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또 다른 준비
지구 전체에 필적하는 방대한 크기의 아르카디아.
수백,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왕국들과 제국들. 그리고 다양한 기후와 특색이 넘치는 자연환경이 가득한 이 가상의 세상은 모든 곳을 둘러보기만 해도 족히 수십 년은 걸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규모를 자랑했다.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대륙을 지탱하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
모든 생명과 대지 그리고 풍요를 관장하는 만물의 어머니, 세계수.
가이아(Gaia)의 신성을 타고나 정령계와 환계와의 모든 채널링을 관장하고 있는 그녀는 유일하게 본체가 이 아르카디아에 속한 존재이자 아르카디아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진 존재였다.
[세계수의 뿌리는 아르카디아의 전 대륙을 지탱할 만큼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거대한 크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아르카디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든 풀과 나무들은 세계수의 관조 아래 놓여 있고, 모든 만물이 풍요를 누리며 이 세상에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러한 생명의 어머니가 선사하는 자비와 사랑 속에서 가능한 일이다.]엘프들을 비롯해 드라이어드, 엔트와 같은 숲의 요정들. 그리고 웨어울프나 자이언트와 같은 수인족들에 대한 절대적인 명령권이자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세계수. 그녀는 자신만의 영역이자 절대적인 엘프들의 성지, 생명의 화원(Garden of Life)에서 최근 벌어진 사태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사색에 잠겨 있었다.
“에덴은 멸망했고, 태초의 죽음은 신성의 부활에 실패했다…….”
아버지의 첫 번째 자식이자 가장 강력한 권능을 가지고 있었던 데스.
이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가 있는 뿌리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회복한 세계수. 그 이후 그녀는 전 대륙의 수없이 많은 풀과 나무들을 통해서 이 대륙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을 관조하며 방대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받아들였다.
신성 권능, 인드라망(因陀羅網).
인과율의 선구안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전지의 힘을 부여하는 이 권능을 통해서 그녀는 분명하게 이 대륙에, 성지 에덴에 확정적으로 결정된 운명을 확인했었다.
어느 이름 모를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비극과 어느 한 모험가의 절망과 분노.
그리고 그 복수의 냄새를 맡은 태초의 죽음까지.
사소한 사건 하나가 수많은 연쇄효과와 함께 그 누구도 막아 낼 수 없는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가는 나비효과의 향연. 그 모든 것을 관조하며 세계수는 명확하게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보았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찬란했던 에덴의 몰락과.
태초의 죽음과 명계의 부활을.
“그런데…… 그 예지가 완전히 어그러졌다는 말이지?”
지금껏 단 한 번도 어긋난 적 없는 미래 예지. 엘프들에게는 신탁이자 절대적인 믿음을 자랑하는 높은 신뢰도를 가진 자신의 예측이 빗나가자 세계수는 자신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쉽사리 믿을 수가 없었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나니.
엄연한 하나의 신성이자, 모든 정보를 종합하여 초월적인 인지를 통해서 도출해 낸 결과.
그 어떤 변수도, 그 어떤 강자도 감히 뒤틀어 낼 수 없는 확정된 운명을 갑작스럽게 비틀어 버려 전혀 다른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을 보며 세계수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죽음의 사도가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다니. 그것도 내가 준 열매까지 사용해 가면서.”
자신을 깨운 보답으로 선사한 세계수의 열매.
죽은 자도 다시 살려 낼 수 있는 강력한 생명력을 담고 있는 열매이자 엄연히 자신의 신성을 한가득 품고 있는 정수와도 같은 신기.
온갖 값진 물건을 한가득 가지고 있는 드래곤들조차도 군침을 질질 흘리며 탐낼, 어마어마한 가치와 희소성을 자랑하며 최상의 마법 재료인 그것을 고작 인간들 몇 명 살려 내는 데 써 버린 그 대범함은 그녀가 보기에도 미친 짓에 가까웠다.
“뭐…… 그래도 태초의 죽음의 신기를 가져갔다면 남는 장사라고 해야 하는 건가……?”
