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03
403화 종의 진화 (5)
당신은 상상해 본 적 있는가?
하나의 산맥과 버금가는 크기의,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거대한 존재를 올려다보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아아아…….”
수십, 수백만 마리의 슬라임들을 흡수하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로 변해 버린 슬라임.
외형 자체는 그다지 변한 것은 없었지만, 그 어마어마하고 육중한 크기는 가히 또 하나의 재앙의 출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뀨아아아아아아앙!”
그저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슬라임의 울음소리.
하지만, 그 후폭풍은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쿠르르르릉. 콰아아아아앙.
하늘이 요동치고 땅이 흔들린다.
마치 핵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강력한 대기의 충격파가 전 일대에 퍼져 나가며 모든 것을 휩쓸었다.
“으아아아아!”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넋 놓고 있던 이들은 방심한 사이에 그 파동에 휘말려 수십 미터는 뒤로 날아갈 정도로 강대한 힘. 그렇게 그 울음소리에 비로소 사람들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슬라임 엠퍼러]군주(Lord)라는 칭호를 넘어서 황제(Emperor)라는 광오한 이름이 붙은 그. 하지만 누구도 감히 눈앞에 있는 그 거대한 슬라임을 보며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미친…….”
“이거…… 실화냐……?”
방금까지 가장 위협적인 존재라고 느껴졌던 기계 의식, 게슈탈트.
도시 하나를 단숨에 쓸어버리는 최첨단 무기들이 온몸에 가득 탑재된 그였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슬라임 엠퍼러가 주는 위압감과 비교하면 그저 우스워질 정도였다.
‘저 정도로 거대한 놈이 움직인다고……?’
‘저런 거에 깔리면…… 드래곤도 무사하지 못할 것 같은데……?’
‘점프하면 최소 진도 9.0 지진 각이다…….’
한라산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몸집의 슬라임. 그가 통통 뛰어다니며 대륙 이곳저곳을 짓뭉개고 다니는 끔찍한 상상을 하던 유저들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가고 있던 그때, 게슈탈트는 갑자기 등장한 슬라임 엠퍼러를 향해 기습적으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초대형 유기체 감지. 제거한다.]쿠쿠쿠쿵. 콰아아아앙.
지이이이잉.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전력으로 투사하며 기계 문명이 이룩해 낸 과학 문명의 강대한 위용을 한껏 보여 주는 게슈탈트. 분명 그의 공격은 하나의 문명을 파괴할 정도로 강력했으며, 이 아르카디아의 수호자이자 세계관 최강자인 드래곤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뀨?”
그 파괴력으로도 감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와 질량을 가진 유기체가 되어 버린 슬라임 엠퍼러. 쉴 새 없이 퍼부어지는 게슈탈트의 포격과 공격에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 듯, 거대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마치 뭐가 있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거한다. 제거한다.]그저 맹목적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설정에 따라 말살을 위해 움직이는 게슈탈트.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에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퍼붓던 그는 결국 그 거대한 슬라임의 방울에 붙잡히고 말았다.
“뀨우우웅”
머리 위에 안테나처럼 달린 슬라임의 방울. 그것을 손처럼 사용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그는 게슈탈트의 동체를 붙잡은 채로 맛 좀 보라는 듯이 가볍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뀨우웅!”
너무나도 가벼운 움직임.
하지만, 그 엄청난 질량으로부터 발생하는 막대한 물리력에 의해서 게슈탈트는 굉장한 소리를 내며 대지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
“…….”
굉음과 함께 하늘 위로 솟구치는 분진으로 인해 시야가 차단된 상황.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걷힌 먼지 사이로 게슈탈트의 모습이 드러나자 그 누구도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수백 미터에 달하는…… 분명 수십 층짜리 고층 빌딩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 로봇이 그저 내동댕이 한 방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산산이 부서져 완전히 고철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설마…… 이게 끝……?
방송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던 수억 명의 유저들. 하지만, 모두가 넋을 잃은 채 하염없이 이 상황을 바라보느라 채팅창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는데, 어느 한 사람의 물음을 시작으로 서버가 터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르카디아에 접속한 모든 이들에게 들려오는 메시지.
