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55
355화 조별 과제의 비극 (4)
서울의 어두운 밤거리를 장악하는 최대 폭력 조직, 동명파.
전국에 그 지부를 두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가며 빠르게 경쟁 조직들을 와해시키고 집어삼키고 압도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중이었지만, 의외로 이들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10년.
강산이 한번 바뀌는 시간 정도라고는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일푼의 믿을 것이라고는 두 주먹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박춘배, 그가 홀로 이렇게 거대한 조직을 일구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의 뒷배를 봐주고 전폭적으로 밀어주던 한 사람 때문이었다.
유한 건설사의 사장이자 강태수의 아버지인 강만철.
그의 회사가 추진하는 대규모 재개발 단지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서 하는 것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인연으로 춘배의 조직은 그야말로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하여 가파르게 도약했다.
그저 길거리 양아치들 몇 명 모아 놓은 하잘것없고 조잡한 건달 무리에서 한 벌에 수천만 원짜리 양복을 빼입고 어마어마한 액수의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어둠 속의 조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들은 강만철의 충실한 사냥개이자 하수인으로서 그 역할을 다해 왔다.
협박, 갈취, 납치, 폭행…… 심지어 살인까지.
그 어떤 더럽고 불법적인 일도 감수하고 강만철 사장을 위해 움직였던 동명파. 그리고 이들 덕분에 업계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어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하며 영향력을 불리고 있는 유한 건설. 이 두 회사는 겉으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관된 공생 관계나 다름없었다.
“형님, 저희 모두 잘 이야기하고 돌아왔습니다.”
태수와의 만남을 마무리하고 조직으로 다시 복귀한 만식. 그는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며 담배를 꼬나물고 있는 춘배를 보며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만남의 성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형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강만철 사장님께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태수에게 잘 이야기했습니다. 태수도 조만간 따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면 그쪽에서도 반응이 올 것 같습니다.”
그 이외에도 주저리주저리 태수를 통해서 알게 된 유한 건설과 강만철 사장의 내부적인 상황에 대해서 상세히 이야기하는 만식. 그런 그의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던 춘배는 이내 만족한 것인지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며 손을 들었다.
“그 정도면 됐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걸 머릿속에 담아 왔군.”
보통 칭찬에 인색한 춘배. 그의 기준으로는 극찬에 가까운 치하에 화색을 띤 만식은 이내 허리를 90도까지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감사합니다!”
“됐으니까 나가 봐. 추가로 지시할 사항이 있으면 나중에 따로 부를 테니까.”
춘배가 손을 내저으며 축객령을 내리자 잠깐 눈을 굴리다가 이내 조용히 사무실을 떠나가는 만식. 그가 떠나가고도 잠자코 생각에 잠긴 춘배는 이윽고 자신의 옆에서 가만히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충복, 김 실장에게 물었다.
“방금 들은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동명파가 지금껏 큰 분란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거대한 경쟁 조직들을 와해시키거나 무너뜨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이자 조직 내에서 핵심적인 두뇌 역할을 하는 김 실장. 춘배가 지금껏 내렸던 조직을 위한 큰 결정들은 대부분 그의 조언으로부터 나왔었기에 이번 문제 역시 그는 먼저 김 실장에게 물었다.
“제가 봤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고 보입니다. 우리 측의 메시지를 강만철 사장에게 전달한다고 해도 그쪽에서 따로 연락을 주지 않을 겁니다. 현재 유한 건설이 우리와 거리를 벌리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도움을 청할 만한 아쉬운 상황이 생기지 않아 그런 것이니 말입니다.”
본래 서울 전역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던 재건축과 대단지 아파트 개발 붐.
그때마다 아쉬운 손을 벌리며 동명파에게 도움을 청했던 그 찬란했던 시기가 불과 몇 년 새에 지고, 언제 끝날지 모를 캄캄한 암흑기가 도래하게 만든 가장 커다란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서울 지하에 인구 천만이 살아갈 새로운 거대 도시를 건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정치 생명의 모든 것을 걸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의 문제 해결과 내 집 마련이 꿈인 서민과 청년 모두를 위해 이 전기찬이 국민 모두의 앞에서 그 숙원을 반드시 해결해 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단군 이래의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 언더월드.