사명을 포기하고 태초의 죽음을 부활할 수 없게 막아서는 것을 넘어, 그의 근원이자 필멸의 힘이 담겨 있는 원천과도 같은 신기를 손에 넣어버린 존재, 덱스.
이 모든 사건 속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정해졌던 운명을 모조리 뒤틀어 버리는 그의 존재를 그 누구보다 강력하게 느끼며 관조했던 세계수는 그 초록빛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 재미있는 친구였어.”
자신을 영면에서 깨어 내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던 고룡급 드래곤의 심장을 다른 대륙으로 넘어가면서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구해 온 그. 그녀가 이해하고 있는 일반적인 모험가들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온갖 기상천외한 기행들을 벌이고 다니는 덱스의 존재를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로 인해서 이 아르카디아에 확정적으로 정해진 운명을 막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세계수님이시여…….”
멍하니 사색에 잠겨 있던 세계수.
그녀는 문득 어디에선가 조용하게 들려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 왔구나, 나의 아이야.”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너무나도 고고하고 고상한 품격을 뿜어내며 우아한 자태로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는 세계수.
그런 그녀를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엘프들의 지도자이자, 푸르른 잎사귀의 일족을 다스리는 고귀한 혈통의 엘프들의 여왕, 멜리사.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세계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은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계시고 있으십니까?”
평상시에는 거대한 나무의 모습으로 조용히 안식을 취하는 그녀. 하지만 지금 세계수는 이전과는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로 자신을 맞이하며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멜리사의 질문에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가끔은 상대방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비록 나는 너희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고 있지만, 너희에게 나의 의지와 뜻을 이해시켜야 할 때도 있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최근에 불길한 미래를 봤다.”
“……?”
그게 뭐냐는 눈빛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멜리사. 그리고 그녀는 이어지는 세계수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아르카디아에 거대한 재앙이 불어닥칠 것이다. 전 대륙을 잠식하는…… 막을 수도, 그렇다고 피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는 끔찍하고 잔혹한 파멸의 폭풍이.”
신화의 시대가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이후.
나비효과로 인해서 연쇄적으로 발동된 수많은 위협적인 요소들.
소위 후반 위기로 일컬어지는 그 대재앙들의 징후와 조짐들을 대륙 곳곳에서 감지한 세계수는 너무나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엿본 미래를 선언했다.
“그리고 그 재앙 속에서 이 아르카디아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
이 아르카디아를 수호하는 세계관 최강자, 드래곤이나 신성을 품고 있는 명실상부한 초월적인 신격을 가진 세계수조차도,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확정적인 파멸.
거의 이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과 같은 그녀의 선언에 멜리사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갔지만, 세계수는 너무나도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나의 아이야. 막다른 절벽과도 같은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은 그 싹을 틔우나니. 종말이 올지라도 우리는 또 다른 하나의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리 확정적인 운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뒤바꾸는 것은 너희에게 달린 법. 사명이라는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필멸자들의 숙명이다.”
“그 말씀은…….”
마치 또 다른 돌파구가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세계수의 말에 반색하는 멜리사. 그런 그녀에게 세계수는 아직은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포기하지 마라. 좌절하지 마라. 운명을 바꾸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써 내려가는 것은 너희에게 주어진 특권이자 권능이며, 이 대륙을 살아가는 모든 정명자(定命者)에게 주어진 아버지의 축복일지니. 너희의 힘으로 그 비극적인 결말을 비틀어라.”
“…….”
너무나도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혼란스러워하는 멜리사의 표정을 보고 세계수는 따뜻하고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릎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내밀었다.
“모든 선택에 대한 해답을 알 수는 없겠지. 하지만, 너희의 지도자…… 그리고 나의 사도의 뜻을 받들어 나의 신성을, 나의 권능을 받드는 모든 세력을 규합해서 힘을 결집해라.”
숲속에 은둔하며 자신들만의 왕국을 구축한 요정, 드라이어드.
신수와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이자 반인반수의 일족, 수인족.
그리고 그녀와 같은 순수 혈통은 아니지만 엘프들의 혈통을 이은 하프 엘프들.
