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24
324화 허상 속 현실 (2)
재균이의 납치극에 휘말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아르카디아에 접속하지 못했던 재영.
그는 자신이 부재 중인 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 자식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다닌 건데?”
자신의 채널이었던 파괴자의 일상물.
이전에도 미쳐 버린 수준의 구독자 수와 조회 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조차 이룩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신기록을 달성해 버린 정신 나간 영상의 성적을 보며 재영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총 조회 수: 103억 2,412만 9,782회.]자그마치 100억을 돌파해 버린 영상 조회 수.
전 세계의 인구가 70억을 이제 막 돌파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최소 1.3번씩은 이 영상을 시청했다는 말도 안 되는 통계가 나오는 무지막지한 상황. 제아무리 아르카디아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도 이런 경우는 솔직히 말이 안 되기에 재영은 버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영상을 실행해 보았지만, 이내 이 성적이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허……. 그 불카누스인지 뭔지를 완전히 부활시켰다고……? 그것도 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만들어 내기까지 하고……?”
잃어버린 신화의 시대.
탄과 엘로부터 이와 관련된 숨겨진 비화를 사전에 들어 알고 있었기에 재영으로서는 그렇게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빠르게 공개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확실히 난 놈이었네. 엘의 눈이 틀리지 않았었어…….”
광산 노예로 썩어 갈 때부터 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종용했던 엘.
그녀의 조언 덕분에 막대한 개연성을 투자해 가며 아빠 마음으로 물심양면 지원해 주었던 똥손이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재영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뿌듯해지는 느낌을 느꼈다.
“카시야스 이 녀석은 꽤 나쁘지 않게 팬덤을 형성한 것 같고…….”
올 웨폰 마스터로 전직하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강함을 보여 주는 카시야스. 물론 재영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컨트롤이 미숙한 점들이 몇몇 보였지만, 그래도 봐 줄 만한 수준으로 반반하게 생긴 얼굴과 말수가 없는 과묵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댓글은 호평 일색이었다.
-꺄아아아! 카시야스 옵빠아!
-오빠! 너무 멋져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스트리머!
-앞으로도 방송 계속해 주세요! 저희 카사모 전원이 응원할게욥!
여성 유저들의 마음을 완전히 휘어잡은 그. 수백이 넘는 300레벨대의 몬스터들을 단 한 대도 맞지 않고 수십 개의 병기를 완벽하게 조종하여 잡는 그의 전투 장면은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와 다르게 다른 의미(?)로 팬층을 구축한 안젤리나.
-마법! 전사! 안젤리나! 마법! 전사! 안젤리나!
-끼아아앙! 언냐아! 뚝배기에 그 묵직한 철봉을!
-죽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패라. 100번 후려 패서 깨지지 않을 뚝배기는 없다!
-힘법사! 힘법사! 힘법사! 힘법사!
-누나, 혹시 3대 몇 치세요?
뚝배기를 외치며 그녀의 볼트 마법에 열광하는 이들을 보며 재영은 묘하게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쩝……. 처음 만났을 때는 안 그랬었는데…… 어째 성격이 많이 달라진 것 같네.”
예전에는 화도 제대로 안 내는 천성 가녀린 여자애 같은 모습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조금만 수틀려도 일단 뚝배기부터 박살 내고 보는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투사의 기질을 드러내는 그녀. 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차원이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안젤리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 재영은 피식 웃었다.
“이거…… 조서욱 대표님은 아주 신이 나서 입이 찢어지시겠네…….”
어떻게 보면 재영이 다리를 놓아 준 덕분에 이 세 사람과 계약하게 된 아이플러스. 물론 계약금으로만 수십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선지급하며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 영상 하나만으로도 모든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이익과 유명세를 얻으며 독보적인 MCN 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MTC, KSB와 같은 국내 지상파 방송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유명 방송사들과 수많은 제휴 협의를 하고, 어마어마한 대기업들의 광고 제의가 말 그대로 쏟아지기 시작하며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재영은 자신이 뿌려 놓은 씨앗들이 싹을 넘어서 탐스러운 과실을 맺으며 결실을 내고 있는 것을 보고 남몰래 웃었다.
“이거…… 개연성 쌓인 것도 장난 아니겠는데?”