그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로 유한 건설과 동명파와의 그 끈끈했던 관계가 조금씩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그 언더월드라고 불리는 지하 도시의 개발과 관련된 일체의 공사는 아진 건설이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향후 부동산 시장과 건설 시장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업계 전체가 보수적인 관점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재의 분위기로 볼 때 강만철 사장이 우리 쪽 메시지에 적극적으로 응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건설 시장 전체가 얼어붙어 서로 간의 도움을 주고받을 이유가 없는 상황. 강만철 사장이 호구도 아닌지라 굳이 얼굴을 마주해 봤자 좋을 것도 없는 범죄 조직의 수장과 회동을 할 이유가 없었기에 춘배를 비롯한 동명파의 핵심 간부들에게 큼지막한 떡고물이 떨어진 것도 꽤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으음……. 그러면 자네가 보기에는 별 소득이 없는 만남이었다? 이 말인가?”
그런데 갑자기 강만철 사장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인 태수를 만나러 간다는 말단 조직원들. 이들을 통해서 지금의 애매한 관계를 극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 춘배 나름대로 수를 쓴 거였지만, 냉정한 현실을 이야기해 주는 김 실장의 말에 그의 얼굴은 이내 실망으로 물들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회장님. 잘만 이용하면 그 유한 건설과 강만철 사장이 우리에게 큰 빚을 지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뭐가 되었든 태수는 강만철 사장의 유일한 혈육이자 향후 유한 건설을 물려받을 후계자. 지금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도련님에 불과하지만……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둘 수 있다면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동명파에게 큰 힘을 실어 줄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애 하나 때문에 경쟁 상대인 남자애 하나를 처리해 달라는 부탁. 본인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하고 이런 식으로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김 실장은 이걸 다시 없을 좋은 기회로 보고 있었다.
“게다가 나중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때도 강만철 사장에게 협박의 수단으로 써먹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뿐인 자식이 여자애 하나 때문에 사람 하나를 묻어 달라고 사주했다……. 이런 기사가 온 세상에 도배되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을 테니까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모든 대화를 녹음하라고 지시했던 김 실장. 그는 만식이 가지고 온 USB를 집어 들고는 이내 음흉한 계획을 떠올리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현재 강만철 사장이나 미래의 그 철부지 도련님이나, 이번 일을 잘만 이용한다면 절대 우리 조직을 버리거나 배신할 수 없게 목줄을 채워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우리가 죽으면 강만철 사장만이 아니라 그 자식까지도 그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 유한 건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온 힘을 다해 우리 조직을 지키려고 할 것입니다.”
꽤 그럴듯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김 실장. 그의 말에 춘배의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일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정말 더할 나위가 없겠군. 그래서…… 그 치워 달라는 목표물은 어떻게, 조용하게 처리할 수 있겠어? 꽤 유명 인사인 것 같던데?”
Mr.임이라고 불리는 세계적인 유망주이자 인재로 소문난 임재균.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검색만 해 봐도 대문짝만 하게 수많은 사진과 기사가 나오는 그 화제의 인물을 세상에서 조용히 지워 달라는 부탁을 하는 태수도 꽤 무모했지만, 그것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김 실장 역시 일반적인 상식과는 꽤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뭐…… 조금 인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뭐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모르게 산 깊은 곳에 파묻어 버리거나 시멘트로 공구리 잘 쳐서 바닷가에 드럼통째로 던져 버리면 절대 못 찾을 텐데.”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본 것이 아닌 김 실장과 춘배. 이들에게 으슥한 골목길을 걷다가, 자신의 집 안에서 잠을 자다 야심한 새벽에 납치당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모르게 죽어 간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하긴……. 그렇게 우리한테 죽은 놈 중에서 아직 시끄러워진 놈이 없긴 하지. 크크크……. 생각해 보니 웃기는군. 그렇게 죽기 전에는 귀신이 되어서라도 복수하겠다며 독기를 잔뜩 품고 으르렁대던 것들이 왜 아직도 소식이 없대?”
돈 때문에.
사업적인 갈등 때문에.
단순 보복 때문에.
