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57
357화 조별 과제의 비극 (6)
“네가 재균이 맞지? 이미 다 알고 왔으니까 아니라고 발뺌해도 상관없어.”
음흉한 얼굴로 히죽 웃으며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세 사람.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이들이었지만, 재균은 일전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의문의 불청객들이 불순한 의도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괜히 소란스럽게 일 벌이지 말고 조용히 우리 따라가자. 잠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별일 아니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이 새끼 이거 우리 보고 완전히 얼었네.”
“크크크. 혹시라도 이상한 수작질 벌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자취방에 비집고 들어온 세 명의 덩치들. 순식간에 이들에게 포위당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 재균은 이내 머릿속으로 지금 상황에 대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또 어디 다른 정보부에서 납치하러 온 건가……?’
이미 한 번 비슷한 전적이 있었던 재균.
일본 정보부에 의해서 강제로 부산에서 일본행 선박을 타고 끌려가던 와중 미군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되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온갖 추론을 떠올렸다.
‘설마 또 일본에서 보냈을 리는 없는데……. 중국? 모사드? KGB?’
자신이 아는 온갖 정보기관을 떠올리는 재균.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세 명의 인상은 이전에 만나 보았던 정보기관의 요원들과는 다르게 무언가 천박하고 거칠기 그지없었다.
“으. 이 새끼 존나 추잡하네. 무슨 이런 변태 같은 피규어를 가지고 다니냐?”
“크크크. 형님, 그게 문제입니까? 여기 책장에 꽂혀 있는 만화책들 죄다 미소녀 나오는 그런 겁니다.”
온갖 장르의 문화를 광적인 수준으로 섭렵하고 있는 재균. 일반인들의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마이너 한 물건들이 가득해 있는 그의 자취방을 둘러보며 서로 낄낄대며 비웃던 이들은 순간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여간 이딴 새끼랑 무슨 여자 하나 데리고 경쟁을 한다니 한심해서 원…….”
그 말을 하고 순간적으로 아차 하는 표정을 하며 황급히 입을 다무는 만식. 하지만 똑똑히 그의 말을 들은 재균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여자랑 경쟁……?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애써 침착한 척 연기를 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그. 그리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빛을 주고받는 나머지 두 사람을 보면서 재균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고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라면 채연이밖에 없는데……. 그런 채연이를 좋아하고 나랑 경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강태수……?”
그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말에 해당하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는 그 누구도 없었기에, 재균은 무언가 깨달은 얼굴로 물었다.
“당신들 설마 태수가 보낸 사람들이에요?”
강태수.
고등학교 때부터 채연을 짝사랑하고 그녀의 주변에 접근하는 남자들을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완전히 박살 내 버리던 그. 태수의 패거리에게 온갖 괴롭힘을 당했었던 재균이기에 그는 확신에 찬 얼굴로 소리쳤다.
“그,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야?”
“맞네! 태수가 보낸 거 맞잖아요! 저 다 알아요!”
“…….”
애써 부정하는 그를 앞에 두고 마치 엄청나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해결한 것처럼 뿌듯한 얼굴로 추궁하는 재균. 그리고 그런 그의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던 만식을 바라보던 한 사람이 이내 흉물스럽게 인상을 구기며 재균의 복부에 주먹을 제대로 꽂아 넣었다.
퍼억.
기습적으로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당한 재균.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고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도 내지 못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아 끙끙거리며 신음했다. 그리고 그의 분노는 이내 말실수를 한 만식에게 돌아갔다.
철썩.
강하게 날아온 싸대기.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휙 돌아간 만식은 얼얼하게 밀려오는 통증에 별이 보였지만 자신의 순간적인 말실수가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를 알기에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그 누구보다 빠른 사죄. 하지만 형님이라고 불리는 그는 도무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만식의 귀싸대기를 갈겨 댔다.
“이. 새끼가. 그. 혓바닥도. 제대로. 간수도. 못해서. 일을. 그르쳐?”
말 한 마디를 할 때마다 날아오는 손바닥. 일말의 자비 없는 그 따귀가 수십 번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다 터진 만식의 얼굴은 이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크르르륵…….”
이상한 소리를 내며 피를 줄줄 흘리는 만식. 거의 혼절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러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 그는 이내 짜증 난다는 듯이 옆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는 이에게 넘기며 말했다.
“영춘아, 앞으로 이 새끼 간수 잘해라. 이번 일 끝나고 내가 직접 이 새끼 담가 버리기 전에.”
“아, 알겠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그 짧은 순간에 거의 정신을 잃고 초주검 상태가 된 만식의 어깨를 메고 부축하는 영춘. 그는 자신의 앞에서 아직도 분이 안 풀려 씩씩거리고 있는 미친개, 영길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이거 또 눈깔 돌아갔네.’
동명파의 행동대장이자 미친개로 불리는 영길. 분노 조절 장애가 있어서 수틀리면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드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그의 스위치가 켜졌다는 것을 깨달은 영춘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가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목표물과 이야기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대충 이해가 됐지……?”
자신의 동료도 무참하게 후려 패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 재균.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진심 어린 살기를 잔뜩 뿜어내고 있는 영길에게 압도된 그는 오들오들 떨며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네놈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분이 있어서 우리는 너를 데리고 갈 거다. 밖에 사람들 많이 있으니까 괜히 소란 일으켜서 사람들한테 주목받지 않게 자연스러운 척해라. 만약 시끄럽게 만들어서 일이 틀어지게 만들면…….”
스윽.
