미연 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겁니까? 아니, 그러면 정말로…….”
또다시 밀려오는 불안감 속에서 권명한 전무는 혹시나 하는 얼굴로 조마조마하며 물었다.
“일본 내에서 아르카디아의 서비스를 중단하실 계획입니까?”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묻는 권명한 전무. 이제 회사 생활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인 완숙한 중년이면서 마치 신입 사원의 그것과 같은 표정으로 물어 오는 그를 보며 이미연 사장은 재밌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일단 카메라 앞에서는 무기한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영구 중단에 가까운 조치를 내릴 거예요. 사실상 완전 사업 철수라고 보시는 게 편할 거예요.”
“그게 도대체 무슨…….”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
8천만에 가까운 실질 인구가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고, 아직 플레이를 할 수 없지만 가상현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미성년 자녀들까지 포함하면 전 인구의 99%가 즐기고 있는 가상현실 산업. 이미 이들의 일상 속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는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려는 이 무시무시한 발상에 권명한 전무는 두려움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사태가 될 겁니다. (주)아르카디아에도 어마어마한 타격이 오게 될 거고요. 사장님과 회사를 보필하는 전무로서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인간으로서 이건 찬성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히는 권명한 전무. 하지만 이미연 사장은 그런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몇 가지 서류를 책상 위에서 뒤적이며 꺼내더니 그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권명한 전무님은…… 제가 총괄 사장으로서 이 자리에서 하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주)아르카디아의 임직원들이 바라보는 이미연 사장.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은 그녀를 향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알고 있는 권명한 전무는 그런 그녀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 돈을 주며 직원들을 엿 먹이는 사장.
-회사를 X 같게 만드는 게 취미인 사장.
-제발 가만히 있어 줬으면 하는 사장.
-죽창에 미친 년.
-기획력만큼은 우주 최악인 사장.
온갖 사건 사고로 게임이 뒤집어질 때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며 직원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게 만들고, 가정과 연애 전선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핵심적인 인물. 그렇기에 그 평가가 좋을 수가 없었지만, 이미연 사장이 건네준 그 서류는 권명한 전무로서도 처음 보는 보고서들이었다.
“이, 이건…… 도대체 뭡니까……?”
빼곡하게 수백…… 아니, 수천 개의 사건이 적혀 있는 문서들. 대략적인 보고서의 제목들만 추려진 것들이었지만, 그 제목만 봐도 심상치 않은 내용들임에는 분명했다.
“우리 (주)아르카디아와 가상현실의 원천 기술을 노리고 이를 탈취하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시도되고 자행되었던 수작질들의 목록이에요. 보면 아시겠지만, 뭐…… 미국, 호주, 일본, 영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그냥 전 세계의 모든 기업과 국가 기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노리고 있죠.”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일본과의 이 갈등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 분명한 상황. 그렇기에 이미연 사장은 경악한 얼굴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문건과 자신을 번갈아 보고 있는 권명한 전무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오늘 한 발표는 단순한 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이 아니에요. 전무님, 이건 우리 회사를 위협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의 경고이자 메시지예요.”
온갖 치사하고 더러운 수작질을 막아 내고 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감내해야 했었던 이미연 사장. 하지만 이번 조치를 통해 그녀는 전 세계에서 호시탐탐 (주)아르카디아를 노리고 있을 모든 이에게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회사의 안위를 위협하고, 내부 정보를 탈취하기 위해서 더러운 짓을 벌이는 국가에게는, 가상현실이 가져다 줄 그 어떤 편의와 특혜와 경제적 이익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이번 일본에서의 서비스 중단 조치는 얼마나 많은 영업 손실을 가지고 오게 될지라도 필요해요.”
처음으로 그 단죄를 하기 위한 칼을 빼어 든 이미연 사장. 그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며 앉아 있는 권명한 전무를 향해 사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이 (주)아르카디아를 수호하기 위해서 제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
그러한 그녀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권명한 전무.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군요. 하지만, 이에 따른 추가적인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장님. 정확한 데이터는 추가적으로 파악해 봐야 알겠지만…… (주)아르카디아 일본 지사가 벌어들이던 막대한 현금이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고 동시에 일본에서 판매된 모든 캡슐을 환불 조치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면…… 심각한 자금난이 닥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하지만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권명한 전무와 다르게 이미연 사장의 얼굴은 한없이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의 투자자들이 돈이 조금 많아요?”
아르고스, 실리코프, 아진전자.
그 어느 하나 꿇릴 것 없이 전 세계에서 돈을 갈퀴로 쓸어담고 있는 우량한 글로벌 대기업들이었기에 그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하게 후속 조치 몇 가지를 꺼내 들었다.
“안 그래도, 일본 서비스 중단 이후로 발표될 추가적인 조치들이 준비되어 있어요.”
이미 사전에 준비를 완전히 다 마친 상태라는 듯 당당하게 꺼내 든 몇 가지 기획안들. 그리고 그것을 살펴본 권명한 전무의 눈동자는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거 정말입니까?”
“그럼요. 설마 농담이겠어요?”
“그, 그래도 이건 너무 조금…….”
상상한 것보다도 너무 비현실적인 추가 조치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연 사장이 꺼내 든 이 방안들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정말 실현된다면…….
일본 정부가 이번에 꺼내 든 가상현실 서비스 중단이라는 카드는, 절대 그 어떤 경우에도 꺼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카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내가 못 먹는 걸 남이 먹을 때 더욱 배가 아픈 법이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이미연 사장. 그녀는 마치 어떠냐는 듯이 권명한 전무를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좀 질투 날 만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