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57
457화 유저 키우기 (1)
아르카디아의 모든 것을 관조하고 분석하는 관찰자이자.
수많은 서사 속에서 변화하는 모든 것을 적용하는 집행자이자.
그 어느 상황에서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은둔자.
인공지능 엘리스.
그녀는 최근 자신의 창조주이자 최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관리자들 사이의 알력 다툼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논리회로와 연산회로가 맹렬하게 가동되는 과부하 속에서도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야! 이게 어딜 봐서 규칙 위반이야? 직접 개입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라며!]잔뜩 화가 난 듯한 어조로 소리치는 아르카디아의 최고 개발자이자 창조주, 잭.
그리고 그의 상대인 최고 관리자이자 검은 안개의 주인인 민수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격렬하게 잭의 의견에 반대를 표하고 있었다.
“아니지. 저런 식으로 명색이 세계관 최강자인 드래곤을 모조리 끌어들이는 게 어딨어? 이건 분명히 다른 재앙에 관여하고 있는 거야.”
[본인이 ‘직접’ 나서서 재앙을 처치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나머지 재앙에 대해서 무적 판정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제한하자고 너도 동의해 놓고 인제 와서 말 바꾸는 법이 어디 있어?]상태 이상, 휴식을 취하는 용사.
재앙을 클리어 한 이들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강력한 설정이자 법칙.
그 어떤 방식으로도 해제할 수 없는 상태 이상으로 재영을 비롯해 다른 이들이 해결사로 나설 수 없도록 막아서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색다른 방식으로 다른 재앙에 개입하고 있었다.
“엘리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게 맞는 거야?”
[맞아, 엘리스. 네가 판정해 줘. 이것도 막아서야 한다고 생각해?]서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가 이내 자신에게 이 상황에 대한 결론을 내려 달라는 두 명의 관리자들. 그 둘의 물음에 잠깐 침묵하던 엘리스는 이내 자체적인 가치판단 알고리즘에 의해서 해당 문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든 하나의 재앙에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해당 유저의 행위는 판단 주체에 따라 그 결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재앙에 개입하려는 의지는 명확하게 존재하며 드래곤의 개입은 그에 따른 결과라는 인과성이 존재합니다.]“그치? 그치? 이건 반칙 맞지?”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하자 회심의 미소를 짓는 민수. 하지만, 엘리스의 말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해당 유저에게는 이미 개입을 제한하기 위한 상태 이상이 적용된 점. 간접적으로나마 개입의 의도는 성립되나 그 행위 자체가 직접적이지 않다는 점. 마지막으로 해당 유저에게는 불리한 패치를 추가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확약이 존재하는 점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제한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됩니다.]“뭐……?”
온갖 이유를 늘어놓으며 잭의 손을 들어 준 엘리스.
그런 그녀의 결정에 민수는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있었고, 이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따져 물었다.
“아니, 이걸 인정해 주겠다고? 그보다…… 마지막 이유는 뭐야? 무슨 확약?”
[관련 데이터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아르카디아 한국 지부에서 야심 차게 준비했던 초대형 이벤트, 죽창대전.
과거, 덱스를 탈락시키겠다는 목적 하나만으로 온갖 불합리한 패치를 단행했던 권명한 전무의 만행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민수는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따져 물었다.
“그러니까…… 그 죽창인지 뭔지 하는 망할 이벤트에서 저 녀석에 대한 저격 패치를 3번이나 직권으로 단행해 버렸고, 그때 이후로는 이런 저격 패치는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해 버렸다고?”
[그렇습니다.]절대…… 그리고 다시는 등장하면 안 될 아르카디아의 최종 병기, 죽창.
이미연 사장이 직접 나서서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없애 버려야 할 그 금단의 무기를 위해 무엇을 대가로 넘겨주었는지 확인한 민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참…….”
과거의 사건 하나가 만들어 낸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그것을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연신 침음성을 내뱉는 민수에게 엘리스는 위로하는 듯이 한마디를 툭 건넸다.
[다만, 관리자님의 의견에도 일부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드래곤들이 개입할 수 있는 재앙은 단 한 가지로 제한하겠습니다.]모든 재앙은 아니고 단 하나만을 막아서게 하겠다는 엘리스의 이야기.
그렇게 싱겁게 첫 번째 재앙이 끝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는 말에도 민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신이 놓아 둔 덫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재영을 바라보며 진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재밌네.”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정신 나간 플레이를 선보이는 재영.
그런 그를 바라보고 민수는 갑자기 쿡쿡거리며 웃었다.
“저 녀석…… 이제 보니까 완전 나랑 동종이었네.”
[뭐……?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묻는 잭. 그런 그에게 민수는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렇지 않아? 하는 행동이나,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완전 나랑 똑같은 것 같은데?”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백배로.
나를 엿 먹인 상대의 주둥아리에는 반드시 거대하고 우람한 엿을 쑤셔 박아 줘라.
자신이 현실에서 하는 행동 그대로를 가상현실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재영. 그저 기록으로만 볼 때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직접 그의 플레이를 지켜본 민수는 확신하고 있었다.
재영의 존재가 가상현실 속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것을.
“어디 한번 해보자고, 과연 누가 입에 잔뜩 엿을 쑤셔 박힌 채 신음하게 될지.”
그렇게 민수는 한참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호승심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그의 모습을 너무나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잭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진짜…… 저 새끼는 미친 새끼가 맞다니까…….]하여간 차마 눈 뜨고는 못 봐 줄 자강두천의 싸움이었다.
