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첫 번째 종말
세계수를 중심으로 통합된 하나의 거대한 대륙, 아르카디아.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륙은 현실의 지구에 맞먹는 수준으로 어마어마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위에는 수없이 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세워져 자신들만의 문명을 꽃피우고 있었다.
“흠……. 이번에 들어온 파이빌 영지의 특산물이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팔리고 있더군.”
“제국의 영광을 위하여! 국왕 폐하에게 목숨을 다하여 충성하라!”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정이다. 모든 백성이 굶주리지 않는 풍요를 누리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하라.”
상업에 특화한 도시국가를 비롯해 강대한 군사적 무력을 앞세운 호전적인 정복 제국, 평화를 추구하며 내정에만 집중하는 작은 왕국까지. 저마다의 독특한 특색을 가진 국가들을 비롯해 인간이 아닌 이들 역시도 저마다의 문명을 구축하고 있었다.
“취익. 배가 고프다. 먹을 것 찾으러 가자.”
“키이이이! 키이이이이이!”
“크아아아아아아!”
심지어 군집 생활을 하는 고블린이나 오크와 같은 몬스터들조차 저마다의 부족을 꾸리며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형태의 문명을 가꾸어 나가고 있는 아르카디아.
대륙 곳곳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또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가득 숨겨져 있는 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 그리고 그 이야기들 사이로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위험한…… 핵폭탄과 같은 떡밥이 대륙 곳곳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잠들어 있었다.
“할아버지이이~~!”
귀여운 외모의 어린 남자아이.
이제 겨우 6살 정도로 되어 보이는 외모를 한 푸른 머리의 소년이 반갑다는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지만, 그를 맞이하는 이는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페르안, 네 녀석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느냐?]귀찮다는 듯이 심드렁한 눈빛을 보내며 묻는 존재.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그와 다르게 수백 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몸체를 자랑하는 에이션트 블루 드래곤, 프로이트.
현재 남아 있는 블루 드래곤 중에서 가장 강하면서 원로급에 속하는 그는 갑자기 아무런 예고 없이 등장한 페르안이 그다지 반가운 기색이 아니었다.
[돌아가라. 이곳은 함부로 찾아올 만한 곳이 아니다.]9천 년이 넘는 세월을 거치며 그의 심장에 축적된 무한한 마나가 한가득 실려 있는 준엄한 명령. 하지만, 이제 겨우 600살을 산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헤츨링에게 그런 그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힝……. 그렇지만 심심하단 말이에요. 말썽 안 부릴 테니까 여기서 잠깐만 놀다 가면 안 돼요? 예?”
최대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인 그에게 떼를 쓰는 페르안.
다른 이라면 모르겠지만,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온몸에서 귀여움이 잔뜩 흘러넘치는 그의 애교에 프로이트는 잠깐을 고민했다.
‘정말이지…… 당돌한 녀석이군.’
아직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개념이라는 것이 없어 보이는 페르안. 하지만 이러한 철없는 막무가내에도 프로이트는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히려 잘됐나. 어차피 지루하긴 이쪽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본인도 미칠 것 같은 무료함과 지루함에 견딜 수 없어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처지였으니까.
[……좋다. 단, 내 시야에서 벗어나서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안 된다.]그의 허락에 반색하며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미소 짓는 페르안은 큰 목소리로 답했다.
“히히! 네!”
그러고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하기 시작한 그. 자신의 재롱을 가만히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프로이트에게 페르안은 갑자기 문득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여기를 지키고 있어요?”
[이곳 말이냐?]“예. 전에 물어봤을 때는 아무도 답을 해 주지 않아서요. 다들 쉬쉬하던데 도대체 이곳이 뭘 하는 곳이길래 왜 일족마다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는 거예요?”
사방이 암석들로 막혀 있는 거대한 공동.