조력자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세 사람.
나는야똥손. 안젤리나. 카시야스.
이들이 아르카디아를 돌아다니며 만들어 낸 수많은 변화와 영향력을 기반으로 재영에게 개연성이 환산돼서 돌아오는 상황.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기들끼리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를 뒤엎어 버리는 거대한 사건을 촉발해 낸 것을 보며, 재영은 기대에 가득 찬 얼굴로 방 한편에 놓여 있는 접속기에 몸을 뉘었다.
우우우웅.
오랜만에 들려오는 고주파의 소리.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 재영의 귓가에 청명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영합니다, 환상의 세계, 아르카디아에 오신 것을.]언제나 그랬듯 또 하나의 세상, 아르카디아에 방문한 그를 환영하며 말이다.
* * *
쇼엔 제국의 황성이었던, 이제는 황량한 폐허가 되어 버린 죽음의 대지.
그 인근에 자리한 산맥에 플레이어 덱스로서 다시 귀환한 재영을 반긴 것은 치열한 생사결을 벌이고 있는 수호천사와 아기 임프였다.
“오늘은 기필코 네놈을 통닭으로 만들어 버릴 거다, 이 망할 치킨 새끼야.”
“흥, 누가 할 소리? 이번에야말로 네놈의 그 더러운 혓바닥을 통째로 뽑아 버려 주지.”
또 무슨 이유로 싸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한바탕 한 듯, 잔뜩 지저분해진 외형의 탄과 엘. 재영이 돌아온 줄도 모르고 성화와 헬파이어를 뿜어내며 살벌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이들은 누가 보면 창피할 정도로 더럽고 치사하고 유치한 육탄전을 벌이고 있었다.
“악! 깨무는 건 반칙이라고, 이 추잡한 박쥐 새끼야!”
“흥! 네놈이야말로 누가 꼬집으래? 그리고 악마가 규칙 지키는 거 봤어?”
“이 빌어먹을 악마 새끼가……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서로 할퀴고 꼬집고 심지어 깨물기까지 하며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초딩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탄과 엘. 하지만, 이들의 몸에서 마치 격돌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그 신성한 성화와 타락한 지옥의 겁화는 이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우우우웅. 쿠쿠쿠쿵.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들.
창조주인 아버지로부터 직접 창조되어 그에 합당한 신성과 격을 부여받은 이 둘은 비록 비천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다 하더라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모든 타락한 만물의 주인이자, 이 세상의 지옥을 다스리는 군주이자 지배자, 마왕 사탄.
찬란한 영광과 빛의 성위이자 천상을 지키는 가장 존귀한 수호자, 대천사 미카엘.
각자 하나의 차원을 지배하는 초월적인 절대자인 이 둘이 서로 격돌할 때마다 주위에 펴져 나가는 강력한 파동. 이 둘의 싸움은 아르카디아에서는 역사서에 기록될 만큼 어마어마한 대사건이겠지만, 허구한 날마다 질릴 정도로 싸워 대는 이 둘의 맞짱을 봐 왔던 재영에게는 그야말로 진부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풀썩.
오랜만에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으로 한쪽 구석에 주저앉은 재영.
하지만 그 인기척에 문득 고개를 돌린 탄과 엘은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주인! 뭐야! 언제 온 거야?”
“드디어 오셨군요! 도대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신 건가요?”
언제 싸웠냐는 듯이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달려들어 재영의 주변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두 마리의 초월적 존재들. 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다리다 심심해 죽을 뻔했잖아. 도대체 뭐 하다 이제야 온 거야?”
“덱스 님이 이렇게까지 다른 차원에서 오래 머무는 건 또 처음 보네요. 무슨 일 있었어요?”
아르카디아가 제아무리 현실과 분간할 수 없을 수준으로 완벽한 가상의 세상이라 하더라도 본질은 허상 속의 게임에 불과한 곳.
그렇기에 현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이 아르카디아는 아주 잠깐 머무는 곳에 불과했기에 수많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NPC들에게 공통적인 하나의 설정이 부여되었다.
[불사의 권능을 부여받은 모험가들은 저 머나먼 이계의 차원에서 넘어온 모험을 즐기는 방랑자들이니, 언제나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기묘하고 신비로운 존재들이다.]그렇기에 재영을 바라보며 다른 차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탄과 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흔들며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아……. 다른 건 아니고, 잠깐 납치를 당했었거든.”
