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42
442화 수습이 안 돼 (4)
보기만 해도 마음이 깨끗해지던 푸른 아르카디아의 하늘.
하지만 그 아름답고 청명했던 하늘은 사라지고 지금껏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기묘한 광경만이 모든 이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저건……?”
“이게 도대체…….”
마치 유리창이 깨져 버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난 하늘. 이 세상을 지탱하고 보호하던 그 거대한 차원의 벽이 수많은 파편으로 나누어 흩어졌고 그 사이로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우우웅.
감히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외계의 세상.
하지만 그 공허 속에서 조금씩 퍼져 나오는 기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지만, 불길함이 가득 느껴지는 그런 것이었다.
“저건 또 뭐다냐……?”
“아, 이 망할 게임사. 설마 또 터진 거야?”
“누가 이상한 거 건든 거 아냐? 성마대전 끝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저래?”
NPC도 유저도 모두가 처음 보는 기묘한 광경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상황.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마저 맴돌며 온갖 도시에서는 경계 태세를 강화했지만, 그 모든 것이 기우라는 듯이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
“뭐지……?”
그 어떤 정보도, 기록도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현상.
그렇기에 모두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이 아르카디아의 창세부터 존재했던,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허락받은 이들은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세계수님이시여, 데리고 왔습니다.”
하이 엘프들의 여왕이자 엘븐 킹덤을 통치하는 고귀한 존재, 멜리사.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격과 힘의 기운을 가진 그녀는 단신으로 초월종인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로 거듭났지만, 세계수의 앞에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저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만물의 어머니시여.”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서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초코파이조아. 과거 그가 세계수의 사도로 전직할 때 그녀의 심상 세계에서 대면한 이후로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기에 초코파이조아의 얼굴에는 자신을 왜 부른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이 가득했다.
“왔구나.”
본체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고목이지만, 초록빛 머리칼의 작은 소녀의 모습을 한 세계수.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오는 그 고고하고 우아한 기운은, 그리고 존재 자체에서 뿜어지는 그 격은 이 어린 소녀가 이 세상을 지탱하는 신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초코파이조아를 남겨 둔 채 자신의 용무가 끝났다는 듯, 주저 없이 자리를 떠나는 멜리사. 그런 그녀에게 세계수는 마지막까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 품위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후……. X발. 진짜 X됐네.”
그녀가 사라지자마자 이전의 그 품위와 품격은 어디 가고 듣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걸죽한 욕지거리를 찍 하고 내뱉는 세계수. 그야말로 우디르도 엉엉 울고 갈 태세 전환에 순간 정신이 나가 버린 초코파이조아가 멍하니 서 있는 그때 세계수는 진심으로 짜증 난다는 듯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한탄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그 빌어먹을 치킨 새끼랑 박쥐 새끼 싸움에 끼어들게 돼서, 안 그래도 없는 개연성 엄청나게 소모한 상태인데, 여기서 갑자기 이 세상의 끝이 다가온다고? 이런 엿 같은 상황이 말이 되냐? 이건 뭐 그냥 저항도 하지 말고 얌전히 뒈지라는 거야 뭐야? 아버지는 아무런 개입도 안 하려는 모양새고. 이걸 나보고 어쩌라는 건데? 하 진짜 XXXX하고 XXXX해서 못 해 먹겠네. X발!”
무슨 말 한마디에 욕이 안 들어가면 말을 못 하는 저주라도 걸린 건지, 말끝마다 온갖 욕지거리를 붙여 대며 가슴속에 맺힌 울분을 모조리 토해 내는 세계수.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초코파이조아는 대략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는 있었다.
“저…… 세계수님? 혹시 저 하늘 위에 뚫린 구멍이 문제가 되는 겁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보기만 해도 뭔가 X된 것 같은 게 너는 안 느껴지냐?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말 한번 건넸다가 본전도 찾지 못하고 잔뜩 날이 선 세계수의 반응에 꼬리를 내리는 초코파이조아. 하지만 세계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 같더니 이내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딱 한 번만 이야기해 줄 테니까 귓구멍 열고 똑바로 들어.”
그렇게 시작된 이 세상의 탄생과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이내 초코파이조아는 그녀가 언급하는 존재가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결국, 이 세상의 수많은 신격이 모든 힘을 잃고 허신으로 전락해 저 공허 속으로 사라졌으며 나를 비롯해 이 대륙의 대부분이 절멸할 뻔했지. 창조주인 아버지의 안배 덕분에 완전한 멸망까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벌이는 일은 막아서지 못한 건 사실이지.”
“검은 안개의 주인이라면…….”
“아수라. 이 세상을 창조한 아버지와 대등한……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가진 이계의 신격이야.”
“아…….”
이미 여러 번 시네마틱 영상에서 언급되었던 존재인 아수라. 과거 불카누스의 부활에서도 언급되었던 적이 있던 그의 이름이 세계수에 입에서 튀어나오자 초코파이조아는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미친……. 이게 이렇게 된다고?’
이미 아수라에 대한 떡밥이 등장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 이후에는 어떤 정보도 풀린 적이 없기에 이미 분위기가 시들시들해진 상황. 온갖 터무니없는 루머와 추측들이 난무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하나의 신격인 세계수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 비화는 그가 접해 본 그 어떤 정보보다도 신뢰성이 높은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그러니까, 그 아수라가 이 세상에 다시 눈을 돌렸다는 겁니까?”
