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44
444화 민수는 못 말려 (2)
잭.
그는 현실에서 선천적 기형으로 인해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반신불수였지만,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한한 상상력을 가졌기에, 그는 이 가상의 세계에서만큼은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그는 상상하는 대로 모든 법칙과 규칙을 구축하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으며, 사실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이 진실이고 진리가 되었다.
전지하고, 전능한…… 그리고 스스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낸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
아르카디아의 수호자라 불리며 공포의 존재로 알려진 드래곤들도.
각각 저마다의 강력한 신성과 신위를 가진 고대의 신격조차도.
그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이 가상 세계의 최강자이자 최고위급 존재인 잭.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이 가상의 세계 속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가 딱 한 명 존재했다.
“자…… 어디 보자……. 어떤 식으로 시나리오를 시작해 볼까…….”
마치 아끼고 아끼던 장난감을 드디어 가지고 놀려는 것 같은 해맑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고심하고 있는 김민수.
자신이 이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프로젝트, 식스 센스와 호접몽의 핵심 개발자이자 가상현실 기술의 아버지인 그. 아르카디아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 것이 잭이라면, 그것을 가동할 하드웨어를 만든 것이 김민수였기에 이 둘은 정확히 이 세계에 대한 절반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을 만들어 낸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
공허를 떠도는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로서.
그렇기에 잭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신을 구원해 준 은인인 민수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동시에 가장 껄끄럽고 부담스러운 존재였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순된 감정을 자주 느끼곤 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 아르카디아에 주입하고자 고집을 부릴 때는 더더욱 말이다.
“잭, 어떻게 생각해? 너는 어떤 식으로 종말 시나리오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 낑낑거리며 아이디어를 던져 보라는 민수. 그런 그에게 잭은 조금은 단호하게 황금빛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민수야, 일단 하나는 확실하게 정리해 두자.”
“음? 뭐가?”
“일단…… 나는 지금 최종장 시나리오를 발동하자는 너의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아. 하지만 네 말대로 시나리오의 발동에 관한 권한은 전적으로 너에게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걸 막을 수는 없겠지.”
그렇기에 민수가 처음 이 아르카디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이 사태에 대비하여 선제적으로 전 세계에 최종 시나리오와 관련한 사실을 공표했던 이미연 사장.
하지만, 그 둘조차도 민수가 이렇게나 빨리 아르카디아의 종말을 선언할 것이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다.
“너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모든 것은 정해진 규칙대로 흘러가게 될 거야. 그 어떤 예외나 우리 둘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판단도 없이, 오로지 엘리스의 판단에 따라서 공정하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거지.”
“음……. 그러니까 엘리스를 심판으로 두고 우리 둘 다 뒤에서 이상한 수작질을 부리지 못하게 하자는 거지?”
“맞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 나간 짓을 벌이는 민수. 그런 그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선제적으로 의견을 건넨 잭. 그리고 그런 제안에 민수는 별다른 반대 없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뭐. 엘리스, 이번 시나리오와 관련해서 심판 좀 부탁해도 되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관리자님. 주어진 규칙에 따라 모든 것을 처리하겠습니다.]그 어떤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고 무엇이든 공명정대하게 판단하는 인공지능.
그런 그녀의 믿음직한 대답에 민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그럼 이제 논의를 좀 해 보자고.”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시나리오에 관한 토의를 시작한 세 사람.
하지만 이 아르카디아의 종말만큼은 막아서고 싶은 잭과.
어떻게든 극악의 난이도를 들이밀며 최대한도의 재미를 보고 싶은 민수.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지고 이 최종 시나리오를 대하고 있는 두 사람은 단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한참 동안 의견의 평행선을 달렸다.
“아니, 뭐 전부 다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당연한 소리 아냐? 뭐 죄다 공략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잖아. 그럴거면 초거대 운석 하나 떨어트려서 간단하게 멸망시키지 그래?”
“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걸로 해도 돼?”
“……되겠냐?”
하지만 그 이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 엘리스의 중재와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에 일부 양보에 의해서 결국 최종 시나리오에 대한 합의안이 도출되고야 말았다.
“그럼…… 이제 동의하는 거야?”
“그래……. 이 정도로 하자.”
잔뜩 피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는 민수와 잭.
그리고 이 둘은 이내 자신들이 합의한 사안에 대해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세 번. 딱 세 번만큼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발동 가능한 거 맞지?”
“엘리스에게 현재 상황에서 공략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판정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각 재앙이 끝난 이후에는 최소 일주일 이상의 휴식기를 가지기.”
“클리어에 따른 보상 산정은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는 걸로.”
“그것도 엘리스의 판정을 받는 거지?”
“물론.”
그렇게 여러 가지 조건들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맞춰 본 민수와 잭은 서로 간에 최종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맞잡았다.
“……제발 멸망만큼은 시키지 말아 주라.”
“그건 나한테 달려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노력은 해 볼게.”
말을 말자는 듯이 얼굴을 파르르 떨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잭.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수는 쾌활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이야기 다 끝났으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여기서 먹는 건 살도 안 찐다며?”
이 모든 것을 만든 가상현실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그였지만, 정작 본인은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가상현실의 경험을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민수.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그리고 뭔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초보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잭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종말이고 나발이고 일단 밥부터 먹자.”
그렇게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순식간에 어느 한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으로 이동한 둘.
딱 봐도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에 음식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으로 보였지만, 잭과 민수는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온갖 메뉴를 시켜 댔다.
“오? 드레이크 꼬리 스테이크? 이거는 뭐야? 맛있나?”
“음……. 나쁘지 않아. 육질이 야들야들하고 육즙도 많거든.”