“뭐……? 납치?”
“네……?”
하지만, 그런 그의 대답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마왕과 대천사. 그리고 이 둘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물어 왔다.
“아니, 주인이 납치를 당했다고……? 그게 말이 돼? 납치범들은 어떻게 됐는데? 설마 다 쓸어버리고 온 거야?”
“설마 또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리는 악질적인 만행을 벌이고 온 건 아니겠죠?”
그의 안위보다는 납치범들의 안위를 진지하게 물어 오는 악마와 또 대학살극을 벌이며 피바다 축제를 벌이고 왔냐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천사. 이 둘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재영은 약간 심통이 상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평소에 나를 어떻게 보기에 그런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뭐 수틀리면 다 죽이고 다니는 그런 놈으로 보여?”
현실에서는 개미 한 마리 장난 삼아 밟아 죽인 적 없는 도덕적이고 바른 생활 사나이의 재영.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면 안 된다며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철저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아 온 그는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한 소시민에 불과했다.
물론, 이 아르카디아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어……. 아니야? 만날 뭐만 하면 다 죽이고 다녔잖아.”
재영의 말에 어마어마한 인지 부조화가 온 듯, 멍청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신의 소중한 메모장을 꺼내 드는 탄. 그리고 그는 차근차근 이 아르카디아에서 재영이 저질렀던 만행(?)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주기 시작했다.
“이왕 말 나온 김에 다시 한번 복습해 볼까? 주인은 진짜 우리 악마들이 배워야 할 교과서 같은 악의 근원 같은 존재라고 내가 괜히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일단 처음부터 짚어 보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들을 학살하기 위해서 나보고 슬라임들을 강화해 달라 그랬지? 그러고 나서는 순박한 어느 시골 영주 하나를 타락시켜서 다른 모험가들을 노예로 만들어 착취하고, 또 신성 교단 자극해서 마녀사냥이라는 대학살을 불러일으키고…….”
아예 날을 잡겠다는 듯이 안경까지 쓰고는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이 기록해 둔 메모를 줄줄 읊어 대기 시작한 탄. 도대체 언제 다 기록한 것인지, 땅에 끌리며 수북하게 쌓여 있는 두루마리의 방대한 분량을 보니 말리지 않았다가는 온종일 시끄럽게 떠들어 댈 것 같은 그의 기세에 재영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엘을 힐끗 쳐다보았다.
“오늘은 왜 가만히 보고만 있어, 엘?”
평소에 자신이 악의 근원과도 같은 존재라고 탄이 엄지를 치켜세울 때마다 아니라고 반박하며 달려들던 그녀. 하지만 안 말리냐는 재영의 물음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요즘 생각이 조금 많이 바뀌었거든요.”
“무슨 생각?”
“저기 저 풍경을 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거든요.”
손가락으로 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 재영. 그곳에는 마치 무언가가 완전히 밀어 버린 것처럼 평평하고 황량한 평지가 있었고, 을씨년스러운 음산한 바람만이 불어닥치고 있었다.
[황량한 폐허]한때 쇼엔 제국의 찬란했던 황성이 존재했던 자리.
하지만, 이제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은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린 그곳을 바라보며, 엘은 무언가 포기한 것 같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 저도 처음에는 저 망할 박쥐 새끼가 순진한 인간 하나를 타락시키려고 수작질 부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저 새끼가 하는 말이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거든요.”
수백만이 넘는 생명을 한순간에 잿더미로 산화시키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악랄한 행위.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며 분노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희생을 불식시켰다며 고마워해야 하는 이 모순적인 상황이 그녀의 본질이자 근원을 타락시키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게 했다.
“그래서…… 앞으로 덱스 님이 악랄하다는 걸 인정하려고요.”
“뭐……?”
마지 자존심 싸움 하듯이 덱스를 사이에 두고 악하다 선하다 서로 우겨 대며 유치하게 싸워 대던 탄과 엘. 이 둘의 끝나지 않던 싸움이 엘의 포기로 이렇게 싱겁게 결판이 나게 되는 게 의외인 듯, 재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러자 엘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저까지 타락할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