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엿 먹이기 (3)
마법의 종주, 드래곤.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우월한 지능과 완전한 기억력. 거기에 오랜 세월과 수많은 경험 속에 쌓인 지혜를 가진 그들은 그 어떤 생명체도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뛰어난 천재도 하루를 꼬박 새워 가며 풀어야 할 방대한 수식도, 그저 간단한 암산 정도로 해치워 버리는 규격 외의 괴물들. 그리고 그러한 이들에게 조련(?)당하고 있는 가엘 연방의 마법 공학자들은 그야말로 단 한 순간도 숨도 제대로 몰아쉴 수 없는 지옥 같은 강행군을 이어 가고 있었다.
“으으으……. 위대하신 존재시여…… 말씀하신 회로 다 만들어 왔습니다…….”
눈 밑이 푸르다 못해 새까맣게 죽어 버린 피노키오.
마리오네트 학파의 마스터이자, 본래라면 자신의 공방에서 근엄하게 앉아 제자들에게 온갖 훈수를 두고 있어야 할 그였지만, 지금은 마치 이제 막 학파에 들어온 신입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이 작업해 온 것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이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고 있었다.
“하아……. 야.”
하지만 피노키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잔뜩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보는 적발의 사내…… 아니, 살아남은 고룡급 레드 드래곤, 카이젤. 그는 거칠게 양피지의 몇 곳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싸늘하게 말했다.
“얼마나 멍청하면 수식을 이딴 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 네가 만든 회로에 따르면 여기랑 여기 그리고 또 여기랑 여기, 마력 전도 과정 중에서 서로 간에 충돌이 발생하잖아. 이렇게 되면 마나 효율이 급격히 감소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마나 역류로 폭발해 버릴 수도 있는 것도 몰라? 날아다니는 배가 아니라 날아다니는 폭탄을 만들고 있는 거였냐?”
거의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양피지에 마리오네트 학파의 일원 전체가 달라붙어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완성한 마법 회로.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종이에 단 하나의 빈틈도 남기지 않고 복잡한 마법 회로와 수식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기에 하나하나 읽고 해석하는 데에만 최소 일주일은 걸릴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하지만, 그걸 그냥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마법 회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누구도 잡아내지 못한 수식의 오류까지 잡아내 버린 그.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보니까 [내구도 강화], [자가 복구] 거기에…… [마력 분해]까지 동체에 부여하려고 한 모양인데……. 굳이 이딴 식으로 복잡하게 여러 마법을 중첩할 필요 있어? 그냥 [생체 금속] 하나로 정리하면 되잖아.”
그저 손짓 하나로 그 복잡했던 회로를 완전히 날려 버리고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전혀 새로운 마법 수식을 새겨 넣는 카이젤. 그리고 그것은 마리오네트가 구현하려고 했던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마법 회로였다.
“이, 이럴 수가…….”
“오오오……. 세상에 이런 완벽한 수식이…….”
“흐으으으윽……. 아, 아름다워…….”
마치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을 보는 것처럼 숨이 절로 막혀 오는 마법 공학자들. 수십 명이 한데 모여 이틀 밤낮을 꼬박 머리 싸매 가며 고민해서 만들어 낸 것을 단 한 순간에 그저 쓰레기보다도 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상황에도 그들은 허탈해하거나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어마어마한 흥분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하아……. 역시 드래곤이 마법의 종주라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구나.”
“내가 이런 진일보한 마학(魔學)을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되다니.”
“아아아! 역시 위대하신 존재!”
마법이라면 사족을 가리지 않는 존재들이자 언제나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그 진리를 찾기 위해서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들, 마법 공학자.
그렇기에 뜨거운 학구열에 불타는 이 공돌이들에게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꿈에나 그리던 완벽한 스승이자 절대적인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위대하시옵고 완벽하신 존재시여! 비천한 저희 인간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맞습니다! 저희는 무식하고 열등한 바보 천치들입니다. 한심한 벌레 같은 저희에게 부디 그 드높은 지식의 은총을!”
