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28
428화 마계 (9)
반신불수의 기형으로 태어나 평생을 깊숙한 지하 연구실에서 살아온 한 인간으로부터 탄생한 환상의 세상, 아르카디아.
손가락 하나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오롯이 구축한 잭.
그리고 그 가상의 세계가 현실의 대중들에게 보급될 수 있도록 모든 시스템을 구현한 김민수.
최고 개발자이자 최고 관리자로서 이 아르카디아의 동등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두 사람은 서로가 전혀 다른 이름으로 이 아르카디아에서 불리고 있었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모든 것을 만들어 내고 계획한 아버지이자 창조주.
검은 안개의 주인이자 종말의 상징, 아수라라고 말이다.
전혀 서로 다른 목적과 방향성을 추구하는 것 같은 두 사람.
하지만 그런 이 둘 사이에서도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존재했다.
이야기.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자유 속에서 만들어져 가는 서사.
이미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는 시나리오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무대에 서서 즉흥적으로 그 이야기를 완전히 새롭게 고쳐 가며 뒤바꿔 버리는 유저들.
그들의 모험을,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잭과 민수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재미있는 유희거리를 찾은 것처럼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시시각각으로 전 대륙을 내려다보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재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일이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데?”
눈을 반짝이며 모니터를 통해 아르카디아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김민수. 연신 손에 든 팝콘은 우물거리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그에게 잭은 동의한다는 듯이 답했다.
[그러게…… 나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천계의 현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나 보네.]조금은 심각한 얼굴로 현재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잭. 개발자인 그가 바라보기에는 작금의 상황은 철저히 기획했던 의도에서 벗어난 돌발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게 시스템상으로 가능한 설정이었나? 문제가 될 여지가 커 보이기는 하는데……. 두 신격이 가진 사명 사이에는 분명히 충돌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아무리 폭넓은 자율성을 부여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한 개인을 두 신격이 자신의 대리자로 선택하는 것은 의도하기는커녕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잭. 그렇기에 본인 스스로도 저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엘리스는 그런 그에게 즉각적으로 답변했다.
[설정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장 최우선으로 대리자를 결정할 때는 신성 계열의 직업에서 정해야 하잖아. 신성 계열로 히든 클래스를 가진 유저가 한둘이 아닌데 그들 중에서도 얼마든지 사도를 선택할 수 있지 않았나?]제아무리 과거보다 그 위세와 규모가 쪼그라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건재한 신성 왕국과 여러 유저들. 사제와 신성 기사로 지금껏 이룩한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직업을 바꾸지 않고 플레이를 묵묵히 하는 유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잭이 봤을 때 그 ‘가능성’을 가진 인자는 분명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다른 신성 계열의 유저들을 모조리 건너뛰고 저 초코파이조아한테 사도의 위를 부여한 거지? 분명 신성 제국의 재건을 위한 시나리오를 수행 중인 유저도 존재했던 거로 아는데……?]신성 계열의 유저로 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유망주들.
주님의 품.
십자가의 참맛.
각개전투의 신앙.
빡빡이 실로암.
아직 천상에 대한 굳건한 신앙과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고행자의 길을 나아가고 있는 이들. 교황의 죽음 이후에 신성력이 대폭 약화하며 어마어마한 전력의 상실을 경험했지만, 차근차근 이를 복원하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을 모조리 버려 둔 채 뜬금없이 세계수의 사도인 초코파이조아가 교황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창조주인 그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잭의 물음에 엘리스는 늘 그랬듯이 자신만의 답을 전했다.
[관련 데이터를 확인해 주십시오.]초코파이조아가 교황으로 선택된 당위성.
수많은 이야기의 파편이 얽히고 얽혀 있는 그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 민수는 흥미롭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는 패드를 이리저리 조작하며 중얼거렸다.
“흠……. 그랬네. 그래서 그런 거였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중얼거리던 민수. 그리고 그는 이내 딱 걸렸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잭에게 말했다.
“잭, 너 나 모르게 뒤에서 이거저거 많이 개입했었구나?”
[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영광스러운 천상의 메달.”
성마대전의 무대에서 주역이 될 ‘거룩한 선지자’로의 전직 아이템. 하지만 그 아이템이 재영의 손에 들어가며 모순이 발생하자 과거 잭은 아이템의 설정을 임의로 변경하며 직접 게임에 개입했었다. 그 이후로 거룩한 선지자의 직업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잭.
그는 민수가 그것을 언급하자 찔리는 게 있기에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 그게 왜?]“가장 최우선으로 천상의 사도가 될 대상이 사라졌으니, 그 선택이 이렇게 무작위로 바뀔 수밖에 없지.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기존 기획이 어그러진 이상 이런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나오는 건 당연한 흐름이 아닐까?”
과거, 성마대전을 위한 안배로 만들어 둔 히든 클래스, 거룩한 선지자.
천상을 대신하며 모험가들을 대표해 선의 진영을 이끌 주인공을 상실한 상태에서, 다른 그 가능성을 가진 인자들은 모조리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중심을 잡아 줄 역할을 맡은 사람이 사라지니 결국 모두가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지. 지금 데이터만 대충 살펴봐도 선 진영에서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는 유저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전부 자기 몸 하나 사리느라 급급해서 접속도 하지 않고 관망하고만 있지.”
[…….]제아무리 현실감이 가득한 세계라 하더라도 그저 이방인으로서 오락을 즐기는 것에 불과한 대부분의 유저들. 그렇기에 이들이 그 누구보다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기적인 행태를 일삼는 것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었다.
