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
4화 정신 나간 개발자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게임에서는 개발자가 숨겨 놓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개발자들이 단순한 장난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부터 플레이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기적인 요소들까지.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이스터 에그(Easter egg) 혹은 히든 피스(Hidden Piece)라고 부른다.
촤아악
거세게 솟구치는 물결 속에서 나타난 재영. 숨찬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는 거세게 호흡을 내뱉었지만, 곧 해냈다는 듯이 소리쳤다.
“으아! 드디어 찾았다……!”
[스킬, ‘잠수’가 A랭크로 상승합니다.] [체력이 5 상승합니다.] [물 속성 친화도가 10 상승합니다.] [매우 깊은 곳까지 잠수할 수 있습니다.]에룬 호수에서 잠수만 한 지 10일째.
잠수 스킬이 A랭크로 상승한 이후에야 재영은 비로소 호수의 밑바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호수 밑바닥을 헤집던 그는 결국 숨겨져 있던 단서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퀘스트, ‘어둠의 흔적을 찾아서’를 완료하셨습니다.]-에룬 호수에 가장 오래된 어둠의 흔적이 있다는 기록이 적힌 문헌을 발견했다. 이 문헌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 흔적을 찾아라. 1/1
“그래도 작은 호수라서 망정이지, 조금만 컸어도 더 오래 걸렸을 뻔했네.”
그냥 호수 바닥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깊숙이 진흙을 헤집어 대면서 재영이 찾아낸 것은 작은 목걸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투박한 형태의 목걸이. 하지만 목걸이 중앙에 박혀 있는 검은색 돌은 딱 보기에도 무언가 심오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이 목걸이가 그 단서라 이거지…….”
물을 뚝뚝 흘리며 호수 밖으로 나온 재영은 유심히 손에 놓인 목걸이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보상, ‘흑빛 목걸이’를 획득하셨습니다.]퀘스트의 단서이면서 동시에 보상인 흑빛 목걸이. 그런데 이 목걸이는 특이하게도 장비가 아니라 소모품이었다. 인터페이스창을 열어 본 재영은 장비창이 아닌 소모품창에 떡하니 놓여 있는 흑빛 목걸이를 확인하고는 그 아이콘을 눌러 보았다.
[흑빛 목걸이]알 수 없는 고대의 힘이 담겨 있다. 혹시라도 이 아이템을 사용할 때에는 아주 오랜 숙고가 필요할 것이다.
-판매, 교환, 파기 불가.
“…….”
너무나도 불친절한 설명을 넘어 사용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팍팍 주는 문구. 거기에 재영은 영구 귀속 아이템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뭐 사용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아니, 애초에 거래도 불가능한 상태면 사용할 수밖에 없잖아.”
이런 아이템을 만든 개발자의 면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던 재영은 살짝 고민하는 듯 손가락을 매만졌다. 이미 이 작은 목걸이를 얻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투자한 상황. 이제 와서 사용하기 찜찜하다는 이유로 묻어 두기에는 지난 시간과 노력이 너무 아까웠기에 재영은 흑빛 목걸이의 아이콘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흑빛 목걸이’를 사용하시겠습니까?]아이템을 사용하겠냐는 문구에 재영은 Yes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하지만 새로운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정말 ‘흑빛 목걸이’를 사용하겠습니까?]“……?”
재차 사용 여부를 묻는 창이 나타나자 재영은 황당하다는 듯이 Yes를 눌렀다. 그러자 또다시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정말, 진짜 ‘흑빛 목걸이’를 사용하겠습니까?] [정말, 진짜, 리얼루 사용…….] [진짜 마지막으로 묻는데, 사용…….] [아니 근데, 정말 숙고 좀 해 보고 사용…….] [후회해도 무를 수 없어요. 진짜 사용…….]재영은 자꾸 떠오르는 창들을 계속해서 누르면서 짜증 난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사용한다고! 왜 자꾸 물어보는 건데?”
