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67
367화 화폐 전쟁 (3)
하나의 세상에서 저마다의 역할에 따라 모험을 즐기는 하나의 게임 장르.
MMORPG.
하지만 여느 게임이 그러하듯, 게임을 출시하고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런 장르의 게임에서는 하나같이 발생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게임 경제에서 무한정 발생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
게임 속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퀘스트를 해결해 나가며, 나아가 여러 가지 던전과 유적을 탐험하며 기본적인 보상으로 획득하는 게임 머니.
처음에는 0으로 시작하지만, 무한정 증가해 가는 게임 머니의 총량이 이론상 시세를 무한정 상승시키며 게임 내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리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되는 현실. 그렇기에 수많은 개발사가 그러한 결말을 막아 내고 게임 내 경제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기상천외하고 정신 나간 발상을 총동원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
어마어마한 거래 수수료를 통해서 강제적으로 게임 머니를 일정 비율 소각시키고.
온갖 강화와 게임 콘텐츠에 무지막지한 비용을 책정해서 게임 머니의 막대한 소비를 유도하고.
심지어 밸런스 패치라는 명목으로 과다한 게임 머니의 수급을 제한하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주)아르카디아에서는 조금 독특한 방식을 채택했다.
[몬스터를 사냥한다고 하더라도 보상으로 골드를 직접 획득하지는 못할 겁니다. 상식적으로 슬라임이 돈 가지고 다니는 것 봤습니까? 던전이나 유적지에서 숨겨진 보물 상자를 찾으면 일정 수준의 골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아르카디아에서 여러분은 열심히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얻은 부산물들을 주우러 다녀야 할 것입니다.]게임 머니를 드랍하지 않는 몬스터들.
몬스터가 돈 가지고 다니는 거 봤냐는 현실적인 물음과 함께 이들은 사냥을 통해 게임 머니인 골드를 습득할 수 없게 만들었다. 사냥을 통해서는 잡템이라고 불리는 온갖 몬스터들의 부산물만을 얻을 수 있는 아르카디아. 그리고 그걸 인근 마을의 상점이나 상인들에게 팔아야만 실질적인 게임 머니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생각보다 그리 만만치 않았다.
-크흠……. 처음 보는 얼굴인데……. 코볼트 어금니는 개당 10브론즈야.
-팔기 싫으면 말든지. 어차피 너 말고 팔 사람 많아.
-자네……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나?
-이런 깡촌 같은 마을에서 얼마나 제값 쳐 줄 거라 생각했나? 시가가 마음에 안 들면 자네가 직접 대도시까지 가지고 가 보든가.
이런 잡템을 취급하는 상점의 주인들은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에 이른 협상가들. 화려한 언변과 예민한 시세 감각으로 최대한 가격을 후려치며 기회만 되면 호구 잡고 헐값에 뜯어먹었기에 결국 유저들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X이발! 상점 주인 새끼 진짜 죽이고 싶다.
-와. 시세 잘 모른다고 절반도 안 되는 가격 부르더라. 아르팬디아에서 시세 확인 안 했으면 제대로 사기당할 뻔.
-아니, 근데 이거 너무 악랄한 거 아니냐? 무슨 게임 속 시세가 가게 주인 마음대로임?
현실과 다를 바 없이 세밀하고 정교하게 돌아가고 움직이는 아르카디아.
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 그리고 유통까지. 그 모든 경제의 순환과 연결 고리가 완벽하게 구현된 이 세상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몬스터를 처치하며 강해지고 온갖 모험을 즐기고 싶은 유저들에게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들은 생각했다.
-아, 그냥 적당한 가격에 잡템 고정적으로 사 주는 사람 없나?
하나의 업(業)으로서 그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간절히 원하는 이들의 수요. 그리고 그렇게 한 직업이 아르카디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상인(Merchant).
각각의 마을과 도시를 오가며 그곳의 특산품과 몬스터의 부산품을 대량으로 매입하고 이를 운반해 시세 차익을 얻는 직업.
그리고 이 아르카디아에서 상인이 가지는 영향력과 역할의 중요성은 상상 이상으로 지대했다.
[아르카디아에서 상인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여러분에게 제가 조언하고 싶은 건, 그 길이 생각보다 그리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한 대학교 강단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30대의 젊은 청년.
멋들어지는 양복을 입고 있는 그는 자신의 말에 시선을 집중하고 귀를 쫑긋하고 있는 수많은 대학생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인이라면서 돈주머니를 던지면서 몬스터를 사냥하는 식의 무늬만 상인이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시세 차익을 얻었는지, 안정적으로 물품을 운송해 신뢰를 얻었는지, 협상과 교섭을 통해서 얼마나 유리한 계약을 따냈는지. 이러한 일련의 성과들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진지하게 전투 능력이랑은 하등 관계없이 순수히 상행위만으로 캐릭터를 육성시키죠.]무늬만 ‘상인’이며 결국 플레이를 위해서 전투가 강제되는 다른 게임과 다르게 순수하게 정말 ‘상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아르카디아. 그곳에서 자신이 해 왔던 과정들을 떠올리며 묘한 미소를 짓던 그는 이어서 말했다.