* * *
[북부의 재앙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르카디아의 수호자들이 대륙 북부에서 번지고 있는 의문의 역병을 막아서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진행률…… 0%]골드리안과의 대화 중에 갑자기 떠오른 선택창.
단 하나만의 재앙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제한에 재영은 잠깐 고민하다 북부를 선택했다.
“좋다. 우리 일족이 북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앙을 책임지고 막아 내도록 하지.”
그러자 방금까지 깊은 이야기를 나누던 골드리안은 일순간 몽롱한 표정을 짓다 마치 누가 짜 놓은 듯한 대사만을 내뱉고는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흠……. 이런 것도 막아선다 이건가.”
딱 봐도 누군가가 뒤에서 개입한 것 같은 상황.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막아서지는 못하고 하나의 재앙만으로 제한한 상황이기에 재영은 만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는 듯이 연신 입맛을 다셨다.
“쩝……. 다른 재앙들도 전부 짬 때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깝네.”
가장 효과적으로 나머지 재앙들을 처리할 수 있는 수단들을 하나에 낭비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재영은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듯이 손을 놀리며 남은 두 재앙의 클리어 조건을 살펴보았다.
“키메라 퀸의 제거랑…… 레비아탄의 처치라…….”
아르팬디아에 쏟아지고 있는 수많은 정보로 인해서 대략적인 상황은 오래전에 파악하고 있던 재영. 그렇기에 그는 나머지 두 재앙에 대한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더럽게 강한 단일 개체 하나냐 물량이 어마어마한 집단 개체냐……. 그게 문제네.”
무엇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재앙인지 고심하는 재영.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케이. 서쪽부터 처리한다.”
혼자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다가 이내 손을 튕기며 서쪽으로 간다는 재영.
그런 그의 말에 엘은 묘하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거죠?”
“뭐가?”
“덱스 님의 역할은 이미 끝났어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명확하게 보여요.”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이 세상의 흐름을 읽어 낼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엘.
인과율의 선구안에 비쳐 보이는 재영은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제약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지금 그 상태로는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재앙을 막아설 수 없어요.”
절대적인 법칙이자 이 세계의 설정으로 정해져 있는 사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그라 하더라도, 절대로 거스를 수 없는 강력한 제약이기에 엘은 시간 낭비라는 듯이 재영에게 말했다.
“이제는 그저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이들이 덱스 님과 같이 다른 재앙을 막아설 것이라고, 또 다른 영웅이 탄생할 것이라는 걸 믿으며 말이에요.”
혼자서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수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좌절하며, 그 끝없는 진흙탕 속에서 비로소 성장해 피와 눈물로 점철된 비극 속에서 결국 막아서야 할 최후의 시나리오.
종말.
결국, 살아남는 데 성공하더라도 수많은 희생과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이 처절한 싸움을 단신으로 전력을 다해 막아서는 재영을 바라보고 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이 싸움은 덱스 님의 몫이 아니에요. 덱스 님과 똑같은 다른 이들의…… 수많은 모험가의 몫이에요.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고만 하지 마세요.”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라는 엘.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재영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엘,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나는 전혀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어.”
“네……?”
재영이 서쪽으로 날아가서 키메라 무리 한복판에 뛰어들어 봤자 어차피 무적 판정으로 인해 그 어떤 위해도 끼칠 수 없는 상황. 개연성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무의미하게 낭비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는 그였다.
“네 말마따나 나머지 똥은 다른 놈들이 처리해야지. 내가 미쳤다고 다 치워 줘? 내가 무슨 베이비시터야? 시팅도 적당히 해 줘야지. 너무 많이 해 주면 버릇만 잘못 들어.”
“네……?”
“있어, 그런 게. 그래서 탑이든 봇이든 가끔은 강하게 크라고 의도적으로 방치하기도 하거든.”
과거, 전설의 리그에서 다른 팀원을 조련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
마치 사자가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리던 것처럼, 험난하고 가혹한 시련 속에서 용맹하고 강하게 성장하라는 그들의 마음을 잔뜩 담아서, 재영은 그들을 의도적으로 방치할 생각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주인? 그래서 도와준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그의 깊은 뜻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탄이 헷갈린다는 눈빛을 지으며 물어 오자 재영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도와주긴 도와줄 거야. 단, 혹독한 수준으로 굴려서 알아서 똥을 치우게 만드는 거지.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는 잡는 법을 알려 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도 하잖아?”
“……그게 뭔 소리야?”
우우우우우웅.
그리고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강대한 개연성.
어마어마한 양의 회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이 아르카디아의 거대한 인과의 흐름을 장악하기 시작하자 엘과 탄은 처음 보는 그 경이로운 현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단, 어디 다 숨어 있는 모험가 녀석들부터 모조리 다 튀어나오게 만들어야지. 뒈질 때 뒈지더라도, 어떻게든 숟가락 한 번이라도 찔러 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말이야. 이 거대한 재앙을 막아서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프리라이더도 용납할 수 없지.”
보상도, 뭣도 제대로 얻을 수 없다면서 이미 시나리오를 대거 포기하고 관망만 하는 유저들.
그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재영은 엄청난 양의 개연성을 대가로 자신의 의지를 이 세상에 구현했다.
[키메라 군단의 경험치가 10,000% 증가합니다.] [개연성 32억이 소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