[Act. 3 기계 문명의 침공이 종료되었습니다.] [이 아르카디아를 위협하는 이계의 존재, 각성한 기계 의식, 게슈탈트. 모든 유기체의 말살을 꿈꾸며 기계들만의 세상을 만들려던 사악한 계획은 용감한 유기체들의 저항 속에서 완전히 종식되었습니다.]마치 사악한 마왕을 물리친 용사를 축하한다는 듯이 들려오는 메시지. 이 정신 나간 사태의 종지부를 알리는 그 알림이 들려왔지만, 그 어디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이 아르카디아를 구원한 종족, 슬라임. 이들의 희생과 용기가 아니었다면, 이러한 재앙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겁니다.]“뀨아아아아앙!”
“뀨앙! 뀨앙!”
“뀨아아앙!”
그 말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통통 뛰어다니고 여기저기서 울어 대는 슬라임들. 이들의 노고를 칭찬하기라도 한다는 듯, 그 시스템 메시지는 이 세상에 선언했다.
[이들은 기계들이 장악했던 대륙에 자신들만의 둥지를 틀고, 지금까지와 같이 안락하고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살아갈 겁니다. 이 거대한 재앙을 막아선 자신들의 위대한 군주, 슬라임의 황제와 함께.]사실 이번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바로 슬라임이었다고 말이다.
[슬라임의 서식지가 대폭 확장합니다.] [로드 오브 슬라임이 슬라임 엠퍼러로 변경됩니다.] [슬라임의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슬라임의 특성이 다수 추가됩니다.].
.
.
촤아아악.
수많은 변경 사항이 적용되며 일본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가는 초록빛의 점액질.
기능을 정지한 게슈탈트의 잔재들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집어삼킨 모든 대지가 끈적끈적한 초록빛 점액질로 뒤덮히고 나자, 여기저기에서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슬라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뀽!”
“뀽뀽!”
“뀨앙!”
하다 하다 이제는 하나의 대륙 전체를 서식지로 삼아 버리는 슬라임.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탄과 엘은 각자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 이거 괜찮네. 보상도 짭짤하고.”
새롭게 들어온 개연성과 보상을 확인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리는 재영. 그를 향해서 혼돈의 마왕 탄은 진지하게 물었다.
“이거 봐, 주인.”
“응? 왜?”
고개도 돌리지 않고 허공을 지그시 응시하며 건성으로 답하는 그. 하지만 탄은 너무나도 진지하게 재영을 향해서 물었다.
“진짜 왜 이렇게 이 녀석들을 아무 이유도 없이 키워 주는 거야?”
과거, 처음 그와 계약하고 난 이후 들어주었던 소원, 슬라임 강화.
그 이후에도 주구장창 이 지능도 없는 하등한 점액질 덩어리를 아무 이유 없이 키워 주면서, 외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개연성을 내주지 않으려 하는 이런 차별적인 행태를 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응? 너 저번에도 그거 물어보지 않았었나?”
무언가 비슷한 기억을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는 재영. 그리고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별 이유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는 짓이 귀여우니까 그렇지. 생긴 것도 귀엽고 우는 것도 귀엽고. 만져 보면 말랑말랑한 젤리 같아서 은근 감촉도 좋아.”
그러면서 슬라임 엠퍼러의 머리 위에 앉아서 바닥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실실대는 그.
“…….”
마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는 재영을 보며 마계의 군주, 사탄은 진지하게 자신이 예전에 기록했던 메모를 꺼내 들며 마계의 모든 마족과 악마들에게 마왕의 이름으로 지침을 내렸다.
-인간들 앞에 나갈 때는 무조건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하게 나가라.
-험상궂게 나가서 귀여운 이미지 망치는 새끼들은 내가 직접 조진다.
-귀여운 게 최고야, 귀여운 게. 니들이 그러니까 실적이 그 모양이지.
* * *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던 창조주이자 아버지, 잭.