대륙 곳곳 어디에선가 은둔하고 있을 이 모든 존재들과 힘을 합치라고 이야기하며 멜리사를 향해서 세계수는 은근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너희들의 그 까다롭고 섬세한 취향은 알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본능과도 같은 것이겠지. 특히나 순수(純粹)가 본질적인 속성인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외모와 출신에 그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까탈스러운 자격 조건을 가지고 있는 엘프들. 멜리사는 그런 세계수의 이야기에 무언가 찔리는 듯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세계수는 조금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충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취향에 얽매여서 불필요한 분란을 만들 정도로 여유로운 때가 아니다, 나의 아이야. 추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나의 뜻을 따르고 그리고 너희와 협력할 의지가 있는 이들이라면 그 누구든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손을 맞잡아라.”
“이 세상을, 그리고 나를 거대한 재앙으로부터 지켜 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말에 멜리사는 일말의 주저 없이 우아한 자태로 고개를 숙여 최대한의 예를 표하며 말했다.
“순종하겠습니다, 만물의 어머니시여.”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자그마치 자신들의 신과 같은 존재인 세계수.
만물의 어머니이자 이 대륙의 모든 풍요와 생명의 원천인 그녀의 부탁과도 같은 명령이었기에 멜리사는 지금껏 그 어떤 압박과 압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던 외모 차별 정책을 폐지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나도 큰 과제를 안겨 준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나의 사도, 초코파이조아를 따라 너희들의 터전이자 이 세상의 숲을 지금보다 더 풍성하게 일구고 가꾸어라. 그리고 언젠가 불어닥칠 그 위기의 순간, 이 세상의 운명을 뒤바꿀 존재에게 굳건한 힘이 되어 주어라.”
“운명을 뒤바꿀…… 존재…… 말입니까……?”
마치 그게 누구냐는 듯이 묻는 멜리사.
하지만 세계수는 잠깐 호기심 가득한 에메랄드빛 눈으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다 미소 지었다.
“그건 지금이 아니더라도 그 순간이 오면 알게 될 것이다.”
우우웅.
질문에 답을 해 주지 않으며 세계수는 강대한 초록빛의 신성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멜리사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만물의 어머니이자, 이 세계를 지탱하는 굳건한 뿌리. 그리고 아버지의 두 번째 자식이 명한다.”
이 세상에 죽음이 탄생하고 곧이어 탄생한 생명의 신성.
아르카디아라는 세계 그 자체이자, 모든 만물을 관장하는 그녀는 자신이 창조해 낸 첫 번째 자식의 후손이자, 그 누구보다 자신을 따르는 충실한 종인 엘프들의 여왕, 멜리사를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의 뜻을 이 세상에 실천할 대리자에게는 언제나 충실한 조력자들이 뒤에 따를 것이니……. 나의 사도의 뒤에는 언제나 부러지지 않는 굳건한 나무가 지켜 설 것이다.”
비록 그녀가 원해서 내려진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신성과 사명을 받아들인 사도, 초코파이조아, 그의 탄생과 더불어 그 모든 요건을 충족한 상황이었기에, 세계수는 이 땅에서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고대의 종족을 다시금 부활시켰다.
“푸르른 잎사귀의 일족이여, 너희는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고귀한 혈통일지니. 그 어떤 생명체도 너희가 가진 그 존엄과 권위를 빼앗아 갈 수 없을지어다.”
“대지는 너희들의 발걸음에 환희할 것이며, 숲의 나무들은 너희들을 적으로부터 숨겨 낼 것이며, 모든 생명들은 너희를 보며 경외하며 그 드높은 이름을 부를 것이다.”
우우우웅.
그런 그녀의 절대적인 신언에 따라 터질 것처럼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초록빛의 기운.
강대한 생명력과 정령력으로 가득한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멜리사는 무언가 변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비단 멜리사에게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쿠구구구구궁.
그녀의 영역 전체에 퍼져 나가는 그 초록빛의 기운. 세계수는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는 자신의 그 강대한 힘의 향연을 보며 조금 몽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이 엘프(High Elf)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