어디에다 숨겼는지 품속에서 새파랗게 날이 선 커다란 회칼을 꺼내 보이는 영길. 그리고 그는 진심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서 네놈의 멱만큼은 내가 직접 따 주지.”
“……?”
“왜? 못 할 것 같아? 어차피 네놈 하나 죽여 봤자 빵에 들어가는 게 고작이야.”
그건 별것도 아니라는 듯이 실실거리며 웃는 영길.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재균은 깨달았다.
자신을 어떻게든 일본에 데리고 가려던 이전의 납치범들과 다르게 이들은 자신의 안전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으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균. 그가 자신에게 완전히 압도되었다는 것을 파악한 영길이 피식 미소 지으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바로 앞에 차 대기시켜 놨으니까 이상한 짓 할 생각 말고 얌전히 따라와. 도와줄 사람은 없으니까 이상한 희망 같은 건 품지도 말고.”
이미 다 준비했다는 듯이 웃고 있는 영길. 그가 문을 열고 재균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이들은 문 앞에 있는 한 사람을 보고는 모두가 하나같이 얼어붙었다.
“누구……세요?”
방금 막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려던 것 같은 몸짓을 한 상태로 의아한 눈빛으로 영길을 바라보고 있는 채연. 그녀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얼굴로 불과 30분 전 자신이 떠나갔던 재균의 자취방에 있는 검은 양복의 세 사람을 연신 힐끗거렸다.
“채, 채연아!”
재균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다급하게 물어 오자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제물 자료 하나를 두고 가서, 그거 가지러 왔어. 그런데 재균아,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이야? 여기 이분들은 누구고?”
수상한 기색을 팍팍 풍기는 정체불명의 세 사람. 그런 그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묻자 재균은 연신 눈을 굴렸다.
“으응…… 그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상황. 하지만 그때 영길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하하하. 우리는 재균이 삼촌들이란다.”
“삼촌……이요……?”
“그래. 재균이 외할머니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말이야. 급하게 데리고 가야 해서 왔단다. 잠깐 고향에 있는 장례식장에 다녀와야 해서 말이야. 저기 멀리 밑에까지 내려가야 해서 아마 당분간은 재균이랑 연락이 힘들지도 모를 거야.”
자신의 검은 양복을 매만지며 장례식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필하는 영길. 순간적인 기지로 만들어 낸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런가 하며 넘어갈 법한 상황. 하지만 채연은 의외로 날카로운 면이 많았다.
“그런데 저분은 왜 얼굴이 저렇게 피투성이인지……?”
볼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고 입술이 터지고 쌍코피까지 나며 피가 줄줄 흐르는 만식. 그의 얼굴과 자취방에 흩뿌려져 있는 핏자국을 보며 채연이 묻자 영길이 역시 말문이 막혔다.
“어…… 그게…….”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난 후. 영길은 오히려 과장된 웃음을 토해 내며 말했다.
“허허허! 이 자식이 방에서 아까 실수로 넘어져서 얼굴을 바닥에 정통으로 박았지 뭐야. 그래서 저렇게 피범벅이 된 건데 별것 아니란다. 그냥 단순히 사고야, 사고.”
“……그런가요?”
그냥 사고라기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이는 만식.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채연이 입을 다물자 영길은 이내 슬쩍 재균을 바라보고는 문을 나섰다.
“저기…… 미안한데 우리가 지금 너무 바빠서 말이야……. 재균이랑 먼저 나갈 테니까 과제물은 찾고 문만 잘 닫고 가 줄래?”
너무나도 바쁘게 방을 나서려는 이들. 그런 그들에게 떠밀리듯이 나가는 재균과 눈이 잠깐 마주친 채연은 떠나가는 이들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저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고등학교 때부터 재균이와 같은 학교였던 채연.
비록 그렇게 깊고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 그 인연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그녀는 생각보다 재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재균이는 외할머니가 어릴 때부터 돌아가셔서 원래 안 계시는 거요.”
우뚝.
그 순간 황급히 이 자리를 벗어나려고 걸어가던 영길의 발이 멈춰 섰다.
“재균이 외가 쪽 삼촌은 두 분이에요. 한 분은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고 다른 분은 제가 전에 사진으로 봐서 아는데…… 당신들은 그때 봤던 그 삼촌은 절대 아니에요.”
“게다가 재균이네 부모님의 고향은 두 분 다 서울이에요. 할아버지 때부터 쭉 수도권에서 사셨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데려가길래 한동안 못 볼 수 있다는 거죠?”
너무나도 수상한 기색이 넘치는 상황.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재균의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보며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 없었던 채연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 도대체 정체가 뭐죠?”
그리고 그 순간. 영길의 표정은 흉악범의 그것과 같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망할 새끼들이…….’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싶을 정도의 상황.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것을 깨달은 영길은 이내 머릿속으로 스산한 생각을 떠올렸다.
‘여기서 이 새끼들을 모조리 다 처리해?’
본래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없앨 생각이었던 재균. 그런 그는 지금 이곳에서 처리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지금 자신들을 수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저 여자애는 달랐다.
‘아니야……. 그랬다가는 오히려 동명파와 유한 건설과의 관계가 더 틀어질 수 있어.’
애초에 저 여자애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상황.
그렇기에 도무지 풀 수 없는 이 복잡할 실타래를 눈앞에 두고 영길은 잠깐 고민하다 이내 결정했다.
“얘들아.”
“예, 형님.”
무언가를 결심한 듯 차가운 목소리로 자신의 수하인 만식과 영춘을 부르는 영길. 그리고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채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년도 우리랑 같이 간다. 끌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