-나만 아니면 돼에에에에에에!
-ㅋㅋㅋㅋ 꼴 좋다, 사제 새끼들.
-마법사들 안 그래도 유세 떠는 거 꼴불견이었는데. 나락 갔네.
-지금 접속하면 자동으로 전쟁 참전한다고? 응~ 어디 실컷 해 봐. 접속 안 하면 돼~.
“손해를 보기 싫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그 무슨 이유가 되었든 처절하게 버티며 싸우려는 이들은 신성 진영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네. 오히려 신성 진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저 유저만이 그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그리고 진정으로 악에 맞서서 싸우고 있지.”
그렇기에 민수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잭에게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하게 말했다.
“내가 봤을 때는…… 이건 네가 자초한 상황인 것 같은데?”
[…….]똥 씹은 얼굴로 저 아르카디아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례 없는 상황을 그저 바라보고 있는 잭.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수는 이내 피식 웃으며 팝콘을 입에 넣었다.
“자…… 그러면 이제 이렇게 되면 악의 진영은 어떻게 나오려나……?”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의 수 속에서 전개될 이야기의 결말을 기대하며.
그는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모니터를 통해 이 아르카디아의 세상을 관조했다.
* * *
악의 진영을 대표하는 혼돈의 마왕, 사탄.
주인이 없는 사이에 막대한 개연성을 소진해 가며 알게 모르게 이 세상에 개입해 왔던 그는 승리를 목전에 둔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돌변한 상황을 보며 강하게 이를 갈았다.
“이런 망할 치킨 새끼가…….”
그 튼튼한 치아가 부러질 것처럼 험악한 소리를 내며 부들거리는 탄.
그는 그 강렬한 분노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저 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의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있었다.
콰아아앙.
화르르르르르.
“키에에에에에!”
“크아아아아아아아악!”
마계를 지탱하는 자랑스러운 주역이자 자신의 충실한 심복들인 마수와 마족들.
금방이라도 저 가증스러운 묘목 새끼의 진영을 밀어 버릴 것만 같았던 그 강렬한 군세가 저 극악의 상성을 지닌 멸악의 힘에 밀려 쉽사리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천상을 대표하는 신기이자 미카엘의 무구.
영원히 불타오르는 성화의 검, 무스펠하임.
강력한 신성을 품은 화염을 무한히 뿜어내는 그 절대 신기를 손에 들고 휘두르고 있는 초코파이조아를 바라보며 그 흉악한 기세의 마수들은 죽음의 공포에 비명을 질러 댔고 이성을 가진 마족들은 경악과 충격에 어린 신음을 내뱉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저 검이 한낱 인간 따위에게…….”
“크으윽……. 이건 말도 안 돼…….”
“틀렸어……. 이건 감히 우리 선에서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압도적인 수적 우세라고 하지만,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의 힘.
마주하기만 해도 한낱 마수 따위는 그냥 온몸이 불타 버릴 정도로 현격한 격(格)의 차이를 이기지 못해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이들을 바라보던 탄은 결국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마왕군 전체에 울려 퍼지는 명령.
그의 사념을 전달받은 이들이 앞다투어 빠르게 퇴각하기 시작하자 어느새 방금까지 치열한 전장이었던 아밀의 대수림은 또다시 평온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아르카디아에 새로운 신화 속의 서사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무너뜨리기 위한 거대한 악의 침입. 하지만 그 위협에 맞서 수많은 자연의 일족이 목숨을 걸고 항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던 한 명의 모험가. 만물과 생명의 어머니를 따르는 사도였지만, 그 누구보다 명예로웠고, 정의가 넘쳤으며, 헌신적으로 동료를, 자신의 터전을, 그리고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 앞장섰습니다.]그 누구도 의도한 적 없는, 초코파이조아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이야기.
그리고 그 결과,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기적이 벌어지게 되었다.
[천상을 대표하는 새로운 교황의 탄생. 어둠을 물리치는 신성한 화염의 신기의 강림. 이 세상의 모든 이가 이 믿을 수 없는 기적을 기억할 것이고 어둠 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희망의 불빛을 바라보며 기도할 것입니다.] [세계수의 성역에서 벌어진 천상의 기적. 어둠에 저항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이 세상을 비출 등대로서, 아밀의 대수림은 충실히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어둠을 허락하지 않는 유일한 빛과 정의의 안식처이자 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생명을 지키고 포용하는 성역으로서.]그 누구도 참여하려 하지 않은 외로운 전쟁. 희망이란 찾아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값진 승리.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천상을 대표하는 새로운 성지(聖地)가 다시 이 아르카디아에 탄생하게 되었다.
우우우우웅.
[아밀의 대수림이 새로운 ‘성지’로 선포되었습니다.] [천계와의 연결이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새로운 교황이 탄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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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망할 새끼들이……. 어디서 치사하게 다 된 밥에 똥을 이렇게 싸질러?”
싸늘한 눈으로 대수림 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세계수를 노려보며 중얼거리는 탄. 그러면서 그는 이 치킨과 묘묙의 기묘한 동맹 관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한참을 씩씩거리며 투덜거렸다.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는 거지?”
무언가 결심한 듯 싸늘하게 중얼거리는 탄.
그리고 그는 이내 두 손에 거대한 기운을 피워 올리며 말했다.
쿠구구구구구궁.
치킨 새끼가 천계의 최후의 기둥뿌리를 모조리 갈아 넣으며 개연성을 모조리 밀어 넣은 것처럼.
자신도 이번 전쟁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듯이 막대한 개연성을 끌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네가 죽나 내가 죽나,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