“그래. 무식하게 이 아르카디아를 보호하던 차원의 벽을 완전히 찢어발긴 거 안 보여? 방벽에 구멍 조금 내는 수준이 아니라 경계 자체를 완전히 부숴 버리는 건 그 누구도 할 수 없어.”
과거, 검은 안개의 주인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 암흑의 시대를 떠올리는 세계수. 그녀는 그때와 같이 이 아르카디아를 보호하던 강력한 방어막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의 귀환.
창조주에 필적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이가 다시 되돌아왔다는 사실에,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초코파이조아는 당황한 얼굴로 물었고, 그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결국…… 예언대로 이 세상의 끝이 도래하겠지. 모든 생명의 죽음. 그리고 나아가 나의 죽음과 이 세계의 죽음으로.”
“그런…….”
세계의 종말.
이 아르카디아를 살아가는 NPC인 그녀에게도 중요한 문제였겠지만, 모험가로서 게임을 즐기고 있는 그로서는 미묘하게 이 상황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설마? 진짜 이 정신 나간 게임사가 서비스 종료까지 고려한 건가?’
여느 게임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결국 한계에 봉착하고 마는 것은 불변의 진리. 그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듯이, 이 끝도 없는 즐길 거리와 모험할 것들로 가득한 이 아르카디아의 세계도 언젠가는 그 한계점이 있을 것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벌인 짓들만 봐도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치 추잡하고 더럽게 생명력이 다 된 게임을 붙잡고 있느니 차라리 거대한 종말 앞에서 세상이 멸망하는 엔딩으로 서비스를 종료하겠다는 그 사악한 계획의 냄새가 느껴지는 상황. 하지만 그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었기에 초코파이조아는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념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며 세계수는 알 수 없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벌써 그렇게 너무 겁먹지는 마.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예……?”
“아버지께서도 여러모로 이 재앙을 막아서기 위한 안배를 해 두었거든.”
“안배요……?”
“모험가들.”
“……?”
이 아르카디아를 오고 가며 자유롭게 방랑하고 모험하는 이계의 존재.
모험가.
바로 자신들이 이 세상의 멸망을 막아서기 위한 창조주의 안배라는 말에 초코파이조아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나를 비롯해 강대한 신성을 가진 이 아르카디아의 존재들은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거나 막아설 수 없어. 애초에 이 세계에 속한 정명자(正命自)인 우리 중에선 저 아수라가 가져올 세계의 종말을 막아설 수 있는 자는 없어. 그게 우리의 운명이자 이 세계의 정해진 순리이니까.”
강대한 힘을 가진 아르카디아의 수호자인 드래곤도.
천계와 마계의 수장들도.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는 정령왕이나 오랜 수련을 통해 강대한 힘을 갖춘 신수들도.
모든 힘을 잃고 잠들어 있는 고대의 신격들도.
그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이 세계에 닥쳐올 운명.
하지만 세계수는 초코파이조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는 달라. 애초에 이 세상에 속한 이들도 아니고, 우리를 족쇄하고 있는 그 운명이라는 굴레에서 완전하게 자유롭지. 아버지로부터 불사의 권능을 선사받았고, 수많은 위기 속에서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성장하고 강해졌지. 이 세상에서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고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는 존재들은 오직 모험가, 너희들뿐이야.”
“…….”
이 아르카디아의 제작 의도와 단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 없는 이 세계의 진실.
그 모든 설정과 비화를 엿들은 초코파이조아는 감당하기 버거운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이내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에 가득 찬 얼굴로 소리쳤다.
“마, 맡겨만 주십시오!”
“응? 뭘?”
“이 세계는…… 제가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지켜 내겠습니다! 이번에 이 세계수님의 터전을…… 그리고 다른 동료들을 지켜 낸 것처럼.”
하나의 세계를 멸망으로부터 지켜 낸다.
마치 하나의 영웅담과 같은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굳은 각오를 다지는 초코파이조아. 하지만 세계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마치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네가?”
“예……?”
마치 각자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그리고 이내 세계수는 조금 한심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너 말이야……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이게 나랑 그 치킨 새끼의 사도 정도 수준으로 비빌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니……?”
자연의 의지 그리고 교황, 초코파이조아.
한 개인이 두 신성을 동시에 품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엄청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거대한 운명을 거스르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것에 불과했다.
“…….”
빠꾸 없이 직설적으로 틀어박히는 팩트에 충격을 받은 초코파이조아. 명색이 자신을 따르는 사도임에도 전혀 신뢰하거나 의지하지 않는 것 같은 세계수의 태도에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하길 바라시는지…….”
“그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모험가를 찾아 가능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들을 도와줘.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너를 데려다가 엘븐 킹덤을 수복한 거고, 엘프들을 비롯해 내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결집한 거니까.”
애초에 자신은 그녀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비정한 이야기에 자존심이 그냥 가루 수준으로 뭉개진 초코파이조아. 그리고 그는 이어지는 세계수의 말에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덱스라고 했나……? 그 녀석이랑 안면 있기는 하지? 무슨 이유로 그 망할 놈이 너를 소개해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녀석이야. 그놈 찾아가서 뭘 시키든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뭐든 하라는 대로 해.”
자신은 그 망할 사칭범 새끼의 그림자를 죽어도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