[상인에게는 강한 전투 능력보다는 운송 중인 물품과 상단을 공격하는 도적 떼와 몬스터를 막아 낼 용병들을 고용하는 안목이 더 중요합니다. ‘이번 상행에서 과연 얼마나 강한 수준의 몬스터와 도적들이 공격해 올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전력으로 용병을 고용해야 최소한의 비용으로 안전하게 물품을 운송할 수 있을까?’와 같은 판단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인 기업체에서 말하는 리스크 관리에 해당하는 문제들이죠.] [게다가 돌발적인 변수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일전의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하르멜 제국에 판매하기 위해서 고가치 특산품에 해당하는 귀금속을 파켈 왕국에서 대량으로 매입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르멜 제국이 돌연 바말 제국과의 전쟁에 돌입하더니 결국 패배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더군요. 그로 인해서 결국 사치품인 귀금속을 구매할 귀족들의 사정이 어려워져 귀금속의 가격이 폭락해 버려 어마어마한 손실을 보기도 했었죠.]아무리 전략을 잘 짜고 안정적으로 상단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게임 속에서 불어닥치는 거대한 변화의 폭풍과 회오리 속에서 한순간에 막대한 이익과 손해를 입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살벌한 야생과도 같은 세상.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아 상인으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강연을 끝냈다.
짝짝짝짝.
그의 강연이 끝나자 열과 성을 다해 열정적으로 박수 갈채를 보내며 화답하는 대학생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앞에서 강연을 한 사람은 지루한 이야기나 떠드는 아무도 모르는 일개 외부 강사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아르카디아에서 이미 상인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고, 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일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우리 파이 상단의 문을 두드리세요. 경험과 실력이 출중한 수많은 전문가가 여러분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도움을 드릴 겁니다.]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최대 규모의 단일 상단으로 등극한 파이 상단.
그 상단의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이자, 명실상부한 실권자인 애플.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모교에 방문해서 자신이 졸업한 학과의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지금 이 순간에 마치 과거에 장원급제 하여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 것 같은 뿌듯한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질문만 몇 개 받고 마무리하도록 하죠……. 네. 거기…….]농담이 아니라 강연을 들은 학생 전체가 질문이 있다고 일사불란하게 손을 드는 상황.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집중력과 흥미가 더럽게 낮은 대학생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신에게 과한 관심을 표하는 이들의 뜨거운 열정에 애플은 살짝 당황하면서 한 학생을 지목했다.
[제가 최근에 뉴스에서 본 내용인데요. 파이 상단이 한 해 동안 벌어들인 골드 수익이 1,400만 골드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화로 계산하면 자그마치 1조 4천억 원에 달하는 거금인데요. 그게 정말인가요? 아니면 그냥 루머인가요?]살짝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일부러 민감한 질문을 던지는 짓궂은 남학생의 질문. 대놓고 얼마 벌었냐? 라는 돌직구에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애플은 너무나도 담담하게 답했다.
[그 뉴스가 조금 잘못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제 상단…… 아니, 우리 파이 상단의 올 한 해 영업 이익은 1,523만 2,911골드 29실버 28브론즈이니 오히려 그 이상이었죠.]자그마치 1조 5,232억 9,112만 9,280원을 벌어들였다는 애플의 발언.
그리고 그 순간 강의실 안에 경악스러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니까…… 뉴스에 나온 것보다 대략 1,000억 이상을 더 벌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는 남학생. 그리고 이내 온갖 폭풍 같은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두 주먹만으로 그렇게 거대한 상단을 일궈 냈는지 그 비결에 관한 질문들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애플은 너무나도 겸손하게 답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운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와 제 아내에게 그 가상현실의 냉혹하고 험난한 현실을 알려 준 한 사람을 만났거든요. 아마 그 사람이 없었다면 파이 상단은 아직도 이름조차 모르는 그저 그런 작은 상단에 불과했을 겁니다.]“……?”
“……?”
자신이 이룩한 모든 것이 그저 하나의 행운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애플의 회고이자 고백과도 같은 이야기.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는 마치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약간 몽롱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지엠 상단의 그 집단적이고 야만적인 게임 속 시장 개입에 맞서서 파이 상단을 위기에서 구해 주고 나아가 물심양면 지원해 준 그 은인이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일 년에 수만, 수십만 골드를 벌어들이고 절반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수백, 수천 골드를 벌어들이고 그것을 가져가거나. 과연 어느 쪽이 이익일지 생각해 보라고 했던 그 말이요.]지분을 50% 넘기고 자신의 손을 잡으라고 제안하던 한 사람.
그 사람과의 기억을 되새기며 순간 입을 굳게 다물고 아련한 표정을 짓던 애플에게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 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수만, 수십만을 벌어들이고 절반을 가져가라니……. 그 말씀은 설마 파이 상단의 소유주가 애플과 레몬, 두 사람만이 아니라는 건가요?]그의 짤막한 이야기만으로 그 거대한 상단의 배후에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을 눈치챈 한 여학생의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애플은 이제는 밝힐 때가 되었다는 듯, 고개를 약간 흔들며 대답했다.
[네. 맞아요.]“헉…….”
“진짜야?”
“전혀 몰랐는데…….”
“와……. 대박.”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던 사실에 술렁이는 강의실. 하지만 애플은 너무나도 태연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파이 상단은 사실 저와 제 집사람이 각각 2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와 그 은인이 사실상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상단이라고 해도 무방하죠.]“5, 50%나?”
“이런 미친……. 절반이나 가져갔다고? 그 거대 상단을?”
불과 1년 만에 조 단위의 이익을 벌어들이는 어마어마한 가상의 상단의 지분을 절반 가지고 있는 신원 미상의 은인. 그 사람에 대한 어마어마한 질문이 쏟아졌지만, 애플은 그 질문에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저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충성심만을 표현할 뿐. 그게 전부였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분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이 파이 상단이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고 하더라도, 그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저는 웃으면서도 모든 골드를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