“개처럼 굴려 주십시오. 시키시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실험체가 되라고 하면 기쁘게 실험체가 되어 웃으면서 뒈질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잔뜩 기가 죽을 줄 알았건만, 이상하게 갑자기 마법 하나 보여 줬다고 눈깔이 뒤집혀 달려드는 마법 공학자들. 그리고 그런 이들의 반응에 카이젤은 도리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것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
하지만 자신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며 어쩔 줄 몰라 애태우는 이들의 모습이 그는 그리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카이젤은 그런 속내와는 전혀 다르게 진심으로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성가시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오냐, 이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들아. 네놈들이 원한다면 좋다. 레드 드래곤 카이젤, 나의 이름을 걸고 원숭이 같은 네놈들 모두에게 진정한 지옥이란 것이 뭔지 몸소 보여 주도록 하지.”
“바라는 바입니다!”
“뭐든 시켜 주십시오! 위대하신 존재시여!”
“제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위대하신 존재시여!”
여기저기서 온갖 과잉 충성과 입에 발린 소리가 난무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카이젤은 속으로 내심 흐뭇해하면서도 마치 심술 가득한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처럼 행동했다.
“아, 일단 그 위대하신 존재인지 뭔지 하는 그 낯간지러운 소리 좀 그만해. 듣기 거슬린다.”
“예……?”
드래곤들을 부를 때 자주 애용되는 존칭.
그 절대적인 불문율이나 다름없는 그 용어를 앞으로는 쓰지 말라는 말에 이들은 모두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이내 피노키오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스승님.”
“……?”
순간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는 피노키오와 마법 공학자들.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이들에게 카이젤은 나지막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 뒤돌아서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내가 너희한테 가르침을 주고 있잖아? 그러면 당연히 스승님이라고 불러야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리고는 돌아선 카이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있어서 지금 이 순간은 꿈에서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네 녀석은 오늘부로 내 제자가 아니다. 마나 친화력만 높았지, 마법을 배우기에는 너무 멍청하잖아. 당장 내 눈앞에서 썩 꺼져!] [아쉽지만, 네 녀석은 선천적으로 마나를 쌓을 수가 없는 몸이야. 마법사는 너의 길이 아니니 그냥 포기해라.] [돈도 없는 비천한 농노 주제에 무슨 마법이야? 아카데미고 나발이고 일이나 해!]재능이 없어 마법사의 길을 걸어 보지도 못하거나, 재능이 부족해 스승에게서 버려진 이들. 가난한 부모 밑에서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이들. 저마다 그 사정과 배경은 달랐지만, 마법 공학자들 대부분은 이렇다 할 만한 스승을 가져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너무나도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목소리로 새로운 그들의 스승을 불렀다.
“스승님! 물어볼 게 있습니다!”
* * *
“생각보다 드래곤들이랑 잘 어울리네? 엄청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꽤 죽이 잘 맞잖아?”
여러 마리의 고룡급 드래곤이 붙어서 저마다 여러 학파의 개발 과정에 여러 가지 조언과 지도 편달 해 주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던 재영. 그리고 그는 그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들의 조합이 기괴하지만, 생각보다 꽤 나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크흐흠. 이 멍청한 머저리 같은 인간들아! 딱 한 번만 말해 줄 테니까 귓구멍 열고 똑바로 들어라! 알겠냐?”
“옛! 스승님!”
“이런 벌레만도 못한 녀석. 또 이런 기초적인 수식에서 이딴 실수를 해? 어디 가서 나한테 배웠다고 하지 마라.”
“죄, 죄송합니다!”
“이거 봐. 네가 만든 거랑 내가 만든 수식, 뭐가 다른 것 같냐?”
“에…… 그게…….”
벌레보다 못하다거나, 멍청하다느니, 온갖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미사여구를 잔뜩 붙여 가며 마법 공학자들을 갈구는 이들.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확실하게 이들에게 부족한 부분과 미진한 부분들을 확실하게 설명해 가면서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었다.
“스, 스승님! 오셨습니까!”
“오냐.”
그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들의 막무가내의 행동에도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며 극진한 예우를 하는 마법 공학자들. 어떻게 보면, 드래곤한테 온갖 갈굼을 당하고 난 이후 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지도 편달을 받는 그 순간을 적나라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츤데레 같은 관종이랑, 갈굼을 당하면서 오히려 희열을 느끼는 변태들의 조합이라…….”
