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마녀사냥 (5)
리치 아르게이머.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영혼을 팔고 불로불사를 얻은 흑마법사.
과거 대륙을 피로 물들인 그는 천상으로부터 직접 신성 권능을 부여받은 세인트 제국의 성녀에게 무참히 진압되었다.
[기다려라.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와 이 수모를 갚아 주겠다!]잠적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육신을 잃은 채 마계로 무참히 추방된 아르게이머. 하지만 마계로 추방된 그의 영혼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어느 수집욕 가득한 악마의 컬렉션이 되어 하염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통하다! 내 복수를 끝내지 못했건만! 이렇게 무력하게 영원한 세월을 보내야 한다니!]제대로 된 육신을 잃어버린 채 그저 영혼의 형태로 자의식만을 유지하고 있는 그. 비통함과 무력함에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뒈지기 싫으면 이번 일 제대로 수습해라. 안 그럼 내가 직접 지옥의 참맛이 뭔지 보여 줄 테니까. 이게 지금 다 너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마계의 군주. 감히 직접 대면하지도 못할 엄청난 존재가 그에게 협박과 함께 엄청난 제안을 해 왔다. 다시 한번 인간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겠다는 제안을 말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이시여. 제 영혼을 걸고 그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신성 제국을 불타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놓겠습니다.]과거의 패배를 수백 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성찰한 그는 승리를 자신했다. 하지만 마계 군주의 대답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하아…… 이 망할 뼈다귀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야, 미쳤냐?]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짜증이 잔뜩 난 듯한 사탄의 말에 아르게이머는 당황하고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네놈이 신성 제국 멸망시키겠다고 또 대오각성 해서 미쳐 날뛰면, 또 그 망할 닭 날개들이 그걸 그냥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냐?]천계와 마계의 다툼. 단순해 보이는 이 갈등과 대립 구도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정치 공학과 계산이 들어가 있었다.
최소한의 개연성으로 어떻게 상대방에게 거대한 엿을 먹일 수 있는가?
매일같이 이 주제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반복되며 천계와 마계는 언제나 기발한 방식으로 상대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그리고 그런 탄의 입장에서 아르게이머의 발언은 그야말로 그의 신경을 박박 긁어 놓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지금 네놈을 아르카디아로 다시 보내는 것만 해도 들어가는 개연성이 얼만지 알아? 그런데 또 그 깽판을 치면서 닭 날개들이랑 전면전을 벌이겠다고? 넌 개연성이 어디 땅만 파면 나오는 줄 알지, 이 머저리 같은 뼈다귀 새끼야!]그야말로 빈 독에 물 붓기. 승리를 위해서는 천계의 기둥뿌리가 뽑히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개연성을 퍼붓겠다고 다짐하는 저 치킨 새끼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개연성이 들어갈지 상상도 되지 않았기에, 탄은 아르게이머에게 단단히 언질을 줬다.
[적당히 해라. 내가 원하는 건 최소한의 수습이야. 적당히 쇼하다가 얌전히 마계로 돌아와. 괜히 또 복수한다고 깝죽거리다가 일 크게 만들면 넌 진짜 나한테서 지옥이 뭔지 몸소 느끼게 될 거야. 알겠냐?]그렇게 탄으로부터 온갖 협박과 언질을 받으며 아르게이머는 다시 한번 아르카디아 대륙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라이프 베슬(Life Vessel)이 플레이어의 몸에 안착합니다.] [리치화가 진행됩니다.] [플레이어의 종족이 언데드로 변경되었습니다.] [직업 퀘스트, ‘과거의 복수’가 생성되었습니다.] [연계 퀘스트, ‘마녀사냥’의 핵심 인물, 리치 아르게이머가 되었습니다.] [플레이어의 능력치와 스킬이 일시적으로 조정됩니다.] [아르게이머의 힘을 일시적으로 온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정신없이 쏟아지는 메시지들. 어둠의흑염룡은 뼈마디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깡마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놀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건…… 도대체…….”
리치화.
아르카디아를 플레이 하는 흑마법사들 사이에 도는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어떤 흑마법사 NPC가 그러는데, 나중에 언데드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데?
-그거 아마도 흑마법사 상위 직업일걸? 방법은 모르지만 그런 떡밥들 좀 있더라.
-아마 한 레벨 200쯤 되면 관련 퀘스트 얻게 되지 않을까?