수많은 이유로 인해서 동명파에게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순간에 셀 수 없이 깊은 원한에 찬 악담과 저주를 듣고도 두 발 쭉 뻗고 잠만 잘 자는 춘배는 자신 있다는 김 실장의 눈빛에 이내 믿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알아서 어디 잘 처리해 봐. 그 철부지 도련님의 부탁을 들어주고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족쇄를 잘 채워 보라고.”
동명파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생 남녀끼리의 치정 싸움에 끼어들기를 결정한 춘배. 그런 그의 지시에 김 실장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짤막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우리 최근에 중국 쪽에서 들여온 그 약들 말이야. 효과는 괜찮은 것 같은데 가격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아무리 독점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너무 가격을 후하게 쳐 주는 거 아닌가?”
“아, 그거 말입니까? 그게 산둥 지역에서 몰래 재배하고 들여오는 과정에서…….”
그 이후에도 동명파의 미래를 위해서 밤낮 가리지 않고 많은 논의를 하는 춘배와 김 실장. 하지만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언제나 조직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불철주야 고민하고 노력하는 자신들이 바로 동명파가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당사자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채연. 그리고 그녀를 반긴 것은 다름 아닌 채연의 아빠였다.
“왔니? 오늘도 꽤 늦었네.”
“예. 교수님이 과제를 낸 게 있어서요. 그거랑 관련해서 조사 좀 하다가 늦었어요.”
가방을 풀어헤치며 지친 기색으로 소파에 몸을 싣는 채연. 그런 그녀를 향해 아빠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너…… 혹시 남자 친구 생긴 건 아니지?”
“아! 그런 거 아니래도!”
무언가 이상한 눈빛으로 채연을 바라보는 아빠. 하지만 절대 아니라는 단호한 채연의 이야기에 그는 다시 뉴스를 향해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아니라면 다행이고. 혹시라도 생기면 말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녀석인지 확인은 해야 하니까. 너도 그게 규정이라는 거 잘 알고 있잖아.”
규정이라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채연의 아빠. 하지만 채연은 그런 아빠의 말에 잔뜩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알았다니까? 애초에 그 규정인지 뭔지 하는 거 때문에 최소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자 친구 사귈 생각은 없네요!”
그런 그녀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아빠. 하지만 이내 깜빡했다는 듯이 방으로 들어가는 채연의 뒷모습을 향해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아! 맞다! 채연아! 다음 주 주말에 네 할아버지가 잠깐 놀러 오라고 하신다. 그날 시간 비워 둬!”
“나 그날 과제 모임 있어! 엄마랑 둘이서만 갔다 와!”
“모임은 미루면 되잖아! 이놈의 기지배야! 할아버지 얼굴 보러 가는 게 중요하니 그깟 과제 하나 하는 게 중요하니?”
“아! 싫어! 거기 가면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해서 머리 아프다고! 안 갈 거야!”
아빠의 잔소리에 방문을 쾅 하고 닫으며 들어가는 채연. 대학생이나 되어서 사춘기가 온 것 같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아빠는 잠깐 굳게 닫힌 방문을 흘겨보다가 이내 다시금 TV를 향해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으이구……. 자기 할아버지가 잘나가면 좋아하지는 못할망정 뭐가 다 귀찮고 성가시다고 저렇게 짜증인지 뭔…….”
자신의 딸자식이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그. 딸을 가진 집 어디에서나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었지만, 만약 지금 이 자리에 기자가 있다면 지금 이 상황은 그야말로 일간 신문 1면을 차지할 수 있는 거대한 특종이나 다름없었다.
“아빠가 또 채연이 안 데려가면 엄청 아쉬운 소리 할 텐데…….”
어떻게 저 망나니 같은 기지배를 끌고 갈지 고심하는 채연의 아빠. 그런 그의 거실에는 다정한 가족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엄마와 아빠. 채연.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화사하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노년의 한 남성.
너무나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그의 가족과는 다르게, 그 노년의 남성은 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언더월드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대중의 무한한 사랑과 찬사를 받는 정치계의 이단아이자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 전기찬.
그리고 그런 현 대통령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스럽고 아까운 유일한 친손녀 전채연.
그것이 태수만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그녀의 진짜 정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