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61
461화 유저 키우기 (5)
민수가 풀어놓은 다섯 가지의 재앙.
후반 위기 시나리오로 기획된 그 위험천만한 폭탄을 동시에 터트렸을 때.
사실, 잭과 이미연 사장은 다른 모험가들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현재 분석된 시나리오에 따르면, 0.1%의 유저를 제외한 나머지 유저들은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수백, 수천 가지의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엘리스조차도 기대하지 않는 99.9%의 유저들.
그도 그럴 것이, 이들 대부분은 최종장이 시작되고 난 직후, 그 어떠한 시도도 해 보지 않은 채 이미 모든 것을 포기했었다.
시나리오의 참여를 피하려고 접속 자체를 아예 하지 않거나. 접속은 하지만, 시나리오와 관련 없는 독자적인 플레이를 이어 나가며…… 심지어 시나리오의 공략을 방해하기 위해서 온갖 악의적인 방해 공작을 저지르는 이들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운영에 악에 받치고 분노하는 이들은 검은 안개의 주인, 아수라가 시작한 이 최종장의 시나리오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한 그저 엑스트라…… 아니, 배경만도 못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재영에 의해서 무가치한 존재에 지나지 않던 이들이 최종장이라는 무대 위로 너도나도 앞다투어 자신만의, 저마다의 이야기를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죽어라! 파이어 블레이드!] [슉슉! 슈슈슉! 슉! 슉! 나의 쌍칼 맛 좀 봐라!] [너희들을 위해서 내 비상금을 털어서 준비한 특제 최상급 마력탄이다! 다 덤벼!] [아오! 이 새끼들 독 안 통하는 자식들이었네. 어쌔신은 어떻게 싸우라는 건데? 도대체!]검사. 마법사. 캐논 슈터. 암살자. 궁수. 워리어. 버서커. 격투가…….
조금이라도 싸울 줄 아는 전투 클래스는 레벨이 낮든 높든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사방에서 튀어나와 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달려들었다.
수적 열세인 것도 모자라 레벨 격차로 인해서 도무지 상대가 안 되는 적, 키메라.
하지만…… 도무지 승산이 없는, 그 최후가 이미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지만, 자신이 죽는 걸 알면서도 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싸! 세 마리 처치 성공!] [내일 또 도전한다. 내일은 2배로 더 잡아 봐야지!] [대박! 경험치랑 스킬 숙련도가 도대체 얼마야?] [기다려라, 얘들아. 내일 이 시간에 또 보자.]일반적인 아르카디아의 NPC들과 다르게 죽음이 끝이 아닌 존재들.
불멸의 권능 속에서 다시금 부활하고 포기하기 전까지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이들.
모험가.
처음에 그 힘은 분명 미약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지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한계와 벽을 넘어서며 새로운 경지에 이르기 시작했다.
투캉. 콰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에에에!”
저 멀리에서 날아온 화살에 머리통이 날아가며 쓰러지는 키메라.
군체 의식이기에 그 모든 상황을 공유받는 주변의 동료들은 이내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달려들려 했지만, 이들의 움직임보다 이들의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의 속도가 더 빨랐다.
퍽 퍽 퍽 퍽.
눈 깜짝할 시간에 날아온 4발의 화살.
그리고 그 화살들은 정확히 각각의 키메라들의 머리 정중앙에 틀어박히고는 이내 거대한 굉음을 내며 폭발했다.
“후우…….”
그리고 저 멀리에서 깊게 숨을 내쉬며 모습을 드러내는 궁수, 베루스.
본래 120레벨의 아무런 특색도 없는 궁수에 불과했던 그였지만, 이 거대한 재앙 앞에서 베루스는 그 누구도 몰라볼 정도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Lv.239 베루스]불과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239를 달성한 그.
북두의짱돌만큼 경이적인 수준의 성장 속도는 아니었지만,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경험치나 성장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고생이 많구나, 베루스.”
그가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고향과도 같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입구에서 밤잠과 먹는 시간도 아껴 가며 거의 24시간 대부분을 머무르고 있는 그. 그리고 그런 베루스를 찾아온 늙은 노인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뭐야. 할아범,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왜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어?”
회복 포션을 왕창 쏟아부어서 죽기 직전에 간신히 살려 낸 노인. 이제 완전히 멀쩡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베루스였지만, 그는 일부러 귀찮다는 내색을 잔뜩 풍겨 대고 손을 휘휘 저으며 투덜거렸다.
“이러다가 또 저 망할 벌레한테 잡혀서 잡아먹히려고 그래? 빨리 오두막 안에 가만히 숨어서 기다려. 이 재앙이 끝나기 전까지는 함부로 나오면 안 된다고.”
본래라면 한참 전에 키메라들에게 사라졌어야 할 작은 마을.
이 거대한 재앙을 막아설 힘도, 그럴 만한 가치도 없는…… 기억하는 이도 없을 지역의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어느 한 모험가의 강렬한 의지 앞에서 아직도 이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남고 있었다.
마을의 구성원이 겨우 수십 명밖에 되지 않는 이 작은 마을을 홀로 지켜 내는 베루스. 그리고 그 모든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노인은 그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게.”
“뭐……?”
“자네는 그 어느 모험가보다도 최선을 다했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만약, 자네가 우리 마을을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야.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슬퍼할 가치도 없네. 그저 이거 하나만 기억해 주게나, 베루스.”
마치 자신들의 미래를 직감한 듯,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는 노인. 그리고 그는 혹시라도 홀로 부활하여 모두의 죽음을 슬퍼할 베루스를 걱정하기라도 하는 듯,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리고 이 마을의 모두가 자네의 헌신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아…… 씨……. 왜 갑자기 그런 불길한 말을 하는 건데! 진짜!”