“그래? 그럼 이거도 추가해 주시고요. 요거랑 요거…… 아, 이것도 주세요.”
생존이 아니라 오로지 즐거움을 위한 식사.
그야말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괴상하고 신기한 식재료들을 가지고 숙련된 요리사가 만들어 낸 음식들을 맛보며 그 둘은 아까까지의 치열한 논쟁은 잊은 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햐……. 여기 진짜 맛집이구나? 뭐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게 없네.”
“그렇지? 나도 가끔 들르는 곳이야. 아르카디아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거든.”
“그래? 신경 좀 많이 쓴 곳인가 보네.”
창조주인 잭의 말에 곧장 수긍하며 열심히 음식을 이것저것 맛보던 민수.
하지만 갑자기 그 순간. 이 둘의 식탁에서 접시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히 부서졌다.
쨍그랑.
“아이 씨…….”
둘이 식사를 하던 테이블을 지나가던 어느 한 모험가.
우연히 모서리에 튀어나와 있던 접시와 부딪혀 실수로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그 모험가는 민수와 잭을 힐끗 보더니 이내 잔뜩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이내 사과 한 마디도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뭐지……?”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 인간 된 예의가 없어 보이는 저 싹퉁머리에 민수는 잭이 말릴 새도 없이 그 모험가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거기 아저씨. 남이 먹던 음식을 떨어트렸으면 사과부터 하는게 정상 아니에요? 가정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받았길래 그따구로 행동해요?”
“야…… 야!”
민수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잭.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둘은 그저 아무런 특색 없는 평범한 엑스트라 NPC의 상태로서 이 식당에 앉아 있는 상태.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이상, 그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최소한도의 능동성을 부여받은 상황이기에, 민수가 하는 행동은 너무나도 튀는 짓이었다.
하지만, 잭이 설명을 해 주기도 전에 이미 걸음을 멈춰서서 돌아온 모험가.
딱 보기에도 쉽지 않아 보이는 외모의 그는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른 민수를 험악한 얼굴로 바라보며 싸늘하게 물었다.
“방금 그거, 나한테 한 말인가?”
“당연하죠. 그럼 여기서 아저씨 말고 누가 음식 떨어트렸어요?”
그야말로 가정교육 운운하면서 불꽃 패드립을 날리는 민수. 하지만 그런 그를 마주하고 있는 상대는 무언가 혼란스러운 눈초리를 짓고 있었다.
“네놈…… 뭐지?”
그저 아무것도 아닌 NPC에 불과한 존재.
하지만, 마치 현실의 모험가와 같은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건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동료로 보이는 누군가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다가왔다.
“아, 바빠 죽겠는데 안 오고 여기서 뭐 해?”
“아니, 여기 이 NPC가 갑자기 불러서 시비를 걸잖아.”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산산이 깨어진 접시와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바닥을 구르고 있는 드레이크 꼬리 스테이크.
그것만 봐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감이 잡혔지만, 이 에르젤 영지의 실권을 꽉 잡고 있는 모험가 길드, 붉은 깃발의 소속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하잘것없는 NPC의 항의 따위는 그야말로 상대할 일말의 가치도 없었다.
“어디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그래? 너, 우리가 누군지도 몰라?”
“음……. 잘 모르겠는데?”
“붉은 깃발 길드를 모른다고? 이 새끼들……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외지인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눈초리로 중얼거리는 게르델.
“누구야? 그게. 유명한 애들이야?”
잭에게 도대체 이놈들은 뭐냐고 묻는 민수. 하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잭을 대신하여 엘리스가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종합 랭킹, 37,953위 길드, 붉은 깃발. 그저 일반적인 지역 군소 길드에 해당됩니다.]그저 지방 토호 세력 정도밖에 안 되는 모험가 길드. 이곳에서 살아가는 NPC들 입장에서는 이들은 감히 쉽사리 건들 수 없는 존재들이었겠지만, 민수에게는 그 어떤 인상도 주지 못했다.
“뭐야? 별것도 아닌 놈들이었잖아?”
“뭐…… 뭐……?”
“이것들…… NPC 맞아? 뭔가 이상한데?”
그의 한심스럽다는 눈초리에 모욕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끼는 두 사람. 분명히 NPC였지만, 마치 일반 유저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민수를 보며 이들은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바보야, 왜 아무것도 아닌 일에 다른 유저랑 시비 걸리고 있어? 그냥 넘어가도 되잖아.”
이들의 대치 상황을 지켜보고 머리가 아프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툴툴거리는 잭은 이내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방금까지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접시와 스테이크는 마치 시간이 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다시 원상태로 수복되어 갔다. 다시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먹음직한 스테이크가 놓여 있는 커다란 접시.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이내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도대체…….”
“이놈들은 뭐지……?”
평범해 보이는 외형의 NPC들. 이 둘의 머리 위에 보이는 텍스트 역시 그들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 주고 있었다.
[촌뜨기 상인, 한스] [신출내기 모험가, 잭]어느 마을에서나, 어느 도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저 그런 NPC가 달고 다니는 칭호와 이름들. 하지만, 이 둘의 반응에 그는 마치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아, 그거? 위장이야.”
자신의 닉네임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민수는 이내 이 둘을 향해 다시 확인하라는 듯이 머리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우우웅.
실시간으로 뒤바뀌는 텍스트.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그의 진정한 정체를 보며 이 둘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
“…….”
그렇게 밥 먹다 시비가 걸렸다는 아무도 믿지 못할 상황 속에서 이 아르카디아의 멸망을 불러올 공포의 존재, 아수라는 처음 이 아르카디아에 모습을 직접 드러냈다.
어느 버릇없는 유저 두 명에게 인성 교육을 시켜 준다는 희대의 개소리를 지껄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