누가 이기나 보자며 근성으로 계속해서 Yes를 누르던 재영은 마지막에 떠오른 문구를 보면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지금 그냥 막 누르고 있죠? 다 알아요.]“아…… 진짜 어떤 놈이 이딴 걸 만든 거야? 개발자 얼굴 좀 한번 보고 싶어지네.”
마치 그를 놀리는 듯한 텍스트. 하지만 텍스트는 이내 사라지며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뭐…… 여기까지 확인했다면 아이템 사용에 관한 의지는 확고한 것 같으니…… 그만 물어보죠. 지금쯤 이딴 걸 누가 만들었냐고 욕하고 있으실 것 같은데, 앞으로 후회하지는 마세요. 전 할 수 있는 만큼 계속 물어봤어요.]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문구.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기획했다는 듯한 문구에서 장난기와 광기가 동시에 느껴지는 듯한 기분에 재영은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손에 놓인 목걸이가 공명하며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이게 무슨…….”
갑자기 엄청난 양의 검은색 안개가 목걸이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가 재영의 몸을 삽시간에 휘감아 그의 시야를 암흑으로 가릴 때, 그는 귓가에 속삭이는 듯이 들려오는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깽판 쳐 보세요. 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도무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재영은 목소리를 듣는 즉시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이 목걸이를 만든 개발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정말 기대된다는 듯이 재영에게 속삭였다.
[밖에서 지켜볼게요, 당신이 만들어 가는 이 세상에서의 이야기를.]그리고 재영의 눈앞에 수많은 텍스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히든 클래스, 난세의 방랑가(Bard of Anarchy)로 전직하였습니다.] [레벨 시스템이 삭제됩니다.] [스탯, 개연성(Plausibility)을 획득합니다.] [미션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캐릭터가 플레이어에게 영구히 귀속됩니다.]흔적도 없이 사라진 목걸이와 검은 안개. 그리고 뜬금없이 히든 클래스로 전직했다는 문구에 재영은 에룬 호수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게임을 해 본 그였지만, 이렇게 정신 나간 전직 과정은 20년이라는 짧은 그의 인생에서도 처음이었다.
* * *
한참 동안 넋이 나간 재영은 이내 차근차근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개연성(Plausibility)]이 세상에 개입할 수 있는 간섭력을 증대시킬 수 있다. 해당 스탯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법칙을 뒤틀 시, 스탯은 영구적으로 소멸한다.
“……이게 도대체 뭔 개소리야?”
수십 번을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스탯. 어떤 건지 감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친절하고 난해한 설명에 재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로 생긴 스탯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니, 레벨은 왜 또 사라진 건데?”
RPG 게임의 기본적인 시스템인 레벨. 여타 다른 게임처럼 경험치를 획득하고 레벨 업을 통해 성장하고 강해지는 기본적인 캐릭터 육성 시스템은 아르카디아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되어 있었다. 초보자 퀘스트를 깨면서 전직 레벨인 10까지 올렸던 재영. 하지만 레벨이 적혀 있었던 시스템 인터페이스는 원래 없었다는 듯이 말끔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이건 좀 심각한데…….”
기본적으로 레벨 업을 통해 여러 기본 스탯이 상승하면서 캐릭터가 강해지는데, 재영이 플레이 하고 있는 캐릭터는 그러한 기본적인 육성 시스템을 박탈당했다. 지금 당장은 큰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점점 다른 유저들의 평균 레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의 캐릭터와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이래서 캐릭터를 영구히 귀속시킨다는 건가…….”
전직한 당시에는 마지막 문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캐릭터 삭제까지 시도해 본 재영은 이내 그것조차도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확인한 채 절망했다.
엿을 거대하게 먹여 놓고 다시 물릴 수 없다는 듯이 도망갈 수 있는 수단을 모조리 지워 버린 개발자의 행태에 재영은 뒤통수가 얼얼했다. 게임을 접는 것 말고는 가능한 방법이 아예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앞으로 내야 할 무지막지한 캡슐의 할부금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아까 그 정신 나간 확인 문구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어떤 변태 같은 취향을 가진 개발자에게 된통 물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그놈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끝까지 저질러 버린 자신의 손가락을 한탄하며 재영은 연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 갑자기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새로운 미션이 갱신되었습니다.]“……미션?”