경지가 극에 달한 흑마법사들이 더 상위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고위 마법사 언데드, 리치의 길을 선택하는 만큼 그 방법이 존재한다는 루머 같은 소문을 말이다.
“능력치가…… 뭐 이래…….”
무심코 열어 본 능력치창. 그것을 보며 흑염룡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 아르게이머(어둠의흑염룡)]직업: 죽음의 지휘자(Mastero of Death)
종족: 언데드
칭호: 죽음의 군단
레벨: 200(92)
능력치
-힘: 350(95)
-체력: 3,450(140)
-민첩: 520(56)
-지능: 5,864(840)
-행운: –50(0)
-지배력: 59,465(-)
기존의 스탯과는 달리 전혀 다른 수치로 부풀려져 있는 능력치. 이것을 보며 흑염룡은 아르게이머의 강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네크로맨서의 전용 능력치인 지배력은 동 레벨의 네크로맨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도 높은 수준이었다.
“야…… 야! 안 들리냐?”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는지 소리를 빽 하고 지르는 탄. 흑염룡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고는 황급히 상태창을 닫고 대답했다.
“아! 넵! 듣고 있습니다.”
마치 이제 막 전입 신고를 한 것 같은 빠릿빠릿한 신병의 자세. 탄은 답답하다는 눈초리로 그런 흑염룡을 바라보며 물었다.
“하…… 아무리 봐도 불안한데. 너 진짜 잘할 수 있겠냐?”
“뭘…… 말입니까?”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흑염룡.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며 탄은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번 일을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 짓기 위한 완벽한 연극의 시나리오를 말이다.
* * *
아르팬디아.
언제나 여러 이유로 사건 사고가 가득 흘러넘치는 커뮤니티 사이트. 언제나 시끄러운 이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최근 수많은 모집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 퇴근하고 악인 처단하러 가실 사제들 있냐?
-레벨 82 성기사입니다. 랭킹 4위 암흑기사 척살할 사람 2명 모집합니다. 퀘스트 보유 중.
-교단 내 진급하려면 기여도 얼마나 필요한가요?
-당신도 할 수 있다! 빠르게 악인 척살하고 기여도 올리기.
-숨겨진 도적 길드 은신처 발견. 소탕할 멤버 구함.
퀘스트, 마녀사냥.
유저든 NPC든 악인이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 죽여도 면죄부를 받고, 도리어 기여도까지 오르는 꿀만 같은 상황. 게다가 그 기여도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정보까지 공유되자 그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신성 교단에서 기여도에 따라 아이템, 스킬, 그것도 아니면 골드로 바꿔 줌.
-신성 계열 직업이면 교단 내 계급도 올려 주더라. 완전 개꿀.
신성 교단이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진귀한 아이템과 고급 스킬들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 거기에 원하면 골드로도 바꿔 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중립 직업을 가진 유저들조차도 모조리 성 진영에 합세했다.
-기여도 많이 오르면 교단에서 리스트 나눠 주면서 잡아 오라고 특수 임무도 부여함.
-랭킹 2위 도적 죽여 봤는데 보상으로 100골드 주더라. 개꿀.
-??? 100골드? 그럼 천만 원?
보상의 수준이 상식 밖으로 엄청나게 높은 상황이라 사람들은 너도 나도 악인이라고 볼 수 있는 유저들을 색출해서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악인으로 규정된 유저들의 원성은 점차 커져만 갔다.
-아, 씨발 작작 좀 하자. 이건 뭐 게임을 그냥 하지 말라는 수준이네.
-ㅋㅋㅋㅋㅋㅋ. 나 전직 퀘스트 줬던 흑마법사, NPC들한테 잡혀서 화형당함. 이거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아! 안 해! 벌써 3번 뒤졌다! 진짜 이딴 퀘스트 만든 새끼 도대체 누구냐?
-밸런스 수준 오지고요. 지리고요. 에바 삼치 꽁치 참치구요.
-오늘 캡슐 환불 받으러 본사로 돌진합니다. 동참하실 분 구해요.
아주 대놓고 악 진영 유저들에게 불리한 퀘스트. 그 때문에 이곳저곳, 온갖 곳에서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던 이들이 분노하며 게임을 접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런 절망의 순간.
하나의 영상이 아르팬디아에 올라왔다.