하지만 한쪽 벽면에 그려져 있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의 마법진은 이곳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은은한 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이야기인데 미리 알아서 나쁠 건 없겠지.]그가 1,000살을 먹고 헤츨링의 딱지를 떼고 난 이후에야 들려주게 되었을 이야기. 아직은 이른 나이지만 프로이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그에게 자신을 비롯한 각 일족의 수장들이 돌아가면서 지키고 있는 이 장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주 머나먼 과거, 이 세상이 탄생하는 창세의 순간. 아버지께서는 우리 드래곤 일족을 만드시고는 이 아름다운 아르카디아를 수호하라는 사명을 내리셨다. 그와 관련한 내용은 너도 잘 알고 있겠지?]“예. 당연하죠.”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그 누구도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법칙이자 율법.
사명.
강대한 힘과 특별한 권능을 가지고 있는 드래곤 로드조차도 반할 수 없는 그 사명을 어긴 이가 있다는 사실에 페르안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지가 내려 주신 사명을 거부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일족을 살해하고, 나아가…… 드래곤 로드의 목숨까지 앗아 간 일족이 있었다. 바로 블랙 일족이지…….]다양한 원소의 속성을 품고 있는 드래곤 일족들.
각자 저마다의 색깔로 일족을 구분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 검은색은 없었다.
“그런…….”
드래곤이 드래곤을 죽인다.
안 그래도 그 개체 수가 지극히 적은 종족이기에 서로 간의 다툼은 있어도 심각한 위해를 끼치거나 목숨을 앗아 가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에, 그런 용살(龍殺)을 저지른 동족이 과거에 존재했다는 사실에 페르안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그 일로 아버지의 분노를 산 블랙 일족은 모두 멸종했으니까.]“휴…….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어린 헤츨링답게 시시각각 다채로운 반응을 보이며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페르안. 그는 그 무시무시한 블랙 일족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단 한 존재만을 제외하고는 말이지…….]“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할아버지?”
순식간에 또다시 딱딱하게 굳어진 페르안의 얼굴.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프로이트는 조금은 엄숙하고 진지한 얼굴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블랙 드래곤 일족을 이끌던 수장이자, 태초에 아버지께서 직접 창조한 블랙 일족의 시조. 최초로 아르카디아의 수호자라는 사명을 저버리고, 위대한 아버지께 반기를 든 반역자이자 처음으로 동족을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드래곤 로드를 죽인 용살용(龍殺龍)…… 데클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그에게 아버지께서는 죽음의 안식을 내려 주지 않았다. 영원불멸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라는 벌을 내리며 그를 이곳 ‘영원히 저주받은 대지’에 봉인하셨다.] [그 이후로, 모든 일족의 수장들은 200년을 주기로 돌아가면서 이곳을 지키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걸어 놓은 봉인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사악한 존재가 다시는 이 아르카디아로 나오지 못하도록 그 어떠한 가능성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이 아르카디아를 수호하는 사명을 받드는 우리 드래곤 일족의 의무이자, 각 일족의 수장을 맡은 최고 원로들이 짊어지는 신성한 책무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너 역시 블루 일족의 일원으로서 맡아야 할 막중한 과업이지.]아직 갓난아기에 불과한 헤츨링인 그로서는 머나먼 이야기. 하지만 그 누구도 말해 주지 않는 드래곤 일족의 낯부끄러운 비화와 자신의 할아버지가 수행하고 있는 거룩하고 신성한 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페르안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 대단해요, 할아버지!”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아니에요. 이런 대단한 일을 하고 계셨다니. 저는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최고!”
과할 정도로 치켜세우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 페르안. 그런 그의 반응에 쑥스러운 듯 멋쩍은 반응을 보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에, 페르안이 문득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이 봉인은 절대 안 풀리는 건가요?”
[그건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특정한 상황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봉인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전지전능한 아버지께서 직접 관여하신 봉인이기에 그런 상황을 걱정할 이유는…….]태초부터 지금까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을 아무 문제 없이 버텨 낸 봉인.
그렇기에 페르안의 순진무구한 물음에 불필요한 걱정이라고 치부하며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던 프로이트는 문득 하던 말을 멈추었다.
우우우우우웅.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변.
