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리치 아르게이머 (1)
신성 제국 세인트.
제국이라 칭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국토를 가졌지만, 명실상부한 제국으로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이곳은 엄청난 국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으앙! 다쳤어!”
“괜찮아! 내가 고쳐 줄게! 힐!”
5살 먹은 어린아이들조차도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집단.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세인트에서 태어난 이들은 마치 신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것처럼 다른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역사적으로 그 어떤 강력한 대제국도 감히 세인트는 정복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국가와 달리 세인트의 일반 병사 하나하나가 전부 성기사와 사제였으니까.
게다가 신이 대륙에 머무른 자리라며 모두에게 추앙받는 성지(聖地), 에덴.
그곳에 머무르는 교황과 성녀 그리고 최고위 신성 기사단과 주교급 사제들은 언제나 이적(異蹟)이라 칭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힘과 권능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런 강력함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륙의 여러 이권 다툼에서도 조용히 본연의 자리를 지키는 세인트.
그야말로 힘숨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국가였다.
그렇기에 호전적인 제국들조차 언제나 평화를 소중히 하는 이들의 코털을 뽑아 괜히 자극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이들의 눈치를 보며 처신을 조심할 뿐.
“마룬 왕국의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마룬 왕국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한 8살의 제롬. 처음으로 외부인을 알현하는 자리인지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의 앞에서 예를 지키며 고개를 숙이는 이를 내려다보았다.
“나 역시 영광과 천상의 검을 만나게 돼서 반갑소.”
“선대 국왕께서 편찮으시다고 들었는데, 부디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빌겠습니다.”
노쇠해 쓰러진 그의 아버지에 대한 축복. 그것도 세인트 제국의 고위 신성 기사가 내리는 것이기에 제롬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고맙소. 나 역시 그리하기를 신에게 언제나 기도드리고 있소.”
“언제나 그 희망을 잃지 않으시면 신께서 그 희망에 답하실 겁니다.”
선대 국왕의 건강을 주제로 수차례 대화가 이어진 후. 제롬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세인트 제국의 신성 기사인 당신이 우리 왕국을 찾아온 연유가 무엇이오?”
세인트 제국.
평상시에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폐쇄적인 이들을 세인트 제국 밖에서 만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특히 최고위 신성 기사, 교황의 직속 기사단의 일원이자 영광과 천상의 검이라는 성호(聖號)를 받은 에구디엘이 직접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은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제롬의 말에 에구디엘은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최근 마룬 왕국에서 의문의 사건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의문의 사건이라는 말을 꺼내자 제롬은 그 즉시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헨 공작의 영지에서 일어난 사건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거기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 혹시 세인트 제국이 조사단을 파견…….”
“우리 쪽에서도 공작의 죽음에 대해 조사단을 파견해 철저히 조사하고 있소.”
“마룬 왕국의 빠른 조처에 경의를 표합니다. 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을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흑마법사의 개입이 의심되어…….”
“그 부분은 아직 속단하기 이른 것 같소. 일단 조사단의 결과를 기다리고, 만약 그러한 바가 있다고 한다면 그때는 세인트 제국의 협조를 구하겠소.”
“…….”
마치 이를 예상하고 준비했다는 듯 칼같이 단호한 어조로 쳐 내는 제롬. 그런 그의 철벽에 에구디엘은 할 말을 잃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순식간에 간파하고는 물었다.
“혹시 두려우신 겁니까?”
찔끔.
그의 물음에 순간적이지만 무너져 내린 표정.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 보인 제롬은 애써 침착하게 되물었다.
“두렵다? 도대체 내가 두려워할 게 뭐가 있소?”
“……세인트 제국이 비록 사사로운 대륙 내의 정세에 개입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깜깜이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그저 관조하고 지켜볼 뿐이죠.”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교회와 사제, 성기사들 그리고 독실한 신도들로부터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동향과 첩보들. 그리고 가끔이지만 성녀가 보게 되는 예지들을 통해서 세인트 제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도 막대하고 방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베르헨 공작이 준비하던 전쟁, 만약 그가 그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아마 왕께서는 아주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겠죠. 아직 뒷배경이라고 할 만한 이들도 거의 없는 미약한 정치력, 거기에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판단도 힘들어 신하가 가르쳐 준 대로만 연습해서 행동하는 분별력과 판단력.”