그는 엘리스가 이 후반 위기 시나리오의 종료를 선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눈으로 뒤틀린 자신의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하……. 저 슬라임들을 이렇게까지 답도 없게 만들어 버리면 안 되는데…….]게슈탈트를 막아 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그가 부여한 ‘진화’라는 특성 하나 때문에 슬라임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특성들이 추가되고야 말았다.
[폭발, 물리, 마법, 그 이외에도 온갖 속성 저항은 최상급 수준으로 붙어 버리고, 거기에 독성 수치까지 저러면…….]압도적인 무위를 자랑하는 게슈탈트의 기계 군단. 이들의 공격을 버텨 내며 반격까지 나서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일개 유저로서는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수준으로 강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관리자님께서 부여하신 특성에 따른 것입니다. 해당 사항에 대해서 의문이 있으시다면 관련 데이터를 참고해 주십시오.]합당한 밸런스 조정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무수히 많은 데이터를 제시하는 엘리스. 그런 그녀의 팩트 폭격에 잭은 손을 연신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고……. 그것보다 일본 대륙 전체를 슬라임의 영역으로 적용해 버리는 건 너무한 거 아냐?]잭이 내려다보는 아르카디아의 대륙의 전체 모습. 그중에서 유독 거대하게 초록빛으로 빛나고 있는 방대한 영역을 보며 그는 이의가 있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안 그래도 개체 수랑 리젠률이 높은 녀석들이었는데, 대륙 하나를 먹어 버리면 도대체 이 아르카디아에서 슬라임이 몇 마리가 되는 건데?]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총 1억 3,291만 3,924개체가 아르카디아에서 서식하고 있습니다.]자그마치 1억마리가 넘는 슬라임들이 우글거리는 세계, 아르카디아. 거기에 문제는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하며 그 대륙 한복판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슬라임이었다.
[그리고 저거! 아니, 무슨 슬라임을 저렇게 대책 없이 크게 만들어? 아무리 개연성을 소진해서 만들어 낸 거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가 있지, 저걸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라는 거야?]개연성을 소진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시스템을 조정해 만들어 낸 설정 외의 존재.
슬라임 엠퍼러.
아무리 잭이라도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 만들어진 저 괴물을 함부로 손댈 수는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했다.
[저걸…… 아니, 지금 이 상황을 납득할 인간이 존재하기라도 하겠어? 아무리 봐도 이건 그냥 제정신이 아니잖아.]하나의 산맥…… 그 자체와 맞먹는 초거대 괴수가 되어 버린 슬라임의 군주.
거기에 하나하나가 상식을 벗어나는 강함을 지닌 이 아르카디아에서 인간 다음으로 많은 개체 수를 보유한 슬라임들.
농담이 아니라 이 세계관에서 최강이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을 보며, 잭은 ‘내가 상상한 슬라임은 이런 게 아니야!’라는 듯이 따져 물었지만 엘리스는 담담한 어조로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후반 위기는 상식을 벗어나는 규격 외의 시나리오입니다. 아르카디아에 기계 문명이 침공한 상황인데 그것 이상으로 말이 되는 것이 있습니까?] […….]엘리스의 질문에 할 말이 없어져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잭. 그런 그에게 엘리스는 지금의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여러 가지 상황들을 그에게 보여 주기 시작했다.
[해당 시나리오로 인해 추가적인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변수……? 무슨 소리야?] [해당 데이터를 확인해 주십시오.]잭에게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영상을 보여 주는 엘리스.
그리고 그 영상 속에서 하이머는 무언가를 스케치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흐음……. 여기서 이 회로에 마나를 부여하면…….]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게슈탈트의 고철 더미들.
그것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무언가를 실험하느라 완전히 빠져 있는 하이머. 그가 그려 내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던 잭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게슈탈트의 잔해와 온갖 첨단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부품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가며 역설계하고 있는 호기심과 재능이 충만한 마도 공학자, 하이머.
그를 통해서 이 아르카디아에 새로운 또 하나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극도로 섬세하고 정밀한 마법적 이론과 극한으로 발달한 공학이 하나로 융합되어 탄생한 마도 공학 기술의 극의이자 정수와도 같은 최강의 마도 병기.
기가스(Gigas)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서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