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30
330화 죽음의 사도 (4)
한 사람의 무한한 상상 속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완전한 세계.
아르카디아.
이 세상을 게임이라는 하나의 콘텐츠로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서, 잭과 엘리스는 수많은 사전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사람들이 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줘야 해. 퀘스트라거나 아니면 추가 능력치 상승이라든가…….] [아르카디아의 아이템들을 희귀성과 활용 가치에 따라서 등급을 나누자. 한…… 8단계 정도면 되지 않을까?] [몬스터의 강력함에 따른 레벨과 등급별 분포도 필수야. 어떤 식으로 분산 배치 할까?] [아, 그리고 모험가들은 다른 머나먼 차원에서 넘어온 여행자들이야. 그 누구도 이 세상이 허상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게 해야 해.]게임성과 현실성을 모두 챙기기 위해서 일정 부분 타협을 하고 수많은 부분에서 조정 작업을 거치며 대중에게 인류 최초의 가상현실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아르카디아를 선보이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던 두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잭은 모험가들에 대한 설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추가했다.
[모험가들은 죽으면 다시 본래의 차원으로 되돌아갈 뿐, 절대 죽일 수 없는 불멸의 존재야. 일정 시간이 필요하지만…… 언제고 다시 돌아올 수 있어.]여느 게임이 그렇듯, 죽어도 다시 살아나 이전에 하던 여정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유저들의 편의성과 게임성을 위해 추가된 조치인 불사의 가호.
창조주이자 최고 개발자의 권한으로 부여된 이 프로텍트는 제아무리 이 아르카디아 대륙의 최강자인 드래곤들이나 오롯한 신성과 신격을 가진 존재들이라 하더라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또 절대적인 설정(設定)이었다.
하지만…….
촤아악.
불길한 보랏빛 단검을 휘두르며 또 다른 사제 하나의 급소를 무참히 베어 내는 이 무자비한 암살자만큼은 달랐다.
“네놈…… 도대체 뭐야……?”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뒷걸음질 치는 홀리 크로스의 길드 마스터, 할렐루야. 다른 길드원들은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길드의 수장인 그만큼은 지금의 이 전투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상급 길드원, 바바예투가 길드에서 탈퇴하였습니다.]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했던 바바예투.
그가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고 동시에 그의 눈앞에 떠올랐던 메시지.
그리고 전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한 사람씩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며 회색빛으로 쓰러질수록, 할렐루야의 눈동자는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상급 길드원, 홀리몰리가 길드에서 탈퇴하였습니다.] [상급 길드원, 아이엠세인트가 길드에서 탈퇴하였습니다.].
.
.
하나하나 모두가 이 길드의 최정예 전력으로서 핵심 간부의 역할을 해 오던 주역들. 절대 자신의 의지로 떠나갈 리가 없는 이들이 길드를 탈퇴하였다는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들과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깔끔하게 사라져 버린 친구 목록을 보며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부길드 마스터, 아가사가 길드에서 탈퇴하였습니다.]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죽음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라는 것을.
“이제 너 혼자 남은 건가?”
마치 이게 전부냐는 듯이 여유로운 자태로 물어 오는 암살자. 모든 것이 검은색의 천으로 가려져 있는 그. 하지만 검은색 천 사이로 유일하게 보이는 새빨간 안광에서 할렐루야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하게 타오르고 있는 복수심과 증오심을 말이다.
“으으으…….”
가상 속의 게임이라는 것도 잊고 공포에 질려 신음할 정도로 위축된 할렐루야. 그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서서히 뒷걸음질 치자 모르스는 너무나도 경멸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한심하군……. 네놈들 같은 벌레들에게 그 순수하고 선량했던 사람들이 아무 죄 없이 고통 속에서 죽어 갔다니.”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따뜻한 정을 느꼈었던 그.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있던 할렐루야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 그놈들은 그냥 하잘것없는 NPC에 불과했잖아!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아르카디아에서는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나 다름없는 유저들.
그렇기에 유저 대부분은 지독한 인명 경시 사상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몬스터가 너무 강하다고? 일단 죽더라도 몸으로 가서 막아!
-레이드는 일단 도전하고 보는 거야. 실패해도 뭐…… 죽는 게 전부 아니겠어?
-어차피 게임인데 뭐. 보상만 빵빵하게 준다면야 뭐든 하지.
이들에게 있어 그저 하나의 유흥거리이자 오락거리에 불과한 세상. 그렇기에 마을 인구가 채 백 명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곳의 모든 주민을 무참히 학살하고 모조리 불태워 버린 할렐루야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죄의식이나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억울함.
마치 ‘왜 이딴 사소한 걸 가지고 우리한테 지랄이야?’라는 표정으로 모르스를 바라보며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내는 그를 보며 모르스는 설명을 포기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네놈에게는 그저 하잘것없는 데이터 덩어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이었다.”
“뭐……?”
NPC를 가족이라고 말하는 모르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순간 얼어붙어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할렐루야는 이내 미친 듯이 웃으며 조롱 섞인 눈빛으로 악에 받쳐 소리쳤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NPC가…… NPC가 네 가족이었다고?”
어차피 자신을 살려 둔 채로 돌아갈 리가 없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직감한 할렐루야. 그렇기에 그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다 하겠다는 듯이, 독기가 가득 서린 얼굴로 모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얼마나 현실의 인생이 한심하고 비참하길래 이깟 게임 속에서 NPC랑 가족 놀이를 하고 있냐? 혹시 뭐 현실에서 부모 형제 없는 고아 새끼로 살아오기라도 한 거냐?”