그 말을 하며 제롬과 계속해서 시선을 교환하던 한 신하를 에구디엘이 직접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을 받은 대신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롬 역시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듯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베르헨 공작으로부터 왕위를 지키기에는 아직 부족하셨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 이게 무슨 무엄한 발언이오!”
보다 못한 한 신하가 엄한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지만, 에구디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연하게도 베르헨 공작이 죽었습니다. 전쟁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이제 곧 전장의 나팔이 울려 퍼지기 바로 직전에 말입니다. 그럼 이 상황에서 누가 제일 이득을 볼 것 같습니까?”
“그, 그런…….”
엄청나게 동요하는 제롬 국왕. 이럴 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냐는 물음이 그의 눈에 가득했지만, 그에게 모범 답안을 알려 줄 수 있는 신하는 아무도 없었다. 최소한 에구디엘이 서 있는 지금 이 상황에는 말이다.
“그런데 가장 이득을 본 사람들이 베르헨 공작의 죽음을 조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세인트 제국의 조사단장으로서 저는 이렇게 볼 수밖에 없군요.”
마치 퍼즐을 이어 보듯이 수상한 정황들을 잇기 시작하는 에구디엘.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제롬을 향해 말했다.
“마룬 왕실이 왕위 찬탈을 노리는 베르헨 공작을 제거하기 위해서 흑마법사를 이용했다고 말이죠.”
“그, 그게 무슨 말이오!”
흑마법사.
세인트 제국이 제일 경멸하는 존재들. 마계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그 힘을 빌어다 쓰는 이들을 다른 왕국에서는 그나마 방관하는 수준이었지만, 세인트 제국에게 걸리면 그야말로 노빠꾸 광신도들의 무서움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더러운 흑마법사는 불로써 정화해야 한다!”
“아니야, 이들의 추악한 영혼은 죽을 때까지 굶겨서 스스로 회개하도록 해야 해!”
“무슨! 물이야말로 이들을 구원할 수 있지!”
온갖 처형 방법을 동원하며 영혼을 정화한다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격부터 하고 보는 이들. 그렇기에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는 흑마법 계열의 유저가 절대 만나서도, 상종해서도 안 되는 이들이 바로 세인트 제국 출신의 NPC들이었다.
“아, 아니야! 우리는, 난 그런 적 없어!”
혹여나 흑마법사와 같은 패거리로 몰리게 될까 잔뜩 겁에 질린 제롬은, 왕으로서의 체통도 잊은 채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조사단을 수용하십시오. 제가 직접 베르헨 공작의 영지를 조사해 흑마법사와 왕실이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겠습니다.”
에구디엘의 말에 제롬과 신하들은 모두 침묵했다. 혹여나 이를 거부했다가 세인트 제국에게 왕실 자체가 흑마법사와 내통하는 집단으로 규정당했다가는, 왕국 자체가 멸망할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흑마법사 VS 사제.
암흑기사 VS 성기사.
아르팬디아에서 자주 등장하는 떡밥 중 하나로, 성 계열과 악 계열 중 어느 쪽이 더 좋은가에 대한 논쟁은 그 어느 주제보다 활활 타오르며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곤 했다.
-성기사가 짱이지. 회복도 되고, 탱도 되고, 딜도 준수하고.
-암흑기사도 회복 있음. 체력 흡수 모름? 그건 적 체력도 깎음.
-흑마법사 하는 놈들은 죄다 인성 꼬인 사이코임.
-종교충 어서 오고. 맨날 버프 준다며 돼지 멱따는 소리 내는 거 극혐.
-스킬 이름이 찬송의 성가인데 어쩌라고! 이 XXX아.
-응~ 느금마.
-이 XXXX! XXXXXXX! XXXXXX!!
-사제 한다는 놈이 입 험한 거 보소. 그러고도 사제냐?