드래곤과 마법 공학자라는 이 둘의 관계를 정리한 재영. 그리고 그는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진짜 이 게임은 정상이라고 할 만한 놈들이 없네.”
마치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는 뭔가 머리에서 나사가 몇 개씩은 빠져 있는 것 같은 상황. 하지만, 그러면서도 재영이 원하던 물건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어 나가며 점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에는 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도…… 실력 하나는 확실하네…….”
게슈탈트의 잔해에서 뽑아낸 초미래적인 과학 문물의 잔해.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가며 만들어 내는 마법 전함, 노틸러스(Nautilus).
레비아탄을 잡아 낼 결전 병기이자 비장의 한 수로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드래곤까지 동원한 재영은 앞으로의 계획을 정비하며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골드리안과 하이머가 무언가를 가지고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도대체 무슨 설계도지?”
“네? 아니, 그냥 개인적으로 만들고 있는 건데……. 아직 구상만 하는 거예요…….”
“자, 잠깐만 보여 주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그러네…….”
“아니, 이건 전혀 관련 없는 제 개인적인 연구라서…… 그게…….”
하이머가 가지고 있는 연구 수첩.
그것을 우연히 열어 본 골드리안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잔뜩 경악한 얼굴로 그를 계속 재촉하고 있었지만, 하이머는 무언가 보여 주는 것을 잔뜩 꺼리고 있는 눈치였다.
“뭐 때문에 그래?”
“아…… 덱스 님.”
잔뜩 난처한 눈빛으로 재영에게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하이머. 하지만 재영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리 줘 봐. 도대체 뭐길래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거야?”
“아니…… 이건 진짜 그냥 별거 아닌데…….”
계속 주저하다 이내 결국 자신의 수첩을 건네준 하이머. 그리고 그는 이내 부끄럽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냥 제 개인적인 망상 같은 거예요. 가끔 시간 날 때 끄적이고는 있는데, 산재한 문제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냥 절대 구현은 불가능해요.”
마치 변명이라도 하는 듯이 말하는 하이머. 그런 그의 말에 재영은 잠깐 눈길을 주고는 이내 그 연구 수첩을 열어 보았다.
“별것도 아니라면서 도대체 왜 그렇게 둘 다 오버하는…….”
그리고, 그것을 열어 본 재영은 이내 하던 말을 멈춘 채 얼어붙었다.
“이건…….”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외형. 하지만 너무나도 친숙한 모습을 한 하이머의 연구물.
수많은 스케치와 온갖 디테일 한 내부 구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로봇의 모습을 한 아티팩트였다.
“그때 그 게슈탈트가 마지막에 변했던 그 모습이요……. 그 잔해를 수습해서 분석하다 어떻게 구현해 볼 수 있을까 싶어서 이거저거 한번 시도해 보고 있던 거예요. 아직 이론적으로 완성하지 못한, 그저 그림만 조금 끄적여 본 것이 전부라고요.”
이곳 중세 판타지 세계관인 아르카디아의 존재라면 상상조차 하지 못할 발상.
하지만, 현실의 수많은 과학 문명의 이기와 산물을 맞보아 온 재영은 그가 만들려고 하는 것의 정체를 단박에 깨달을 수 있었다.
“판타지 세계의 건X이라……. 크크크크……. 푸하하하하하.”
문득, 스쳐 가는 여러 가지 생각들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는 재영. 그렇게 한참을 웃어 대던 그는 이내 애정이 잔뜩 묻어 나오는 눈길로 하이머를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이머야……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너는 진짜 천재야.”
“네……?”
갑작스러운 칭찬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하이머. 하지만, 재영은 생각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연신 웃음을 터트리고 무언가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듯한 눈빛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무한한 자유, 무한한 가능성이라고 그랬지……?”
이 세상을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 휘저어 대면서 운운하던 그 모토.
모든 유저들이 PTSD를 일으키는 그 문구를 중얼거리며 재영은 하늘을 향해 말했다.
“그 말, 그대로 어디 한번 당해 봐라.”
지금부터 전세 역전의 시간이라고.