모르스의 가슴을 후벼파고 짓이기는 독설을 퍼부으며 조롱하는 할렐루야. 하지만 모르스는 자신을 인생의 패배자라며 온갖 악담을 퍼붓는 그의 말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네 인생이 나보다 더 잘나고 아름답다면, 앞으로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 봐.”
“뭐……?”
“내가 도와줄 테니까.”
푸욱.
정확히 심장을 관통하며 할렐루야의 몸에 깊숙이 파고 들어간 보랏빛의 칼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빛으로 쓰러져 가는 그의 존재가 이 아르카디아에서 완전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르스는 숨을 크게 내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케인 아저씨…… 그리고 마을 사람들,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푹 쉬세요.”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에 불과한 세상.
이곳에도 사후 세계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모르스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억울하게 죽어 간 모든 희생자를 기리며 잠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제 복수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철컥.
보랏빛의 단검을 역수로 고쳐 쥐며 그는 무언가를 확고하게 결심한 듯,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신성 교단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저는 절대 멈추지 않을 거예요.”
이 정도로는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복수로는 한참이나 모자란다는 듯이 피의 갈증을 느끼는 모르스. 그렇게 그는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 낸 신성 교단 전체에 대한 적의를 불태우면서 그림자 안으로 몸을 감췄다.
그렇게 이 아르카디아에는 또 다른 어마어마한 변수가 탄생하였다.
멸살의 권능이라는 이름의…….
모험가들을 진짜로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밸런스 파멸의 개사기 모험가가 말이다.
* * *
저 멀리 북미 대륙에서 거대한 폭풍의 씨앗이 그 싹을 틔우며 발아하고 있는 그 순간.
탄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수준으로 재영에게 달라붙어 귓가에 속삭여대고 있었다.
“그러니까, 주인이 혹시라도 마계를 위해 조금이라도 그 뛰어난 재능을 기부할 생각이 있다면, 시간이라도 좀 내서 특강 한 번만 해 달라는 거지. 응? 요즘 내 밑의 어린 악마들이 주인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아? 자라나는 꿈나무 새싹 같은 악마들에게 진정한 영업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 어? 마계만 오면 내가 진짜 주인 풀코스로 화려하게 대접해 줄 수 있어.”
최근에는 한동안 안 그러더니 쇼엔 제국의 황성을 날려 버린 이후 또다시 무서울 정도로 마계에 와서 강연해 달라며 징징거리는 마계의 군주, 사탄.
하지만 재영은 사탄의, 악마들을 위해서 진정한 악이 무엇인지 강의를 해 달라는 그 제안을 들으면서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기분 나빠야 하는 건지 진짜 헷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그의 말을 단호히 거절했다.
“싫어. 싫다고. 왜 자꾸 싫다는데 그러는 거야?”
“아니, 그게 왜 싫은 건데! 주인이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명예로운 자리인지 알아? 내 밑에서는 그 특강 한번 하고 싶어서 내 앞에 아주 그냥 줄을 선다고.”
타락의 군주이자 마계의 지배자인 마왕 사탄.
그의 눈에 얼굴도장 한번 찍을 수 있고, 그 무수히 많은 마족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악랄함을 각인하며 어떻게 보면 본인에 대한 셀프 자랑을 할 수 있는 무대나 다름없는 영광스러운 자리.
잘만 하면 어마어마한 지지자들을 끌어모으며 군단장과 같은 핵심 계급으로 순식간에 점프할 수도 있기에 위계질서가 철저한 마족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어떻게든 한 번 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하는 자리나 다름없었다.
“아무튼 난 싫어. 싫으니까 그만 포기해.”
그렇기에 저렇게 단칼에 거절하는 재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탄. 하지만 그는 무언가 눈치챘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설마 주인…… 아직도 본인 스스로가 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묻는 탄.
지금껏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제고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어서는 악랄한 악행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웃으면서 저질러 놓고는, 그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극찬을 아끼지 않을 때마다 부루퉁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묘하게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내던 재영을 묘한 행동들을 말이다.
“…….”
그런 그의 말에 굳게 입을 다물고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재영.
그러자 탄은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저 멀리에서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우두커니 떠다니고 있는 엘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 주인, 우리 솔직하게 다 까놓고 인정할 건 인정하자. 주인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악랄한 인간이라는 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사실이야. 저 치킨 새끼도 인정했잖아. 주인 때문에 죽거나 엿 먹은 사람들만 줄 세워 봐도 아마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를 횡단할 수 있을걸?”
초보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륙 전체에 어마어마한 여파를 불러왔던 그.
천년의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제국만 해도 최소 세 개는 야무지게 말아먹어 버린 업적(?)만 두고 본다면 탄의 말은 허무맹랑한 허풍은 절대 아니었다.
“아! 좀! 시끄러우니까 그만 좀 이야기해!”
드디어 짜증 섞인 얼굴로 듣기 싫다는 듯이 반응하는 재영.
그런 그와 탄이 계속해서 한따까리 하면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그때.
엘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창백한 얼굴로 멍하니 공중에 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우우웅.
창조주가 그녀에게 선사한 권능, 인과율의 선구안.
이 아르카디아에 미치는 모든 인과와 서사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는 그녀는 갑작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거대한 인과의 흐름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쿠쿠쿠쿠쿵.
아르카디아 대륙 전체를 휘감아 요동치고 있는 거대한 흐름.
과거 성마대전이 벌어졌을 때와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인과가 그 어떠한 예고나 전조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 거대한 서사의 무대가 어디인지를 파악하고는 경악했다.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천상의 본거지이자, 이들이 아르카디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근간.
신성 제국 세인트.
그곳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