언제나 패드립과 온갖 인신공격으로 끝나는 이 논쟁 속에서, 이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굽히지 않고 으르렁댔다.
“다크 스웜.”
“키에에에에엑.”
퍼져 나가는 칠흑 같은 어둠의 안개. 그 안개에 닿자마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가는 레벨 83의 코카트리스 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회색빛으로 쓰러지며 아이템과 골드를 토해 냈다.
“와. 역시 흑마법사들이 대미지는 엄청 강력하네. 이렇게 한 번에 쓸어버린다고?”
같이 사냥을 하던 파티원들이 놀란 눈으로 필드에 즐비해 있는 몬스터들의 시체를 보며 황당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역시…… 흑마법사 랭킹 1위는 다르네요.”
레벨 86의 흑마법사, 어둠의흑염룡. 그는 지루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뭘요. 아마 다들 레벨 높아지면 이 정도는 할 거예요. 그럼 또 몹몰이 가능하시죠?”
“뭐…… 기력은 다 찼으니까 가능은 해요. 그런데 그 스킬은 쿨타임도 없어요?”
대미지가 엄청난 광역 스킬. 그런데도 휴식 시간 없이 또다시 몹을 몰아와 달라는 그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음…… 아마 몹 전부 몰아올 즈음이면 쿨타임도 다 돌 테니까 문제없어요.”
“아…… 네! 그럼 지금 다시 몰아올게요!”
“야…… 역시 이래서 흑마법사랑 파티 하면 버스 탄다고 하는 거구나.”
딜에 있어서는 다른 직업들과 현저한 차이를 보일 정도로 강력함을 구가하는 흑마법사. 그렇기에 사제와 같은 보조적인 직업들보다 편한 사냥이 가능했기에 여러 파티에서 선호하는 인기 직업 중 하나였다.
“하암…… 지루해.”
몹을 몰아올 이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 기다리며 하품을 하는 어둠의흑염룡. 그는 최근에 생성된 퀘스트를 살펴보며 입맛을 쩝쩝 다셨다.
[퀘스트, 마룬 왕국에서 들리는 불길한 소문]마룬 왕국의 강력한 권력자였던 베르헨 공작. 그가 사악한 흑마법사에 의해 무참하게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 흑마법사가 누구인지 찾아라.
“베르헨 공작이라…….”
인터넷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베르헨 공작. 그의 죽음에 대해 확인하라는 퀘스트는 아무런 예고나 전조 없이 생성되었다.
아르카디아의 NPC들은 모르겠지만, 일반 유저들은 이미 아르팬디아에 올라온 제보 영상들을 통해 강력한 리치와 언데드 군대가 주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실. 하지만 그들도 모르는 것은 그 리치의 정체였다.
“그걸 또 어떻게 찾아, 귀찮게.”
이유는 모르지만, 자신에게 무작위로 날아온 퀘스트. 하지만 어둠의흑염룡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까지 찾아가 단서도 없는 퀘스트를 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냥을 통해 레벨을 올릴 시간도 없었기에 그냥 퀘스트창에 내버려 둔 채 묵혀 두고 있었지만, 매번 퀘스트창을 열어 볼 때마다 그의 신경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몹 다 몰아왔습니다!”
“꽤 많아요! 조심하세요!”
몹을 다 몰아온 것인지 저 멀리서 소리치며 달려오는 파티원들. 그들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깬 흑염룡은 이내 눈앞에 떠오른 창들을 닫고는 스킬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다크 스웜.”
열심히 사냥에 매진하는 흑염룡. 하지만 그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아무 의미 없이 날아온 것 같은 이 퀘스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Act. 1 태동하는 잊힌 어둠.] [연계 퀘스트 생성 조건 충족.] [연계 퀘스트, ‘마녀사냥’ 생성.] [메인 플레이어 선정. 흑마법사 랭킹 1위, 어둠의흑염룡.] [연계 퀘스트 부여.]아르카디아의 모든 것을 관조하며, 분석하고 관장하는 인공지능 엘리스(Alice).
그녀가 그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