히든 클래스로 전직하고 나서 생겨난 새로운 미션창. 아까는 비어 있었는데 어느새 나타나 반짝이고 있는 창을 눌러 본 그는 개발자가 일부러 남긴 편지와 같은 내용을 읽어 보고는 딱딱하게 얼굴이 굳었다.
[Mission. 1]명색이 난세의 방랑가인데 지금 아르카디아는 너무 평화로워 보이지 않나요? 이래서 닉값…… 아니지, 직업값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법. 세상이 평화롭다면 직접 평화롭지 않게 만들면 되는 법이죠.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시간 동안 초보자 마을을 혼란스럽게 해 보세요.
뭔가 개발자치고는 정신 나간 발상이 돋보이는 논리에 재영은 할 말을 잃었지만, 미션 내용을 보고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초보자 죽이기]전직하지 않은 초보자 유저 살해.
-살해한 초보자 수: 0
-남은 시간: 6일 23시간 55분 24초.
“진짜 미치겠네…….”
PK가 기본적으로 RPG 게임의 중요한 콘텐츠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제 갓 게임을 시작한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신규 유저를 괴롭히는 건 어느 게임에서나 금기시되는 일이다. 그랬다가는 엄청난 어그로가 끌린다. 거기에 아직 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게임에서 초보자들만 골라서 죽이고 다닌다?
당장에라도 부모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넘쳐나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재영은 답답하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고는 호숫가 주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멍하니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깽판 쳐 보세요. 제가 지금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장난기가 가득한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 그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미션 내용을 읽은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개발자는 정말로 자신이 이 게임에서 온갖 깽판을 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도대체 왜……?”
초보자들만 골라서 죽이고 다니는 것은 신규 유저들의 게임에 대한 호감도를 깎아내리는 짓이다. 그렇기에 혹시라도 신규 유저 유입을 저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는 게임사에 손해를 끼치는 짓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개발자라면 이런 짓을 요구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재영은 자신에게 왜 이러한 것을 시키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한참 동안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던 그는 이내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초보자들의 유명 사냥터인 슬라임의 서식지로 걸음을 옮겼다.
“얍얍! 죽어라, 죽어!”
“아싸! 슬라임의 방울 나왔다!”
“오오! 그거 50브론즈나 하는 거잖아! 부럽다!”
보기만 해도 흐뭇함이 밀려올 정도로 귀엽게 슬라임을 때려잡는 초보자들. 아르카디아를 시작하자마자 받게 되는 슬라임 사냥 퀘스트를 깨고 있는 그들을 보며 1일 차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영은 씁쓸해하면서도 오묘한 표정으로 장비를 꺼내 들었다.
일전에 레벨 10까지 사냥하며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묵직하고 녹슨 철검을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일순간의 망설임 없이 철검을 휘둘렀다.
퍼억.
“으아악! 아저씨, 뭐예요?!”
“헉! 뭐야?”
“꺅! 오빠!”
재영이 휘두른 철검이 머리에 제대로 틀어박히며 한 초보자가 한 방에 쓰러지자 주변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 수많은 초보자가 소리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재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녹슨 철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미친! PK다!”
“아니, 무슨 초보자 사냥터에서 PK질이야!”
“으아아! 도망쳐!”
아무 이유도, 연고도 없이 갑자기 묻지 마 살인을 시작한 재영 때문에 혼란에 빠진 슬라임 서식지. 그곳에서 재영은 수많은 초보자를 직접 황천으로 보내 주면서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초보자를 살해하였습니다!] [개연성을 1 획득합니다.] [초보자를 살해하였습니다!] [개연성을 1 획득합니다.] [초보자를 살해하였습니다!] [개연성을 1 획득합니다.]그렇게 시작되었다, 슬라임 서식지에서의 초보자들의 대량 학살이.
평화로운 아르카디아를 혼란과 파괴로 난세로 만들어 버린 희대의 또라이의 탄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