[끄, 끄아아악! 이게 뭐야!] [데, 데스나이트? 듀라한? 이런 고위 언데드가 어떻게 벌써 튀어나와!] [말도 안 돼! 분명 흑마법사 아니었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신성 계열의 랭커들만이 모여 만든 악인 전문 척살단, 심판(審判). 이들의 파티가 엄청난 수의 언데드에게 둘러싸인 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다.
[모조리 죽여라. 저 아둔한 신의 종자들에게 너희의 한을 보여 주어라.]뼈마디가 드러나 보이는 깡마른 외형. 회백색의 두개골. 거기에 불타오르는 안광이 빛나며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내는 존재. 그의 말 한마디에 언데드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 홀리 바인드!] [신이시여! 정의로운 심판을 여기에! 파이널 데이!] [정의와 영광이 나를 보호한다. 디바인 실드!]천천히 다가오는 언데드들에게 신성 마법과 스킬을 쏟아붓는 유저들. 하지만 이들의 반항이 우습다는 듯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고위 언데드는 단 하나도 쓰러지지 않았다.
[미, 미친! 레벨이 도대체 몇이길래…….]언데드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너무나 간단하게 회색빛으로 쓰러지는 척살 전문 랭커 파티, 심판(審判). 이들이 몰살하는 것을 본 이들은 경악했고, 또 환호했다.
-??? 이게 뭐냐? 진짜야?
-저기 사제 랭킹 2위도 있지 않아? 그런데 저렇게 무참히 털린다고?
-뭐냐? 저게 누군데?
이들에게 죽은 숱한 악 계열의 유저들. 이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미 호되게 심판을 당해 본 경험이 있는 이도 부지기수였기에 심판(審判)의 몰살은 악 진영에 엄청난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냈다.
[더럽고 추악하다고 낙인찍히며 억울하게 죽은 이 모두에게 전합니다.]전투가 끝나고 난 후. 마치 충성을 맹세하듯 언데드들이 한 존재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 존재는 불타오르는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악 계열 유저가 죽임을 당했고, 현재 당하고 있고, 앞으로 당할 겁니다. 저 역시 얼마 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고요.]이번 연계 퀘스트가 시작된 지 이제 5일째. 하지만 이미 심판당한 악인의 수는 자그마치 600만을 넘어서고 있었다.
5일 동안 600만이라는 엄청난 수의 학살을 벌인 성 진영의 유저들. 이쯤 되면 이들을 감히 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세기의 대학살(Holocaust)이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단순히 도적이 재밌어 보여서, 흑마법사나 암흑기사가 강하고 멋있어 보여서 직업을 선택한 것뿐인데! 그것이 그렇게 죽을죄입니까! 예?]모든 악 진영 유저들이 가지고 있을 울분. 그 울분을 시원하게 토해 내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형용할 수 없는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이제 참지 마십시오. 저들에게 저항하고! 싸워 보여 주십시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리듯 우리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겠다는 그 의지를!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탄에게 보여 주었던 숨겨진 연기력. 지금껏 몰랐던 자신의 재능을 최대한 끌어모아서 어둠의흑염룡은 외쳤다.
[아르카디아에 있는 모든 흑마법사와 암흑기사, 도적, 부랑자, 산적, 암흑상, 암살자! 이 모든 이가 함께 힘을 합쳐 이 말도 안 되는 광기를 멈춰 세울 겁니다! 바로 제가! 그렇게 만들 겁니다!]저항. 거대한 세력을 만들어 무참하게 짓밟고 있는 이들에게 그는 저항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안광을 빛내며 소리치던 그는 잠깐 숨을 몰아쉬고는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저는 흑마법사 랭킹 1위 어둠의흑염룡…… 아니…….] [죽음의 군단을 통솔하는 리치, 아르게이머입니다.]죽음의 군단을 이끄는 전설 속의 리치. 이 모든 사태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고 소개한 흑염룡은 자신의 거대한 언데드 군단의 위세를 보여 주며 말했다.
[저와 함께 이 악랄한 신성 제국에 저항하고 싶은 이들은 마룬 왕국으로 모이십시오.]그는 모두를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사제랑 성기사 새끼들에게 진정한 매운맛을 보여 줍시다.]거대한 신성 제국에 맞서기 위한 또 다른 거대한 세력을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