일순간 울컥하며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감정.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의 가슴과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노인의 말에 베루스는 도리어 화를 벌컥 냈다.
‘진짜…… 이게 어떻게 NPC냐고…….’
현실이 아니다.
이 모든 세상은 거짓이며, 주어진 알고리즘과 스크립트로 짜여진 0과 1의 데이터일 뿐이다.
아무리 머리로 되새겨 보고, 다짐해 봐도, 베루스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치 오래전, 떠나보낸 자신의 할아버지와 같이 너무나도 친근하고, 따뜻하며,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반겨 주는 저 노인네가…….
본인의 죽음 이후 슬퍼할 자신을 걱정하며 저런 위로의 말을 건네는 행동이…….
어찌 영혼 없는 가상의 데이터가 할 수 있는 행위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키이이이이이익!”
또다시 등장한 키메라들이 내지르는 괴성. 그 소리를 들은 노인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베루스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심하게.”
그렇게 다시 마을 안으로 사라진 할아범.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해서 바라보던 베루스는 이내 기민한 몸놀림으로 마을 입구 바로 옆에 자리한 거대한 나무를 타고 시야 확보를 위해 최대한 신속하게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저건 뭔…….”
그리고 그는 처음 보는 키메라를 마주했다.
[Lv.260 거대둥이]자그마치 260레벨의, 단단한 외골격으로 둘러싸여 있는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 괴수. 베루스가 지키고 있는 마을 정도야 그저 빠르게 돌진하는 것만으로도 흔적도 없이 지워 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존재가 수십 마리의 키메라 병졸들을 데리고 나타났다는 사실에 그는 직감했다.
“상대할 수 없는 강한 놈으로 이 소모전을 끝내 버리겠다 이건가…….”
군체 의식을 통해서 이미 그에 의해서 수백 마리의 키메라들이 죽어 나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키메라 퀸. 그녀가 보낸 이 압도적인 무력은 딱 보기만 해도 막아 낼 승산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베루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으드드득.
“이 망할 똥망겜……. NPC들을 만들 거면 정을 못 주게 좀 적당히 현실감 넘치게 만들든가…….”
사람의 마음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들었다 놓는 악랄한 세계. 비록 가상이지만, 이 세상에서 만들어진 이 인연을 차마 놓을 수 없기에 그는 바위에 계란 치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발악이라도 한다는 듯이 자신의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놓았다.
“아이템, 발동. 아멜리아의 믿음.”
우우우웅.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에픽 아이템이자, 고대 영웅의 힘이 담긴 유산.
그 힘을 발동시켜 자신이 가진 모든 스킬을 하나의 화살에 꾹꾹 눌러 넣고 그는 신중하게 심호흡하며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반드시 맞힌다.’
두근.
심장의 고동 소리가 세차게 들려온다.
‘침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두근.
마치 시간이 정지하는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드는 순간.
베루스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강렬한 염원 속에서 현실 속 그의 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그 순간, 엘리스에 의해서 새로운 기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싱크로율 급증. 피버 모드 발동.] [집중 분석 모드 전환. 전투 행동에 따른 보정치 분석…….]그를 주시하기 시작한 이 세상의 관조자이자 조율자, 인공지능 엘리스.
그리고 그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감지망에 걸린 이 모험가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홀로 남아 있는 모험가. 그리고 그로 인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어느 작은 마을.
소중한 이들을 지키겠다는 염원 속에서, 전장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숨죽여 다가오는 적들만을 은밀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급소만을 저격(狙擊)하며 살해하던 그.
100배의 급격한 성장과 그에 따른 피버 모드의 보정치 역시 가중되는 이 특수한 상황 속에서, 엘리스는 판단했다.
[피버 모드에 따른 보정치 산정. 필요 조건 충족.] [최소 능력치 만족. 스킬 랭크 제한치 충족…….] [플레이어, 베루스. 클래스, 궁수. 부적합 판정.]기존의 궁수라는 직업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경지에 다다른 베루스.
숨도 쉬지 않은 채, 수백, 수 킬로미터 앞에 있는 적의 미간을 정확하게 적중하며 단 일격에 즉사시키는 그의 전투 방식은…… 일반적인 궁수의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에…… 엘리스는 무한한 자유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에 따라 과거, 안젤리나의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격에 걸맞은 새로운 직업을 선사해 주었다.
[유령(Ghost)]상대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림자 속에서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는 죽음의 사신, 유령.
그 누구도 걷지 못한 새로운 길을 걷게 되며 진정한 자신의 힘을 개화한 베루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 변화를 바라보았다.
“이게 뭔…….”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그 순간,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들.
그리고, 이내 자신의 활시위에 걸려 있는 그 화살에는 이상하리만큼 강대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스킬, 저격] [스킬, 추적할 수 없는 궤적] [스킬, 갑옷 파훼] [스킬, 관통력 강화] [스킬, 퍼져 나가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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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라는 새로운 직업의 탄생과 동시에, 그에게 부여된 수많은 새로운 직업 스킬들.
그리고 그 스킬의 효과가 아직 쏘아 보내지 못한 화살에 깃들어 가기 시작하자, 그의 표정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놀라움. 당혹감. 신비로움. 의아함.
그리고…….
이내 그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하……. 이 게임…….”
언제나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서 발악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들었던 게임.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자신을 마치 구원하는 것만 같은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그는 완전히 처음 느껴 보는 이 기묘한 감정에 웃으며 중얼거렸다.
“재밌네…….”
그리고 활시위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
그것이 정확히 저 거대 괴수의 머리 중앙에 자리한 급소에 틀어박히는 그 순간.
이 아르카디아에는 새로운 영웅이 또 한 명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