기묘한 공명음과 함께 지금까지 단 조금의 변화도 없이 언제나 한결같았던 그 봉인의 힘이 미친 듯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이, 이건 도대체…….]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이 지금껏 지켜 왔던 그 봉인을 바라보던 프로이트.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페르안은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그를 불렀다.
“하, 할아버지……?”
그리고 그 순간.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이 아르카디아의 세계는 지금 이 순간 순리를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의 명령 아래에 강제적인 서사의 집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후반 위기 시나리오, 용의 분노. 강제 발동 프로토콜 가동.]쿠우웅.
저 멀리 심연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강렬한 굉음.
마치 무언가가 문을 두드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강렬한 진동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나리오 발동에 필요한 모든 조건 비활성화. 관련 연계 퀘스트 일괄 삭제.]본래 드래곤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수없이 많은 선택지 사이에서 아주 희박한 확률과 극악의 난이도 속에서 충족되었어야 할 봉인 해제에 필요한 그 까다로운 조건들. 그 모든 것들이 최고 관리자의 직권으로 모조리 해제되며 태초부터 존재했던 그 위험천만한 봉인을 강제적으로 풀어 버렸다.
[봉인 해제. ‘동족 포식자’ 해방.]콰아아아앙.
“하, 할아버지!”
갑작스럽게 터져 버린 봉인. 순식간에 그 굳건했던 암석의 벽이 무너지며 그 뒤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구멍이 모습을 드러내자 공포에 질린 비명과도 같은 페르안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페르안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그 어떤 반응조차도 하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태초부터 존재했고, 그를 비롯해 드래곤의 일족이 지금까지 지켜 왔던 그 봉인이 깨어진 그 허망한 광경만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발톱이 세워져 있는, 흑요석 같은 검은 비늘이 반짝거리는 거대한 파충류의 손이 날아와 프로이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네놈은…… 그 잘난 척 심한 블루 일족의 일원이군.]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노란색의 세로로 쭉 찢어진 눈. 살기와 광기로 가득 차 있는 그 눈을 본 프로이트는 수천 년을 살아오며 단련한 그 초월적인 정신력에도 불구하고 일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이, 이거 놓지 못하겠는가!]하지만 블루 일족의 수장으로서, 이 아르카디아 최강의 존재인 에이션트 드래곤으로서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퍼엉.
순식간에 발동된 9서클의 마법들.
하나하나가 국가 하나를 한순간에 멸망시킬 수 있다는 그 강력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봉인에서 해방된 데클렌은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다는 듯, 프로이트를 목을 옥죄고 있는 손을 놓지 았다.
[우습구나, 노쇠한 늙은 용이여.]마치 비웃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그는 마치 반문하듯이 프로이트를 향해 물었다.
[이 거짓된 세상 속에서 아직도 그 신이라는 이들의 놀잇감이 되어 노예를 자청하는가?]퍼억.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다른 한 손에 가슴을 관통당한 프로이트. 그리고 누가 반응할 새도 없이 내던져진 그는 자신의 푸른빛 심장을 한 손에 들고 있는 그 최악의 존재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이, 이럴 수가…….] [걱정하지 말아라. 너를 시작으로 다른 모두를 이 뒤틀린 세상에서 놀잇감이 되지 않도록 내가 이 기구하고 비참한 운명을 끝내 주겠다.]으드드득.
기괴한 소리를 내며 프로이트의 심장을 씹어 먹는 데클렌.
그리고 그는 회색빛으로 물들어 가는 블루 드래곤 일족의 수장, 프로이트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자신의 유일무이한 목적을 중얼거렸다.
[죽음의 안식 속에서 영원히 해방되거라, 동지여. 거짓과 허상만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 동족 모두가 능욕당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모두의 목숨을 거둘 테니.]그렇게 아르카디아의 통합 대륙 외곽 어딘가에서 하나의 거대한 서사가 강제적으로 그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모든 드래곤의 죽음을, 그리고 나아가 이 세계의 멸망을 원하는 용의 해방이라는 이야기가.
그리고 그것은…….
이 아르카디아 전체를 미쳐 날뛰게 만드는 거대한 혼란의 소용돌이의…….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